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오만과 반세계화에 대한 편견
세계화에 대한 농담 한 가지. 세계화의 가장 좋은 예는 프린세스 다이애너이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위스키를 마시고 취해서, 이집트 애인과 벨기에 운전사가 몰던 네덜란드 엔진을 단 독일 차를 타고 이태리 파파라치에 쫓겨서 사고가 난 후, 미국 의사에 의해 치료받다가... 결국 죽었다. 다이애너는 죽었지만 세계화의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계의 대다수 시민들은 다이애너만큼 세계화를 누릴 수 없으며, 오히려 세계화의 흐름에 저항하는 이른바 '반세계화'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99년 12월 시애틀을 시작으로, 워싱턴, 프라하, 서울 그리고 제노바 등 세계 각지에서 자본만을 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이를 추진하는 국제기구의 정책을 반대하는 대중적 저항이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제노바에서 열린 G8회담에서는 십만이 넘는 시위인파가 몰려들었으며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한 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80년대 한국을 연상케 하는 이 격렬한 시위를 둘러싸고 이제 세계화 대 반세계화의 논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진정 합리적이며 또한 전 세계 시민들의 더 나은 삶과 경제적 권리를 위한 것일까?
1. 반세계화 그리고 개도국
반세계화 시위를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주장이 선진국 노동자들만을 이롭게 하는 것이며, 개방과 세계화에 대한 반대가 결국에는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가로막을 것이라 역설한다. 이들은 시위대의 주장 중 주로 초국적기업이 선진국 수준의 노동, 환경 기준을 개도국에서도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초점을 맞춘다. 즉 개도국에 대해 선진국 수준의 노동과 환경기준을 부과하는 것은 개도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며 이는 결국 기업의 세계진출로 인해 일자리를 빼앗기는 선진국 노동자들의 이기적인 주장이란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목소리가 혼재하긴 하지만 반세계화 시위대의 주장 중 또 다른 핵심은 이른바 워싱턴 컨센서스에 기초한 개도국에 대한 무역, 금융 개방 압력 그리고 IMF 등이 추진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대해 저항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많은 논자들은 기본적으로 무역, 금융 등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고 세계경제에 통합하는 것만이, 이른바 시장에서 자본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능한 보장하는 것이 개도국 경제성장의 유일한 길이라 반박한다. 과연 이러한 반박은 정당한가? 사실 이들의 오해와는 달리, 반세계화 시위에는 멕시코 사파티스타 농민들에서 인도의 착취공장 노동자, 그리고 남아프리카의 노조까지 많은 개도국의 시민들과 진보적인 운동조직들이 참여하고 있다. 시위는 물론 주로 선진국의 조직화된 군중들이 주도하지만, 이들이 선진국의 이해만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들 개도국 시민들은, 맹목적인 개방과 초국적자본의 개도국 진출이 가져다준 파괴적인 결과를 피부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동노동이 사용되는 끔찍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동남아인들, 시장개방과 금융위기 나아가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고 빈곤에 처한 중남미 노동자들, 그리고 초국적 제약회사의 이윤추구로 인해 말라리아를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가야만 했던 아프리카인들이 자본만을 위한 세계화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Economist와 같은 언론은 반세계화 운동이 개도국의 경제발전을 도리어 가로막고 있다며, 인도의 헐벗은 소녀의 얼굴을 표지에 실은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언론은 세계은행과 IMF의 개발계획을 반대하여 인도인들이 뉴델리의 세계은행사무소를 점거한 시위는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격화되는 대중적 시위를 배경으로 그 언론들조차 세계화의 파괴적인 영향을 우려하고 있으며,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반대하는 유럽이나 개도국들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2. 자유화와 개방에 대한 믿음 혹은 맹신?
이제 반세계화 운동을 비난하는 대부분의 학자들과 언론의 주장의 근거에 대해 다시 한 번 자문해보자. 진실로, 무역과 금융의 개방이 개도국의 경제발전에 언제나 도움이 되어 왔던가? 국가의 역할을 무조건적으로 축소하고 자유로운 시장의 작동을 확대하는 것이 진정으로 경제발전의 지름길인가?
