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창에 가설극장이 들어오면
향토문화와 영화예술을 사랑하시는 친애하는 웅상맨민 여러분!
오늘도 농사일에 얼마나 수고가 많으십니까?
여기는 서창 시장통에 자리 잡고 있는 가설극장 선전반입니다.
오늘 밤 여러분을 모시고 상영할 영화는
여러분들이 고대하시고 기대하시던 영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입니다.
자앙∼동휘, 최에∼무룡, 이∼대엽, 구우∼봉서, 저언∼계현이 주연한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
아∼아∼그들은 왜 돌아올 수 없었을까?
아∼아∼그들은 왜 돌아올 수 없었을까?
저녁을 일찍 잡수시고 가족들 손에 손을 잡고 이곳 서창 시장통까지
왕림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가설극장에서 틀어대는 유성기에서 째지는 듯한 유행가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면
왠지 가슴이 설레고 머리는 구름 속을 날고 있었지요.
일찌감치 소죽을 끓여 소여물통에 붓고,
사분으로 머리를 감고,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발길은 자연스레 시장통으로 향했습니다.
○○야! 공부하러 가자
면서 큰소리로 부르면 친구 어머님께서는
야, 이너무 종내기들아 너그 영화보러 가지마래이.
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시장통이 가까워지면 우리들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지고……
기다란 나무기둥을 팔각형 형태로 세우고 덕지덕지 꿰맨 광목으로 된 천막을
기둥에 빙 둘러친 지붕도 없어 비오는 날이면 공치는,
나무기둥마다 전구 한 개씩을 매단 가설극장.
입구에 서서 표를 받는 기도는 눈을 두리번거리고
저만치 발동기를 설치하고 그 전기로 영사기를 돌리며
스크린 역시 네모난 하얀 광목이었지요.
객석이라고 해 봐야 맨 땅바닥에 덕시기나 거적때기를 깔아놓은 것이 전부였으니……
어두컴컴한 시장 통에는 한여름 호롱불 밑에 부나방이 모이듯
웅상면민들이 전부 다 모였는지 소란스럽기 그지없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보다 밖에 서서 서성대는 사람들이 몇 배는 더 많았으니
우리 서창 친구악당들은 영화를 보는 것은 뒷전이었는데……
이윽고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하면.
본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상영하는 것.
쏴르르……
영사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먼저 나오는 것은 대한늬우스.
그 다음에는 짠∼짠∼짠, 월남소식.
극장에서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에 화질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시절이라
필름을 얼마나 돌렸으면 화면에서는 번쩍번쩍하면서 소나기가 한 없이 내리고,
확성기에선 지지직 지지직 잡음이 귀를 때려도 아무 말 없이 조용하였답니다.
발전기가 고장이 나서 상영을 중간에 중단하거나
화면이 허여무리하게 변하면서 필름이 뚝 끊어지면 여기저기서 에이~하는
소리와 함께 휘히힉, 휘히힉 휘파람 소리도 들리지만 곧 조용해졌지요.
영화를 관람할 때에는 다들 죽은 듯이 숨을 죽였습니다.
어쩌다가 아이가 울기라도 한다면 그 애기 엄마는 쫓겨나야 했고……
슬픈 영화라도 볼 때면 관객들이 코를 훌쩍거리며 울음소리까지 들렸었지요.
옛날의 가설극장은 조조할인이란 것이 없었으며,
종영 20여분이 남았을 때 포장을 위로 걷어 올리면 밖에서 서성대던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우루루 안으로 몰려 들어 마지막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 관람할 돈을 달라고 하였다가는 땡꾸를 억수로 들어야 했던 때.
밖에 서서 확성기로 흘러나오는 대사를 들으면 흰 광목 안쪽의 세상이 너무나도 궁금하여
공짜배기로 영화를 보기 위해 셋 넘은 이쪽에서 셋 넘은 반대방향에서 천막을 살짝 걷어
올리고 그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작전을 세웠는데,
한 번은 기어들어가 고개를 드는 순간 안에서 지키던 청년에게 들켜 얼른 도망을 가는데
밖에서 지키던 넘이 따라 오길 래 어두운 밭을 한 참을 달리니 갑자기 발이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니 밑으로 계속 떨어지다가 쿵! 하고 쳐 박혔지요.
제법 높은 언덕이었습니다.
턱이 얼얼하고 정신이 아찔하였지만 다리가 안 부러진게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어쩌다 학교에서 단체영화를 상영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전날 시장통에서 상영하였던 반공영화나 사극영화가 대부분이었습지요.
1학년 A반과 B반 사이의 칠판과 벽을 뜯어내고 강당으로 만들어 천으로 창문을 가리고
전교생 6개 반이 한 곳에 모여 먼지 자욱한 바닥에 퍼질고 앉아 영화를 보았는데
소변은 끝날때까지 참아야 했고, 얼마나 비좁았던지 끝나면 다리에 쥐가 나더라고요.
보리밥만 먹었던 그 시절.
어떤 넘이 소리없이 풍시마라도 하게 되면 독가스에 한 손으로 코를 막아야 했었지만
군소리없이 영화를 보는 것에 푸욱 빠져버렸으니……
영화를 보는 것은 즐거움 자체였습니다.
60∼70년대를 풍미하였던 배우들을 보면
곽규석, 구봉서, 김동원, 김석훈, 김진규, 김칠성, 박노식, 박 암, 신성일, 신영균,
이대엽, 이예춘, 최무룡, 트위스트김, 허장강, 황 해 氏와
여배우로는
김지미, 김혜정, 도금봉, 엄앵란, 이민자, 전계현, 조미령, 주증녀, 최은희, 최지희
황정순 氏가 생각이 납니다.
가설극장은
텔레비전이나 극장도 없는 서창에서 자란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세상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칭구들 대여섯넘이 시장통으로 들어서는 어두운 골목길에 숨어 있다가
다른 동네 처자들이 무리지어 오면 뒤에서 꽉 끌어안는다든지 하면 처자들은 기겁을 하고
우리들 또한 겁이나서 줄행랑을 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성추행범으로 사회의 지탄이 될 짓을 서슴치 않고 하였으니
철없이 저지른 행동에 지금이라도 정중하게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17回 李 元 鍵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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