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의 섬은 연약한 아이들끼리 안간힘을 다해 생명의 꽃을 지키는 곳으로, 돌봄과 양육이 최우선적으로 요청되는데도 그 책임이 아이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에서 방치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마와 외할머니가 동굴 안쪽에서 차례로 등장하는 순간, 마고의 섬은 보다 신비롭고 따뜻한 모성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뭐든지 잘 살려서 ‘꽃 박사 병아리 박사’인 외할머니와 튼튼한 아리를 번쩍번쩍 안아 키운 엄마는 닭 울음소리로 괴물지네를 물리치는 한편, 아이들과 함께 맑고 깨끗한 샘물을 길어 꽃밭을 살린다. 사악한 존재를 물리치는 데 폭력이 아닌 삶의 지혜를 동원하고, 어른과 아이가 힘을 합쳐 꽃밭을 살린다는 점에서 여성적 유연함과 연대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작가는 환경오염과 생명 파괴 같은 직접적인 문제 제기 대신 마고의 섬이라는 신비한 공간을 만들어놓고는 마고할미가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이야기한다. 마고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이자 지쳐서 시름에 잠긴 자연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까마득히 오랜 옛날로 거슬러올라가면 거기에는 생명의 기원이 존재할 것이다. 아이들의 닭 울음소리를 들은 괴물지네가 손가락만큼 줄어들자 어딘가에서 날아온 물새 한 마리가 콕 집어 삼켜 버리는데 괴물지네의 최후는 허무하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생명의 순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외손녀의 부축을 받고서야 계단을 오를 수 있던 할머니는 아이들을 모두 구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 뒤에는 한결 정정하다. 친구들에 비해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자랑거리가 없어서 의기소침하던 아리도 이제는 그 어느 때보다 위풍당당하다. 『마고의 샘물』은 어머니의 살리는 힘, 돌보는 힘에 대한 감사인사이며, 모든 연약한 존재들에 대한 존중의 뜻을 담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는 뻔한 말이 생명을 낳고 기른 어머니 앞에서는 얼마나 큰 울림을 갖게 되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 소개
임어진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2006년 ‘샘터상’, 2009년 ‘웅진주니어 문학상’ 대상과 201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습니다.
동화 『이야기가 사는 숲』, 『푸른 고래의 시간』, 『아니야 고양이』, 『사라진 슬기와 꿀벌 도시』, 『괜찮아신문이 왔어요』, 『너를 초대해』, 『델타의 아이들』, 『이야기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보리밭 두 동무』, 『또도령 업고 세 고개』, 『이야기 도둑』과 전통문화와 어린이 인물 고전 『오방색이 뭐예요?』, 『최치원전』, 『설문대 할망』, 『말과 글은 우리 얼굴이야』, 그림책 『손 없는 색시』, 『도깨비 잔치』를 썼습니다.
출판사 리뷰
위대한 어머니 마고의 섬,
세상 아이들의 숨이 담긴 꽃을 지켜라!
거인여신인 마고할미는 이 세상의 자연물과 지형을 창조한 창세신으로, 엄청난 키와 몸집을 자랑한다. 치마폭에 싸서 나르던 흙이 떨어져 산이 되고, 오줌을 누자 하천이 되는 등 마고할멈과 관련된 신화는 그야말로 스케일이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가부장적 질서 안에서 힘세고 전지전능한 마고할미는 오랫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아동문학이 마고할미 신화를 곧잘 호출해내는 것은 그만큼 마고할미가 매력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모신 마고할미는 힘세고 강한 어머니이고, 그런 어머니의 소중함을 가장 가까이 느끼고 있는 존재가 아이들인 것이다. 태초에 세상을 만들고 만물을 보듬어 안는 위대한 어머니가 있었고, 우리는 그 위대한 어머니를 되찾아야 한다.
임어진의 『마고의 샘물』은 바로 그 마고할미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마고는 세상을 처음 만든 여신이며 할머니 신이지만 세상을 만든 뒤 너무 고단해서 지금은 깊이 잠든 상태다. 주인공 아리는 외할머니, 엄마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갔다가 해수탕에서 마고의 섬으로 훌쩍 이동한다. 붉은 옷을 입은 아이들이 뛰놀며 꽃을 키우는 마고의 섬은 활기와 생명이 넘쳐흐르는 상징적 공간이다. 마고의 아이들이 잠든 마고를 대신해서 섬을 지키고 생명의 샘물로 꽃을 키우는 일을 책임지고 있다. 문제는 마고의 섬이 ‘마구리’라는 괴물 지네로 인해 시름에 잠겨 있다는 것. 마구리가 나타날 때마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 뿐이고, 세상 아이들의 숨을 담고 있다는 꽃들도 시들시들 생기를 잃어간다.
“시간이 얼마 없어. 저길 봐. 저 꽃은 이대로 있다간 곧 죽고 말아.
꽃이 죽어 버리면 저 꽃이 지켜주던 세상의 아이도 숨을 멈출 거야.”
섬 꼭대기에서 흘러내린 물은 차고 맑지만 어쩐 일인지 샘물에서 퍼올린 물은 탁하기 그지없고 그조차도 말라 간다. 아리와 아이들은 괴물지네 마구리가 샘물을 가로채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만 조그맣고 연약한 아이들로서는 괴물지네를 당해낼 방법이 없다. 샘물을 되돌리기는커녕 갑자기 습격해온 괴물지네에 쫓겨 숨어드는 처지가 되고 만다. 바위동굴에 숨어 있다가 괴물지네가 금방이라도 공격해올 듯하자 아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친다. “엄마아! 무서워!”
첫댓글 임어진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멋지십니다.
와우~ 선생님의 연이은 신간 소식이네요. 출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