신고전파 교과서의 아름다운 모델에 기초한 이 맹목적인 주장의 현실적 근거는 결코 튼튼하지 않다. 사실 현실의 시장은 비대칭적 정보 등의 이유로 그 믿음과는 달리 너무나 불완전하며 이를 고려하면, 무조건적인 개방과 자유화가 경제성장과 후생의 상승을 가져온다고 주장하기 어렵다. 이는 특히 금융시장에서 더욱 심각해서, 적절한 규제나 제도개혁 없는 무분별한 금융개방과 자유화는 언제나 심각한 버블과 금융위기로 이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실증적으로도, 무역과 금융의 개방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확인하기 어렵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무역, 금융자유화와 경제성장의 상관관계를 찾으려 했고 여러 나라들을 대상으로 한 수백 편의 횡단면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많은 논문들이 상당히 자의적인 기준과 연구방법에 기초하고 있고 여전히 그 상관관계는 뚜렷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Rodrik과 같은 학자들은 무역자유화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실증연구들의 허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또한 금융개방과 경제성장간의 상관관계도 확인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직도 이를 둘러싼 논쟁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특히 금융개방의 경우 적절한 제도적인 기반과 규제 메카니즘이 없다면 경제성장 대신 경제의 불안정과 금융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인식되고 있다.
아시아 위기 이후에는 Stiglitz나 Eichengreen 등 저명한 주류경제학자들조차 조심스런 금융개방과 새로운 국제금융질서의 확립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주류의 이론이 현실에서 별반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개도국들에게 시장의 개방과 외국자본의 침투는, 그것을 전략적으로 경제발전에 활용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과 정책이 없다면, 단지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이들 나라의 시민들의 삶을 더욱 파괴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무조건적인 개방과 자유화를 반대하는 반세계화 시위대의 주장은 결코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다.
3. 국제기구와 자본의 이해
사실 WTO, IMF 등 많은 국제기구들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그리고 이들 나라의 초국적자본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WTO의 경우, QUAD라 불리는, 초국적자본의 로비를 받는 미국 중심의 선진 4개국 그룹이 의제를 결정하고 다른 국가들은 이것을 통과시키는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8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전개되었던 IMF와 세계은행의 신자유주의 경제 구조조정의 폐해는 더욱 뚜렷하다. 이들의 권고를 받은 많은 개도국들이 80년대 마이너스 성장과 소득분배의 악화 그리고 빈곤의 심화라는 끔찍한 고통을 겪은 바 있으며 전 세계적인 부의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리고 이들의 권고, 실은 압력에 따라 금융시장을 개방한 많은 나라들은 금융위기를 맞았고, 위기 이후 강제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경제회복에 별반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물론 정경유착의 극복과 부패한 정부의 개혁 등 개도국들의 국내적인 구조개혁은 필수적이겠지만, 단순히 개방과 자유화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전 세계적인 이윤기회를 쫓는 자본의 논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제는 비판적인 경제학자들 뿐 아니라, Bhagwati, Feldstein 등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조차도,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IMF 등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처방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 위기 이후, 시장개방과 과도한 긴축정책이 이들 경제를 얼마나 어렵게 만들었는가 대해서는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다. 하버드의 대표적인 발전경제학자 Sachs도 IMF가 미국과 초국적자본의 이해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시인한다.
4. 더 나은 세계화를 위하여
현실이 이러하다면, 반세계화 시위대의 주장에도 상당한 진실이 담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시장의 완전한 봉쇄나 정경유착에 기초한 독재정권의 경제개입이 결코 대안은 아닐 것이다. 대신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기적적인 경제발전 기간 동안 채택한, 적절히 관리되는 조심스런 개방이나 전략적이고 선별적인 세계경제로의 통합 과정에 진지하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위기의 가장 큰 교훈은 적절한 관리 없는 무분별한 금융개방 그리고 규제 없는 초국적 금융자본의 급속한 이동이 심각한 경제의 불안정과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단기적 금융자본의 급속한 이동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혹은 일국적인 차원에서 적절히 규제되어야 할 것이다. 칠레나 말레이시아 등 개별국가들도 어느 정도는 이러한 자본통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바 있다. 나아가, 외국자본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도 이들 자본이 자국의 경제발전에 적절하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략적인 조치들이 필수적일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발전의 과정에서 이러한 정책들을 도입한 바 있으며, 현재 최대의 자본투자 수혜국인 중국도, 이러한 전략적인 정책들을 현명하게 도입하고 있다.
물론 반세계화 시위대도, 무정부주의 극좌파에서 뷰캐넌을 지지하는 극우파에 까지 참여하는 등 전혀 통일되지 않은 조직과 주장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선진국의 환경보호주의자의 주장과 개도국 노동자들의 이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 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뚜렷한 대안 없는 반대만을 위한 반대를 넘어서서, 예를 들어 UN의 세계인권선언과 같은 미래에 대한 청사진에 기초하여 구체적 의제들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세기말 자본주의는 단지 반세계화 시위를 비난하고 맹목적으로 개방과 자유화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 세계경제로의 통합과정을 어떻게 관리하는 것이 전 세계 시민들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인가를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