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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싫어하는 인간 부류는 이기적인 쾌락주의자이다.
음식이든, 섹스든, 사기든, 심지어 살인이든,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고 쾌락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민폐를 끼치거나 난잡한 쾌락 추구 행위는 지탄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어두운 방에 앉아서 연쇄 살인 강간범 뉴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범인은 기자들을 비롯해서 경찰에게 둘러싸인 채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연신 플래시가 터지면서 질문이 쏟아지고 있었다. 기자들 너머로 피해자의 가족인 듯한 사람들이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퍼붓고 있다.
―범인은 많은 여성들에게 결혼하자고 하며 접근하여 돈을 뜯어내기도 했습니다.
사기죄도 적용되고 있다. 그는 그 자를 짐승이라고 생각했다. 놈은 짐승이다. 본능만 있는 짐승이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카메라가 범인의 눈을 비췄다. 모자에 가려서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범인의 눈을 봤다. 그리고 흐음하고 신음을 흘렸다. 눈동자에 죄책감이라는 감정은 없었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기자들 중에는 여자도 있었다. 끌려가는 도중에도 반반한 외모의 여자를 찾아서 곁눈질을 하고 있었다. 손가락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만일 묶여있지 않았다면 여자에게 다가가서 유혹을 했을 것이다.
범인은 돈과 성욕을 위해서 조금도 거리낌 없이 밤거리에서 여자들을 유혹했을 것이고, 가지고 논 다음에 돈을 뜯어내고, 필요 없어지면 죽인다. 짐승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론 그에 걸맞게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 사람을 잘 따르면 쓰다듬어 주고, 반항을 하면 몽둥이로 다스린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얼굴을 돌려서 뒤의 어두운 공간을 응시했다. 앞으로 걸어가서 천천히 손을 앞으로 뻗었다. 단단한 벽 같은 것이 만져졌다. 두 손으로 힘을 주어 밀었다.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안에는 여러 종류의 옷들이 정리되어 있다. 정장은 물론이고, 트레이닝복, 각종 직업의 유니폼들이 많았다.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밀어서 닫았다. 언제 거기에 방이 있었냐는 듯이 방은 다시 어두워졌다.
범인은 재판에서 6년 형을 언도 받았다.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변호사를 고용하지 않았으며 재판 중에 어떤 이의도 달지 않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다. 항소도 하지 않았다.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내려진 형을 받아들였다. 언론에서는 이에 대해 보도했고, 범인에 대한 사회적인 분노는 극에 다다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형을 언도받은 죄수는 홀로 형무소로 호송되는 중이었다. 포승으로 꽁꽁 묶였지만 언뜻 보면 코가 오뚝하고, 턱은 날렵하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키도 훤칠하다. 눈빛을 보고 같은 남자인 경찰관들도 그가 무척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는 이는 없다. 죄수이지만 보기 드문 미남자이다. 몇몇 여자들은 남자에게 동정을 보내기도 했다.
빗방울이 차 창문을 시끄럽게 때리는 소리를 듣고, 죄수는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한적한 시골길이다. 지나다니는 차는 한 대도 없다. 호송 차량만 빗줄기를 뚫고 달리고 있다. 쇠로 만들어진 차문은 튼튼하고, 굵직한 창살은 단단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이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운전석에는 두 명의 경찰이 앉아 있다.
“오늘은 비가 무척 많이 옵니다.”
운전을 하던 경찰이 말했다.
“그러게 말이다. 이제 초여름인데 벌써부터…….”
조수석에 앉은 경찰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는 손목시계를 한 번 흘끗 보더니 무전기를 들었다.
“여기는 34번 고속도로. 죄수를 호송 중이다. 앞으로 50분 후에 도착할 것이다. 오버.”
호송차의 속도가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하다가 길 가장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조수석 경찰이 묻는다.
“야. 왜 여기서 멈추냐?”
운전석 경찰이 헤헤 웃으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작은 게 마려워서 그러는데…… 볼일 좀 보고 오겠습니다.”
“갔다 와. 얼간아. 빨리 가야 하는데.”
경찰은 멀리 보이는 나무 밑으로 뛰어갔다. 그는 도착해서 바지 지퍼를 내리는 대신에 주머니에서 단추가 달린 작은 기계 장치를 꺼냈다. 엄지로 단추를 세게 꾹 눌렀다. 그러자 뒤에서 펑! 하는 큰 소리가 났다.
