육사는 시와 행동의 통일을 보여준 희귀한 시인이다. 그러나 모든 시인이 육사처럼 일제에 직접적으로 대항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시인의 고유한 책무는 개인과 사회를 통찰하고 그것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일이며, 이를 위해 모국어의 미학적 가능성을 더하고 거기에 혼과 생명력을 부여하는 일이다. 따라서 식민지 시대였다 하더라도 독립운동이 시인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유언'을 거부하고 단호히 '행동의 연속만이 있을 뿐' 이라고 한 육사는 투사이기 전에 시인이었다. 그는 시가 곧 행동이라고 당당히 발언하고 있거니와 온갖 "고독이나 비애를 맛볼지라고 <시 한편>만 부끄럽지 않게 쓰면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스스로 시인으로서의 자의식과 저항을 뚜렷이 밝힌 것이기도 하다. 또한 '청포도'나 "광야"와 같은 그의 시편들이 오늘날까지 지속적인 공감대를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그것을 웅변하고 있다. 따라서 항일 시인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육사 모든 시편들을 정치적 저항의 차원에서만 해석하려는 강박증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그것은 육사의 시가 줄 수 있는 폭넓은 감동의 지대를 제한하고 축소하는 잘못을 저지르기 십상이다. 육사는 유가의 가풍과 교육 속에서 자라고 신교육도 받았다.
그의 글들은 그가 당대의 서구적 교양을 풍부히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가 서구 편향적인 지식인의 천박성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유가적 교양이 내면화되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가적 전통을 포함한 안정된 삶의 거처를 표상하는 '고향은' 일제에 의해 철저히 무력화되고 파멸하고 있었다. '수만호 빛이래야 할 내 고향이언만/ 노랑나비도 오쟎는 무덤우에 이끼만 푸르리라' 와 같이, 고향과 그에 바탕을 둔 삶은 황폐 그 자체였다. 이러한 고향은 이미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 불모지가 되어 버린 조국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것은 염상섭이 식민지 현실을 '묘지'로 상징한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육사는 그 참담한 폐허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별'을 노래함으로써 '새로운'시간과 공간의 도래를 믿고 갈구한다.
-별-
한 개의 별을 가지는건 한 개의 지구를 갖는 것 아롱진 서름밖에 잃을 것도 없는 낡은 이따에서 한 개의 새로운 지구를 차지할 오는날의 깃븐노래를 목안에서 피ㅅ대를 올려가며 마음껏 불러보자
위의 시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서 '별'을 노래하는 것은 '새로운 지구를 갖는 것 . '아름다운 미래를 꾸며'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롱진 서름밖에 잃을 것도 없는 '망국민에게 허락된 마지막 기도인지도 모른다. 별을 꿈꾸고 노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어둠을 걷어내기 위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말꾸밈에 그치지 않는 것은 '새로운 지구를 차지할'날이 '오는날'로 신념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식민지배의 부당성에 대한 육사의 굳건한 윤리적 확신일 터이다.
암흑 속에서 거짓된 희망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다. 그는 결코 현실의 위압에 압도되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넘어서는 빛나는 정신의 경지를 보여 주었다. '백마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리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는 의연한 모습이나 '서리빨 칼날진' 위에 스스로를 세우는 행위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육사의 정신이 이룩한 비장한 아름다움이다.
- 절정 -
메운 계절의 챗죽에 갈려 마츰내 북방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 서리빨 칼날진 그우에서다
어데다 무릎을 꾸러야하나 한발 재겨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감아 생각해볼밖에 겨울은 강철로된 무지갠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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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
이곳은 백운지 가는 길목 입니다 .입장료는 2000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