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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閻浮提의 日出
復次佛子야 譬如日出於閻浮提에 無量衆生이 皆得饒益하나니 所謂破闇作明하며 變濕令燥하며 生長草木하며 成熟穀稼하며
廓徹虛空하며 開敷蓮華하며 行者見道하며 居者辦業이니 何以故오 日輪이 普放無量光故인달하야
佛子야 如來智日도 亦復如是하사 以無量事로 普益衆生하나니 所謂滅惡生善하며 破愚爲智하며 大慈救護하고 大悲度脫하며 令其增長根力覺分하며 令生深信하야 捨離濁心하며 令得見聞하야 不壞因果하며 令得天眼하야 見歿生處하며 令心無礙하야 不壞善根하며 令智修明하야 開敷覺華하며 令其發心하야 成就本行이니 何以故오 如來廣大智慧日身이 放無量光하야 普照耀故니라 佛子야 是爲如來身第三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見이니라
“또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태양이 뜨면 염부제의 한량없는 중생이 모두 이익을 얻나니, 이른바 어둠을 깨뜨려 밝게 하고, 젖은 것을 마르게 하고, 초목을 나서 자라게 하고, 곡식을 성숙케 하느니라.
허공을 환히 트이게 하고, 연꽃을 피게 하고, 다니는 이는 길을 보고, 집에 있는 이는 일을 하게 하나니, 무슨 까닭인가. 태양이 한량없는 광명을 널리 놓는 연고이니라.
불자여, 여래 지혜의 태양도 또한 그와 같아서 한량없는 일로 중생을 널리 이익하게 하나니, 이른바 나쁜 짓을 없애고 착한 일을 내며,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지혜를 있게 하느니라.
크게 인자함으로써 구호하고, 크게 슬피 여김으로 해탈케 하며, 뿌리와 힘과 깨달음을 늘게 하여 깊은 신심을 내게 하고, 흐린 마음을 여의게 하느니라.
보고 들어서 원인과 결과를 깨뜨리지 않게 하며, 하늘눈을 얻어서 죽고 나는 곳을 보게 하며, 마음이 장애가 없어 착한 뿌리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느니라.
지혜를 닦아 밝혀서 깨달음의 꽃을 피게 하고, 마음을 내어 본래의 행을 성취케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여래의 광대한 지혜의 태양 몸이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 널리 비추는 연고이니라.
불자여, 이것이 여래 몸의 셋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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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부제(閻浮提)의 일출(日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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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한 번 떠 버리면 콩도 익어가고 보리도 익어가고 숙맥이 다 익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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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부차불자야
비여일출어염부제(譬如日出於閻浮提)에 : 해가 한 번 쑤욱 뜨면 남섬부주에 해가 한 번 떠버리면
무량중생(無量衆生)이 : 한량없는 중생이
개득요익(皆得饒益)하나니 : 모두 이익이다. 비가 와도 모두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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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파암작명(所謂破闇作明)하며 : 파암이라고 하는 것을 저 뒤에는 출세간으로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세간적으로 못된 악독한 짓을 암(闇)이라고 하고, 파암은 그 캄캄한 것을 깨뜨리는 것이다. 작명은 착한 선을 짓는 것 ‘중선봉행(衆善奉行)제악막작(諸惡莫作)’이 파암작명이다. 한량없는 중생이 모두 어둠을 깨뜨려서 밝게 하고
변습영조(變濕令燥)하며 : 젖은 것을 마르게 한다.
화엄경 십지품에는 신심없는 사람을 축축하게 젖은 땔감으로 비유해 놓았다. 불을 붙여도 금방 폭 꺼져버리는 사람들이다. 젖은 장작더미처럼 불을 붙여도 엔간히 붙여서는 안 탄다. 불을 붙이려면 휘발유로 확 긋는 수밖에 없다.
내일 모레 범어사 수계산림을 하는데 업장이 좀 두꺼우면 연탄집게를 벌겋게 달궈서 푹 찢어버려도 자기 자신이 그렇게 연비 하듯이, 팔도 자르고, 내가 안되겠다 싶으면 그렇게 해도 괜찮다.
이미 혜가스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는가. 인생을 통째로 잃는 것보다는 팔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어떤 분은 ‘니나 그래 해라’ 할지 모르지만.
생장초목(生長草木)하며 : 초목을 나서 자라게 하고, 이 비유는 법화경 약초유품에 잘 나온다. 거기에 보살은 나무에 비유하고 성문 연각을 약초, 풀에 비유했다. 풀은 풀만큼 물을 먹는다. 풀을 천년만년 키운다 하더라도 그것이 기둥 되고 대들보가 될 리 없다. 법화경 약초유품의 삼초이목(三草二木)의 비유를 기억하실 것이다.
성숙곡가(成熟穀稼)하며 : 곡식을 성숙케 한다. 곡식이 자라는데 천 곡식 만 곡식이 됐든지 옛날 곡식이나 지금 곡식이나 늘 같은 태양, 한 태양 아래서다.
한 태양 아래 모든 곡식이 다 자라난다.
사람도 이 사람 저 사람 다 있다 하더라도 일심(一心)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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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철허공(廓徹虛空)하며 : 허공을 환하게 트이게 하고
개부연화(開敷蓮華)하며 : 연꽃을 피게 하고
행자견도(行者見道)하며 : 다니는 사람이 길을 환하게 볼 수 있도록 하고
거자판업(居者辦業)이니 :집에 있는 머무르는 사람들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금강경에선 거자판업을 ‘여인(如人)이 유목(有目)하야 일광명조(日光明照)에 견종종색(見種種色)이라’고 하였다. 눈이 있는 사람은 전부 다 봐야 된다.
하이고(何以故)오 :무슨 까닭이냐
일륜(日輪)이 : 태양이
보방무량광고(普放無量光故)인달하야 : 한량없는 광명을 놓는 연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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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지일(如來智日)도 : 여래 지혜의 태양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사 : 또한 그와 같아서
이무량사(以無量事)로 : 한량없는 일로
보익중생(普益衆生)하나니 : 중생을 널리 이익케 한다.
태양보다도 더 밝은 것도 있다.
화엄경 세주묘엄품에 보면 주약신(主藥神)을 이야기할 때 폐일광당(蔽日光幢) 주약신이 나온다. 폐일광당 햇빛도 가려버리는 주약신이다. 해가 하나 뜨면 가로등이 무색해져 버린다. 마음에도 태양이 떠 버리면 저 하늘의 태양도 무색해져 버린다. 저 하늘에 태양이 백천 개 떴다 하더라도 마음의 태양이 한 번 떠버리면 하늘의 태양도 무색해진다고 달마스님이 출가할 때 이야기했다.
이 세상 광명중에 제일 밝은 광명은 지광(智光)이다. 마음의 지혜광명이다. 달마스님이 향지국의 셋째 아들로서 출가할 때 아버지 초상 치르고 난 뒤에 출가하시면서 반야다라(般若多羅)존자에게 그 말을 남긴다.
여래 지혜의 태양도 또한 이와 같아서 한량없는 일로 중생을 이익되게 하나니
소위멸악생선(所謂滅惡生善)하며 : 이른바 나쁜 짓을 없애고 착한 일을 내며
파우위지(破愚爲智)하며 : 어리석음을 깨뜨리고 지혜를 있게 하느니라.