호송차 창문으로 하얀 연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괴로운 소리를 내면서 차문이 벌컥 열렸다. 호송을 맡은 경찰 한 명이 밖으로 비틀거리며 나오다가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길바닥에 쓰러졌다. 몸을 부르르 떨다가 축 늘어졌다.
연기가 잦아들자 호송차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죄수를 비롯한 모든 호송 인원이 쓰러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경찰들을 죄다 한 명 씩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나무 밑에 아무렇게나 놓아두었다.
이제 경찰과 쓰러진 죄수 밖에 없다. 호송차는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죄수가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그는 깨질 듯한 머리를 감싸 안고 신음을 흘리며 일어났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호송차가 아니었다. 푹신한 의자가 있는 승용차 안이었다. 시트에 앉아 있는데, 은근한 향기도 나고 있었다. 백미러에 매달린 작은 인형 홀더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경찰이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일어났는가? 하고 묻는다.
“조금 머리가 아프겠지만 곧 나아질 거다.”
말은 간결하고,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죄수는 자기도 모르게 압도됨을 느꼈다. 아픈 머리를 누른 채로 물었다.
“여기는 어디입니까?”
“처음 일어나서 하는 질문이 그것인가? 여기는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다. 너는 내가 터트린 가스를 맡고 잠시 기절을 한 거다. 물론 다른 경찰들도. 아마 지금쯤은 깨어났을 거다.”
경찰은 말을 이었다.
“이름 강서환. 28세. 상원 체대 체육학과 졸업. 직업은 고교 체육 선생 겸 부업으로 피팅 모델도 하고 있지. 죄목은 자신을 따르는 여자들을 목 졸라서 살해하거나, 겁탈했음. 그리고 결혼을 빙자한 사기 역시.”
서환이라는 이름을 들은 남자는 입을 딱 벌렸다. 그것은 자신의 본명이다.
“의자 밑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어라. 분장도 필요할 거다.”
허리를 굽혀서 의자 밑을 살펴보았다. 노란 종이 백이 있었는데, 안에 옷이 담겨 있었다. 노란 후드 티와 청바지이다. 취향이 아닌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거울을 통해 이 모습을 읽었는지 경찰이 말했다.
“나중에 다른 옷을 줄 테니 일단 입어라.”
한숨을 폭 내쉬고 옷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다 갈아입고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형씨. 당신 경찰 아니죠?”
“맞다. 나는 경찰이 아니다.”
“그럼 누구죠?”
서환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별안간 오른손을 뒤로 뻗어서 서환의 멱살을 잡고 낚아챘다. 갑작스러운데다가 낚아채는 힘이 세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앞좌석 가운데에 처박혔다. 켁! 하고 신음을 내질렀다.
“너와 비슷한데, 너 같은 녀석을 혐오한다. 가끔 너 같은 녀석을 찾아다니지.”
“너와 나의 차이점은 품격에 있다.”
차를 멈추고 얼굴을 서환의 앞에 바짝 들이대었다.
“찾고 나면 어떻게 하는 줄 아는가?”
서환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잠시 가지고 놀지. 그리고 으슥한 곳에 묻어버린다.”
움켜잡은 멱살을 놓았다. 서환은 괴롭게 켁켁 거리며 뒤로 후닥닥 물러섰다.
“감옥으로 들어가고 싶나?”
서환은 괴로운 눈길로 쳐다보면서 아니라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너는 쓸 만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내 말을 들어라. 그러면 나는 네가 멀리 도망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겠다.”
물어볼 것도 없다. 감옥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싫다. 밖으로 마음껏 나돌아 다니는 것이 좋다. 그러다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얼굴이 알려졌을 지도 모르니까 이대로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면 알아보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상태로 잡히지 않을까요?”
“우선 가발을 구할 거다. 변장에 필요한 도구도.”
차는 가장 가까운 작은 도시가 있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 뒤에 호송차에게서 아무런 연락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형무소에서 파견된 간수들에 의해서 호송 차량이 발견되었다. 그때까지 연기에 당한 경찰들은 아무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면서 죄수들이 없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들은 형무소장은 즉시 지원을 요청하되, 언론을 조심하라고 일렀다.
하지만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세상에 완전한 비밀이라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이 정보는 곧 새어 나갔다. 그리고 기자들 귀에 들어갔다.
도시에 도착하자마자 화장품 점에서 스킨과 로션, 크림, 파우더들, 팩 같은 화장품을 샀다. 그리고 가발 가게에서 추가로 몇 개를 더 샀다. 그는 그것으로 서환을 분장시켜 주었다. 불과 30분 만에 분장은 끝이 났다. 얼굴 윤곽은 어쩔 수 없지만 주근깨가 생겼고, 눈 옆에 점이 찍혔다. 가발을 씌우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내가 분장에는 자신이 있지만 자네는 변하기가 좀 힘든 얼굴이군.”
