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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ollonian : 아폴로적인, 고상한, 온화한
Apollonian mindset creates mountains of waste.
고상한 사고방식은 엄청난 낭비를 초래한다.
■ Dionysian : 주신제(酒神祭)같이 마시고 떠드는, 흥청망청하는; 열광적인; 제멋대로의.
The reason behind his inability to take action is that he is theembodiment of Friederich Nietsche's concept of the Dionysian man.
그가 실천하지 못하는 것의 이유는 그가 프레드리히 니체의 개념인 '디오니소스적 인간'의 화신이라는 것이다.
These are large-scale figures painted on three walls that we thinkdepicts a Dionysian cult ritual.
이것들은 디오니소스 숭배 의식으로 묘사된다고 생각되는 3개의 벽에 그려진 거대한 규모의 형상들입니다.
If you wereinvolved in something like aDionysian cult or another easterncult, you had to keep it somewhatsecret.
여러분이 디오니소스 의식 혹은 또 다른 동방의 의식 같은 것에 참여했었다면, 뭔가를 계속 비밀로 유지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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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니안Apollonian(고상한)'과 '디오니시안Dionysian(질탕하게 마시고 떠드는)'이라는 말은 니체가 새롭게 정의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니체는, 그리스의 술의 신이며 신비한 예언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감정과 직관, 관능과 무제한의 예술적 표현과 결부시켰다.
그러나 이 형용사 dionysian은 오늘날 예술에 대하여 적용되기보다는, 아폴로적인 합리성의 반대인 대취나 난교 파티와 같은 비이성적인 행위에 더욱 빈번히 쓰여지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항상 문화적인 엘리트보다는 대중을 위한 신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그의 열성적인 숭배자는 주로 여성들이었는데, 여성들은 고대 세계에서는 제2급의 시민이었다. 게다가 이 특별한 여성들은(디오니소스를 추총하던 여자들은 그리스 어의 '미친'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메나드스manads'라고 불리우고 있었다)신에 의해서 흥분이 되었을 때에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그 다음에는 산짐승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들이 가장 얌전한 때의 행동이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한 이러한 축제와 제전들은 '디오니소스 축제 Dionusia'혹은 디오니소스의 로마 이름인 '바쿠스'를 따서 '바쿠스 축제Bacchanalia'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신은 고장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과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따라 공식적인 디오니소스 - 비교적 뒤늦게 판테온에 추가되었다 - 는 실제로 여러 고장의 다양한 신들의 혼합물이 되었다. 그 신들 대부분은 식물과 출산의 신이었고, 디오니소스에 후에 특히 나무 열매나 포도나무와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다. 장차 디오니소스는 수많은 그리스의 식민지에 포도나무를 전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포도주 양조장을 설립하게 한 공로로 숭배를 받게 된다. 민중의 신으로서의 디오니소스는 위압적인 동료 아폴로보다는 덜 강력하고 유명도가 좀 떨어지지만, 그의 전설은 훨씬 더 흥미진진하다. 그것은 기묘한 출생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며 그의 나머지 인생과 같이 시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신화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제우스는 또 한 사람의 아름다운 요정인 세멜레Semele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다른 때보다는 당당한 태도로 그녀를 유혹했다. 속임수를 쓰지 않고 그냥 그녀 앞에 나타나서 자신이 제우스임을 밝혔던 것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당연히 남편의 바람기를 알아차리고 매우 잔인한 복수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녀는 유모로 변장을 하고 세멜레앞에 나타나서, 그녀의 연인이 진짜 제우스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세멜레가 머뭇거리자 헤라는 그녀에게, 제우스더러 아내 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신성한 광채에 싸인 채 나타나도록 요구하라고 충동질했다.
