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의 목적
요한계시록 5:11-14
모든 종교는 다 나름대로의 예배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종교이든지 절대자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예배가
가장 중요한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유대교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조문으로 정해 놓고 철저하게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갈라디아서 4:3을 보십시오.
“이와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갈라디아서 4:3).
이 말씀대로 하면 사도 바울은
모든 종교의식을 세상의 초등학문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갈라디아서 3:24에서는 예배에 관한 구약의 율법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또 요한복음서 4장을 보면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우물가에서 말씀을 나누시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20절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예배장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한복음서 4:20).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에 유다를 중심으로 한 남쪽과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쪽으로 갈라졌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도 서로 달랐습니다.
유다를 중심으로 한 남쪽은 갈라지기 전과 똑 같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를 중심으로 한 북쪽은
그리심 산이라는 곳에 새로운 성전을 지어서 그곳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자기들이 드리는 예배장소만
참된 예배장소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대해서
우선은 어디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 예배장소부터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한복음서 4:21).
예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장소와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럼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서 4:24).
바로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사도 바울 역시 로마서 12:1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우리의 삶을 예물로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는 물론이고
구약 시대의 예배와도 분명히 구별되는 예배입니다.
무엇보다도 구약시대에는 예배를 드릴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대신해서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속죄의 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지요.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동서고금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배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예배는
다른 종교의 예배는 물론이고 구약의 예배와도 근본적인 차이가 있지요.
오늘말씀의 제목을 예배의 목적이라고 했습니다만
예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평소에는 하나님을 잘 의식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예배를 드릴 때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예배는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계시록 말씀 가운데 5:12을 보십시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요한계시록 5:12).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피조물이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되는 13-14절을 보면
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피조물이 함께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사랑과 은총에 응답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경험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마음과 뜻과 행실로 응답하는 믿음과 삶이 되어야
사랑과 은총에 응답하는 예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겸험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사야 예언자도 그 가운데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특히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가 예언자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게 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다음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사람은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지요.
요한복음서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 역시 이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예수를 얼마나 경계했습니까?
마실 물 좀 달라는 부탁도 거절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하고 예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그는 그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자기와 함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여인은 지금까지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는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그렇게 피해 다니던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 예배의 목적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물론 이 역시 예배의식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렇게 삶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요 예배의 목적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은총에 응답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과 행실과 삶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예배가
말씀을 따르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새로운 삶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