앞에 나왔던 파암작명이 세간적 비유였다면, 여기 파우위지는 출세간적 비유다. 어둠을 깨뜨려 지혜를 있게 한다. 혁범성성(革凡成聖)이다. 범부를 돌이켜서 성인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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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구호(大慈救護)하고 : 크게 인자함으로써 구호하고
대비도탈(大悲度脫)하며 : 중생을 어여삐 여김으로써 해탈하게 하며
영기증장근력각분(令其增長根力覺分)하며 : 뿌리의 힘과 깨달음을 늘게 한다. 신해행증(信解行證)이다.
영생심신(令生深信)하야 : 깊은 신심을 내게 하고
사리탁심(捨離濁心)하며 : 흐린 마음을 여의게 하느니라.
깊은 믿음을 내는 것은 공덕행을 짓게 하고 탁한 마음을 버리게 한다.
신해행증(信解行證)으로 본다면 깊은 믿음은 신(信), 탁한 마음을 버린다는 것은 잘 이해한다는 뜻의 해행(解行)이 된다.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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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득견문(令得見聞)하야 : 보고 듣고 해서
불괴인과(不壞因果)하며 : 인과를 깨뜨리지 않게 하고
영득천안(令得天眼)하야 : 하늘 눈을 얻어서
견몰생처(見歿生處)하며 : 죽고 나는 곳을 보게 하고
영심무애(令心無礙)하야 : 마음에 장애가 없어서
불괴선근(不壞善根)하며 : 착한 뿌리, 선근을 무너뜨리지 않게 하느니라.
과육이라고 하는 열매만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열매속에는 반드시 옹골차게 씨앗이 익어가고 있다. 그것을 화엄경 왕복서에서는 철과해인(徹果該因)이라고 이야기한다.
작은 씨앗이 큰 나무가 되지만, 큰 나무는 열매를 익히면서 열매만 익어가는 것이 아니라 속에는 핵심이 익어간다.
지금 우리들의 공부도 그렇다. 여기 고대로 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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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수명(令智修明)하야 : 지혜를 밝게 닦아서
개부각화(開敷覺華)하며 : 깨달음의 꽃을 피게 하고
영기발심(令其發心)하야 : 그 마음을 내어서
성취본행(成就本行)이니 : 본래 행을 성취케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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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 어찌한 까닭이냐
여래광대지혜일신(如來廣大智慧日身)이 : 여래의 광대한 지혜 태양의 몸이
방무량광(放無量光)하야 : 한량없는 광명을 놓아서
보조요고(普照耀故)니라 : 널리 비추는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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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위여래신제삼상(是爲如來身第三相)이니 : 이것이 여래신의 제 세 번째 모습이니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제보살마하살이
응여시견(應如是見)이니라 : 응당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라. 先照須彌山
復次佛子야 譬如日出於閻浮提에 先照一切須彌山等諸大山王하고 次照黑山하고 次照高原하고 然後普照一切大地나 日不作念호대 我先照此하고 後照於彼언마는 但以山地가 有高下故로 照有先後인달하야 如來應正等覺도 亦復如是하사 成就無邊法界智輪하야 常放無礙智慧光明하사 先照菩薩摩訶薩等諸大山王하고 次照緣覺하고 次照聲聞하고 次照決定善根衆生하사 隨其心器하야 示廣大智하고 然後普照一切衆生하며 乃至邪定이라도 亦皆普及하나니 爲作未來利益因緣하야 令成熟故나 而彼如來大智日光은 不作是念호대 我當先照菩薩大行하며 乃至後照邪定衆生이요 但放光明하야 平等普照하사 無礙無障하며 無所分別이니라
佛子야 譬如日月이 隨時出現에 大山幽谷을 普照無私인달하야
如來智慧도 亦復如是하사 普照一切하야 無有分別호대 隨諸衆生의 根欲不同하야 智慧光明이 種種有異니라
佛子야 是爲如來身第四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見이니라
“또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태양이 염부제에서 뜨면 먼저 일체 수미산들의 모든 큰 산에 비추고, 다음에 흑산을 비추고, 다음에 높은 언덕을 비추고, 나중에 모든 땅을 비추지만 태양이 생각하기를 내가 먼저 여기 비추고 뒤에 저기 비추리라 하지 않지만 다만 산과 땅이 높고 낮은 데가 있으므로 먼저 비추고 뒤에 비추는 것이 있게 되느니라.
여래 응공 정등각도 또한 그와 같아서 그지없는 법계 지혜의 태양을 성취하여 걸림 없는 지혜 광명을 항상 놓을 적에 먼저 보살마하살의 큰 산을 비추고, 다음에 연각(緣覺)을 비추고, 다음에 성문(聲聞)을 비추고, 다음에 착한 뿌리가 결정된 중생을 비추되 그 마음 그릇을 따라 넓고 큰 지혜를 보인 뒤에 일체 중생에게 두루 비추며, 내지 잘못 결정된 이에게도 또한 다 널리 비추느니라.
미래에 이익할 인연을 지어 성숙케 하지마는 그러나 저 여래의 큰 지혜 태양빛은 생각하기를 내가 마땅히 먼저 보살의 크게 수행하는 이에게 비추고, 내지 나중에 잘못 결정된 중생에게 비추리라 하지 않고, 다만 광명을 놓아 평등하게 두루 비추어 걸림도 없고 막힘도 없고 분별함도 없느니라.
불자여, 비유하면 마치 해와 달이 때를 따라 나타나서 큰 산과 깊은 골짜기를 사사로움 없이 널리 비추느니라.
여래의 지혜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것을 두루 비추고 분별함이 없지마는 모든 중생들의 근성과 욕망이 같지 아니함을 따라서 지혜의 광명도 가지가지로 다르니라.
불자여, 이것이 여래 몸의 넷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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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수미산(先照須彌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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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수미산을 비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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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부차 불자야
비여일출어염부제(譬如日出於閻浮提)에 : 비유하면 마치 태양이 염부제에 뜨면
선조일체수미산등제대산왕(先照一切須彌山等諸大山王)하고 : 일체 수미산 등 제대산왕처럼 모든 큰 산을 먼저 비춘다.
수미산은 보살 같은 사람, 보살행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차조흑산(次照黑山)하고 : 다음에는 조흑산이라. 흑산은 연각을 이야기한다. 아공(我空)은 증득했지만 아직 법공(法空)의 지혜 광명을 증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산이라도 시커먼 산인 흑산이다.
경전에서는 산이 지혜를 상징한다.
세주묘엄품에도 주산신(主山神)이 나온다.
산신각에 염불할 때는 ‘만덕고승(萬德高勝) 성개한적(性皆閑寂) 산왕대신(山王大神)’ 이라고 한다.
만 가지 공덕의 행이 수미산처럼 높고도 수승하다. 그러나 그 어떤 바라밀 공덕행에 대해서 집착하는 바가 없다.
응관법계성(應觀法界性)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듯이 성개한적(性皆閑寂)이다. 법계의 성품을 관하니 본래 없다. 무명무상(無名無相)이다,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이다.