바보 같은 요정은 그 계획에 동의를 하고 제우스에게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서약을 받아낸 뒤에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 제우스는 서약을 후회했으나 약속은 약속이었다. 그가 천둥과 번개를 수반하고 영관의 광채 속에 휩싸여 등장하자, 세멜레는 그 강한 불길을 견디지 못해 새카맣게 타 버렸다. 제우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녀의 아들 -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가진 -을 출산할 때까지 자신의 넙적다리에 꿰매 넣음으로써 그녀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탄생이 기구한 것처럼 디오니소스의 인생도 결코 순탄치가 못했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리스의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면서 자신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지 않은면 안 되었다. 보통은 포도주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만하면 되었지만, 이따금 디오니소스는 따로 기적을 실현하거나 몇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 유리피데스의 《바쿠스》에 나오는 것처럼 - 테베의 왕이며 바쿠스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한 펜테우스 Pentheus와의 싸움일 것이다. 펜테우스는 자기 친척의 새로운 종교가 불러 일으키는 기괴한 행동이 전혀 마음에 들지를 않았으며, 디오니소스가 신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펜테우스가 바쿠스를 살해하려고 시도하자 디오니소스는, 여자로 가장을 하고 바쿠스 축제에 잠입해 들어가 염탐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왕의 머리 속에 넣어 줌으로써,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펜테우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메나드스, 즉 신에 의해서 눈이 먼 여성들은 그를 멧돼지라 생각하고, 펜테우스의 친어머니가 앞장서서 그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이러한 광적인 디오니소스 축제로부터 우리들은 '바카날(술취해 떠드는)'과 '바카날리아(바쿠스 축제)'와 같은 많은 표현을 만들었는데, 현재 그것은 정신보다는 오히려 감정에 의한 영감을 의미하고 있다. 16세기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을 때, '바카날'은 '술에 만취한 난교 파티'같은 것에 적용되었다 - 메나드스들이 떠들고 노는 데 술 같은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조차도 《한 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속에서, '술취한 바카날들의 소동'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한편 그와 동시에대의 선배격인 존 스토우John Stow는 '수치심도 없이 술에 만취한 바쿠스 축제의 여인들'이라고 조소하고 있다. 마치 육체는 술 없이는 조금도 즐길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아폴론적 인간과 디오니소스적 인간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과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저마다 다른 역사, 다른 성격, 다른 생김새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사람을 일컬어 하나의 작은 우주라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의 수많은 작은 우주들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는 똑같지는 않을지라도 어떤 면에 있어서는 서로 비슷하게 닮은꼴들이 상당히 많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운행법칙이 서로 흡사한 우주들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을 기질과 개성에 따라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가 먼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였던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의 몸 안에 있는 네 가지 액체에 근거를 두고 사람의 성격을 괄괄하고 변화무쌍한 다혈질, 까다로우면서 변덕이 심한 담즙질, 근심과 걱정이 많고 비사교적인 흑담즙질, 생각이 깊고 침착과 냉정한 점액질의 네 가지로 분류하였습니다.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3.23~1980.3.18; 미국 신프로이트학파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 프랑크프루트학파에 프로이트 이론을 도입하여 사회경제적 조건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이 3자의 역학에 의해 사회나 문화 변동을 분석하는 방법론을 제기하였다. 저서에 <자유로부터의 도피>, <선禪과 정신분석>등이 있다.) 사람의 성격을 크게 생산적 성격과 비생산적 성격으로 나누고 비생산적 성격을 다시 수용지향형, 착취지향형, 저장지향형, 시장지향형으로 세분하였습니다. 햄릿형과 돈키호테형, 외향형과 내향형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는 이분법도 있습니다. 심지어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살이 찌는 형인지 아르는 형인지로 개성을 가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이렇게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판단하는 방식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약점은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의 개성을 한 마디로 압축해 주는 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로 아폴론형과 디오니소스형으로 사람을 나누는 방식이 있습니다.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입니다. 아폴론적 이라는 말은 빛 또는 태양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의 집합체로,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말은 술에서 연상되는 이미지의 집합체로 이해하면 쉬울 것입니다. 균형, 조화, 절제, 질서, 이성, 지식, 평안함이 아폴론적인 이미지라면, 도취, 극단성, 무질서, 본능, 광란, 환상, 열광은 디오니소스적인 이미지입니다. 아폴론의 세계는 이성이 지배하는 세계요, 디오니소스의 세계는 광기가 지배하는 세계인 것입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를 이처럼 극단적인 대립 항으로 놓고 설명한 사람은 독일의 철학자 니체였습니다. 니체는 1872년에 그리스 비극의 근원을 논한 <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그리스 예술이 대립되는 두 가지의 예술적 충동에서 말미암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의 조형예술, 즉 조각과 회화에서 대표적으로 잘 드러나는, 밝고 명랑한 아폴론적 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음악으로 대표되는, 본능적이고 야성적인 충동, 바로 디오니소스적 정신입니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갈등과 결합에 의해서 문화가 발생하며 그리스의 비극은 양자가 행복하게 결합한 상태에서 나온 최고의 걸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디오니소스적 인간은 존재의 일상적인 범위와 한계를 완전히 파괴함으로써 존재의 가치를 추구합니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그들은 극단으로 가는 길은 지혜의 궁전에 이른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반면에 아폴론적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중용을 지킵니다. 심지어 정열적으로 춤을 추고 있는 동안에도 자기 자신을 지키고 시민으로서의 명예를 잊지 않는 유형인 것입니다.