서환은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매끈한 거울 표면에는 본래의 모습과 많이 다른 남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와. 미용 학이라도 전공하셨나요? 분장이 끝내주네.”
그는 일절 대답 하지 않고 분장 도구를 정리했다.
서환에게 할 일을 설명해 주려고 하는데,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미안합니다. 몇 끼니는 거른 것 같아요.”
둘은 근처 해장국 집으로 들어갔다. 무척 배가 고팠는지 서환은 뜨거운 해장국을 후루룩 게눈 감추듯이 마셔버리고, 또 한 그릇을 더 주문했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멀리서 보면서 수군거리고 있다. 물론 서환의 외모에 대해서이다. 저런 남자와 한 번 연애나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콧날을 만져보고 싶다. 는 둥의 말을 지껄이고 있다. 그가 서환에게 물었다.
“어떤가? 저런 소리를 들으면?”
서환은 해장국을 입에 넣다 말고 고개를 들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일하는 여자들이 하는 소리 말이다. 너에게 관심이 있어 하는 군.”
서환은 키득거렸다.
“김 모씨나 한 모씨 같은 A급 여자라야만 내 얼굴에 손을 대도 기분 나쁘지 않을 겁니다. 하물며 저런 여자들은…….”
입술을 비틀며 가만히 웃었다. 남자는 서환에게 다시 물었다.
“여자들은 왜 죽였나?”
큰일에 불가피한 희생은 어쩔 수 없으나, 필요하지 않으면 일을 수행함에 있어 아이와 여자는 건드리지 않는 주의이다.
그 물음에 서환은 앞에 앉은 남자를 지그시 쳐다보았다. 질문이 불편해서 대답하기가 곤란하다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대답하지 말까 했지만 남자는 대답을 강하게 요구하는 눈빛으로 쏘아본다. 그릇을 비우고 목소리를 낮춰서 대답했다.
“나를 소유하려고 했어요. 집요하게, 귀찮게 굴었죠. 그거에요. 귀찮아서. 쫓아내도, 이별 통보를 해도 달라붙더군요. 그만 죽여 버렸죠. 목을 졸라서.”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웃었다. 그는 야심과 공격성을 가진 짐승이다.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제 가지. 자네가 나를 도울 일이 있어.”
차에 타려는데, 마침 앞을 지나치는 여자 두 사람이 있었다. 세련되고 잘 꾸민 여자들이다. 남자는 서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저 여자들을 지금 당장 유혹할 수 있나?”
서환은 여자들을 쳐다보더니 피식하고 웃었다.
“대화하는 것? 전화번호 따는 것? 침대로 데리고 가는 것? 어느 정도 말씀하시는 거죠? 난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어요.”
원하는 대로? 다른 것은 몰라도 여자 마음은 어떻게 하기 힘들다고 느끼고 있다. 그런데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어투는 무엇일까. 게다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믿기 힘들다는 투로 말했다.
“자네 뜻대로 해봐.”
서환은 손깍지를 끼고 우두둑 꺾으며 차 밖으로 나왔다.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여자들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믿기 힘들었지만 서환은 곧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자들은 손을 입으로 가리고 실실 웃다가 급기야 까르르 하고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린다.
나중에 여자들은 서환의 손바닥에 펜으로 뭐라고 적어주었다.
“번호를 확인해 봐. 스피커 모드로 하고.”
차로 돌아온 서환에게 폰을 내밀면서 연락을 해보라고 지시했다. 그대로 하자 폰 너머에서 젊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내 말이 맞지? 내가 폰도 없는 가난뱅이인줄 알았어?”
“호호. 미안해요. 오빠.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검은 차에 있는 거야?”
“응. 귀염둥이. 바로 맞췄어.”
“오빠 차, 좋다. 우리 타도 돼?”
서환은 남자를 흘긋 쳐다보았다.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미안하지만 지금 아는 형하고 어디 갈 데가 있어서 말이야. 나중에 태워줄게. 귀염둥이들. 약속.”
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로 나오면서 서환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자들을 침대로 끌어들이는 것도 가능한가? 왜 하지 않았지.”
서환은 낄낄 웃는다.
“난 저런 촌스런 여자들하고는 같이 자고 싶지 않아요. 자존심이 있지.”