화엄경 청량국사 소초에도 나온다.
산이 왜 보살의 지혜같이 높은 지혜를 상징하는가?
산은 모난 돌이나 모난 흙이나 잡티 꺼리까지 다 섞어야 높은 산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도 그와 같다.
지혜롭지 못하고 얍삽한 사람들은 이 돌은 못났다고 빼고 저 물도 빼고 나무도 뺀다. 그러다 보면 평범하게 살다가 간다.
산이 되려면 도둑놈도 허용해야 되고 제바달다도 허용해야 되고 부처님처럼 연쇄살인마 앙굴리말라도 포용해야 된다. 그것이 일승(一乘)이다.
우리는 뻔히 알면서도 일승이 안되고 삼승도 아니고 잡승 비슷하게 내쪼대로 살다 간다. 내쪼대로 불교가 있지 않는가. 그것을 저는 ‘쪼대로 불교’라고 한다.
화엄에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심청이 아버지만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맹인이 다 눈을 떠야 된다.
제바달다까지 성불해야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다.
법화경에도 그대목이 그대로 나오고 화엄경에도 그대로 나온다. 다른 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화엄경에 고대로 나온다.
제바달다 성불이 성불의 마지막이다.
제일 성불 못 하는 사람이 제바달다이지 않은가.
제바달다 성불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오면 밥도 안 준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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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조고원(次照高原)하고 : 다음에 비추는 것은 엔간히 높은 언덕이다. 이것은 성문을 이야기한다.
높은 언덕에서는 연꽃이 피지 않는다.
고원육지(高原陸地)에는 불생연화(不生蓮花)라, 유마경에 나오는 말이다.
그러면 연꽃은 어디에 피는가?
화엄의 일승사상에서는 비습어니(卑濕淤泥)에 내생차화(乃生此華)니라, 번뇌 속에서 바로 연꽃이 피어야 된다.
그런 것의 대표가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의 항순중생(恒順衆生)편이다.
중생한테 잘하는 것이 부처님한테 잘하는 것이라고 보현행원의 아홉 번째 게송에서 철저하게 이야기해 놓았다.
중생이 근본이고 뿌리다.
저는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항순중생편에 ‘중생이 뿌리고 부처님은 가지다, 꽃과 열매다’라고 해 놓았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는 부처님이 근본이 되어야 하고 중생은 거기에 매달려 살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중생이 뿌리다’라고 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을 보면 아랫사람에게 잘하는 사람들이 제일 좋은 사람들이고, 윗사람들에게 잘하는 사람들은 아부다.
물론 위의 분들은 잘 모셔야 되지만 그보다는 밑에 있는 사람들을 잘 거둬야 한다.
부처님도 얼마나 새까만 중생들을 잘 거두며 살고 계신가.
화엄경의 요지가 항순중생에 있는 것이다.
첫번째로 예경제불도 해야겠지만, 예경제불해서 마지막 결론은 중생에게 잘하라는 것이다.
하화중생(下化衆生) 상구보리(上求菩提)다. 상구보리의 목적은 하화중생에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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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후보조일체대지(然後普照一切大地)나 : 그런 뒤에 일체 대지를 비춘다. 대지에는 평범한 사람들, 지옥 아귀 축생 온갖 것이 다 섞여 살지 않는가.
조금 고상한 고원(高原)이나, 좀 높은 산도 있고, 더 높은 산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낮추고 낮춰서 대지를 비추는데
일부작념(日不作念)호대 : 태양은 아무 생각이 없다.
아선조차(我先照此)하고 : 내가 여기를 먼저 비추고
후조어피(後照於彼)언마는 : 저기를 먼저 비추려고 하지 않지마는
단이산지(但以山地)가 : 다만 산과 땅이 스스로
유고하고(有高下故)로 : 높고 낮음이 있다. 중생이 제 근기에 따라서 부처님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못 받아들이기도 하는 것이다.
조유선후(照有先後)인달하야 : 받아들이고 비추는 데 선후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땅은 평평하게 한 종류다.
소초에 보면 완전 결정적인 믿음을 가지고 평범하게 살지만 정정취(正定聚)라, 올바르게 살면 다음생에 반드시 불생불멸의 인가를 받을 사람이 있다.
다음생에 축생쯤 인연 되는 사람은 부정취(不定聚) 중생이라고 한다.
기신론 같은 경우 부정취 중생을 위해서 써놓았다고 한다.
사정취(邪定聚)도 아니고 정정취(正定聚)도 아니다.
삿된 곳에도 떨어지지 않고 올바른 곳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데, 잘하면 좋은 쪽에 쏠리고, 못하면 쫄딱 미끄러져서 타락해 버리는 부정취(不定聚) 중생을 위해서 기신론을 써놨다고 한다.
완전 사정취 중생들은 자갈밭이나 소금밭에서 곡식이 못 자라는 것과 비슷한 사람들이다.
소견머리가 생각을 해도 꼭 저 죽을 꾀만 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사정취 중생이라고 하고 사력(砂礫)이라고 한다. 모래 사(砂)자 자갈 력(礫)자 사력지(砂礫地)라고 한다.
우째 그런 땅도 있는 것 같다.
자갈밭에는 무엇을 심어야 하는가?
자갈밭에는 콩을 심는다.
그런데 김시습 스님이 써놓은 글에 보면 ‘콩을 심어 놓았는데 두묘희(豆苗稀)라 콩싹도 드문드문하다’라는 글이 나온다.
마음 심지가 얼마나 업보중생인지 콩도 잘 못 자라는 땅이 있는가 보다.
그러니까 ‘평생토록 자기의 곡식 한 번 가꾸지 못하고 꼴까닥 죽어서야 되겠느냐?’ 이런 생각을 해본다.
자기 심지가 문전옥답으로 해서 넉넉하게 남을 먹여 살리지는 못해도, 어떻게 콩도 못 자라는 그런 땅이 있는가 모르겠다.
그런 사람들은 화엄경을 절대 안 본다. 죽어도 안 본다. 죽으면 죽었지 안 본다.
‘기신론 다 외우면 자(字)당 백원씩 줘가지고 백만원 줄게’ 하면 ‘스님이 외우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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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응정등각(如來應正等覺)도 : 여래 응공 정등각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사 : 또한 이와 같아서
성취무변법계지륜(成就無邊法界智輪)하야 : 무변법계 지혜의 태양을 성취하야
상방무애지혜광명(常放無礙智慧光明)하사 : 걸림 없는 지혜 광명을 항상 놓을 적에
선조보살마하살등제대산왕(先照菩薩摩訶薩等諸大山王)하고 : 선조 보살마하살 등 제대 산왕하고
차조연각(次照緣覺)하고 : 차조연각하고 다음에
차조성문(次照聲聞)하고 : 차조성문이라. 연각은 흑산이다. 제대산왕은 보살이다. 다음에 성문은 고원 높은 언덕 정도 되고 평범한 땅은 일체 중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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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조결정선근중생(次照決定善根衆生)하사 : 다음에 착한 뿌리가 결정된 중생을 비추되
수기심기(隨其心器)하야 : 그 마음의 그릇을 따라서.