아폴론 형 문명과 디오니소스 형 문명
<국화와 칼>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여성 문화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 1887.6.5~1948.9.17; 미국의 문화인류학자로 그의 학문적 입장은 인간의 사상, 행동의 의미를 심리적으로 파악하려고 한 문화 양식론을 띈다. 주요 저서로 <문화의 유형>, <국화와 칼> 등이 있다.)도 니체가 세워 놓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라는 대립적 정식을 문화 분석의 도구로 원용하였습니다. 베네딕트는 어떤 문화의 고유한 특질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의 단순한 집합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즉, 그 요소들이 어떤 뚜렷한 가치 체계 아래 서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요소들이 어떤 뚜렷한 가치 체계 아래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의 문화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종합적 방법론을 주창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화유형론이다. 그녀는 <문화의 유형>이라는 책에서 북미 대륙의 인디언 문화를 현지에서 조사해 비교,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자신의 독특한 이론을 펼쳤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서로 비슷한 여러 인디언 부족의 문화 안에서도 사실은 완전히 판이한 문화유형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그녀의 분석에 따르면 아메리카 평원에 사는 대부분의 인디언 부족은 디오니소스형의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격렬한 경험, 즉 인간으로 하여금 일상적인 궤도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주는 수단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단식이나 고행, 약물, 알코올을 통해서 환상 상태에 이르려 하고, 환상 속에서 어떤 초자연적인 계시를 받고자 합니다. 그들에겐 무엇에든지 열광하고 몰입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며 그런 덕목을 갖춘 전투적인 사람을 존경합니다. 반면에 뉴멕시코 주의 고원지대에 사는 주니 족은 그와 대단히 상반되는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사에 중용을 중시하며 무엇이든 지나치거나 과도한 것은 불신하고 경멸한다고 합니다. 용감하고 정열적인 사람은 비난받고, 붙임성 있고 온화하며 남 앞에 잘 나서려 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존경받는 것 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감정적인 흥분이라든가 화를 내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사랑이든 증오이든 질투이든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는 것도 역시 혐오의 대상입니다. 베네딕트는 이러한 주니 족의 문화를 전형적인 아폴론형의 문화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격정적인 우리 민족의 문화를 굳이 구분한다고 하면 아무래도 디오니소스형에 가깝지 않을까요.
아폴론 _ 유복했던 신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대립적인 이미지는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탄생과 성장을 둘러싼 신화에서 나온 것입니다. 아폴론은 올림포스의 12주신 가운데서 제우스 다음으로 숭앙받는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는 태양의 신이자 예술의 신이었는데, 또한 예언과 궁수의 신이었습니다. 나아가 빛나는, ‘찬란한 이’라는 뜻을 가진 ‘포이브스 아폴론’이라 불렸습니다. 아폴론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숭배는 공상적이고 모호하며 형태 없는 것과 반대되는, 지적이고 단호하고, 특정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편애를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디오니소스는 원래는 12주신 가운데 들지도 못하다가 나중에야 주신들 가운데 그 역할이 가장 미미한 화로의 여신 헤스티아 대신하여 12주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술의 신이자 황홀경과 공포의 신, 야성의 신이었습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둘 다 제우스의 서자였는데, 하지만 아폴론의 어머니 레토는 비록 정실은 아니었으나 여신이었고,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습니다. 아폴론은 태어날 때부터 뭇신들의 사랑을 받은 유복한 신이었고, 디오니소스는 너무나 기구한 이력을 지녀서 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인 듯한 느낌을 주는 불행한 신이었습니다.