“그럼 세련된 도시 여자들과 만나면 할 수 있나?”
서환은 두 팔을 벌려서 활개를 치며 자신 있는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얼마든지. 데려다 주신다면 말입니다!”
“좋아. 한 번 보도록 하지.”
차는 도시 중심부로 향했다. 서환이 허풍으로 말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표정에서 흔들림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윽고 도착한 장소는 나이트클럽이었다. 서환이 말하기를 이 지역에서 가장 물이 좋은 곳이라고 말한다.
“안에 들어가면 끝내줘요! 오늘은 수질이 어떨까?”
입구부터 후끈거리는 열기가 확 끼쳐왔다. 고막을 자극하는 음악이 요란하다. 넓은 공간은 사람의 바다였다. 발 디딜 틈도 전혀 없었다. 소란스러움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서환은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이런 데에 안 와봤어요? 팔다리가 쭈뼛쭈뼛해. 신나게 놉시다!”
“네가 해야 할 일을 잊지 마라.”
듣는 둥 마는 둥 몸을 흔들면서 여자들에게 접근한다. 그는 여자를 꼬시는 데에 타고난 것 같았다. 여자들과 어울리다가 그중 한 여자 뒤로 돌아가서 몸을 바짝 밀착한 채로 선정적인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어깨를 쓸다가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는 모습은 뭐라고 속삭이는 것 같더니, 여자의 천천히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여자는 팔을 뒤로 돌려서 서환의 목을 끌어안았다. 눈이 게슴츠레하게 떠지고, 다리가 천천히 벌려지고 있다. 흥분된 상태이다.
남자는 바(Bar)로 가서 주스를 주문해서 마시면서 광경을 지켜봤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여자들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튀어 오르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뒤를 따라갔다.
그때 앞을 가로막는 물체가 있었다. 중년 여자가 다가와서 같이 춤을 추자고 유혹을 했다. 키는 중키에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하고, 입술이 두터운 못생긴 여자였다. 찰싹 달라붙는 바람에 떼어 내는 데에 애를 먹었다. 그 동안에 서환과 여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나지막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당신, 지금 나한테 욕을 한 거야?”
여자가 거칠게 따지게 물었다. 남자는 귀찮은 표정으로 여자를 밀어내며 계단을 올라갔다.
위층에는 객실이 많이 있었다. 어디로 들어갔는지 알 수 없기에 그는 계단 근처에서 서성거리기로 했다. 객실 문이 열리면서 남녀 한 쌍이 밖으로 나왔다. 둘 다 얼굴이 상기 되어 있었다. 잠깐 눈이 마주쳤다. 손목시계를 보는 척 했다.
커플은 계단에 서 있는 수상쩍은 남자를 힐끔거리면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세 시간이 넘어서야 서환은 밖으로 나왔다. 표정이 매우 뿌듯하고 상쾌하게 보였다. 기지개를 펴면서 우― 하고 낮은 신음소리를 흘리면서,
“아이고. 오랜만에 몸을 푸니까 상쾌하고 좋네.” 하고 말했다. 남자는 혀를 찼다.
“매우 좋았나 보군.”
그는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여자 두 명이 침대 위에 벌거벗고 잠들어 있었다.
“피곤해 할 거예요. 그냥 두고 가죠.”
밖으로 나와서 서환에게 사진을 내밀었다.
“너는 여자 한 명을 유혹을 해주었으면 한다.”
서환이 보니까 아름다운 중년 여인의 사진이었다. 비록 중년의 나이는 속일 수 없지만 피부가 매끈했고, 주름도 거의 없었다. 곱상한 여성이었다. 그는 이마에 손을 짚고 알고 있는 것을 떠올리려고 했다.
“이 여자는 이름이…… 화연? 그랬던 것 같은데. 신문하고 TV에서 본 적이 있어요.”
“맞다. 이름은 이화연. K 패션의 CEO이지. 나는 그녀에게 투자를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녀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 일부라도 좋으니까 그것이 필요하다.”
이어서 말했다.
“너는 유혹해서 그녀의 마음만 얻으면 된다. 그 뒤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알겠어요. 내게 걸리면 아무도 못 빠져나가. 맡겨두시라고요.”
서환은 사진을 지갑에 넣었다.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말은 자신있게 했지만 긴장 되었다. 지금껏 유혹한 여자들은 일반인이 대부분이었고,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을 가진 여자는 몇 번 있었다. 그나마 신출내기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상대는 인생과 경험에서 우월한 베테랑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접근을 하거나 변칙적인 수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각오하고 움직이면 안 넘어오는 여자는 없지.’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주문 같은 문장을 입속으로 여러번 말했다.
