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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미당, 천지인·생명 사상과 우주 공동체의 시학 [우리 시의 향기]
ysoo 추천 0 조회 47 15.12.08 11: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우리 시의 향기]

 

미당, 천지인·생명 사상과 우주 공동체의 시학

 

김재홍?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1. 미당의 봄과 생명 감각

 

새해가 밝아 오고 우수 경칩이 지나니 어느새 먼 남쪽 바다에서부터 찰랑찰랑 초록 봄이 파도쳐 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러고 보니 “문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 들어/ 바로 초하로 아츰// 새삼스레 눈덮힌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 하다”라는 정지용의 시 ?春雪?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시 한 편이 정감 있게 다가옵니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것만 시방도 남았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읍디다.

 

─?禪雲寺 洞口?

 

 

왜 이 시가 봄의 시로 먼저 다감하게 부딪쳐 오는가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아마도 그것은 이 시 속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모습으로서 서정시의 본모습이 잘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운사 동백꽃’과 ‘막걸릿집 여자’ 그리고 ‘육자배기 가락’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토속적, 전통적, 낭만적 생명의 혼결과 시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지요. 새봄은 새 생명에 대한 기대이고 그 꽃 피어남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그러기에 봄은 우리 몸에 피가 잘 돌기 시작하는 생명의 계절이고, 대지에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는 목숨의 계절이라는 뜻이 될 겁니다. 그래서 역시 미당의 시 한 편이 또 떠오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복사꽃 피고, 복사꽃 지고, 뱀이 눈뜨고, 초록제비 무처오는 하늬바람 우에 혼령있는 하눌이어. 피가 잘 도라…… 아무 病도 없으면 가시내야. 슬픈 일좀 슬픈 일좀, 있어야겠다.

 

─?봄?

 

 

그렇습니다. 복사꽃이 피고 지는 사이에 겨울잠 자던 뱀이 눈뜨고, 초록 제비는 그 날개 위에 하늬바람과 혼령 있는 봄 하늘을 싣고 먼 하늘로부터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그러기에 하늘에도 땅에도 새봄의 피가 잘 돌고, 그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도 피가 잘 돌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겨울 동토의 땅, 죽음의 계절에서 풀려나 살 만한 계절이 됐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봄은 생명의 계절이자 부활의 계절인 것이 분명합니다.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굳이 잠긴 잿빛의 문을 열고 나와서

하늘가에 머무른 꽃봉오릴 보아라.

 

한없는 누에실의 올과 날로 짜 느린

채일을 두른 듯 아늑한 하늘가에

뺨부비며 열려있는 꽃봉오릴 보아라.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새로 숨 쉬는 꽃봉오릴 보아라.

 

─?密語?

 

 

산 자에게도 죽은 자에게도, 하늘과 땅에게 또 사람에겐 물론 온갖 생명들에게도 봄은 새 숨결과 빛깔로 살아나서 천지 만물을 부활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순이야, 영이야, 또 돌아간 남아,// 저 가슴같이 따뜻한 삼월의 하늘가에/ 인제 새로 숨쉬는 꽃봉오릴 보아라.”라는 결구 속에는 소생과 부활, 재생과 환희로서 봄의 생명 감각이 충만하게 일렁이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봄은 꽃과 사랑, 春情이 아지랑이처럼 새실새실 피어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영산홍 꽃잎에는

山이 어리고

 

산 자락에 낮 잠 든

슬푼 小室宅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산 넘어 바다는

보름사리 때

 

소금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映山紅?

 

 

봄에는 하늘도 그 혼령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고, 또 그 하늘을 이고 살아가는 온갖 생명체들에게도 피가 잘 돌게 하여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는 뜻입니다. 이 시에서도 영산홍 꽃잎과 슬픈 소실댁의 사연, 그리고 툇마루의 요강과 보름사리 때의 바다가 출렁이는 모습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생명의 약동과 환희를 솟구쳐 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봄바람 속에는 무언가 피의 내음과 병의 예감, 그리고 죄의 숨결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고, 무언가 아픈 일, 슬픈 일이라도 일어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2. 지상의 삶, 운명의 삶과 구속

 

미당 시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서정시의 본질과 현상을 가장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드러납니다. 그의 시는 서정시가 근본적으로 다뤄야 할, 다루고 있는 시의 내용으로서 하늘과 땅, 그리고 그 가운데 목숨을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생명들)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또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시의 근본 내용, 서정시의 본성으로서 하늘(天), 땅(地), 인간(人)의 세 가지가 서로 갈등하고 친화하면서 생명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는 말씀이지요.

