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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강] 중심 소재의 제목화
강사/김영천
제목을 붙이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제목을 어떻게 붙여야 시가 더 살아
나는가, 즉 시의 구조가 긴밀해지고 탄력적이 되는
가 그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조태일님은 8가지로 분류를 했는데
이 분류에 의해서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1)중심 소재의 제목화
2)주제의 제목화
3)시의 첫행이나 끝행의 제목화
4)모티프의 제목화
5)중심 이미지의 제목화
6)주제를 내포한 구절의 제목화
7)시의 내용과 연관성이 없는 낱말의 제목화
8)제목을 달지 않는 경우로 8가지로 분류를 하였군요.
하나씩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1.중심 소재의 제목화
가장 흔한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시인들도 많이 이
방법을 쓰고, 특히 습작기에 있는 시 지망생들이
많이 쓰는 방법입니다.
흰 눈은 나려
고죽 마을을 덮었는데
새알산도 하얗고
밭엔 못 뽑은 배추가 그대로
눈 뒤집혀썼는데
이런 날 봉도는 술 생각이 나서
땅 속에 어찌 누워 있나
속알못 쪽
봉도 무덤으로 가는 길도
이미 눈이 파묻혔다.
오늘 같은 날
봉도는 필시 누웠던 땅에서 일어나
머리에 눈을 맞으며
주막집으로 혼자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으리라
-이동순, <술꾼 봉도> 全文-
술꾼으로 일생을 살다 죽은 '봉도'라는 인물이 이
시의 중심 소재이자 시적 대상입니다. 이런 인물들
은 우리의 주위에 참 많은 소시민입니다. 제가 가
끔 인용하는 종남이 아재나 어디 시장 바닥의 유
명한 혁띠 아저씨나 그런 소박한 사람들 중의 하
나인 봉도가 이 시의 중심 소재입니다. 이렇게
중심 소재를 제목으로 할 경우에는 그 중심 소재가
시 전체 속에 무르녹아 의미를 확산시켜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아주 단순한 평면적 시로
되어버리기 쉬울 것입니다.
2.주제의 제목화
주제를 시의 제목으로 할 때는 이 제목이 시의 구
심점이 되기 때문에 많은 시적 요소들이 여기에
집중이 됩니다. 이 때 제목은 시어들을 제대로 껴
안을 수 있어야 하며, 시어들 역시 주제를 구체적
으로 떠받치며 형상화시켜 줘야 하는데 주제를
제목으로 삼는 경우, 제목은 관념어 즉 추상어가
될 것입니다.
이용악의 <그리움>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험한 벼랑을 굽이굽이 돌아간
백무선 철길 우에
느릿느릿 밤새어 달리는
화물차의 검은 지붕에
연달린 산과 산이
너를 남기고 온
작은 마을에도 복된 눈 내리는가
잉크병 얼어드는 이러한 밤에
어쩌자고 잠을 깨어
그리운 곳 차마 그리운 곳
눈이 오는가 북쪽엔
함박눈 쏟아져내리는가.
3.시의 첫행이나 끝행의 제목화
시의 첫행이나 마지막 행을 제목으로 내세우는 경우
입니다. 이 때 첫행이나 끝행은 시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첫행이 제목이 되는 예시로 김용락의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를 올려보겠습니다.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아니, 기적소리가 듣고 싶다
가을비에 젖어 다소 처량하게
비극적 음색으로 나를 때리는
그 새벽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방문을 열면 바로 눈앞에 있던
단풍이 비에 젖은 채로 이마에 달라붙는
시골 역전 싸구려 여인숙에서
낡은 카시밀론 이불 밑에 발을 파묻고
밤새 안주도 없이 깡소주를 마시던
20대의 어느날 바로 그날 밤
양철 지붕을 쉬지 않고 두들기던 바람
아, 그 바람소리와 빗줄기를 다시 안아보고 싶다
인생에 대하여, 혹은 문학에 대하여
내용조차 불분명하던
거대 담론으로 불을 밝히기라도 할 양이면
다음날의 태양은 얼마나 찬란하게
우리를 축복하던가
그날은 가고 기적을 울리며 낯선 곳을 향해
이미 떠난 기차처럼 청춘은 가고
낯선 플랫폼에 덩그러니 선 나무처럼
빈 들판에 혼자 서서
아아 나는 오늘밤 슬픈 기적소리를 듣고 싶다
이 시의 제목과 첫행으로 나오는 "기차소리를 듣고
싶다"는 시적 화자의 소망을 간절히 표출하고 있는
진술입니다. 이 진술은 지나간 20대 시절 가슴 속에
품었던 더없는 열정에 대한 그리움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써 이 시의 주제를 집약하고 있는 문장임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엔 시의 끝행을 시의 제목으로 삼는 예시로
신경림의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를 읽어보겠습
니다.