아폴론과 디오니소스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헤라의 질투 때문에 출생이 순탄치 못했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제우스가 레토를 가까이 해 아이를 갖게 한 사실을 안 헤라는 온 그리스 땅에다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태양 아래 드러나 있는 땅 이면 어느 땅이든 레토에게 출산할 장소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명령을 어기면 단숨에 물바다로 만들어 버리리라는 처벌 조항까지 달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레토는 몸을 풀 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그리스와 에게 해의 수많은 섬들을 다 헤매 돌아다녔습니다. 더욱이 레토는 쌍둥이를 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헤라의 보복을 두려워한 나머지 그 어떤 땅도 레토의 간청을 들어 주지 않았습니다. 출산이 임박한 레토가 천신만고 끝에 찾아간 곳은 바로 델레스 섬(떠올라 보인 섬)이었습니다. 이 섬에 델로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사연이 있어서였습니다. 레토를 범한 제우스는 그 뒤에 레토의 동생인 아스테리아까지 넘보았습니다. 아스테리아는 언니 레토가 그랬던 것처럼 메추라기로 변해 도망쳤으나 제우스 역시 그때처럼 독수리로 변해 바다로 뛰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우스가 사라진 뒤에야 바다 밑에서 떠올라 섬이 되었습니다. 아스테리아도 헤라의 명령이 무섭기는 매일반이었으나 피를 나눈 자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 레토를 받아들였습니다.
머리맡에서 제우스의 어머니인 레아, 이치의 여신 테미스를 비롯하여 여러 올림포스 종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토는 아흐레 밤낮을 진통했습니다. 하지만 아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헤라가 해산의 수호여신이 에일레이티아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레토를 끔찍한 고통에서 구한 것은 테미스 여신이었다. 테미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파도로 델레스 섬을 가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파도로 델레스 섬을 가림으로써 태양 아래 드러나 있는 땅이면 어느 땅이든 출산 장소를 제공하지 말라 는 헤라의 명령을 교묘히 피한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레토가 쌍둥이를 낳았으니 바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였습니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는 제우스가 두 번째 서열의 여신 레토와 잠깐 가졌던 관계에서 태어난 쌍둥이 오누이다. 출산이 가까워오자 레토는 헤라의 노여움이 두려워서 델로스의 아주 작은 섬으로 숨어들었고, 두 아이는 그 곳에서 태어나게 된다. 그들은 함께 자랐고, 결코 변함이 없던 우애와, 둘 다 뛰어난 솜씨를 보였던 활쏘기에 대한 취미로 인해 굳게 결속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둘의 성격은 아주 달랐다.] 이 쌍둥이가 태어나자 여신들은 다투어 손뼉을 쳤고 대지는 방긋 웃었다고 합니다. 제우스는 자식들을 무사히 낳게 해 준 은공에 답하기 위하여 그때까지 뿌리도 없이 바다 위에 덜렁 떠 있던 델로스 섬을 바다 바닥에 단단히 동여매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폴론에게는 백조가 끄는 전차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아폴론은 태어나자마자 이런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제게 악기를 주세요, 제우스의 영광을 노래하렵니다. 제게 활을 주세요, 어머니 레토의 한을 풀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태어난 지 나흘 만에 아폴론은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 신) 만들어 준 활을 둘러메고 파르나소스 산으로 달려가 헤라의 시주를 받고 레토를 괴롭혀 왔던 거대한 뱀 퓌톤(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의 아들로 거대한 구렁이)을 쏘아 죽였습니다.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델포이 신전을 맡기고 퓌톤의 아내였던 암컷 뱀 피티아를 인간으로 탄생시켜 아폴론의 제관(祭官; 제사를 관장하는 사람) 노릇을 하게 했습니다. 이후로 델포이 신전에는 아폴론의 예언과 신탁을 듣거나 죄의 사함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며, 태양을 다스리고 궁술과 예언을 관장하는 신으로서 아폴론은 뭇신과 인간들의 아낌없는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퓌톤을 죽인 벌로 잠시 인간세상으로 유배당하고 그 뒤로도 이런저런 일에 얽혀 두 번이나 똑같은 벌을 받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그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일 뿐 특별히 벌이랄 게 없었습니다.