마음의 그릇이 안 되는 것을 화엄경 입법계품에서는 비기고(非器故) 그릇이 아니다, 라고 한다.
법을 담아서 공부할 만한 심보가 아니다. 비기고니라 이렇게 해 놓았다. 아무나 감당할 입장이 안 되는가 보다. 그런 것을 들을 때마다 섬찟섬찟 하다가도 천수경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를 들으면 위로가 된다.
시광대지(示廣大智)하고 : 광대한 지혜를 보인 뒤에
연후보조일체중생(然後普照一切衆生)하며 : 연후에 일체 중생을 널리 비추며
내지사정(乃至邪定)이라도 : 내지는 사정, 아주 못돼빠진 악독한 중생이라도
역개보급(亦皆普及)하나니 : 아주 삿된 소갈딱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또한 널리 다 비추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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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미래이익인연(爲作未來利益因緣)하야 : 그런데 미래에 이익할 인연을 지어서
영성숙고(令成熟故)나 : 성숙케 하지만, 영성숙고나
이피여래대지일광(而彼如來大智日光)은 : 그러나 저 여래의 대지혜 태양의 빛은
부작시념(不作是念)호대 :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당선조보살대행(我當先照菩薩大行)하며 : 내가 마땅히 먼저 보살대행을 비추고
내지후조사정중생(乃至後照邪定衆生)이요 : 내지는 뒤에 끝에가서야 사정취 중생을 비춘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집착이 없으니까 무심한데 무슨 그런 생각을 하겠는가?
단방광명(但放光明)하야 : 다만 광명을 놓아서, 있든지 말든지.
그러니까 서장 같은 데서는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양의가 약을 지어주되 먹고 안 먹고는 환자 자신의 문제다, 라는 이야기를 해 놓았다. 먹고 안 먹고는 제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다. 다만 광명을 놓아
평등보조(平等普照)하사 : 평등하게 두루 비추되
무애무장(無礙無障)하며 : 장애가 없으며
무소분별(無所分別)이니라 : 분별하는 마음도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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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비여일월(譬如日月)이 : 비유하건대 태양이 무슨 분별심이 있겠는가? 태양은 비 오는 날도 해가 뜨고 눈 오는 날도 해가 뜨고 해가 안 뜨는 날이 없다. 환한데 눈이 막혔을 뿐이고, 구름이 끼었을 뿐이다.
오늘 보름날인가? 오늘이 보름이다.
오늘 보름달은 구름이 끼었는데도 뜨지 않겠는가? 구름이 끼어도 보름달은 뜰 것이다.
나이트 플라이트(Night Flight), 야간 비행, 생텍쥐페리를 보면 보름날에 태평양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밑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지만 먹구름을 차고 올라가니 보름달이 구름 위에 환하게 떠 있다.
한 30분 뒤에 비행기는 남태평양 바다에 추락해 죽지만.
우리도 중생 노름하며 살지만 뚫고 올라가면 곧 보름달이 있지 않을까,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 갑자기 그 생각을 하니까 신경질이 막 난다. 강의도 하기 싫고 ‘다른 사람들은 다 보는데 왜 우리는 못 보느냐’ 이런 말씀 하지 말기 바란다.
비유하자면 마치 해와 달이
수시출현(隨時出現)에 : 때를 따라서 떨어질 때
대산유곡(大山幽谷)을 : 높은 산 깊은 계곡을
보조무사(普照無私)인달하야 : 보조무사인달하야, 해가 낮은 계곡이라고 안 비춰주는 것이 아니다. 계곡이 스스로 낮은 데에 있을 뿐이다.
높은 곳도 일부러 해가 먼저 비춘 것은 아닌데 공덕을 많이 지어서 그 공덕이 있다 보니 저절로 먼저 비춰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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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지혜(如來智慧)도 : 여래의 지혜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사 : 역부여시하야
보조일체(普照一切)하야 : 널리 일체를 두루 비추고
무유분별(無有分別)호대 : 분별심이 없지만
수제중생(隨諸衆生)의 : 모든 중생의
근욕부동(根欲不同)하야 : 근욕부동하야
지혜광명(智慧光明)이 : 지혜광명이
종종유이(種種有異)니라 : 종종유이니라.
수제중생의 근욕부동이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性)이다. 자성을 지키지 않고 인연 따라 이루어진다. 자성은 무자성이니까 자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우리가 치문 배울 때 얼마나 많이 외웠는가?
‘개중생지근욕성(盖衆生之根欲性)이 수(殊)라 약일이론지(若一以論之)인댄 공비득지야(恐非得旨也)로다, 중생의 근기와 욕망과 성품이 부동해서 만약 한 가지로만 논한다면 뜻을 얻지 못할까 두렵다’
마음은 똑같은데 생각이 다르다. 마음과 생각은 다른 것이다.
마음이라는 진심은 똑같은데 망상이 달라서 지혜광명도 밝았다 어두워졌다 한다.
똑같은 전기인데도 밝은 전구를 끼니까 환하고, 어두운 전구를 끼니까 어두워진다. 전기에 무슨 허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기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그런데 다리미를 갖다 대니까 뜨겁고, 냉장고를 갖다 대니까 차가울 뿐이다. 반연이 다를 뿐이고 전기는 똑같다.
저는 가끔씩 신호등을 보다가 파란 전기가 들어와서 파란색인가 싶기도 하고 빨간 신호등이 왔을 때는 전기가 빨간가 싶기도 하다.
여래출현품을 보왕성기품이라고 하는데 탐현기(探玄記)에 현수법장(賢首法藏)스님이 해석하기를 보왕이 무엇이냐? 보배 중에서도 최고 으뜸가는 것인데 그 보배가 비유로써 무슨 보배냐? 마니보배다, 마니주다. 여의주다.
그 마니주는 어떤가? 자연수색변래단(自然隨色辨來端)이다. 투명해서 색깔이 없다. 그런데 오는 색깔 따라서 맞춰준다 이렇게 해 놓았다.
그러니까 여기에서 여래가 출현하는 것은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 중생의 제 눈높이만큼 나타난다.
좋은 부처님 나쁜 부처님 크고 작은 부처님이 자기 생각만큼 나타난다는 것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위여래신제사상(是爲如來身第四相)이니 : 시위여래신은 제4상이니 이것이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제보살마하살의 네 번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은
응여시견(應如是見)이니라 :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한 꼭지만 더하고 마치겠다.
