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털웃음을 가진 거장
한홍기 (미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친우 문창재 실장의 운명을 해외에서 뒤늦게 접한 후 장례에도 참가를 못해 늘 상심하던 차 그나마 추모의 글을 올리게 되어 위안을 삼는다.
오랜만일지라도 가끔 한국에 나가면 한국일보 사옥 근처이거나 청진동에서 해후를 하면서 서로 늘어나는 주름을 쳐다보며 그의 특유의 너털웃음에 매료되고는 하였다. 그러나 지병으로 일찍이 소천하였음에 덧없이 지나간 무상한 추억이 더욱 애절케 한다. 마침 작년도 그가 소천하기 직전 마지막 유고작 "징용 조선인은 전쟁 소모품이었다"를 멀리서 받고 독후감을 올린 게 있어 이를 추모의 글로 갈음한다. 이 독후감은 당시 미주 신문과 페이스 북 한인 커뮤니티에서 큰 반향(反響)을 일으켰다.
그 친우가 아직도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아름다운 장소를 기약해 주기 바란다. 그곳이 어디이든 허락한다면 다시 한번 역사를 같이 써 내려갈 것이다.
징용 조선인은 전쟁 소모품이었다
최근 출간된 이 책을 읽는 데는 오늘이 삼일절이라 그런가 처음부터 끝까지 피가 끓었다. 그리고 모두 놀랄만한 내용이고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영화 같은 장면이 너무 많아, 읽다가 비분강개(悲憤慷槪)해 책을 확 덮어버리고 흥분을 가라앉힌 적도 있었다. 소제목마다 하나의 영화라면 아마 백여편 정도되는 생생한 증언이 담긴 대하드라마다.
나는 어려서 작은 아버지가 남양에 징용을 갔다가 죽다 오셨다고 해 막연한 상상만 하였으나 그곳이 필리핀 먼 동쪽의 무수히 작은 환초(環礁)와 섬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이곳에만 비행장 활주로와 교량 건설을 위해 끌려간 조선인은 1,600여 명, 이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은 150여 명이라고 적혀있다. 이곳에서는 애초부터 상대할 수 없는 미군의 막강한 포탄 속에 옥쇄(玉碎)를 부르짖는 일본 장교가 조선인 노동자들이 항복을 못하도록 무차별 사살을 감행해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한다.
시베리아 최북단까지 계속해 조선인이 살해된 이러한 무간지옥(無間地獄)은 생생한 전투 장면과 증언 속에 수백 군데가 넘는다. 특히 오키나와를 비롯해 동남아까지 끌려간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는 비록 그들은 창피해 극구 숨기려 드는 증언이라고는 하지만 차마 필설로 옮기기 힘든 내용인데 저자는 과감히 그대로 써 내려가 일본에 더 이상의 거짓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결연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개인적으로 생각난 것은 다른 건 그렇다 하더라도 최소한 정신대(挺身隊) 문제만큼은 이스라엘이 독일의 유대인 학살자 "아이히만" 전범자를 모사드가 강제로 잡아 자국의 재판에 회부해 처형하였듯, 비록 계급이 낮다한들 환시리에 위안부들을 무참히 칼로 난자한 확실한 일본 전범자 “가야마 다다시” 병조장을 잡아 한국 법정에서 처형하였으면 한일 간의 갈등은 더 이상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일본도 국제사회가 주시하고 있는데 독일처럼 차마 이에는 개입은 못하였을 것이다. 미국은 일본 왕을 비롯해 주요 전범을 보다 가볍게 처리해 아직까지 죄의식을 독일만큼 깊이 반성하고 있지 않지만, 한국은 이스라엘 이상의 혹독한 이유가 있어 과거 조선 역사를 포함해 법적 단죄를 했어야만 했다. 금전에 대한 배상이나 막연한 사과가 아니라 조선인 학살 전범자에 대한 최소한의 사형 선고가 있었으면 양국 간의 발전은 더욱 있었을 것이다. 승자와 패자의 문제를 떠나 근대 시대의 과거를 털고 나가지 못하면 영원한 분쟁일 뿐이다.