디오니소스 _ 용서받지 못한 신
신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이었을까요?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세멜레는 헤라한테서 레토보다 훨씬 끔찍한 보복을 당했습니다. 세멜레는 테베 왕가의 딸이었습니다. 제우스가 세멜레의 집에 자주 드나든다는 걸 눈치 챈 헤라는 어느 날 세멜레가 어릴 적에 키워주었던, 늙은 유모 베로에로 변신해 세멜레를 찾아갔습니다. 세상 이야기를 이것저것 하다가 베로에(헤라)는 “…… 아씨 댁을 드나드시는 그 분이 진짜 제우스신이시라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음이 놓이지 않아요. 많은 사내들이 순진한 처녀 방을 기웃거릴 때는 신들의 행세를 한다는 걸 아씨도 잘 아시지요? 그 분이 자기 입으로 제우스신이라고 말하더라도 아씨께서는 마음을 놓지 마세요. 아씨를 정말 사랑한다면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하세요. 정말 제우스신이냐고 여쭈어 보시고, 정말 제우스신이시라고 하시거든 헤라 여신 앞에 나타나실 때처럼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신의 모습을 보여 달라고 하세요. 위풍당당하게 벼락까지 차고 오셔서 안아 달라고 해 보세요.” 이러한 헤라의 간계에 넘어간 세멜레는 그럴 듯하게 여겨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며칠 뒤 세멜레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꼭 들어주십사하고 간청하자 제우스는 저승 앞을 흐르는 증오의 강 스틱스에 걸고 꼭 들어주마고 약속을 했습니다. 세멜레는 가엷게도 귀가 얇은 것이 탈이었습니다. 애인의 손에 죽을 팔자를 타고난 이 세멜레는 제 파멸의 씨앗인 줄도 모르고 제우스의 약속만 믿고는 어린애처럼 좋아했습니다. “그럼 말씀드리지요. 헤라 여신 앞에 나타나실 때, 헤라 여신과 사랑을 나누실 때와 똑같은 모습을 저에게도 보여주세요.”라고 세멜레가 말하자, 제우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즉시 그것이 헤라의 농간임을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스틱스에 걸고 맹세를 했으니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제우스는 눈물을 머금고 천상으로 돌아가 갑옷(벼락)을 입고 내려와야 했습니다. 인간의 눈이 어찌 그 광휘(光輝; 환하고 아름답게 빛남. 또는 그 빛)를 감당할 수 있었으랴? 세멜레는 갑옷이 뿜어내는 휘황찬란한 빛과 열기에 새카맣게 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세멜레의 몸속에서는 6개월 전부터 아기가 자라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안 제우스는 세멜레의 배를 갈라 아기를 꺼내 자신의 넓적다리에 넣고 금실로 꿰맸습니다. 이윽고 열 달이 다 차서 아기를 꺼내니 그가 바로 디오니소스였습니다. 아폴론이 태어났을 때처럼 박수를 쳐 준 여신도 없었고 대지는 아는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서러운 탄생이었던 것입니다. 제우스는 아기를 인도의 ‘니사 산’이라는 곳으로 보내 요정들에게 맡기고 헤라 몰래 기르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아기에게 ‘니사 산에서 자란 제우스’라는 뜻을 가진 디오니소스(디오니소스는 이외에도 ‘어머니가 둘인 자’라는 뜻의 ‘디오메토르’, ‘세 번 탄생한 자’라는 뜻의 ‘트리고노스’, ‘거듭 탄생하는 자’라는 뜻의 ‘폴리고노스’, ‘광기를 불어넣는 자’라는 뜻의 ‘마이노미노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던 것입니다.
※ 디오니소스 탄생의 다른 이야기
~ 인간 여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제우스는 주저하지 않고 갖가지 다양한 형태로 변신했는데, 때로는 백조로, 때로는 황소로 또 언젠가는 비로 변신하기도 했다. 테베의 젊은 공주였던 세멜레를 유혹하려 했을 때, 처음에는 인간의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세멜레가 저항했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신의 진짜 정체를 말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세멜레는 제우스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판도라의 후예들이 가진 어찌할 수 없는 호기심에 사로잡힌 그녀는 올림포스의 지배자가 진짜로는 어떤 모습인지 몹시 궁금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제우스에게 말했다. “저를 기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세요.” 경솔하게도 제우스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세멜레는 부탁의 말을 했다. “제게 경이로운 신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주세요.” 제우스는 어떤 인간도 신의 모습을 견뎌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약속을 꼭 지킨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네가 원한 것이니 후회는 하지 말라.”라고 슬프게 말하면서 제우스는 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세멜레는 그 즉시 횃불처럼 타버렸고 숨을 거두기 직전 제우스에게 겨우 이렇게 소리칠 수 있었다. “내 뱃속에 있는 당신 아이를 구하세요!” 제우스는 성급히 세멜레의 배에서 몇 주일된 태아를 꺼내어,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자신의 엉덩이 속에 집어넣어버렸다. 몇 달 후, 별 탈 없는 잉태 기간 끝에 제우스의 엉덩이에서는 디오니소스가 빠져 나왔다.