마. 生盲衆生
復次佛子야 譬如日出에 生盲衆生이 無眼根故로 未曾得見하나니 雖未曾見이나 然爲日光之所饒益이니 何以故오 因此得知晝夜時節하며 受用種種衣服飮食하야 令身調適하야 離衆患故인달하야 如來智日도 亦復如是하사 無信無解하며 毁戒毁見하며 邪命自活하는 生盲之類는 無信眼故로 不見諸佛智慧日輪하나니 雖不見佛智慧日輪이나 亦爲智日之所饒益이니 何以故오 以佛威力으로 令彼衆生의 所有身苦와 及諸煩惱와 未來苦因으로 皆消滅故니라 佛子야 如來가 有光明하니 名積集一切功德이며
有光明하니 名普照一切며 有光明하니 名淸淨自在照며 有光明하니 名出大妙音이며 有光明하니 名普解一切語言法하야 令他歡喜며 有光明하니 名示現永斷一切疑自在境界며 有光明하니 名無住智自在普照며 有光明하니 名永斷一切戲論自在智며 有光明하니 名隨所應出妙音聲이며 有光明하니 名出淸淨自在音하야 莊嚴國土하야 成熟衆生이니라
佛子야 如來一一毛孔에 放如是等千種光明하사 五百光明은 普照下方하고 五百光明은 普照上方種種刹中種種佛所諸菩薩衆이어든 其菩薩等이 見此光明하고 一時皆得如來境界하야 十頭十眼과 十耳十鼻와 十舌十身과 十手十足과 十地十智가 皆悉淸淨하며 彼諸菩薩의 先所成就諸處諸地가 見彼光明하고 轉更淸淨하야 一切善根이 皆悉成熟하야 趣一切智하며 住二乘者가 滅一切垢하며 其餘一分生盲衆生이 身旣快樂하고 心亦淸淨하야 柔軟調伏하야 堪修念智하며 地獄餓鬼畜生諸趣所有衆生이 皆得快樂하야 解脫衆苦하고 命終에 皆生天上人間하나니 佛子야 彼諸衆生이 不覺不知以何因緣이며 以何神力으로 而來生此하고 彼生盲者가 作如是念호대 我是梵天이며 我是梵化로라하니라
是時如來가 住普自在三昧하사 出六十種妙音하야 而告之言하사대 汝等이 非是梵天이며 亦非梵化며 亦非帝釋護世所作이요 皆是如來威神之力이라하면 彼諸衆生이 聞是語已하고 以佛神力으로 皆知宿命하야 生大歡喜하며 心歡喜故로 自然而出優曇華雲과 香雲과 音樂雲과 衣雲과 蓋雲과 幢雲과 幡雲과 末香雲과 寶雲과 獅子幢半月樓閣雲과 歌詠讚歎雲과 種種莊嚴雲하야 皆以尊重心으로 供養如來하나니 何以故오 此諸衆生이 得淨眼故로 如來與彼로 授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일새니라
佛子야 如來智日이 如是利益生盲衆生하야 令得善根하야 具足成熟이니라
佛子야 是爲如來身第五相이니 諸菩薩摩訶薩이 應如是見이니라
“또 불자여, 비유하자면 마치 해가 뜨는 것을 배냇소경[生盲]인 중생은 눈이 없으므로 일찍이 보지 못하였느니라. 비록 보지는 못하였으나 햇빛의 이익을 받나니, 왜냐하면 이것을 인하여 낮과 밤의 시간을 알고, 갖가지 의복과 음식을 수용(受用)하여 몸을 조화롭고 편안하게 하고 여러 가지 근심을 여의는 연고이니라.
여래 지혜의 해도 그와 같아서 믿음이 없고 이해가 없고 계율을 파하고 바른 소견이 없고 잘못되게 살아가는 배냇소경의 종류들은 믿는 눈이 없으므로 부처님들의 지혜의 해를 보지 못하느니라. 비록 부처님의 지혜의 해를 보지는 못하나 또한 지혜의 해의 이익을 받느니라.
왜냐하면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저 중생들이 가진 몸의 고통과 모든 번뇌와 미래에 괴로움이 될 원인을 모두 소멸시키는 연고이니라.
불자여, 여래에게 광명이 있으니 이름은 ‘모든 공덕을 쌓아 모음’이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은 ‘온갖 것을 두루 비춤’이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이 ‘청정하고 자유롭게 비춤’이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이 ‘크고 묘한 음성을 냄’이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이 ‘일체 말하는 법을 두루 알아서 다른 이를 기쁘게 함’이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이 ‘모든 의심을 아주 끊어 자유자재한 경계를 나타내 보임’이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이 ‘머무름이 없는 지혜[無住智]로 자유롭게 두루 비춤’이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이 ‘모든 희롱거리를 아주 끊은 자유자재한 지혜’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이 ‘마땅한 대로 묘한 음성을 냄’이요,
광명이 있으니 이름이 ‘청정하고 자유로운 음성을 내어 국토를 장엄하고 중생을 성숙케 함’이니라.
불자여, 여래의 낱낱 모공에서 이러한 일천 가지 광명을 놓아서 오백 광명으로는 하방(下方)에 두루 비추고, 오백 광명으로는 상방(上方) 가지가지 세계의 가지가지 부처님 처소에 있는 보살대중에게 비추느니라.
그 보살들이 이 광명을 보고는 한꺼번에 여래의 경계를 얻어 열 머리와 열 눈과 열 귀와 열 코와 열 혀와 열 몸과 열 손과 열 발과 열 지위와 열 지혜가 청정하여지니라.
저 모든 보살들의 먼저 성취한 모든 처소(處所)와 모든 지위에서 이 광명을 보고 더욱 청정하여지며 일체 착한 뿌리가 모두 성숙하여 일체 지혜에 나아갔느니라.
이승(二乘)에 머문 이는 모든 때를 소멸하고, 그 외의 한 부분인 배냇소경인 중생은 몸이 이미 쾌락하고 마음도 또한 청정하며 유연하고 조복되어 능히 지혜를 닦게 되었느니라.
지옥 아귀 축생의 여러 길에 있는 중생들도 모두 즐거움을 얻고 온갖 고통에서 해탈하며 목숨이 마치면 모두 하늘과 인간에 나느니라.
불자여, 저 모든 중생은 무슨 인연과 무슨 신통한 힘으로 여기에 와서 나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알지 못하며, 저 배냇소경은 생각하기를 ‘내가 범천이며 범천의 변화함이라.’라고 하느니라.
그때에 여래가 두루 자재한 삼매에 머물러서 60가지 묘한 음성을 내어 말씀하기를, ‘그대들은 범천도 아니고 범천이 변화한 것도 아니며 또한 제석천왕이나 호세(護世) 사천왕이 지은 것도 아니고, 모두 다 여래의 위신력이니라.’라고 하시니라.
저 모든 중생들이 이 말씀을 듣고는 부처님의 신통하신 힘으로 모두 지난 세상의 일을 알고 크게 즐거워하며 마음이 즐거우므로 저절로 우담바라꽃 구름과 향 구름과 음악 구름과 옷 구름과 일산(日傘) 구름과 당기(幢旗) 구름과 번기(幡旗) 구름과 가루향 구름과 보배 구름과 사자당기반달누각 구름과 노래찬탄 구름과 가지각색 장엄 구름을 내어 존중하는 마음으로 여래께 공양하느니라.
왜냐하면 이 모든 중생들이 깨끗한 눈을 얻은 연고로 여래께서 그들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시느니라.
불자여, 여래 지혜의 해는 이와 같이 배냇소경인 중생을 이익 되게 하여 착한 뿌리를 얻어 구족하게 성숙하게 하느니라.
