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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慧明華
無比스님과 함께 하는 유마경 공부(2020.12.16. PM7시)
유마경 법공양품
법공양 / 월개 왕자의 서원 / 법공양이 제일무비
오늘은 유마경 공부 법공양품(法供養品) 두 번째 시간이다. 법공양품, 어떤 것이 법공양인가, 하는 것을 물었다.
약왕여래라는 옛날 이야기를 했다.
과거 무량아승지겁 전에 부처님이 계셨는데 약왕여래라는 분이 계셨고, 그때 전륜왕이 계셨는데 보개(寶蓋)왕이다. 그 왕에게 1천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월개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다.
보개왕과 일천명의 아들들이 5겁이 차도록, 5겁동안 많은 공양을 부처님께 올렸다. 그런데 월개라고 하는 아들이 홀로 앉아서 생각하기를 ‘이것보다 더 나은 공양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지난 시간에 공부한 내용이다.
월개의 생각이 좋은 생각이다.
우리가 공부를 하면서도 ‘이것보다 더 나은 공부는 없을까?’ 이런 생각을 반드시 해야된다. 또 수행을 하더라도 그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
수행을 한다면 나름대로 기도도 있겠고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 수행을 하면서도 늘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까?’ 월개라고 하는 아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어찌 공양이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까?’ 부처님께 공양올리고, 스님들께 공양올리고, 사중에 공양올리고, 도반들에게 공양올리고, 어른들에게 공양올리고 그럴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까?’ 이왕이면 조금 더 가치 있는 것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 그 공덕도 물론 크다.
그래서 내가 늘 법공양 법공양을 노래를 부르듯 부르는 이유가 다 경전에 근거해서 하는 말씀이다.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에서도 이야기 했고, 여기 유마경에서도 지금 밝히고 있는 내용이 그것이다.
오늘 유마경에서는 보개왕에게 1천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 가운데 월개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더 나은 공양이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함으로 해서 법공양에 대해서 밝히게 된다.
유마경에서 밝히는 법공양이다, 이것이 법공양 전체의 뜻이다 라고 보기는 그렇지만, 아무튼 유마경에서 밝히고 있는 법공양이다.
4. 법공양(法供養)
<1>
불언선남자(佛言善男子)여 법공양자(法供養者)는 제불소설심경(諸佛所說深經)이니라
약왕부처님이 말씀하였다.
“선남자여, 법공양이란 모든 부처님이 설하신 깊은 경전이니라.”
천신이 ‘법공양이 중요하다’ 고 했고 ‘모든 공양 중에 법공양이 수승하다 하시니 무엇을 이름하여 법공양이라고 합니까?’ 하고 월개왕자가 물었다.
그러니까 약왕부처님이 말씀하기를 ‘선남자여, 법공양이란 모든 부처님이 설하신 깊은 경전이다’ 아주 수준 높은 경전이다, 대승경전이다, 보살 대승경전이다, 하는 의미다.
일체세간(一切世間)은 난신(難信)
“일체 세간은 믿기 어렵고”
세상 사람들, 세속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그런 차원의 사람들은 믿기 어렵고
난수(難受)며 미묘난견(微妙難見)이니
“받아들이기 어려우며, 미묘해서 보기 어려우니라.”
청정무염(淸淨無染)하여 비단분별사유지소능득(非但分別思惟之所能得)이라 보살법장소섭(菩薩法藏所攝)의
“청정하여 물들지 아니하여 분별하고 사유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보살의 법장(法藏)에 포섭한 바가 되어서”
이런 말이다. ‘보살의 법장에 포섭한 바가 되어서’ 법화경에 보면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모든 부처님의 비밀한 법이다’ 이런 말을 한다. 보살 수준에 해당되는 가르침, 그런 뜻이다.
‘보살의 법장(法藏)에 포섭한 바다’ 하는 말은 보살 수준에 맞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이 설하신 깊은 경전이다’ 이 말은 깊지 않은 경전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고, ‘보살의 법장에 포섭한다’는 것은 다른 뜻으로는 성문이나 연각들의 가르침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 것이 아주 깊은 경전, 부처님이 설하신 깊은 경전이다.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많은 가르침이 있는데 평생 우리가 공부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다 공부할 수 없지 않은가? 또 다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많은 선지식들이 팔만대장경을 읽으면서 선별해 놓은 중요한 경전들이 있다. 그런 경전들은 우리 스님들을 교육시키는 교과서로 선택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많이 읽히는 경전들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선택된 것이거나 우정 선지식들이 선택한 경전들이다. 옛날에는 새로 출가한 스님들을 한 10년간 교육을 시켰다. 그를 위해 팔만장경 속에서 선택해서 교과서로 선별한 경전들이 있다. 이것은 보살의 법장에 포섭한 바가 된다.