니사 산과 들을 누비며 자라는 동안 디오니소스는 포도를 발견하고 그것으로 술을 빚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디오니소스의 존재를 알게 된 헤라는 그때까지도 분노를 거두지 않고 디오니소스를 미치광이로 만들어 이곳저곳 떠돌아다니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행히 디오니소스가 프리기아 땅을 방랑하고 있을 때 이 청년을 가엾게 여긴 자비로운 여신 레아가 광기를 없애 주었습니다. 디오니소스는 그 뒤로도 여전히 방랑을 계속하며 가는 곳마다 포도 재배법과 포도주 빚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소아시아를 거쳐 인도로까지 건너간 디오니소스는 거기서 몇 년을 지내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인도 여행을 끝으로 오랜 방랑을 마감한 디오니소스는 고향 테베로 돌아왔습니다. 머리엔 포도 덩굴로 만든 관을 쓰고 한 손엔 티르소스(주신을 상징하는 솔방울이 달린 지팡이), 또 한 손엔 술잔을 들고 나타난 디오니소스를 테베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환영했습니다. 드디어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하는 밀교가 생겨나 온 테베 땅에 널리 퍼졌습니다. 디오니소스의 숭배자들 가운데는 여성들이 특히 많았으며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고대 그리스의 여성들은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억압과 고통에 찌들려 살아가던 여성들에게는 디오니소스 밀교의 신비스러운 제의가 일종의 탈출구였습니다. 그들은 집을 버리고 무리를 지어 산과 들을 헤매 다녔습니다. 술을 마시고 황홀망아의 상태에서 야간 집회를 가졌는데, 집회 때에는 마음속의 온갖 한을 토해내듯 괴성을 질렀으며, 바라를 치고 피리를 불며 광란에 가까운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다가도 의식이 끝나면 숲속에 그대로 쓰러져 죽은 듯이 잠을 잤습니다. 때로는 산 짐승을 갈갈이 찢어 죽여 그 고기를 날것으로 먹기도 했습니다. 날고기는 신의 육체를 상징하는 것으로서 그것을 먹는 행위는 재생을 간구하는 일종의 의식이었습니다. 테베에서 시작된 디오니소스 밀교는 온 그리스로 퍼져 나갔고 알렉산드로스대왕이 그리스를 정복한 이후에는 전 헬레니즘 세계를 휩쓸었습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을 열광시킨 디오니소스의 가르침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술이 주는 황홀한 도취였을까요?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톰 무어는 자신이 디오니소스의 추종자임을 확인하는 것은 삶 가운데 고통과 죽음의 장이 있음을 인정하고 알아차리는 것, 죽음에서부터 삶에 이르는, 또 고통에서부터 황홀경에 이르는 전 범위를 담담히 지켜보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 인간에게 쾌락을 선사한 디오니소스
~ 디오니소스는 인간의 아들이었으므로 정상적으로 따지면 반신(半神)이거나 단순한 영웅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몸속에 품고 있다가 낳은 아이였기에, 제우스는 그를 완전한 권리를 가진 신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어른이 된 디오니소스는 모계의 혈통 때문이었는지, 인간 종족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품었고 인간에게 남다른 도움을 주려고 했다. 이미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희망을 줌으로써 정신과 육체의 고통을 좀 더 잘 견뎌내게 했다. 인간이 설정할 수 있는 가장 야심적인 계획이란 것이 몇몇 염세적인 철학자들이 실재론과 더불어 주장하듯이, 결국은 고통의 완화에 있다고 한다면 프로메테우스의 도움은 상당한 것이다. 헌데 디오니소스는 쇼펜하우어나 프로이트를 읽지 않았음에도, 고갈되지 않는 쾌락과 즐거움과 향연을 인간에게 제공함으로써 프로메테우스보다 더 나은 일을 하고자 했다. 그는 인간에게 술을 주었다. 