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띠는 언제 사라지나요?
아침부터 계속 삐띠가 있었습니다.
알았다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아마도 삐띠를 만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이 삐띠는 언제 사라지는가요?
점심시간에 음식을 보면서 사띠를 유지했지만,
한술한술 먹는 순간, 삐띠는 점점 빛을 잃어가면서
점심 식사가 끝날 때쯤에서야 삐띠는 사라졌습니다.
와우! 정말 먹고자 하는 탐심이 이렇게 클 줄이야.
정신을 차리고 삐띠가 왜 사라졌는지 조사를 해보는데
아직 삐띠는 작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즐기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다시한번 관찰해보니
이것은 평온함이 유지되는데 대한 삐띠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도(?) or 조건이 충족해서(?)
사마디는 빛을 잃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 왜 사마디가 유지되고 있지?라고 물으니
단지 아는 마음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띠가 유지되고 있으며,
번뇌가 일어나는 순간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대상이라고 알려주는 이것이 마음속에 자리를 조금 잡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올라왔습니다.
“그래, 번뇌야 올테면 와봐라! 내 조사하고 이해해서 너를 대상으로 완전히 돌려놓겠다!”
아! 이 자신감 또한 信心이라고 알아집니다.
사무실에서 일(work)을 하면서도
일어나는 마음이 다 대상으로 알아차릴 수 있는 힘이 강해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단단함이 되어 가슴 속에 남습니다.
_(답 글)_
삐띠나 사마디가 dukkha라는 사실을 안다면 지혜가 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좋은 것들도 알고 있지 않는다면 들뜸이나 로바가 가로채 가버리기 때문에,
마치 알아차림이 없다면 새가 날아와서 몸의 살점을 물어뜯어가듯이,
알아차리지 않고 있다면 그 상태가 좋으니까 계속해서 즐기려고만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띠가 훨씬 낫지 않을까요?
사띠는 해도 해도 지나치지 않으며 헛것이 되지 않습니다.
알면 알수록 가속도를 내주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삐띠든, 사마디든 단지 그런 줄만 알고..
다시 사띠를 불러와서(챙김해서) '있는 사띠(지키미)'가 되도록 하는 게
더욱 현명합니다.~^^*
나중에 사띠가 커서 지혜로서 일할 때는
그것이 담마(법)로서 일하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배가 됩니다.
불(火)도 겉에서 타는 불(거친 불)과 속에서 타는 불(미세한 불)이 있습니다.
겉 불은 거칠어서 잘 보이지만 미세한 속 불은 잘 안 보입니다.
삐띠나 사마디가 7각지의 요소, 종합선물세트의 금싸라기가 될 것 같으면
항상 들뜨지도 않고 즐기려고도 하지 않는 법수로서 現前할 것입니다.
그러니 앎의 지혜가 생겨나야만 됩니다.
여기에 자비희사도 자연스럽게 갖추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한 삐띠나 사마디만을 가지겠습니까,
아님 종합선물세트격인 법으로서 일하는 앎의 지혜를 가지겠습니까?
5력속에 들어있는 信心은 질 좋은 마음이지만,
자신감이 마나(mana/자만)로서 작용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자만은 우쭐대고 하늘 높은 줄을 모릅니다.
나 외엔 아무도 없다, 내가 최고다 라고 소리를 질러대기 일쑤입니다.
아주 심히 고약하기 이를 데 없는 낄레사 중 낄레사입니다.
얼마나 고약하면 아주 힘쎈 아라한과에서나 제거된다고 하겠습니까?
그것이 너무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너무 미세해서 왠 만한 힘으로는 안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은, 그래서 사야도께서는 스스로 깨달았다는 사람 곁에는 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모름지기 아담마는 물론이며 눈 뜨고는 봐줄 수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잘 나갈 때는 심히 魔(마구니/마라)도 잘 끼어듭니다.~^^*
_(2020년 11월 12일 햇살 좋은 가을 아침에 카톡 메시지를 읽으면서 사사나 스님)_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_()_
좋은 것이라 여겨지는 것에도 번뇌가 함께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