불자여, 이것이 여래 몸의 다섯째 모양이니 보살마하살들은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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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맹중생(生盲衆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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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불자(復次佛子)야 : 또다시 불자야
비여일출(譬如日出)에 : 비유하자면 마치 해가 뜨는 것을
생맹중생(生盲衆生)이 : 생맹 선천적으로 눈이 어두운 사람, 장애가 있는 중생이
무안근고(無眼根故)로 : 안근이 없는 까닭에, 눈이 없어 아예 선천적으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태양이 떴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다. 중생은 눈이 없으니
미증득견(未曾得見)하나니 : 일찍이 보지 못했나니, 한 번도 화엄경을 못 봤다. 열반경에 보면 부처님 당시에 인도에 구억가(九億家)가 살았는데 3억가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법문을 듣고, 3억가는 부처님 오셨다는 소리만 듣고 법문은 못 듣고, 3억가는 부처님이 오셨는지 가셨는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지금도 화엄경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있다. 제 방에도 그렇고 여기 와도 그렇고 가는 데마다 흔하게 눈에 띄는 것이 화엄경인데 금생에 와서 화엄경 한 번도 못 보고 죽는 분들도 계신다. 참 희한한 사람들도 많다. 그것은 여기 나오는 생맹 눈먼 사람들, 인연이 없는 분들이다.
수미증견(雖未曾見)이나 : 비록 볼 수는 없었으나
연위일광지소요익(然爲日光之所饒益)이니 : 연(然) 그러나 못봐도 햇빛의 이익을 받는다. 눈이 없는 데도 햇빛의 이익을 받나니
하이고(何以故)오 : 어떠한 것이냐
인차득지주야시절(因此得知晝夜時節)하며 : 이것으로 인해서 낮과 밤의 시간을 알고
수용종종의복음식(受用種種衣服飮食)하야 : 갖가지 의복과 음식을 수용해서
영신조적(令身調適)하야 : 몸을 편안하게 하고
이중환고(離衆患故)인달하야 : 여러 가지 근심을 여의는 까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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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지일(如來智日)도 : 여래 지혜의 태양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사 : 이와 같아서
무신무해(無信無解)하며 : 믿지도 못하고 이해도 못하고, 지일(智日)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 출현이다. 지혜의 태양을 전혀 모르지만, 부처님의 태양이 우리 일심에 역재이근(歷在耳根)이면 영위도종(永爲道種)이라, 귀에 한 번 스치면 그래도 도의 종자가 된다고
훼계훼견(毁戒毁見)하며 : 계율도 파하고 바른 소견머리도 없고
사명자활(邪命自活)하는 : 하는 짓마다 못된 짓거리 이상한 짓거리를 해서 스스로 못되게 잘못 살아가는
생맹지류(生盲之類)는 : 전혀 소견이 없는 배냇소경 선천적인 소경 같은 사람들은
무신안고(無信眼故)로 : 눈이 없으므로
불견제불지혜일륜(不見諸佛智慧日輪)하나니 : 부처님의 지혜의 해를 보지는 못한다.
수불견불지혜일륜(雖不見佛智慧日輪)이나 : 비록 보지는 못할지라도, 불지혜일륜을 보지는 못할지라도
역위지일지소요익(亦爲智日之所饒益)이니 : 그러나 또 지혜의 이익을 받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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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 어찌한 까닭이냐
이불위력(以佛威力)으로 : 부처님의 위신력으로써
영피중생(令彼衆生)의 : 저 중생들의
소유신고(所有身苦)와 : 소유신고와
급제번뇌(及諸煩惱)와 : 또 모든 번뇌와, 몸뚱이나 생각에 있는 번뇌와
미래고인(未來苦因)으로 : 미래의 고인(苦因)으로 하여금
개소멸고(皆消滅故)니라 : 모두 다 없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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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如來)가 : 여래께서는
유광명(有光明)하니 : 광명이 있으니, 이제까지는 간단하게 설명했는데 여기서부터는 자세하게 설명한다.
명적집일체공덕(名積集一切功德)이며 : 일체 공덕을 적집했다.
광명이라고 하니까 우리 흔히 말하는 빨주노초파남보 빛이 나오는 가시광선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의학적이거나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더라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빨주노초파남보이고, 보라색 너머 광선은 눈에 안 보이지만 자외선이 있다.
빨간색 너머의 빛은 뭔가? 적외선이다.
하다못해 어제 어른스님도 사진을 많이 찍으셨는데 엑스레이도 있고 MRI도 있지 않은가.
거친 빛들, 거친 지혜는 굴절되어 튕기는 것들이다. 부드러운 지혜는 엑스레이 말고 뢴트겐만 하더라도 뚫고 나가 버린다. 미세하게 고운 지혜는 삼세를 관통해 버리고 시방을 뚫어버린다.
벽이 있어도 문제가 안되니까 통광(通光)이라고 한다.
언제나 변함이 없으니까 그것을 상광(常光)이라고 한다.
그래서 세주묘엄품에는 함방광명(咸放光明) 보방광명(普放光明) 상방광명(常放光明) 항방광명(恒放光明) 능출광명(能出光明) 이렇게 글자를 다 달리하면서 이야기한다.
항상 상(常)자, 통할 통(通)자, 원만할 원(圓)자, 진음(眞音)이라 하기도 하고 일음(一音)이라고 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말한다.
여래께서는 광명이 있으니, 광명이라고 하니까 흔히 실체적으로 지식적으로 보는 빛의 밝고 어둠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 의미를 다른 데 비유해 놓았다. 그런 것을 즉사표법(卽事表法)이라고 한다.
모든 일체 공덕을 적집하는 것이 빛나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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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명(有光明)하니 : 또 광명이 있으니
명보조일체(名普照一切)며 : 일체 중생을 널리 비추는 것이요
유광명(有光明)하니 : 또 광명이 있으니
명청정자재조(名淸淨自在照)며 : 청정하고 자유롭게 자유자재하게 비추는 것이다.
유광명(有光明)하니 : 또 광명이 있으니
명출대묘음(名出大妙音)이며 : 명출대묘음이다. 왜 큰소리를 하느냐? 모든 중생을 깨우치려고 한다.
묘는 무슨 묘자냐? 묘자는 세간에 있으면서도 세간에 물들지 않는 것을 묘정(妙淨)이라고 한다.
능엄경에 나온다.
청정은 어떠냐? 허공청정처럼 본래 없는 것, 진짜 출세간의 청정을 청정이라고 한다.
세속과 더불어 살면서도 물들지 않는 것은 묘정이라고 한다, 능엄경의 해석으로는 그렇게 해 놓았다.
명출대묘음도 그런 말이다.
육조스님도 금강경 서문에 묘유(妙有)로 위용(爲用)이라고 해 놓았다. 무주(無住)로 위체(爲體)하고 머무름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고 묘유로 묘하게 있는 것, 중생의 근기에 맞춰 있는 것으로써 내 마음의 작용을 삼는다.
무상(無相)으로 위종(爲宗)하고 무주(無住)로 위체(爲體)하며 묘유(妙有)로 위용(爲用)이니라, 이렇게 해 놓았다.