며칠 뒤에 서환은 부유층의 파티에 웨이터로 분장하고 잠입했다. 남자에게서 이화연이 이 파티에 참가한다는 정보를 얻어주었다.
돈이 부족하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런 파티장의 웨이터도 걸렸다. 조건이 까다롭지만 급료가 높아서 좋아하는 아르바이트 중 하나였다. 이번에 새로 고용된 아르바이트 웨이터는 두 명이었다. 다른 사용인들은 호텔에서 불려온다.
“이봐요. 이런 아르바이트는 해봤나요?”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 중에 앳되어 보이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몇 번 해봤어요. 당신은?”
“나는 이번이 처음이요.”
“음…… 내가 뭐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역시 여기는 홀에서 움직일 때 조심하는 게 제일이에요. 일단 참석하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만 해도 어지간한 봉급쟁이들 3달치 급료도 넘으니까. 만일 샴페인이라도 엎질렀다고 생각해봐요. 세탁비만 해도…….”
앳된 남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상황이군요. 받은 돈이 고스란히 들어가겠죠?”
“대신 조심만 하면 페이는 두둑하게 들어오죠.”
그리고 피식 웃었다. 서환은 가명을 밝히면서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은 서우예요. 당신은?”
“전 이구완이요.”
두 남자는 가볍게 악수를 나누었다. 서환은 그에게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탈의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뚱뚱한 사내가 들어왔다. 호텔 지배인이라고 한다.
“느려터진 알바생들! 빨리빨리 움직여! 곧 손님들이 오실 거다!”
둘은 허겁지겁 셔츠 단추를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호텔의 넓은 홀에서 파티가 열렸다. 듣기로는 주최자인 이화연의 생일이라고 한다.
이런 곳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는 서환은 홀을 배정 받았다. 구완은 처음이었기에 주방 보조로 배정되었다.
“너는 경험이 있다고 했으니까 홀에 배치했다. 잘하도록! 그리고 너! 뉴비 녀석. 너는 주방으로 가라.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다.”
서환은 구완에게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도 주방 보조라면 손님들 옷에 샴페인을 쏟을 일은 없겠군요.”
두 사람은 각자 배정받은 곳으로 갔다. 손님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서환은 샴페인 잔을 쟁반에 받쳐 들고 손님들 사이를 오갔다. 그러면서 매의 눈과 같은 시선으로 사람들을 훑어봤다. 물론 이화연을 찾고 있는 것이다. 이번 파티의 주최자이니 아직은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은 늦게 오는 법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자들이 많았다. 만일 웨이터 일만 아니라면 여자들에게 말을 건넸을 것이다. 지금은 입맛만 다신다.
그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파티장 문이 열리면서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성이 들어왔다. 모두가 박수를 쳤다. 여자는 금방 손님들에게 에워싸였다.
“화연 님. 오늘은 더 아름다우시군요.”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이화연 님.”
모두가 축하하는 중에 서환은 멀리서 여자를 쳐다보면서 접근할 방법을 찾았다. 역시 샴페인을 들고 다가가는 방법이 가장 좋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서환은 바지 주머니에 있는 작은 알약을 만지작거렸다. 그것은 강력한 최음제이다. 여차하면 샴페인에 넣어서 화연에게 먹일 수 있다. 그 다음에는 약 효과가 있으면 부축하는 척 해서 방으로 데리고 간다. 이후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 갑자기 자신이 발정해서 외간 남자에게 몸을 맡겼다는 사실을 알면 그녀는 매우 수치스러워 할 것이다. 그녀는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사람이다. TV에서, 신문의 인터뷰를 보면 매우 자존심이 강하고 체면을 중요시하는 인상을 주었다. 실제로 봐도 그랬다.
한참동안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서환은 자신의 발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호텔 지배인이 다가와서 멍청히 서서 뭐하냐고 윽박지르고 나서야 자신의 상황을 자각했다. 자신도 모르는 중에 서환은 쟁반을 든 채로 화연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이 건방진 웨이터는 뭐야? 왜 화연 님의 앞을 가로막고 있지?”
“뭘 멍청하게 서 있는 거야. 썩 비키지 못해?”
남자 손님들이 거칠게 말했다. 화연이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그녀는 쟁반에서 샴페인 잔을 가져갔다. 서환은 그제야 옆으로 물러서서 길을 비켜주었다. 화연은 잔을 살짝 들어 보이며 “감사해요.” 하고 말했다.