다라니인(陀羅尼印)으로 인지(印之)하야
“다라니의 도장으로 봉인하였다.”
부처님을 조성하면 부처님 복장에다 경전을 넣고, 귀중품을 넣고는 봉인을 한다. 그런데 거기에 붙여서 봉인하는데 반드시 다라니가 써진 종이로써 풀을 칠해서 발라버린다.
요즘은 전문가가 아니면 다라니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라니가 인쇄된 것이 있다. 그것을 불구상점(佛具商店)에 가서 사다가 부처님 복장에 경전을 넣고 오곡을 넣고 여러 가지 패물도 넣고 하고 나서 막을 때 반드시 다라니가 써진 그 종이로써 풀을 칠해서 막는다.
옛날에는 전부 일일이 써서 막았고 요즘은 인쇄된 종이를 써서 막는다. ‘다라니의 도장으로 봉인하였다’는 말은 그런 말이다. 그만치 소중한 것이다, 하는 뜻이다. 부처님 복장안에는 반드시 경전을 넣는다.
지불퇴전(至不退轉)하며 성취육도(成就六度)하야 선분별의(善分別義)하며 순보리법(順菩提法)이라
“퇴전하지 않는데 이르며, 육도(六度)를 성취하여 그 뜻을 잘 분별하며, 보리의 법을 수순하느니라.”
깨달음의 법을 수순하는 것, 이것이 대승경전이고 이러한 경전을 우리가 잘 받들고 공부할 것 같으면 그것이 법공양이다, 하는 뜻이다.
중경지상(衆經之上)이며
“온갖 경전 중에 최상이며”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그 외 원각경 열반경 능엄경 이런 것들도 물론 대승경전에 해당되지만 제가 권하는 것은 화엄경 그다음에 법화경 그리고 유마경 그렇다.
물론 금강경도 중요하다.
금강경도 중요하지만 금강경 가지고 소의경전(所依經典)으로 평생 내가 의지하면서 공부할 경전으로 삼기에는 조금 부족한 점이 있다.
옛날에 선사(禪師)들은 금강경이 간단하니까 그것을 소의경전으로 삼았다. 또 육조스님께서 금강경 한 구절 듣고 깨달은 바가 있다. 조계종은 선종을 표방하기 때문에, 그런 인연으로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하는데 저는 늘 금강경은 부족하다고 말한다.
옛날에 원효스님 의상스님 때 신라 때는 화엄경으로써 소의경전을 했다. 오랜 세월동안 자장율사께서도 화엄경을 중국 가서 배워오시기도 하고 그래서 화엄경을 가르치기도 했다. 당연히 화엄경을 가지고 소의경전으로 했기 때문에 사실 화엄경을 가지고 소의경전을 해야된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종파가 있는데 천태종(天台宗) 법화종(法華宗) 일승종(一乘宗) 관음종(觀音宗) 그런 이름들은 전부 법화경이 소의경전이다. 법화경을 가지고 소의경전을 하는 것은 그런대로 괜찮다. 왜냐하면 대승경전으로서는 최고로 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당연히 화엄경을 가지고 소의경전을 해야 한다. 그러면서 법화경도 공부하고 유마경도 공부하고 금강경도 부수적으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평생 불교를 신봉하고 불교 공부를 하면서 금강경만 가지고 한다, 법화경만 가지고 한다, 이것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는 늘 그렇게 이야기 한다.
그래서 화엄경을 권장하는 바이고, 신라 때는 원효스님 의상스님 같은 분들이 이것을 소의경전으로 삼았다. 그 당시 불자들은 전부 소의경전을 화엄경으로 했다. 우리나라에 화엄십찰(華嚴十刹)이라고 하는 것도 있었고, 그것은 화엄경을 공부할 때 우리가 논의할 바이지만 그렇다.
