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전해지길!
오늘 성경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세 분을 만납니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에제 2,4)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에제 2,2-5 참조. 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의 약점까지도 자랑하고 어떤 모욕과 역경도 달갑게 여긴다고 고백합니다.(2코린 12,7ㄴ-10 참조. 제2독서)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의 선입견과 편견, 시기와 질투로 무시당하시며 배척받으십니다.(마르 6,1-6 참조. 복음)
자세히, 오래 보아야
저의 약점 중 하나는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머리 모양이 바뀌고 옷만 바꾸어 입어도 몰라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미안하고 민망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때는 그저 하늘만 바라봅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데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더 가까이 세밀하게 진심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니면 말고
박찬욱 영화감독은 딸이 학교에서 가훈을 적어내라는 숙제를 받자 ‘아니면 말고’를 써주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현대인들은 자기 의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매우 오만한 태도다.
세상에는 의지만으로 이룰 수 없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닥쳐오는 좌절감을 어쩔 것인가.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툭툭 털어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 경쟁 만능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것은 포기의 철학, 체념의 사상이 아닌가?”라고 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은 설레는 마음으로 고향을 방문하십니다.
가족들을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난 이야기도 나눕니다.
그리고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는데 사람들의 반응이 썰렁합니다.
어디서 저런 지혜를 얻었는지 놀라워하면서도 못마땅해합니다.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고 섭섭해하시는 예수님.
‘예언자는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마르 6,4 참조)라는 말씀을 남기고 다른 마을로 가십니다.
사제로 살며 교우들이나 동료 사제들에게 무언가 제안할 때 반응이 시큰둥해서 제가 위축될 때가 있습니다.
모두 끌어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해 보지만 안 되는 때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오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고향에서 배척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지 못한 걸 하려 했으니 어리석었습니다.
‘아니면 말고’라는 말이 위안이 됩니다.
말로만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를 되뇌었지, 행동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Let go, Let God!(냅둬, 한님하시게)
올해 초, 『풍경소리』라는 잡지를 통해 아무개 목사님이 보내주신 글씨 하나를 받았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Let go, Let God”을 “냅둬, 한님 하시게”로 번역해 한지에 옮겨 놓은 글이었습니다.
벽에 붙여 놓고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참 편해집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 보면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교우들, 친구나 동료 사제들에게서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상처는 누가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받는 것임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힘이 머무를 수 있도록 기쁘게 약점을 자랑하고 싶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전해지도록 나를 내려놓고 내어 맡기는 연습을 오늘도 해 봅니다.
김영욱 요셉 신부 중3동 본당 주임
연중 제14주일 주보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