그때 책이 가득 든 가방이 있었고
낙서판 같은 탁자마다 술이 넘쳐 흘렀네
괜찮은 사내며 계집이며
가까워질수록 잃을까 불안한 심정이며
시대가 혼란스럽고 취직이 힘들수록
쟁기처럼 단단해져야 할 마음이며
<아침이슬>과 미칠듯이 파고드는 러시아 민요
<검은 눈동자>를 들으며 몸 저리게 서러웠네
세월의 징검돌을 밟고
그들은 내 곁을 스쳐갔네
다시 칠년 다시
소독약보다 지독한 시간이여
청춘의 횃불이 꺼져간다
괴로워야 할 치욕도 상처의 저수지도 잊어가고
우리의 숙명인 열정도 식어간다
근근이 살아가는 고달픔이란,
너는 허기져 삽쌀개를 찹쌀개로 헛발음하고
시계 사준다는 말이 나는 시체 사준다는 말로 들리고
혼자가 싫어 드라큐라라도 함께 있고픈 주말
사나운 날씨를 못견뎌 헤매는 오후 네 시
울지 않으려고 웃으면서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
제목으로 삼은 끝행 "나는 나에게로 돌아간다"도
역시 이 시의 주제를 떠받치고 있는 문장이면서
이 시의 마무리 결론을 내주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 두가지 예문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첫행이나
끝행을 제목으로 하는 경우는 문장의 형태가
서술형인데, 이 서술 형태를 통해서 강조의 효과를
낳으려는 의도가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조태일님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강의는 마치고 좋은시 읽기를 하겠
습니다.
이성복님의 <강>을 먼저 읽겠습니다.
잎 떨군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게 깔리면서 푸르름이
가시지 않은 땅은 적쇠에 그을은 스테이크 같았다 처
음엔 딸기나 참외를 재배하는 비닐 하우스 길게 뻗
친 허연 비닐 지붕인 줄 알았다 미안하다 눈 덮인 겨
울이면 땅의 탯줄처럼 한없이 늘어나 우리들 속옷 속
덜아문 배꼽까지 닿아 있던 강이며, 돌아서 담배 한
대 피우는 사이 풀풀풀 떡가루 같은 눈을 쓸어올리며
너는 방패연의 긴긴 꼬리처럼 단숨에 떠오를 것 같았
다 아니다 다시 칼바람 잦아들면 강은 눈썹 끝까지
옥양목 홑이불 끌어올리며 자던 어린 날의 늦잠이거나
내장이 다 터진 어떤 삶을 덮어 가리던 수의였다.
다음은 이정록님의 <處身>을 읽겠습니다.
모내기를 끝낸
논배미마다
도랑도랑 신이 나 있다
자라나는 옷을 입은 논과 논
그 단벌의 옷자락, 사이사이
이양기 바퀴와 사람들의 맨발로
납작해진 논두렁, 빛난다
저 논두렁처럼
낮고 분명해야 하리라
딛고 지나간 발자국 옆에서
합장을 풀고 싹을 피우는 밤콩처럼
한 줌의, 식은 재를 열고
몸 세우리라
내일 뵙겠습니다.
흐르는 물(열쇠클릭)*^.^*
첫댓글 구비 구비 흘러 흘러 오다 보니 님이 계신 곳 까지 들리게 되었습니다..몇 개월 동안 안주하면서 미쳐 돌아 보지 못한 곳이 너무 많아 ..때마침 두루 두루 둘러 보고 있는 중이랍니다..글 잘쓰는 거 ..노래 잘 부르는 거..그림에 표현을 할 수 있을정도면..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평소에 해봅니다..
뭔가 느낌과 생각들을 표현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습니다..일단은 한번 쭉~흩어보고 갑니다..관심을 가지고 자주 들려보겠습니다..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이다..감사합니다..좋은밤 되세요..
모르는 님의 닉은 찾아 와 주어서 반갑고 아는 님의 닉은 낯익어서 반갑네요./ 우리 카페가 방이 많아서 두루두루 다 돌아보기도 힘들지요./ 글과 그림과 음악, 다 잘하면 좋겠지요. 그런데 저는 음악도 그림도 문외한이고 글만 조금 봅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