대선덕 스님들께서 그런 글을 안 남겨 놓았으면 우리는 캄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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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명(有光明)하니 : 또 광명이 있으니
명보해일체어언법(名普解一切語言法)하야 : 이른바 보해일체의 언어법을 다 알아서
영타환희(令他歡喜)며 : 남들로 하여금 환희하게 하며
유광명(有光明)하니 : 또 광명이 있으니
명시현영단일체의자재경계(名示現永斷一切疑自在境界)며 : 일체 의심을 아주 끊어서 자유자재한 경계를 나타내 보이고
유광명(有光明)하니 : 또 광명이 있으니
명무주지자재보조(名無住智自在普照)며 : 이름이 무주지라. 무주는 아까 무본이라고 했다. 무주 머무름이 없는 지혜 이것이 사실은 여래출현이다. 여래 광명이 있으니 이름은 머무름이 없는 지혜로 자유롭게 두루 비추는 것이다.
허공을 그렇게 담을 수는 없다. 허공을 그릇에 담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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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명(有光明)하니 : 광명이 있으니
명영단일체희론자재지(名永斷一切戲論自在智)며 : 이름은 일체의 희론자재지를 끊어버린다. 모든 희롱거리를 아주 끊은 자유자재한 지혜다.
유광명(有光明)하니 : 또 광명이 있으니
명수소응출묘음성(名隨所應出妙音聲)이며 : 이름은 마땅한 대로 알맞게 묘한 음성을 낸다.
유광명(有光明)이니 : 또 광명이 있으니
명출청정자재음(名出淸淨自在音)하야 : 이름이 청정하고 자유자재한 음성을 내어서
장엄국토(莊嚴國土)하야 : 국토를 장엄하고
성숙중생(成熟衆生)이니라 : 중생을 성숙케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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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일일모공(如來一一毛孔)에 : 부처님의 아주 작고 조그마한 모공, 작을 대로 작은 것으로써 거기에서
방여시등천종광명(放如是等千種光明)하사 : 이와 같은 등 천종의 광명을 낸다. 큰 데서 천 종 만 종 내는 것은 대단하지도 않지만 이런 것은 묘유다. 우리가 흔히 진공묘유라고 이야기한다. 여래일일모공에 방여시등천종광명이라.
오백광명(五百光明)은 : 오백 광명은
보조하방(普照下方)하고 : 하방으로 향하고
오백광명(五百光明)은 : 오백 광명은
보조상방(普照上方) : 상방으로 향한다.
하방으로 향한다는 것을 우리가 해야 될 자분행(自分行)이라 고 한다면, 오백 광명이 보조상방으로 위로 올라간다고 하는 것은 승진(勝進) 더 수승하고 나아가고 발전한다는 말씀이다.
흔히 하화중생(下化衆生) 상구보리(上求菩提)라.
종종찰중종종불소제보살중(種種刹中種種佛所諸菩薩衆)이어든
: 가지가지 부처님 처소에 있는 모든 보살 대중들에게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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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보살등(其菩薩等) : 그 보살 등이
견차광명(見此光明)고 : 이 광명을 보고
일시개득여래경계(一時皆得如來境界)하야 : 일시에 개득 여래 경계하야
십두십안(十頭十眼)과 : 십두십안과
십이십비(十耳十鼻)와 : 십이십비와
십설십신(十舌十身)과 : 십설십신과
십수십족(十手十足)과 : 십수십족과
십지십지(十地十智)가 : 십지십지가
개실청정(皆悉淸淨)하며 : 개실청정하다.
열 개의 머리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손과 발과 지위와 열 가지 지혜가 다 청정하느니라. 이것은 좀 뛰어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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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제보살(彼諸菩薩)의 : 피제보살의, 조금 빠지는 사람들, 조금 모자란 보살들은 선부촉제보살(善付囑諸菩薩) 선호념제보살(善護念諸菩薩) 이렇게 이야기한다.
선소성취제처제지(先所成就諸處諸地)가 : 먼저 성취한 모든 처소와 모든 지위에서
견피광명(見彼光明)하고 : 그 광명을 보고
전갱청정(轉更淸淨)하야 : 다시 더욱더 청정해지고
일체선근(一切善根)이 : 일체 선근이
개실성숙(皆悉成熟)하야 : 모두 성숙하여
취일체지(趣一切智)하며 : 일체지에 나아가느니라.
보살은 이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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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 성문 연각은
주이승자(住二乘者)가 : 이승, 성문 연각에 머무는 사람들은
멸일체구(滅一切垢)하며 : 모든 번뇌의 때를 소멸하고
기여일분생맹중생(其餘一分生盲衆生)이 : 그 나머지 성문 연각에도 속하지 못하는 우리 일체 범부 중생들, 한 부분이 선천적인 생맹 소경인 눈먼 사람 중생도
신기쾌락(身旣快樂)하고 : 몸도 이미 쾌락하고
심역청정(心亦淸淨)하야 : 마음도 홀가분해져서
유연조복(柔軟調伏)하야 : 유연 조복한다. 유연하다고 하는 것은 삼매를 상징한다. 유연 탄력한 것이다.
주가신(主稼神)을 이야기할 때도 제1번 맛있는 곡식을 유연승미(柔軟勝味)라고 한다. 유연하고 맛난 음식이다.
유연 조복이어야지 뻑뻑하면 골치 아프다.
감수염지(堪修念智)하며 : 감수하여 능히 지혜를 닦게 되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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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도 못들어 가고 아주 악독한 사람들
지옥아귀축생제취소유중생(地獄餓鬼畜生諸趣所有衆生)이 : 지옥 아귀 축생, 지옥 아귀 축생을 다른 말로는 탐진치라고 이야기한다. 여기에 사는 무리들은 제취소유하야 그 소유중생이
개득쾌락(皆得快樂)하야 : 개득쾌락하야, 지옥 아귀 중생들도 성불하여서 쾌락을 얻는다.
지옥 중생들을 빠뜨리면 안된다.
영덕만 성불할 것이 아니고 청송도 다 성불해야 된다.
영 덕되는 사람도 성불해야 되고 청송교도소도 성불해야 된다는 말씀이다. 여러 길에 있는 중생들도
해탈중고(解脫衆苦)하고 : 모두 즐거움을 얻고 온갖 고통에서 해탈하며
명종(命終)에 : 목숨을 마치면
개생천상인간(皆生天上人間)하나니 : 모두 하늘과 천상에 나느니라.
*
불자(佛子)야 : 불자야
피제중생(彼諸衆生)이 : 저 모든 중생들은
불각부지이하인연(不覺不知以何因緣)이며 : 무슨 인연과 신통의 힘으로 내가 여기에 와서 태어나는지를 불각부지하고, 깨닫고 알지 못하고
이하신력(以何神力)으로 : 이하신력으로
이래생차(而來生此)하고 : 이래생차하고
피생맹자(彼生盲者)가 : 저 배냇소경 선천적인 눈먼 사람인 생맹은
작여시념(作如是念)호대 : 또 이와 같은 생각을 하되
아시범천(我是梵天)이며 : 내가 범천이며
아시범화(我是梵化)로라하니라 : 내가 범천의 변화다,라고 착각하느니라.
*
시시여래(是時如來)가 : 그때에 여래께서
주보자재삼매(住普自在三昧)하사 : 두루한 자재삼매에 머물러서
출육십종묘음(出六十種妙音)하야 : 60가지 음성을 내어서
이고지언(而告之言)하사대 : 그 사람에게 말하대
여등(汝等)이 : 너는
비시범천(非是梵天)이며 : 범천이 아니다.
