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매일성경
“거룩한 낭비”(막14:1-11)
1.예수님의 죽음이 더 가까워 왔다. 제자들은 알 수 없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차분하게 마음의 준비부터 하고 계셨던 것으로 보인다. 베다니의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의 일이다.
2.나는 이 장면이 더욱 짠하게 다가오는 것은 예수님의 삶 자체가 시작부터 끝을 향할 때까지 가난하고 소외된 자, 병들고 죄지은 자들의 집과 모임에서 떠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한 번도 궁전에서 식사를 하시거나 모임에 참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3.그 때 한 여자가 들어와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그 향유는 곧 예수님의 머리를 타고 온 몸으로 흘러 내려 그의 몸을 적셨다.
4.이를 바라본 무리, (요한복음에서는 가룟유다로 정확하게 지칭을 한다)는 이를 낭비라며 매우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찬다. 여인이 깨뜨린 나드한 옥합은 일용직 노동자의 1년치 급여. 즉, 한 사람의 1년의 연봉에 해당하는 값 이었기 때문이다.
5.가난한 자들에게 그것을 팔아 나누어주었다면 얼마나 더 많은 혜택을 사람들이 누릴 수 있었겠는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고 섬기는 제자들의 관점은 옳았을지라도 적어도 지금 이 순간에는 방향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6.누구보다도 가난한 자를 돌보셨던 주님께서 이 여인을 옹호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가난한 자들을 먹이시고 배불리시는 일이 최우선의 목적이 아니셨기 때문이다. 그가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이다.
7.이 점을 놓치면 안된다. 여인은 비록 사랑과 헌신의 의미로 예수님께 향유 옥합을 깨뜨려 부어드렸지만, 그것이 곧 이루어질 예수님의 메시아적 죽음의 장례를 위함이었음을 말이다.
8.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유다는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팔아 넘기기로 결심하고 예수님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지난 3년간 유다는 어떤 마음으로 예수님의 곁에 머물렀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그는 세상적 성공을 위하여 예수님의 곁에서 3년간 꾹꾹 참아왔던 것이다.
9.유다는 정확히 이 일들을 ‘낭비’라 말했다. 맞다. 낭비다. 그러나 이는 ‘거룩한 낭비’다. 그 때가 아니고서는 결코 행할 수 없었던 주어진 유일한 기회였다. 여인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향유를 단순히 부은 것이 아니라(일부를 붓고 남은 것을 챙긴것이 아니라) 깨뜨려 모두 쏟았다. 자신의 손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말이다.
10.사람들은 이를 낭비라 부르지만, 예수님은 사랑과 헌신으로 부르셨다. 준비라 말씀하셨다. 우리에게도 이런 ‘거룩한 낭비’ 필요하다. 그 옥합이 그 때를 위해 준비되었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때를 위해 준비된 것 아니던가? 그리고 그 때를 위해 부어져야 함이 아니던가?
11.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실리를 찾는다. 손익을 계산한다. 그리고 미련하다 손가락질을 한다. 그러나 괜찮다. 주님이 인정해주시는 거룩한 낭비라면, 순간 부어져 없어질 찰나의 인생이라 할지라도 주님이 기념해주시는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