그리고 포도재배 기술을 전파하고 술에 대한 예찬을 퍼뜨리는 일에 일생을 바쳤다. 그는 목신들과 숲의 요정들 그리고 여사제관들을 앞세우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돌아다녔다. 동반자였던 2명의 신은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중 하나는 술에 절어 불그레한 얼굴과 뚱뚱한 배를 가진 실레노스였는데 그를 당나귀에 태워 가려면 2명의 보조자가 필요할 정도였다. 또 한 명의 신은 다른 목신들처럼 털투성이에다 머리에 뿔이 나고 산양의 발을 가진 판Pan이었다. 그는 줄곧 요정들의 뒤를 쫓아다녔는데 너무나 못생긴 얼굴 때문에 요정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곤 했다. 판은 술을 마시면서,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 뺀 오관피리를 불면서 마음을 달랬다. 제우스는 종종 올림포스의 꼭대기에서 디오니소스가 이끄는 이 즐거운 행렬을 흐뭇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보곤 했는데. 그럴 때면 자기 아들이 인간에 대해 느끼는 애정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디오니소스는 포도뿐만 아니라 모든 식물의 생육을 다스리는 신이었습니다. 디오니소스의 로마식 이름인 바쿠스(우리나라의 유명한 박카스라는 음료는 여기에서 인용)는 싹을 뜻합니다. 한 알의 씨는 땅 속에 묻혀 긴 겨울을 나고 봄이면 부활합니다. 그리하여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갑니다. 일상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망아(忘我)의 상태로 들어 간 뒤, 그 망아의 정점에서 그들은 어쩌면 생성과 소멸이 곧 하나인 자연의 이법을 깨달았던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 또한 자연의 한 씨앗임을, 한 씨앗으로 태어나 한 생을 살고 갈 뿐임을, 그러니 속세의 욕망과 고통에 얽매여 괴로워 할 것도 없고 그저 겸손히 자연의 저 위대한 정적 속으로 사라지면 되는 것이리라. 자연은 그에 관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봄이 오면 지난겨울의 소멸을 딛고, 또 다른 씨앗이 꽃을 피우지 않는가?’
※ 디오니소스(바쿠스=박카스)
~ 술(그리스에서는 포도주)을 박카스의 선물, 또는 직선적으로 박카스라고 부르는 연유는 박카스 神이 술을 관장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술이 아닌 드링크제에 박카스(술을 먹고 마시는 음료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박카스란 그리스어로는 Bakchos(박코스), 로마에 가서는 Bachus(박쿠스, 박카스는 이것의 영어발음)인데, 이것은 통칭 또는 별명이고 정식이름은 디오니소스이다. 제우스의 아들로서 어머니는 테베의 공주인 세멜레라고 전해지지만 기실 소아시아의 대지의 여신인 제메로라고도 한다. 올림포스 神界에서는 비교적 새로운 신에 속하고, 원래는 북쪽의 트라키아 지방 또는 소아시아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그는 포도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곡물이나 식물의 精靈神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에 포도를 가지고 들어 왔을 때는 이 포도와 포도주하고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었다. 맨 처음에 그가 가져온 포도주를 마신 농부들은 정신이 흐려져 마치 독약을 마신 것 같아서 그것을 준 사람을 죽여버렸다고 한다. 한편 박카스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신벌을 받거나 미치광이가 되었으며 심지어 살해되었다고도 한다. 박카스 신화가 로마에 전해진 다음 로마에서는 박카스신을 리베르(Liber)라고 이름지었다. 리베르란 자유라는 뜻인데 술을 마시면 온갖 우울한 기분과 구속감에서 해방되어 심신이 공히 자유를 느낀다는 뜻에서 이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확실한 근거는 없다.
