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과 나의 데칼코마니 외 1편
임재정
외나무다리에서 짐승을 만나 다리 삼천 개 달린 이를 추궁하다 나를 죽였다 밤의 물속 동물원은 내 목소리와 얼굴을 상장으로 달고 발바닥에 붙어 헤엄치고 있었다
춤을 완성하는 것은 물결이다, 말미잘의 경우
밤은 물 표면을 중심으로 안팎을 합일시키지만
신방의 경사는 촉수들의 합과
기꺼이 꽃 피려는 긴 목의 자세가 전체
타고 남은 재와 불타지 않은 생각을 섞어
하르르, 나는 시동이 걸리는 엔진이니까
밥을 먹다가 돌을 씹는 것처럼 분명한 사건이 있었어
요즘 아파트에선 번지점프가 유행이야, 엔진이 돌기 시작하면 부끄러움은 높이를 지우고 자기가 가장 높아지는 순간에 꽂혀 떨리는 화살이 되지
모든 동물들을 식당으로 불러주지 않을래?
꽃은 반한 누구든 배우자로 선언할 수 있대
입 속에서 늘 젖어있는 혀로 자기를 입맛 다신다
갸우뚱 하는 동물들과 밖을 훔쳐보는 꽃들이
밤을 울렁이게 한다 느슨한 울타리가 된다
검은 아가리를 들여다보면 아직도 발이 개천 물속에 닿아있다
나의 위대한 동물원
코끼리 솔루션
오늘의 주인공은 아프리카 신화 속에서 지구를 굴리는 코끼립니다 거대한 몸집은 어떤 맹수도 대적할 만큼의 높은 지붕과 두꺼운 벽, 방 몇 칸 때문에라도 집 한 채로 부족함이 없죠 일생동안 몸에 끌어들인 초원은 젖먹이를 거느린 어미가 가족을 이끌 수 있을 만큼 광대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있습니다 무덤 없는 생애는 이들을 더욱 신비한 존재로 만들어버렸죠 어쩌면 어린 새끼들이 이 의문의 열쇠가 될지도 모릅니다
제 어미를 먹어 치운 뒤 비로소 어린 새끼들은 코끼리로서의 생을 견디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밀림에 저녁이 쏟아집니다 코끼리들이 웅크려 등을 켜면 그 깊은 곳의 어린 새끼들은 잠을 청하죠 어미가 머리를 열쇠처럼 제 옆구리에 꽂고 나면 밤의 밀림은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립니다 그 때문일까요 지구는 밤새 내리막을 굴러 아침에 닿습니다
-문학과 사람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