역비범화(亦非梵化)며 : 너는 또 범천이 변화한 것도 아니고
역비제석호세소작(亦非帝釋護世所作)이요 : 네가 또 제석천왕이나 호세사천왕이 지은 것도 아니고
개시여래위신지력(皆是如來威神之力)이라하면 : 다 모두 여래의 위신력이라고 하시느니라.
*
피제중생(彼諸衆生)이 : 모든 중생이
문시어이(聞是語已)하고 : 이 말씀을 듣고는
이불신력(以佛神力)으로 :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써
개지숙명(皆知宿命)하야 : 모두 지난 세상의 숙명 일을 알고는
생대환희(生大歡喜)하며 : 크게 환희하면서
심환희고(心歡喜故)로 : 마음이 즐거우므로, 마음이 즐거워야 오온이 개공하는 출발점이 된다.
오온(五蘊)이 개공(皆空)한 것을 처음 느끼면 마음에서 환희심(歡喜心)이 일어난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마음이 불안하고 짜증나고 그런 사람들은 환희지에 못 들어가서 그렇다.
자연이출우담화운(自然而出優曇華雲)과 : 자연히 저절로 우담화 꽃구름과
향운(香雲)과 : 향 구름과
음악운(音樂雲)과 : 음악 구름과
의운(衣雲)과 : 옷 구름과
개운(蓋雲)과 : 일산 구름과
당운(幢雲)과 : 당 구름과
번운(幡雲)과 : 번 구름과
말향운(末香雲)과 : 말향 구름과
보운(寶雲)과 : 보배 구름과
사자당반월누각운(獅子幢半月樓閣雲)과 : 사자당반월누각 구름과
가영찬탄운(歌詠讚歎雲)과 : 가영찬탄 구름과
종종장엄운(種種莊嚴雲)하야 : 종종의 장엄 구름이
개이존중심(皆以尊重心)으로 : 모두 다 존중심으로써
공양여래(供養如來)하나니 : 여래께 공양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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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 하이고오
차제중생(此諸衆生)이 : 이 중생이
득정안고(得淨眼故)로 : 정안을 얻은 까닭으로, 이것은 흔히 정심지(淨心地)라고 한다. 오온이 개공하는 단계, 분별심이 끊어지는 단계다.
여래여피(如來與彼)로 : 여래가 그들에게
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授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일새니라 :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를 주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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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여래지일(如來智日)이 :여래 지혜의 태양이
여시이익생맹중생(如是利益生盲衆生)하야 : 이와 같이 선천적인 생맹 중생을 이익하게 해서
영득선근(令得善根)하야 : 선근을 얻게 해서
구족성숙(具足成熟)이니라 : 구족 성숙케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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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야 : 불자야
시위여래신제오상(是爲如來身第五相)이니 : 이것이 여래 몸의 다섯 번째 모양이니
제보살마하살(諸菩薩摩訶薩)이 : 모든 보살마하살이
응여시견(應如是見)이니라 : 이와 같이 보아야 하느니라.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다.
근념하셨다.
(죽비소리)
하강례
배워야 할 것들
지난달에 쓰지 못했지만 ‘야곰야곰 증도가’ 책을 계속해서 내야 하느냐고 여쭤보았었다.
"한 번 시작했는데 마무리를 지어야지 그것도 몰랐어?"
하고 큰스님께서 물으셨다.
그것도 몰랐느냐는 말씀이 경쾌하게도 들렸고 할 때마다 너무 여러 차례 여쭤본 것이 죄송하기도 해서 사과를 드렸더니 “괜찮아 모르면 물어봐야지.” 하셨었다.
큰스님께서 매일 오후 두 시에 인터넷으로 방송하는 화엄경은 드디어 입법계품으로 넘어갔다. 근본 법회가 끝나고 지말 법회로 들어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의 한 분인 문수보살을 만나는데 법문이 딱 멈춰버렸다.
큰스님의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너무 놀랍고 걱정이 되어서 화엄경 녹취를 올리고 나서 댓글에 들은 소식을 자세하게 쓰고 새 소식을 아시는 분은 꼭 공유해주실 것도 청했었다.
하루 뒤 새벽에 그 글을 내려달라는 문자를 받았다.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몸으로 익힌 공부가 아니어서 불교적인 예의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
용학스님이 법문하신 화엄법회가 무사히 끝나고 자원봉사 오신 보살님의 차를 얻어타고 함께 전철역에서 내린 혜진스님은 1호선 장전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를 타고 가신다고 했다.
문수선원 가까운 곳에 절이 있어서 좋다고 하셨다.
20여 년 전부터 부산에서 사셨고 그전에는 큰 절 선방을 다니셨다고 했다. 운문사니 대성암이니 살았던 큰 절의 이름을 열거하시는데 이름만으로도 아늑했다.
“자유로우셨겠네요?”
“그렇지 스님들은 자유롭지.” 혜진스님이 웃으셨다.
여래성님이 항상 말씀하던 ‘큰스님보다 한 살 많으신’ 스님이었다. 핸드폰도 안 가지고 계시고 법회가 있는 아침에 그날 법회 여부를 전화로 물어오신다고 했다. 법회 날에는 어떤 재도 받지 않으시고 공부하러 오시는 스님은 6년 전부터 큰스님께 법문을 들으러 다닌다고 하셨다. 매월 첫 번째 월요일 화엄법문을 듣고 가면 한달 내내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그래 오늘 기도하러 왔나?”
하고 혜진스님도 물으셨다. 우물거리는 답을 듣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봉투를 뒤적여서 2만원을 꺼내주셨다.
“다음달에 보면 좋고 안 보면 잘 산다고 생각하면 됐지 뭐. 내 봐도 또 얼굴 모른다. 택시 운전사에게도 돈 다 준다. 그러면 고맙다고 한다.” 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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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큰스님께서 녹취해보라고 하신 <환생, 카르마, 죽음 이후의 삶>을 정리하면서 ‘삶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그 목적은 ‘성장’이라는 말씀에 밑줄을 그었었다.
일체개공을 알면 환희심이 인다,는 오늘 용학스님의 법문에도 다시 밑줄을 그었다.
사순절이 시작되었다면서 기도를 부탁해 온 사람들은 천주교를 믿는 친구들이었다.
종교가 달라도, 사는 곳이 달라도 각자에게 오는 부활의 봄이 저절로 오는 봄이 아님을 유독 절감하는 올해의 봄이다.
사성제속에는 고가 들어가고 생노병사는 절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진리임을 바로 코앞의 내 문제로 받아들이고 쩔쩔매고 있지만, 그래도 한 가지 희망은 우리가 모두 생을 잘 통과해서 이곳에 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진실로 맑은 환희를 느끼는 봄이기를, 기도란 누구를 위해 했든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진리의 메아리임을 아득히 알아버린 봄. 봄.
연두로 물들다
생명은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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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맙습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_()()()_
나무대방광 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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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자구호
크게 인지》 크게 인자
보살님, 큰스님 근황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연기의 도리와 인생을 알고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_()()()_
나무 대방광불화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