 

먼저 그의 시는 지상의 생명체가 발붙이고 있으면서 먹이를 구하고 새끼 치며 살아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지적 삶, 지상에서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향 박하(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잃은채 낼룽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 놈의 대가리!

 

돌 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 방초ㅅ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石油 먹은 듯…… 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 보담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 슴여라! 베암.

우리순네는 스믈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흔 입설…… 슴여라! 베암.

 

─?花蛇?

 

 

미당 초기 시의 한 대표작인 이 작품에는 지상에서의 삶(생명)의 원상을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관심을 환기합니다. bv 뱀은 땅, 즉 대지와 가장 밀착되어 살아가는 육감적 생명체의 표상이고 그러기에 인간의 원초적 형상에 해당합니다. 이 시에서 꽃뱀은 바로 이 땅을 온몸으로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육신을 지닌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적 삶의 표상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꽃뱀은 표면적으로는 꽃처럼 아름다운 색깔과 무늬를 지니고 있지만 속성적으로는 징그럽고 사악한 것으로서의 상징성을 지닙니다. 그러기에 그것은 선과 악, 미와 추, 진실과 허위의 모순성, 양면성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적 삶의 모습일 수 있으며 이점에서 육체와 정신, 현실과 이상, 감성과 이성이 서로 모순과 갈등을 겪으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사의 이중성, 양면성을 포괄적으로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유기체가 땅(地)과 나란히 가는 수평적 상상력이 미당 시의 원형적 특성을 이룬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수평 상상력이란 바로 대지적 삶의 본성적 모습이며 그러기에 그것은 운명적 삶, 본능적 삶, 모순적 삶, 구속으로서의 삶, 물질로서의 삶(생명)의 본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실상 미당의 초기 시가 “병든 숫개만양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자화상? 부분)라든가 “핫슈(아편의 일종, 『 현대시어사전』 참조) 먹은 듯 취해 나가 자빠진/ 능구렝이같은 등어릿길로 나는 왔다”(?대낮? 부분),

“바위속 산도야지 식식거리며/ 피흘리고 간 두럭길”(?맥하? 부분) 등 많은 시편들에 발견되는 동물적 이미저리(imagery)들도 실상은 이러한 대지적 삶, 또는 수평 상상력에 기반을 둔 미당의 본성적인 모습을 반영한 것일시 분명합니다.

 

 

3. 하늘의 척도, 또는 우주적 비상을 꿈꾸며

 

그러나 미당의 시는 차츰 대지적 삶, 수평 상상력으로부터 일어나서 하늘과 땅이 서로 조응하는 삶으로서 수직 상상력의 형태로 변모해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솥작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든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닢이 필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네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었나보다

 

─?菊花 옆에서?

 

 

미당이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쓴 시편들에는 바로 이처럼 국화꽃이 상징하는 지상으로부터의 일어섬, 즉 하늘 지향성 또는 수직 상상력이 지속적으로 작용하고 있어 관심을 환기합니다.

 

시 ?화사? 등이 상징하는 대지와 나란히 가는 대지적 삶, 육체적 삶, 또는 운명적 삶으로부터 머리가 하늘을 향해 우러러 사는 정신적 삶, 수직적 삶을 지향하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그의 시에 나무 등 무수한 식물적 이미지들과 시 ?추천사? 등에서 보는 ‘그네’의 상징이 바로 이러한 대지로부터의 일어섬, 즉 하늘 지향성으로서 정신적 삶, 또는 자유 지향성을 동경하고 갈망하는 내용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중기 시에 ?무등에게? 등 ‘산’의 상징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땅으로부터 하늘을 향한 솟구침, 즉 정신 지향성, 자유 지향성, 수직 상상력의 구체적 표출이라고 하겠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하늘의 시, 天上의 시편들이 집중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시집 『新羅抄』(1960)와 『冬天』(1968)의 시 세계가 바로 그러한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 속 우리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옴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冬天?

