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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내 아들을 가게 하라/출 4:18-31
출 처| 박조준목사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애굽에서부터 해방시키게 된 역사를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되어 볼품없이 고생하며 억울하게 살고 있을 때 그들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서 보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애굽으로 다시 보내서 그들을 구출해 낼 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과는 구별되게 하나 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주사 하나님의 언약의 증인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게 하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서 행하신 역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택하신 자 녀들을 위해서 하시는 일을 말씀해 주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고,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구속하신 사람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다른 민족과는 구별되어야 하며 다른 위치에 서야 하고, 특별한 경험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이 세상에서 자기의 범한 죄로 말미암아 멸망되어 가는 심령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바로의 사슬에 묶은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내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그 팔은 오늘 마귀의 세력에 잡혀 종살이하고 있는 우리를 구원해 내십니다. 하나님은 옛날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역사 하셨던 그 방법대로 오늘도 많은 인류 가운데서 그의 사람들을 구속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 사업을 행하는데 심히 부 족하다고 느낀 것처럼 오늘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볼 때 심히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를 들어 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하나님의 쓰임을 받으면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하고 무익함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이 얼마나 놀랍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본문 22, 2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내 아들을 가게 하라 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의미를 찾아보게 됩니다.
첫째로, 내 아들이란 말은 하나님의 소유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이 백성이 자신의 백성임을 아시고, 그들의 충성을 받을 권리를 주장하실 뿐더러 이 백성의 장래를 위한 깊은 관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온통 진흙은 뒤집어 쓴 채 벽돌을 만들어 굽기에 여념이 없었고, 가장 천한 노예의 상태로 전락해 버린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은 내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이스라엘 민족은 폭군 바로의 잔인한 강요에 정신을 온전히 빼앗겨 버린 채 혹사만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의 해방의 날이 밝아 오는데도 애굽에서 해방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내 아들이라고 자기의 사람임을 주장하셨습니다.
아마 이 말을 들은 바로 왕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참 훌륭한 아들이로다. 이 벽돌장이들, 이 압박 받은 민족을 내 아들이라고 말하는 신은 도대체 어떤 꼴을 하고 있을까? 하며 빈정댔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집도 없이 고생하는 이 민족, 고생에 시달린 사람들을 분명히 하나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아들에 대해서 자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정말 볼품없고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어 용기까지 잃어버려 포기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두고서 “이스라엘은 나의 아들, 나의 장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무거운 짐을 지고 신음하고 있을 때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죄의 짐을 지고 허덕일 때 하나님은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 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있을 때에도 자기 백성이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었습니다. 들어 본 일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북한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저희들은 하나님이란 말을 들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 거하는 동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애굽의 미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그래도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은 거룩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고센 땅에 묻혀 있는 요셉의 뼈는 이스라엘 민족이 언약한 맹세를 기억나게 했으며 소중히 모셔다가 세겜에 장사지내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백성, 자기 아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요, 주님이 우리를 먼저 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아시고, 사랑하시고, 택하시지 않으셨다면 오늘의 우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언약을 지키시며 자기 백성, 그의 아들을 품에 안으십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옛날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에게 맺으신 언약대로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고 아들에게 은총을 베푸심은 이들이 하나님 의 마음에 드는 좋은 점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이 다른 민족들보다 품위가 있다든지 더 지혜롭다든지 아름다운 성격이 있어서 주님 보시기에도 기뻐하실 만한 것이 있지도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그의 조상과 맺은 그 언약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은총을 입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단순히 자기 백성이라고만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는데 혈연관계야 말고 끊을 수 없는 깊은 유대입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라. 너 바로야, 내 아들을 네 노예라고 부르지 마라. 이미 애굽에 가기 전부 터 이스라엘은 내 아들이야, 네가 아무리 아니요, 이들은 내가 부리는 노예들이요 하고 말한다 해도 쓸데없어. 그들이 지금은 네 멍에 아래 놓여 있지만 나의 권능을 나타내어 그들이 내 장자 되는 것을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에 대해서 이같이 엄숙히 선언하십니다. 그러면서 그의 아들이 무조건 자유를 누리게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내 아들을 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율법의 속박에서 해방을 받은 우리의 구원을 말씀합니다.
율법은 온 세상의 인류를 저주 아래 묶어 버리고 세상의 잡다한 신들은 모든 사람들을 자기의 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절한 시기에 우리의 구속자가 나타났습니다. 예수님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죄 값을 몸소 치르셨습니다.
내 아들을 가게 하라.
이미 정당한 방법으로 성취된 일이기 때문에 율법이 거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율법 아래서 놓임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모든 사람의 심령을 사로잡아 눈을 어둡데 하여 참빛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귀를 막아 복음을 듣지 못하게 하려 하지만 주님께서 내 아들을 가게 하라 말씀하시면서 사단의 장막은 걷혀지며, 귀가 열리게 되고, 영원한 진리가 그 심령에 비쳐들어 어둡던 눈에서 비늘이 벗어져 하늘의 영원한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자녀를 절망의 사슬로 꽁꽁 묶어 놓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 아들을 가게 하라 고 말씀하시면 절망의 사슬은 풀어지고 소망과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나는 기쁘도다 하고 즐거이 말하게 될 것입니다.
