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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흔해빠진 독서/윤재순
-기형도
휴일의 대부분은 죽은 자들에 대한 추억에 바쳐진다
죽은 자들은 모두가 겸손하며,그 생애는 이해하기 쉽다
나 역시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허용했지만
때때로 죽은 자들에게 나를 빌려주고 싶을때가 있다
수북한 턱수염이 매력적인 이 두꺼운 책의 저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불행한 생을 보냈다,위대한 작들이란
대부분 비슷한 삶을 살다 갔다 그들이 선택할 삶은 이제 없다
몇개의 도회지를 방랑하며 청춘을 탕진한 작가는
엎질러진 것이 가난뿐인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는 중이다
그는 분명 그 누구보다 인생의 고통을 잘 이해하게 되겠지만
종잇장만 바스락거릴 뿐, 틀림없이 나에게 관심이 없다
그럴때마다 내 손가락들은 까닭없이 성급해지는 것이다
휴일이 지나가면 그뿐, 그 누가 나를 빌려가겟는가
나는 분명 감동적인 충고를 늘어놓을 저 자를 눕혀두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는 저녁의 거리로 나간다.
그러면 종종 묻고 싶어진다. 내 무시무시한 생애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이 거추장스러운 마음을 망치기 위해
가엾게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흙탕물 주의를 나는 기웃거렸던가!
그러면 그대들은 말한다. 당신 같은 사람은 너무 많이 읽었다고
대부분 쓸모 없는 죽은 자들을 당신이 좀 덜어가라고.
입안의 검은 잎
-기형도
택시 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엇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 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 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휜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 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렷다
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갓다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이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릐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시인 기형도
기형도의 시들이 보여주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견디는 시의 강렬한
내구력이다.그의 시 내부에서 떠돌고 있는 끊임없는 죽음에의 예감,
우리는 기형도의 시 도처에서 그 예감의 색깔로 물든
어느 푸른 저녁의 축축하고 불길한 안개를 만난다.
시인은 이미 그의 시 속에서 충분한 죽음을 살았던 것이다
기형도 시의 강렬한 내구력은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시인을 습격했던 바로 그 죽음에의
예감으로부터 온다고 할수있다
그러므로 기형도의 언어들은 유예된 죽음의 언어들이다
지금까지 우리 시에서 죽음과 절망을 이처럼 철저하게
자신의 삶으로 끌어 안았던,그리고 그것을 이처럼 매혹적인
언어의 성으로 쌓아 올렸던 시인은 없었다.
기형도, 그토록 치명적이고 불길한 매혹,혹은 절병의 이름..
시인 기형도는 1960년 경기도 웅진군 연평리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 중앙일보사에 입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등에서 근무했다.
중학교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은 연세대 교내문학 서클인
'연세문학회'와 안양의 문학 동인'수리'에 참여 활발한 습작 및
시작 활동을 했다.대학재학중에는 연세대 신문인'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박영준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시인은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안개]가 당선되면서 문단에
공식 데뷔했다.민중시.노동시.등 투쟁적이고 정치적인 시가 주류를
이루던 당시에 그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시세계를 다지는
작품들을 줄곧 발표했다.
1989년 3월7일 새벽,그는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하던 중
서울 종로의 한 심야 극장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졸중이었으며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
그해 5월 유고 시집[입속에 검은잎]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살아있을 당시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일부 비평가에 의해서만
내면적이고 비의적이며 우회적인 독특한 색체의 시인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인[입속의 검은잎] 출간 되었을때
그에 대한 평가는 폭팔적으로 늘어났으며 이후 한국 시의 새로운
경향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작품들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독자들에게
꾸준히 읽혀왔으며 많은 시인.비평가들로부터 새로운 의미들이
끊임없이 추가되어 그 미학적 시대적 의미가 놀랄정도로 증폭되었다
이제 그의 작품들은 하나의 새로운 고전으로 우리 문단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흐르는 물(열쇠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