 

 

이 시는 미당의 ?화사?(1936) 이후 30년 만에 발표된 시인데요, 개인의 생애 구분으로서는 20대에서 50대로 접어든 시기에 창작된 것입니다.

 

이 시에는 ?화사?에서의 대지적 삶, 운명적 삶, 육체적 삶의 모습, 즉 동물 상상력 또는 수평 상상력이 하늘 지향성, 즉 우주적인 세계ㆍ정신의 세계로 상승해 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겨울 하늘의 얼어붙은 경직성이 상징하는 지상의 온갖 구속, 물질적ㆍ육체적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늘과 ‘새’ 표상으로서 우주적인 비상을 지향하고 갈망하는 한 모습인 것이지요. 겨울 하늘을 시늉하며 비끼어 유유히 날아갈 수 있는 새의 모습은 바로 천상의 질서, 우주적 삶ㆍ정신적 삶을 꿈꾸는 자유인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특히 이 시기 『신라초』의 시 세계에서 보듯이 미당이 신라의 하늘, 역사의 하늘을 노래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하늘의 척도 또는 우주적 비상을 꿈꾸는 시인의 모습 또는 모든 인간의 소망을 반영한 것임은 물론이라 하겠습니다.

 

 

4. 생명 공동체, 우주 공동체를 향하여

 

그런데 후기 시에 이르게 되면 그의 시는 하늘과 땅과 사람(생명체)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생명 공동체, 우주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모습이 더욱 구체적으로 펼쳐지고 있어 주목을 환기합니다. 그야말로 天ㆍ地ㆍ人이 하나로 얼크러지면서 우주 생명 또는 생명 우주를 이루어 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가을 논에서

노랗게 여문 볏모개들이

“좀 무겁다”고 머리 숙이면

“좋지 뭘 그렇냐!”고

메뚜기들은 톡 톡

튀기며, 날고,

 

그 메뚜기들의

튀어나는 힘의 등쌀에

논고랑의 새끼붕어들은 후

다닥딱

헤엄쳐 다니고,

 

그게 저게 좋아서

논바닥의 참게들이

고욤나무 밑 논둑까지

엉금엉금 기어나가면,

 

“얼씨구 절시구 지화자자 좋다!”고

농군아저씨는 어느 사인지

열두발 상무를 단 패랭이를 쓰고서

그 기인 열두발의 상무를

하늘에다 대고 마구잡이로 내어젓는다.

 

─?가을의 벼논?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넣으면

휘영청 달빛은 더 밝어 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좋아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내어 깔깔거렸네.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내 어렸을 때의 시간들ㆍ7?

 

 

이 두 편의 시에는 미당 시가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이 바로 이처럼 하늘과 땅과 사람은 물론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 우주 공동체 사상의 구현임을 말해 주는 증좌가 됩니다. 앞의 시에서는 벼와 메뚜기, 새끼 붕어, 참게, 고욤나무, 농군 아저씨 그리고 논과 하늘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그러하며, 뒤의 시에서는 온 식구, 달빛, 노루, 꽃가지, 대수풀(대숲), 올빼미, 달님이 함께 어우러지는 친화와 교감의 모습이 또한 그러합니다. 말하자면 생명 공동체, 우주 공동체에 기반한 생명 사상이 제시되어 있고, 상생의 철학과 평화 사상이 펼쳐져 있음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5. 미당 시와 민족어의 완성을 향하여

 

무엇보다도 미당의 시가 문학사에 남긴 가장 중요한 공적은 그가 고유어, 토속어는 물론 지역어, 옛말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고 깊이 있게 우리말을 발굴하고 확대ㆍ심화해 감으로써 민족어의 완성을 위해 진력한 것입니다.

 

 

눈물 아롱 아롱

피리 불고 가신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西域 三萬里.

흰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오진 못하는 巴蜀 三萬里.

 

신이나 삼어줄ㅅ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날로 이냥 베혀서

부즐없은 이머리털 엮어 드릴ㅅ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 하늘

구비 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가락 눈이 감겨서

제피에 취한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歸蜀途?

 

 

우리말로서 이렇게 아름다운 표현 미학을 성취해 낸다는 일이 과연 그리 쉬운 일이겠습니까?

 

 

누님.
눈물 겨웁습니다

 

이, 우물 물같이 고이는 푸름 속에
다수굿이 젖어있는 붉고 흰 木花(목화)꽃은,
누님,
누님은 피우섰지요?