비극을 탄생시킨 디오니시아 축제
비극, 즉 영어 ‘tragedy’의 어원은 그리스어 ‘tragoigia’이다. ‘양(trago)의 노래(dia)’라는 뜻입니다. 양이 어떻게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며, 또 양들이 부르는 노래가 어떻게 비극이 되었을까요? 기원전 5세기경부터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에서는 1년에 두 번 모든 시민이 참가하는 축제가 벌어졌습니다. 축제의 이름은 디오니시아였고 그 중에서도 봄이 시작되는 3월 그믐에 열린 대 디오니시아 때는 여러 가지 놀이와 함께 비극 경연이 벌어졌습니다. 초창기에는 둥글게 다져놓은 흙바닥이 극장 구실을 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무대에 해당하는 그 둥근 마당을 ‘오케스트라’라고 했고, 오케스트라 북쪽에는 나무로 된 좌석이 있었으며 남쪽엔 배우들이 쓰는 천막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분장실입니다. 오케스트라 남쪽엔 배우가, 북쪽엔 합창단은 탈을 썼습니다. 맨 얼굴로는 지붕도 없는 넓은 마당에서 관객들에게 감정의 움직임을 제대로 전달하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합창단의 지휘자격인 배우가 선창을 하거나 대사를 하면 50명의 합창단이 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그 합창단이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목양신 사티로스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사티로스는 머리엔 뿔이 돋아있고,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양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반인반수의 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비극의 형식이 그 이전부터 행해지고 있건 디오니소스 교도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곤 했는데, 사티로스 모양의 탈을 쓴 사람들이 반드시 행렬의 앞에 서서 노래를 선창하였다고 합니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가 고향 테베로 돌아올 때 사티로스들이 그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디오니소스가 산과 들에서 살았고 또 식물 생육의 신이니만큼 숲과 들에서 사는 목양신 사티로스는 디오니소스와 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제의가 그리스가 도시국가로 발전한 후에 축제 행사로 정착되었고, 그 후 변화를 거듭하여 오늘날의 연극이 된 것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대다수의 비극의 가지고 있는 이야기 구조, 즉 질서의 혼란, 주인공의 고난과 죽음, 질서의 회복이라는 틀이 디오니소스의 죽음과 재생의 과정, 나아가서는 겨울에 죽은 생명이 봄에 부활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비극 공연의 초창기엔 합창단을 빼고는 배우가 한 사람만 등장하였기 때문에 탈과 옷을 갈아입어 가며 한 명이 몇 사람의 역할을 맡거나 또는 두세 명의 배우가 번갈아 가며 한 사람 역할을 맡았습니다. 또 배우와 합창단이 주고받는 말과 노래 가운데서 합창단, 즉 양들의 노래가 극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 비중이 축소되었고 나중엔 합창단이 아예 사라지게 됨으로써 오늘날의 연극과 같은 형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디오니시아 때 열렸던 비극 경연에서 연거푸 1등상을 받음으로써 유명해진 작가들이 우리가 아는 3대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이스킬로스는 배우의 수를 둘로 늘리고 합창단의 역할을 줄여 대화가 극의 중심이 되게 했고, 소포클레스는 다시 배우 수를 셋으로 늘리고 무대에 배경 장치를 도입함으로써 극의 형식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아가멤논>, <오이디푸스 대왕>, <메디아> 등 3대 비극작가들의 대표작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리스 시대의 비극은 주로 고대의 신화나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내용을 따온 것들이었습니다.
이성과 광기가 만나는 곳 _ 진리의 세계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정신이 아폴론적인 아름다운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 바로 그리스의 비극이라 하였습니다. 그는 비극의 근원을 디오니소스적 정신에서 찾음으로써 아폴론의 이성보다는 디오니소스의 광기를 더 높이 샀으며 근대에 들어와 안이한 합리주의, 낙관주의 때문에 디오니소스적 정신이 사라졌음을 슬퍼했습니다. 만일 니체가 살아 있다면 온갖 극단적이고 기발한 방법이 다 동원되는 20세기의 전위예술을 보고 디오니소스 정신이 부활했다고 기뻐할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예술은 어쨌거나 이성보다는 광기에 가깝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폴론보다는 디오니소스가 더 매력적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빈틈없이 절제된 것보다는 빈틈 많은 불완전한 것들에 친근감을 느끼는 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디오니소스는 광기 자체가 아니라 광기를 통해 광기 저 너머에 있는 진리를 찾으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순간적인 쾌감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20세기의 통탄할 쾌락주의는 디오니소스의 창조적 광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이성과 광기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 결국은 한 곳에 도달합니다. 우리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밝고 높은 등대, 바로 진리의 세계입니다. 그곳에서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는 너희의 빛,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