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신 역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에 갔다. 목적이 있다. 어머니를 뵙기위한 것이다.
어머니 찾아 뵙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겠냐만은 이번 경우는 다르다.
어머니 요양원에 모시기 위한 말하자면 하나의 절차다. 어머니의 요양원 입원은 가족들 간에 상의해 이미 결정된 사항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번 대구행은 어머니가 요양원 입원하기 전 집에서 얼굴을 한번 뵙고자하는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쓰기가 싫다. 현실적으로 그러한 것이지만, 그 의미가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정신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간혹 기억에 차질이 있고, 반복해서 말씀하시는 것 빼고는 속된 말로 '멀쩡'하셨다.
하지만 이미 마음 속으로 어머니의 그런 처지를 알고있으니,
그런 어머니의 언행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또 다른 슬픔으로 다가왔다.
어머니는 각중에 나에게 나이를 물었다. 칠십 둘이라 했더니,
깜짝 놀라시는 표정과 함께 “하이고, 그라모 니가 할배가 됐네” 하신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나는 팔십 여덟이다. 팔팔이…”
어머니의 그 말씀에 자리가 빵 터졌다.
어머니와 사진을 찍었다. 동생들과도 찍었다. 큰 의미는 부여하기 싫다.
그냥 찍어본 것인데, 여동생 영애가 자꾸 그런 의미를 보태기에 나도 어느 순간 좀 숙연해지기도 했다.
어머니 박명주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항상 웃었다. 그 모습이 이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9월 26일 입원하신다. 그날 또 내려오기로 동생들에게 약속을 했다.
그러나 번복을 했다. 18일 나의 심장시술 결과에 따라 변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이런 말 한 것에 후회가 됐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려와야할 것이라는, 맏이로서 지극히 당위적인 일인데 그에 토를 단 것에 대한 것이다.
아무튼 지금은 결정을 했다. 내려올 것이라는...
대구 지하철역에서 큰 변을 당할 뻔 했다. 역까지 배웅을 나온 동생과 헤어짐의 손짓을 나누다
에스컬레이터 방향을 잘못 알고 플랫폼으로 가려다 뒤로 넘어질 뻔 한 것이다.
그러니까 올라오는 걸 내려가는 걸로 잘못 알고 발을 들여놓았다가 낭패 일보직전에 가까스로 모면한 것이다.
만약 내가 뒤로 "꽈당"했으면 어찌됐을까 하는 생각이 집으로 올라오는 열차 안에서 계속 따라다녔다.
또 하나 아찔한 일이 있었다.
아침에 행신 역으로 가려 버스를 잡아타려 혼신의 힘을 다해 뛰다가 아차!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뜀박질을 하는 와중에 어라, 내가 이러면 되는가. 나는 심장에 이상이 있어서
심장조영시술을 앞두고 있는데 이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다행히(?) 내가 버스보다 앞서 정류소에 도달했기에 뜀박질을 멈추기는 했으나,
심장 쪽 흉통을 한 차례 경험한 처지에서 그게 또 찾아올까봐 몹시 불안했다.
다행히 흉통은 오질 않았다.
#어머니박명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