남자들이 서환을 노려보며 지나쳤다. 아니꼬운 놈들이다. 만일 이런 자리만 아니었다면 주먹을 뻗었을 것이다. 그녀는 좌우로 추종자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상석으로 갔다.
서환은 다음 기회를 노리자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는 놀란 표정이 되어서 바지춤을 마구 더듬었다. 약이 사라진 것이었다.
‘어디로 간 거지?’
이 모습을 보고 다시 호텔 지배인이 다가왔다.
“이봐. 웨이터. 뭘 찾는 모양인데.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찾지? 급료 제대로 받고 싶으면 말이야.”
그것이 어디로 갔을까? 서환은 알약을 찾는 것을 미뤄야했다. 그것이 뒹굴어 다니면 다행이지만 만약 다른 누군가의 뱃속으로 들어갔으면 큰일이다.
파티장에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 콩알보다도 작았기에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것은 주최자인 화연에게 있었다. 이제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그녀에게서 벗어나서 무르익은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그녀의 양 볼은 파티장을 장식하고 있는 장미들보다도 붉어졌고, 두 팔과 표정은 안절부절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추종자들 중에서 두 엇이 안색이 불편해 보인다고 걱정스레 말을 건넸다. 화연은 좀 더워서 그런 거라고 둘러대었다.
“그럼 잠시 밖에서 바람을 쐬다 오시는 게 어떨까요?”
부인 한 명이 그렇게 제안해서 화연은 따라오려는 사람들을 물리치고 혼자서 발코니로 향했다.
피부에 와 닿는 밤공기가 서늘했다. 찬바람이 닿으니 조금 나아졌지만 일시적일 뿐이었다. 다시 몸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가 정신이 나갔나? 갑자기 왜 이러지?”
이제 얼굴이 붉어지고, 다리 사이가 뜨거워졌다. 전신이 불덩이처럼 변하고 있었다. 갑작스런 욕구에 그녀는 당황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가서 쪼그려 앉아서 끙끙거리는데, 그 순간,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 계십니까?”
발코니로 그림자가 불쑥 들어왔다. 후다닥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웨이터였다.
“무슨 일이죠? 잠시 바람을 쐬는 중이었는데.”
그녀는 위엄 있게 말했다.
“여기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기에 나와 봤습니다.”
웨이터는 발코니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기 쪽으로 점차 다가옴에 따라 화연은 성욕이 걷잡을 수 없이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체취에 자신의 몸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 그의 등이 어깨에 닿을 정도로 다가왔다. 머리가 핑 돌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웨이터를 옆에서 달려들어 끌어안았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는 웨이터에게 자기를 안아달라고 애걸하듯이 말했다. 서환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으나 겉으로는 그녀를 말리려고 했다. 그렇지만 애초에 막을 생각이 없었다. 화연은 위에서 서환의 입술을 덮었다.
서환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화연은 젊은 아가씨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가졌고, 기술도 아주 멋졌다. 도중에 몇 번이나 깜짝 놀랐다.
화연은 서환을 보면서 뺨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자기, 참 멋져. 남편과 이혼한 이후로는…… 정말 오랜만이야.”
드레스와 머리를 올바르게 했다. 거울이 없음에도 그녀는 흐트러진 옷 주름 하나도 입기 전처럼 폈다.
화연은 서환에게 카드 하나를 건넸다. 1403이라고 쓰여 있었다. 귓불을 깨물면서 서환에게 속삭인다.
“밤이 좀 더 깊으면 이 방으로 와. 알았지? 제대로 즐겨보자.”
화연이 먼저 나가고 나서 서환은 파티가 파장 분위기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서 호텔 14층으로 올라갔다. 카드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화연이 벌써 와서 침대 위에 벌거벗고 누워 있었다. 도발적인 자세로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이리오라고 교태롭게 말한다.
서환이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화연을 안고 있었다.
그날 밤에 그녀와 몇 번 사랑을 나눴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폭풍 같은 밤을 지냈다.
날이 밝을 녘이 되어서야 잠들기 전에 그가 한 생각은 오랜만에 질리도록 해서 즐거웠다. 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될 까였다.
그런데 그 마음을 읽은 양, 나오기 전에 그녀는 구형 휴대전화 하나를 선물로 줬다. 이미 오래 전에 단종 되었을, 접었다 폈다 하는 식의 휴대전화이다.
“이건 오직 나하고만 대화할 수 있는 폰이야. 잘 가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