 

퉁기면 울릴듯한 가을의 푸르름엔
바윗돌도 모다 바스라저 내리는데

 

저, 마약과 같은 봄은 지내여서

저, 무더운 여름을 지내여서

질갱이 풀 지슴ㅅ길을 오르내리며

허리 굽흐리고 피우섰지요?

 

─?木花? 

 

 

바보야 하이얀 멈둘레가 피였다

네 눈썹을 적시우는 용천의 하눌 밑에

히히 바보야 히히 우습다

 

사람들은 모두다 남사당派와 같이
허리띠에 피가묻은 고이안에서
들키면 큰일나는 숨들을 쉬고

 

그어디 보리밭에 자빠졌다가
눈도 코도 相思夢도 다 없어진후

燒酒와같이 燒酒와같이
나도 또한 나라나서 공중에 푸를리라.

 

─?멈둘레꽃? 

 

 

 천 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학이 날은다

 

천 년을 보던 눈이

천 년을 파다거리던 날개가

또 한번 천애(天涯)에 맞부딪노나

 

산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가

초목도 울려야 할 설움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보라, 옥빛, 꼭두선이,

보라, 옥빛, 꼭두선이,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은 보자

 

누이의 어깨 너머

누이의 수(繡)틀 속의 꽃밭을 보듯

세상은 보자

 

울음은 해일(海溢)

아니면 크나 큰 제사(祭祀)와 같이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 추랴.

멍멍히 잦은 목을 제 쭉지에 묻을 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 땐들 골라 못 추랴.

 

긴모리 자진모리 일렁이는 구름 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 곁을 날은다.

 

─?학? 

 

 

피가 잉잉거리던 病은 이제는 다 낳았습니다.

 

올봄에

매[鷹]는,

진갈매의 香水의 강물과 같은

한 섬지기 남짓한 이내[嵐]의 밭을 찾아내서

 

대여섯 달 가꾸어 지낸 오늘엔,

홍싸리의 수풀마냥, 피는 서걱이다가

翡翠의 별빛 불들을 켜고,

요즈막엔 다시 生金의 鑛脈을 하늘에 폅니다.

 

아버지.

아버지에게로도,

내 어린 것 弗居內에게로도, 숨은 弗居內의 애비에게로도,

또 먼 먼 즈믄 해 뒤에 올 젊은 女人들에게로도,

生金 鑛脈을 하늘에 폅니다.

 

─?사소, 두 번째의 편지? 

 

 

내가 고독한 자의 맛에 길든 건 다섯 살 때부터다.

부모가 웬일인지 나만 혼자 집에 떼놓고 온종일을 없던 날,

마루에 걸터앉아 두 발을 동동거리고 있다가  다듬잇돌을 베고 든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은 맨 처음으로 어느 빠지기 싫은 바닷물에 나를 끄집어들이듯 이끌고 갔다.

그 바닷속에서는 안으로 안으로 안으로 초파일 연등 밤의 초록 등불 수효를 늘려 가듯 울음보를 늘여 가면서

침울해가는 내 주위와 밑바닥에서 이것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뛰어내려서 나는 사립문 밖 개울 물가에 와 섰다

아까 빠져 있던 가위눌림이 얄파라이 흑흑 소리를 내며 여뮈풀 밑 물거울에 비쳐 잔잔해지면서

거기 떠가는 얇은 솜구름이 또 정월 열나흗날 밤에 어머니가 해 입히는 중이적삼 모양으로 등짝에 가슴때기에 선선하게 닿아 오기 비롯했다

 

─?다섯살때? 

 

 

먼저 시 ①에서 ‘지슴ㅅ길’이 그 예인데, 이것은 풀 따위가 우거진 길을 의미합니다. 대충 알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시어의 좋은 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②에선 ‘멈둘레꽃’이 그 예인데, 이는 ‘민들레꽃’을 말하는 방언입니다. 그러나 미당은 이 말도 멈둘레를 비롯하여 ‘머슴둘레, 미움둘레, 민들레’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그때그때의 상황 정서에 맞춰 적절히 바꿔 사용함으로써 의미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만큼 우리말의 섬세한 의미 가치와 소리 가치에 유의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③에서는 ‘꼭두선이’가 그 예인데 이것은 ‘진홍빛’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역시 일반에게는 친숙하지 않은 색깔이며 꽃 이름임에 분명하지요. 잘 안 쓰이는 말, 식물 심상을 과감히 시 속에 도입한 예가 되겠습니다.