그러나 한국이 이스라엘보다 그러한 정면 돌파력이 그동안 부족하였던 것은 국가 정신력을 고양시킬 수 있는 이러한 자료와 증언이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해방 후 80년이 다 되어 왜 이제야 이러한 진실이 사진과 함께 뒤늦게 저자에 의해 밝혀져야만 했는지 정부는 물론 학계의 역사의식에 자괴감마저 든다.
일제강점기는 나의 부모님의 시대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은 부모를 비롯해 증조, 고조할아버지의 자세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분들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세한 인생 역정을 아는 사람이 없다. 3대는 고사하고 최소한 부모님 인생도 자세히 모른다.
시카고에 사는 내가 아는 미국 지식인들은 심지어 4대까지 아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많다. 언제 몇 대 할아버지가 이민 와 무엇을 했고 할머니와는 어떻게 연애를 하였으며 그중 몇 대 할아버지가 털털하였지만 가장 멋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흑인 지식인들도 이제는 “쿤타 킨테”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알렉스 헤일리" 작가의 “뿌리”라는 소설이 영화와 함께 1976년도에 나온 이후 진정한 조상을 찾아 나서고 있다. 그들은 가족 역사와 국가 역사를 동일시하여 체질화되어있다. 소위 자신을 알고 있다. 나는 작년에 작고한 나의 워싱톤 친구의 한인 2세 자녀들이 생전의 아버지가 평범하였더라도 주위 사람들의 말과 글을 오랫동안 긁어모아 두꺼운 추모집을 영어로 만드는 작업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책은 몇 대를 가보로 내려가며 전달될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중국의 장이모 감독이 만든 “붉은 수수밭”을 거칠기는 하지만 봉준호 감독이 만들어 아카데미 흥행상을 받은 “기생충”보다 더 좋아한다. 드라마도 재벌가를 다룬 것보다 차라리 심지(心志)가 있는 비천한 역사극을 좋아한다. 한국은 역사를 외면한다. 역사 “실록”을 자랑하나 내용을 희화화하고 있다. 실록이란 성숙한 힘의 원천을 말한다. 이 책의 무게는 그래서 통곡의 벽을 능가하는 장성(長城)이다.
"문창재" 저자는 나와는 고대 국문학과 동기로, 기골장대한 쾌남이며 학교 앞 성북천이 복개되기 전 “미라보 다리” 막걸리 골목의 유명한 정의파 주도사(酒導士)였다. 70년대 초 당시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여 논설실장으로 은퇴하였으며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모든 사회부 신문기자들의 로망으로 통하고 있다. 그는 일찍이 동경특파원으로 나가 징용인들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젊어서부터 이를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발간하였다.
학창 시절 6·3 한일회담 반대 데모에도 앞장서 열혈 하였던 그는 내가 지난 3년 전 한국에 나갔을 때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주님(酒任)을 앞에 모신채 서로 예잔(禮盞)을 못하였을 때가 가장 안타까웠다. 근자(近者) 그의 근황을 언론을 통해 보니 폐암 4기인데도 불구하고 투혼을 살려 이번에 이책를 발간하였다고 하니 800만 “징용인”에 관한 그의 진실만큼은 목숨을 건 작업이었다.
나는 이 책이 영어와 일어로 번역되어 출간되기 바란다.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다. 재일교포 사회를 세계에 처음 알린 뉴욕의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영어 소설 “파친코”가 전 세계인들에게 잔잔한 정의감에 불타게 하였다면, 이 책은 추천을 한 "김훈" 소설가의 말마따나 사실을 직시하는 것만이 인류의 미래를 향해 나가는 동력이 될 것이다.
그전에 무엇보다 그의 건강이 빨리 쾌차하기를 바란다. 이 와중에도 저자는 "조선인 원폭 희생자"에 구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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