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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통일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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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주의 북한급변사태--미 전문가들의 분석 2014.01.29
이기적유전자 추천 0 조회 37 14.02.27 17:05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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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4.03.03 13:45

    첫댓글 러일전쟁 중 러시아가 일본에 한국분할을 제의하게 되고 또 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러시아에 대한 위기 의식은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러시아가 의화단 토벌을 이유로 한국 북부지방에 침투를 기도하자 한국 지식층에서는 러시아의 침략에 대비하고자 한일 양국의 제휴 내지 연대를 통한 방어를 적극 모색해 갔다. 러일전쟁 때 일본이 동으로 블라디보스토크와 남으로 하얼빈까지 혁파하여 러시아를 완전히 굴복시켰어야 했다고 주장하였을 정도로 안중근은 노일전쟁 때 일본을 지지하였다. 그러면 안중근 의사가 친일파 매국노인가? 아니다. 노일전쟁 때 일본의 승리를 기뻐하였던 그였기에 또한 항일 투쟁을 몸소 실천한

  • 작성자 14.03.03 13:47

    아니다. 노일전쟁 때 일본의 승리를 기뻐하였던 그였기에 또한 항일 투쟁을 몸소 실천한 자였다. 그리고 백 년 전의 안중근 의사와 동일한 발언을 지금 한승조 교수는 하고 있는 것이다.

    안중근 의사와 한승조 교수의 그 시대 한반도의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분석을 한승조 교수 비판자들은 기우라고 여기는가? 1896년 6월, 당시 제정 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일본 외상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와 러시아 외상 로마노프(Romanov)와의 회담에서 이미 러시아는 한반도 합방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었다. 이때 일본외상은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분할하여 러시아와 일본이 남․ 북을 나누어 갖자고 제의한 것이

  • 작성자 14.03.03 13:47

    이때 일본외상은 한반도의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분할하여 러시아와 일본이 남․ 북을 나누어 갖자고 제의한 것이다. 1903년 9월, 당시 주일본 러시아 공사인 로오센이 일본측에 제시한 한반도 분할 안에는 <북의 39도선을 경계로 분할하되 그 이남에서 일본의 특수이익을 누리도록 한다는 내용> 이 담겨있다.

  • 작성자 14.03.03 13:50

    여기서 우리가 중시해야할 것은 고구려족과 부여족의 차이이다. 고구려의 창건시조인 주몽은 아버지의 나라인 부여를 이기기 위하여 기마부대를 조련하였고 금와왕의 부여국은 경보병부대의 원조인 말갈족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갈, 여진, 거란족 모두가 다 우리 민족의 선조들이었고 지금 중국의 선조들인 한족들은 이들을 단 한 번도 확실하게 이겨본적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 역사를 보면 황하 이남은 한족이 지배하였으나 황하 이북지역을 완전히 지배한 기록이 없다. 사실상 중국 전역을 통일한 나라는 몽골족이 통치한 원나라와 여진족이 통치한 청나라 뿐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지적한대로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일한 청나라가 발

  • 작성자 14.03.03 13:51

    중국 역사를 보면 황하 이남은 한족이 지배하였으나 황하 이북지역을 완전히 지배한 기록이 없다. 사실상 중국 전역을 통일한 나라는 몽골족이 통치한 원나라와 여진족이 통치한 청나라 뿐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지적한대로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일한 청나라가 발해의 후예들이었으므로 우리 민족의 선조들이 중국도 통일하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퍼온글]

  • 작성자 14.03.03 13:51

    그런데 역사의 기술에서 고구려-발해-요-금-청으로 이어지는 고구려족, 즉 거란 여진족의 역사가 고려 이 후에 아주 당연스럽게 사라진다. 내 생각은 위에서 지적한대로 여진족과 거란족이 고구려족의 후예라고 볼 때 이 민족은 고구려 족이며 당연히 우리의 선조이다. 그리고 만주도 당연히 우리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고구려사를 회복해야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교과서에서부터 역사기록까지 아주 당연스럽게 요, 금, 청의 역사는 중국역사로 가르치고 연구하며 고구려 발해까지만 우리나라 역사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중국에게 역사왜곡의 빌미를 준 것이라는 생각이다[퍼온글]

  • 작성자 14.03.03 13:52

    당장 국면한 고구려사 조차도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요나라 금나라 청나라까지를 어찌 챙기겠는가? 우리가 지금까지 이야기했지만 사실 청나라는 우리의 역사다. 청나라의 민족은 고구려 후예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회복하지 못하고서는 고구려사 왜곡문제를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는 것은 중국을 지배했던 우리민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들은 그 두려움의 뿌리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민족의 기상과 우리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발해를 돌려가지는 것이다[퍼온글]

  • 작성자 14.03.03 13:55

    동북아에서 한국이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동맹이 받쳐 줘야 한다. 유럽에서 영국이 나름대로 균형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초강대국 미국과 탄탄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영국이 '빛나는 고립(splendid isolation)'으로 표현되는 균형외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이 프랑스와 독일을 능가하는 국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해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능가하는 힘을 키우든지 아니면 초강대국 미국과의 동맹을 활용하여 동북아의 안정과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

  • 작성자 14.03.03 13:57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는 여러 면에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너무나 흡사하다. 진주성 전투는 히데요시의 세계 정복 야망을 좌절시킨, 세계의 운명을 바꾼 대전투였다. 중세에 벌어진 전쟁이기에 치열함과 규모에 있어서 현대전투인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중세전투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진주성 전투도 치열함과 규모에 있어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뒤지지 않았다.


  • 작성자 14.03.03 14:06

    우리가 일방적으로 북한에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면 북한이 우리를 신뢰하게 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변화하리라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개인 사이에는 통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국가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다고 본다. 국가간의 관계를 단순한 신뢰나 호의에 의존하는 것 만큼 위험한 발상은 없다고 본다. 마키아벨리도 국가간의 신뢰는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국 북한의 변화를 조건으로 북한에 대하여 각종 지원을 제공하는 방법, 즉 상호주의 원칙을 대북관계에 적용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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