입대자비(入大慈悲)하야 이중마사(離衆魔事)와 급제사견(及諸邪見)하며 순인연법(順因緣法)하야 무아무인(無我無人)하며 무중생무수명(無衆生無壽命)하며 공무상무작무기(空無相無作無起)하며 능령중생(能令衆生)으로 좌어도량(坐於道場)하야 이전법륜(而轉法輪)하며
“대자비에 들어가서 모든 마군의 일과 모든 삿된 견해를 떠나며, 인연법을 수순해서 아(我)도 없고 인(人)도 없으며, 중생도 없고 수명도 없느니라. 공(空)하며 상(相)이 없으며 지음이 없으며 일으킴도 없느니라.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도량에 앉게 하여 법륜을 굴리게 하느니라.”
이 구절이 중요하다.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도량에 앉게하여 법륜을 굴리게 하느니라’ 이것은 무슨 말인가?
‘도량에 앉게 하여’라고 하는 말은 ‘성불하게 하여’ 하는 말이다. 성불하고 나서 법륜을 굴린다, 설법하게 한다는 뜻이다.
부처님이 깨닫기 전 마지막으로 보리수 나무 밑에 앉은 것을 ‘도량에 앉았다’ 고 하고, 도량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성불을 조건으로 하는 장소를 도량이라고 하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다.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도량에 앉게하여 법륜을 굴리게 하느니라’ 이쯤 되는 경전이라야 된다는 것이다.
경전의 차원이 이쯤 되는 것이라야, 여기 유마경에서 말하는 것은 ‘이러한 경전을 공부하는 것이 바로 법공양 하는 일이다’ 이 뜻이다.
이쯤 되는 경전을 가지고 공부하고, 그것을 믿고 신봉하는 것이 바로 법공양을 하는 일이다, 그런 뜻이다. 분명히 이해해주시면 고맙겠다.
제천룡신(諸天龍神)과 건달바등(乾闥婆等)의 소공탄예(所共歎譽)라
“모든 천신과 용신과 건달바들이 함께 찬탄하는 바이니라.”
그쯤되면 성불하는 경전이니까 당연히 찬탄하는 바가 된다.
능령중생(能令衆生)으로 입불법장(入佛法藏)하며 섭제현성(攝諸賢聖)의 일체지혜(一切智慧)하여 설제보살(說諸菩薩)의 소행지도(所行之道)하며 의어제법실상지의(依於諸法實相之義)하며 선명무상고공무아적멸지법(宣明無常苦空無我寂滅之法)하야 능구일체훼금중생(能救一切毁禁衆生)하며
“능히 중생에게 부처님의 법장(法藏)에 들어가게 하며, 모든 현성(賢聖)의 일체 지혜를 굳게 지키어 모든 보살의 행할 도를 설하는 것이니라.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뜻을 의지하여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과 무아(無我)와 적멸의 법을 밝혀서 능히 일체 계를 범하는 중생들을 구제하느니라.”
모든 존재의 실상의 뜻에 의지해서 무상(無常)과 고(苦)와 공(空)과 무아(無我)와 적멸의 법을 밝혀서, 능히 일체 계를 범하는 중생을 구제한다. 잘못한 사람을 폐기해 버리면 그것은 대승이 아니다.
보통 소승불교에서는 계를 범한 사람들은 불통참회라 해서 참회가 통하지 않는다. 이래서 완전히 폐기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 번에도 한 번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유이비구범음살(有二比丘犯淫殺)에 파리형광증죄결(波離螢光增罪結)하고 유마대사돈제의(維摩大士頓除疑) 유여혁일(猶如赫日)이 소상설(銷霜雪)이라’
어떤 두 비구가 아주 큰 계를 범했다.
한 사람은 음계를 범하고 한 사람은 살인계를 범했다
그래서 우바리 존자에게 가서 참회를 했다. 그러니까 우바리 존자는 ‘너희들은 참회가 안된다. 불통참회다, 너희들은 구제할 길이 없다’ 고 하였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낙담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길로 그대로 낙담을 하고 있다가 ‘마지막으로 유마거사에게 가서 한 번 물어보자’ 해서 유마거사에게 가서 ‘우리가 이러이러해서 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참회하는 길이 없겠습니까?’ 하니까 죄성(罪性)이 본공(本空)인 이치를, 죄의 성품이 본래 공한 이치를 명확하게 유마거사가 일러줬다.