④에서는 ‘이내’가 그 예인데, 그것은 ‘안개’라는 뜻의 고유어입니다.

⑤에서는 ‘물거울’이 그 예인데 이것은 한자로는 ‘水面’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수면은 ‘물거울’ 또는 ‘물낯바닥’ 등 고유어의 정령화된 표현으로 인해 더욱 빛나는 심상을 지니게 됩니다.

 

말과 글로서 민족어는 한 민족에게 있어 생존권의 표상이자 주권의 상징이며 민족혼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당이 인간적인 면에서 여러 오류를 남긴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렇게 민족어를 갈고닦음으로써 민족혼과 정서를 한 차원 도약시킨 그의 공적은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 분명합니다.

 

 

 

새국어생활 제16권 제1호(2006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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娑蘇 두 번째의 편지 斷片 / 서정주

 

 

피가 잉잉거리던 病은 이제는 다 낳았습니다.

 

올봄에

매[鷹]는,

진갈매의 香水의 강물과 같은

한 섬지기 남짓한 이내[嵐]의 밭을 찾아내서

 

대여섯 달 가꾸어 지낸 오늘엔,

홍싸리의 수풀마냥, 피는 서걱이다가

翡翠의 별빛 불들을 켜고,

요즈막엔 다시 生金의 鑛脈을 하늘에 폅니다.

 

아버지.

아버지에게로도,

내 어린 것 弗居內에게로도, 숨은 弗居內의 애비에게로도,

또 먼 먼 즈믄 해 뒤에 올 젊은 女人들에게로도,

生金 鑛脈을 하늘에 폅니다.

 

 

 

娑蘇의 神仙修行 시절의 두 번째의 편지.

진갈매 : 짙은 葛梅. 葛梅는 녹색.

이내[嵐] : 山氣 蒸淸한 하늘의 특수한 기운.

弗居內 : 朴赫居世.

 

娑蘇의 매[鷹]는 娑蘇가 山에 간 지 이듬해의 가을 날, 그 아버지에게 두 번째의 편지를 그 발에 날라왔다.

이번 것은 새의 피가 아니라, 香풀의 진액을 이겨, 역시 손가락에 묻혀 적은 거였다.

피딱지의 두루 마리는, 아직도 집에서 가지고 간 그것이었다.

?이것은 그 편지의 前半部 한 조각만 남은 것이다.

 

파소(婆蘇) 또는 사소(娑蘇) 부인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어머니인데 처녀임신으로 부왕으로부터 내쳐진 뒤 계림으로 쫓겨나 그곳에서 박혁거세를 낳는다. 처음에는 부왕에 대한 원한과 서러움이 증오가 되어 새의 피로 그 한 품은 마음을 편지에 썼으나, 핏덩이 아기를 기르면서 순화된 그녀는 부왕을 용서하고 향내 나는 풀의 진액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과 생명, 자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적는다.

 

대학 시절, 나의 무절제한 생활을 보다 못한 자형이 퇴거를 명한 적이 있다. 조실부모한 일곱 남매의 막내인 나를 큰누님이 거두셨는데 만화 그린다고 밤낮을 뒤바꾸어 사는 어린 처남을 엄한 자형께서 쫓아내신 것이다.

그때 철모르던 나는 자형께 야속하고 분한 마음으로 울분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던 즈음, 시 낭송의 대가였던 고(故) 김수남(金秀男) 소년한국일보 사장이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앞에 놓고 읊어주던 시가 바로 이 시였다. 그 후로도 세상에 울적하거나 한스러운 일이 있으면 이 시의 낭송을 부탁하였고, 그때마다 마음이 평온해지며 그 어떤 울분과 미움도 봄눈처럼 녹는 위대한 시의 힘을 느낀다.

 

내가 평생을 살면서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언제나 원한과 증오에 찬 피보다 용서와 화해의 향기로운 풀의 진액으로 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게 된 건 이 시 덕이다.

 

이원복 (만화가, 덕성여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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