내 아들을 가게 하라. 본문에 보면 “내 아들을 놓아 나를 섬기게 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도 바로 하나님의 일인 동시에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놓임을 받은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이 사명을 다하고 있습니까?
내 아들을 가게 하라 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는데
둘째로, 하나님은 특별히 모세라는 사람을 택해서 말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바로에게 말씀하셨으면 바로는 거룩한 명령에 꼼짝 못하고 복종하고 말았을 것인데 왜 사람을 시키셨을까요?
여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직접 역사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님의 사랑을 이미 맛본 우리를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부탁의 말씀을 주십니다. 미약한 방편을 사용하셔서 주님의 큰 계획을 이루시는 것은 주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는 길이 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미약한 존재를 통해서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서 연약한 것을 택하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잘못이 있는 것으로 착각했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같이 연약한 인간을 통해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상과 달리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셔서 큰 일을 이루시고자 계획하실 때 먼저 우리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자신을 자랑하는 동안 하나님은 절대로 사용하시지 아니하십니다. 어떤 그릇에든지 귀중한 보물이 담겨질수록 그 그릇의 가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자신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인간의 조롱을 조 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과감히 바로왕 앞에 나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습니다. 바로가 볼 때는 가소로웠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의아스러웠을 것입니다. 자 사람들이 바로 왕 앞에 가서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하고 말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을 절감하지만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을 확신할 때 대담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인에게 가서 예수를 믿으라 는 메시지를 전하게끔 명령을 받았다고 해도 우리의 힘으로 그들을 믿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말을 잘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뿐입니다.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모세는 아침저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의 사명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명령을 따를 때 어려움이 있어도 겁내지 말고 믿음을 굳게 잡으십시다. 쉬지 말고 생명의 복음을 전파하십시다. 교회 학교에서 열심히 성의를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시다. 여러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 수많은 젊은이들이 지방에 나가서 봉사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이 뿌린 말씀의 씨는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두게 되리라 믿습니다.
끝으로, 내 아들을 가게 하라 하신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있습니다.
모세가 바로 왕 앞에 나타나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바로 왕은 모세가 전하는 말을 우습게 알았습니다. 네가 무엇인데 내가 노예로 부려먹고 있는 이 사람들에 게 해방을 하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말에는 능력이 있어서 모세가 말한 대로 바로 왕과 애굽땅에 재앙이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전도자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은 어디로 가든지 잊어버릴 수가 없는 강한 인상을 받게 되어 그의 말에서 벗어나 도망할 수가 없습니다. 복음에 대해서 항의를 표시하며 복음을 멀리 하려고 별별 수단을 다 써 보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역사할 때 그것을 무시해 버리려고 아무리 애써 봐도 되지 아니합니다.
세상에 재미가 없어집니다. 애굽의 천지에 어두움이 내려 덮이듯이 우리의 생활 전반에 무서운 어두움이 짓눌리게 됩니다. 이제까지 아름답고 즐거워 보이고 좋아 보이던 것이 우중충한 모습으로 변해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밝고 기뻤던 모든 것이 빛을 잃어버립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우리 심령 깊은 곳에 말씀이 들어와서 그럽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한 증거입니다.
날마다 염려와 근심은 더 불어나서 꼬리를 물며 엄습해 옵니다. 가축에 재앙이 내리고 논과 밭에 우박이 쏟아지는데 그래도 아직 주님의 손길은 멈추어지지 않고 그의 가정을 찾아와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장자의 목숨을 앗아가는 무서운 심판의 불이 퍼부어집니다. 애굽 땅에는 통곡의 소리가 울려 퍼져 그 광경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죄악의 세상에서 구출하여 자기 백성, 자기 아들을 삼으시려고 작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종은 환난을 예고합니다.
예수님도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들어와 완전히 회개하기 전에는 그 심령이 들볶입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내적인 투쟁이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찾아 발견하려고 몸부림칠 때 내 영혼 속에 갈등과 싸움은 너무 치열합니다. 나의 옛 죄악들이 나를 대항해 오며 묻혀 있던 나의 허물들이 되살아납니다. 과오와 실수가 홍수처럼 엄습해 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땅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게 됩니다. 모든 시험이 괴롭히지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의 인도하심에 감사하면서 주께로부터 오는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이처럼 택해서 아들로 삼아 주시고 죄와 허물, 더러운 습관과 나쁜 정욕에서 구원해 내시고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주께서 은총을 베푸사 모세를 들어 사용하시던 그런 은혜를 우리에게 입혀 주셔서 죄악의 풍파에서 헤매이는 이 겨레를 구원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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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