그러니까 유여혁일(猶如赫日)이 소상설(銷霜雪)이라. 뜨거운 태양이 눈을 순식간에 녹이듯이 그렇게 가슴에 엉켜있던 죄의 무게, 죄를 지었다고 하는 엄청난 무게를 확 씻어져 버리고 깨끗이 소멸해주는 이치를 유마거사로부터 듣고는 그들이 정말 큰 눈을 뜨게 됐다.
그래서 여기 보면 ‘계를 범하는 중생을 구제하느니라’ 그랬다. 이쯤 되어야 대승경전이고, 부처님의 뜻이 담겨있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잘못한 사람, 죄지은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너는 잘못했으니까, 너는 죄를 지었으니까 너는 이제 안돼. 앞으로 그렇게 마음대로 살다가 지옥에나 가려면 가든지 알아서 하라’고 하면 그것이 어떻게 중생을 위하는 자비심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절대 그것은 맞지 않는 일이다. 그런 내용도 이 속에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러한 이치까지도 다 포함한 대승경전, 툭 터진 대승경전, 사람을 살리는 대승경전, 넘어진 자를 일으켜 주는 대승경전, 이러한 뜻을 가진 경전을 공부하고 여기에 우리가 공양을 해야 그것이 법공양이 된다 그런 의미다.
제마외도(諸魔外道)와 급탐착자(及貪着者)로 능사포외(能使怖畏)하며
“모든 마군과 외도와 탐착한 사람에게는 능히 두렵게 하느니라.”
마군과 외도와 탐착한 사람에게는 능히 두렵게 하느니라.
제불현성(諸佛賢聖)의 소공칭탄(所共稱歎)이며 배생사고(背生死苦)하고 시열반락(示涅槃樂)이라
“모든 부처님과 현성들이 칭탄하는 바이니라. 생사의 고통을 등지고 열반의 낙을 보이느니라.”
생사의 고통을 등지고 열반의 낙을 보이느니라.
대승경전은 이런 경전이라야 된다 하는 조건을 여기에 이야기해 놨다. 여기에 ‘화엄경을 해라, 법화경을 해라, 원각경을 해라’ 이렇게 지적해 놓으면 그것은 한정이 있다. 그런데 뜻으로 이렇게 하니까 이러한 뜻을 가진 모든 대승경전은 다 포함된다 하는 것이다.
‘생사의 고통을 등지고 열반의 낙을 보이느니라’
시방삼세제불(十方三世諸佛)의 소설(所說)이니 약문여시등경(若聞如是等經)하고 신해수지독송(信解受持讀誦)하며 이방편력(以方便力)으로 위제중생(爲諸衆生)하여 분별해설(分別解說)하며 현시분명수호법고(顯示分明守護法故)니
“시방삼세 모든 부처님의 설하신 바이니 만약 이와 같은 경전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며 독송하여 방편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위해서 분별하고 해설하면 법을 분명하게 수호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라.”
뭐라고 했는가? 이러한 경전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며 독송하여 방편의 힘으로 모든 중생을 위해서 분별하고 해설하면 법을 분명하게 수호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니라.
시명법지공양(是名法之供養)이니라
“이것이 이름이 법의 공양이니라.”
이것이 법공양이니라. 제가 ‘법공양이 좋다, 법공양이 좋다’ 해서 그저 경전에 있는 말을 여기저기 주워다가 너무 자주 이야기 하니까 진부하게도 들리고, 듣고도 소홀히 여기는 경우도 된다.
오늘 이 시간에 지금 109명이나 동참해서 듣고 계시는 여러분들은 여기 분명히 천하의 유마경, 유마경을 근거로 해서 법공양의 위대함을 이렇게 우리가 공부하게 된다. 꼭 기억하시기 바란다.
더 확인하려면 유마경을 사서 이 대목 법공양품을 보시면 된다. 그다음에 또 법공양 이야기가 이어진다.
<2>
우어제법(又於諸法)에 여설수행(如說修行)하며 수순십이인연(隨順十二因緣)하야 이제사견(離諸邪見)하며 득무생인(得無生忍)하야 결정무아(決定無我)하며 무유중생(無有衆生)하고 이어인연과보(而於因緣果報)에 무위무쟁(無違無諍)하야 이제아소(離諸我所)하며
“또한 모든 법에 대해서 설한대로 수행하며 12인연을 수순해서 모든 삿된 견해를 떠나버리는 것이니라. 생멸이 없는 진리를 얻어서 결정코 무아가 되며, 중생도 없지만 인연과 과보에 어긋나거나 다툼이 없어서 온갖 나의 것을 떠나느니라.”
온갖 나의 것을 떠나느니라. 아(我)와 아소(我所) 이런 것을 다 떠나고 여기 보면 소승교리도 있지만 이 소승교리까지도 다 포용하는 마음이 보인다. 그러면서 조건을 달았다.
의어의(依於義)하고 불의어(不依語)하며 의어지불의식(依於智不依識)하며 의요의경(依了義經)하고 불의불요의경(不依不了義經)하며 의어법불의인(依於法不依人)하며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지혜에 의지하고 의식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가 아닌 경에는 의지하지 아니하며,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이것이 법사의(法四依)라고 해서 열반경에도 있고, 유마경에도 명문이 이렇게 나와 있다.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
말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는 그 속뜻이 무엇인가, 우리가 원해여래진실의(願解如來眞實意)라고 하지 않는가, 원컨대 여래의 진실한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바라야 된다, 참 중요한 말이다.
여래의 진실한 뜻이 어디에 있는가, ‘낙처(落處)가 어디에 있는가’ 이런 말을 한다. 말 쫓아가지 말고 말의 낙처가 어디 있는가? ‘호랑이 온다’ 라고 해서 호랑이가 꼭 와서 호랑이가 온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우는 어린아이 울음을 그치게 하는 말이다.
불경에는 그런 차원의 설법이 무지하게 많다. 그러니까 말만 쫓아가서는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것도 우리가 자꾸 익숙하게 공부를 하다 보면 그런 것이 자연스럽게, 크게 노력 안들이고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 ‘아 이것은 이러한 뜻이구나’ 다 잘 이해가 된다.
한 번 더 말씀드리면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지혜에 의지하고 의식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요의경에 의지하고 요의가 아닌 경에 의지하지 아니하며’ 요의경은 대승경전, 요의가 아닌 경전은 소승경전 이렇게 이야기 한다.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 사람 의지할 것이 뭐 있는가? 사람은 뻔하다.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나나 너나 이 몸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거기서 거기다. 다 한계가 있으니까 거기가 거기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설하는 법을 의지하지 아니하면 나만 손해다. 그러니까 사람은 너나나나 거기서 거기라 하더라도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법, 그 사람이 권하는 법, 그 사람이 설하는 법은 좋으니까 그 법은 따라야 한다.
우리가 어려서 처음에 출가하면 공부하는 <초발심자경문> 법문을 들을 때 ‘여인(如人)이 야행(夜行)에 집거당로(執炬當路)어든’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는데 횃불을 들고 간다고 치자, 그런데 가보니까 나는 횃불이 없고 그 사람은 횃불이 있어서 가보니까 그 사람은 ‘약이인악고(若以人惡故)로 불수광명(不受光明)이라’ 만약에 그 사람이 나쁜 놈이라고 소문난 사람이라. 그래서 기분 나빠서 그 사람이 들고 있는 횃불의 빛까지도 받지 아니하면 ‘타갱락참거의(墮坑落塹去矣)라’ 구렁텅이에 떨어지고 이리 자빠지고 저리 자빠져서 상처를 입게 되고 결국은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비유를 들어서 가르쳤다.
절대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이 설하는 법을 보라. 그렇지 않고 사람을 보고 ‘그 인간 별것도 아닌데 그 사람이 말하는 것, 별 수 있겠나? 인간이 그런데 말이 별 수 있겠나?’ 이렇게 해버리면 누가 손해인가? 나만 손해다.
종이와 책으로 된 것, 그것인들 무슨 그렇게 귀중한가? 그저 종이와 먹으로 됐을 뿐이다. 그러나 종이와 먹으로 표현된 그 안의 법문, 그 안에 부처님 진리의 가르침은 참 소중하지 않은가?
종이와 먹으로 되고, 인쇄했고, 요즘은 흔해 빠진 것이 경전이다. 흔해빠진 것이 경전이라고 하는 생각 때문에 그 안에 있는 내용까지도 흔해 빠지고 아무 것도 아니다, 별거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만 손해다.
흔해빠진 그 속에도 다이아몬드와 같이 값진 부처님 진리의 가르침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그점을 유의하셔야 된다.
그런 내용을 여기 유마경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다. 법공양품이 소중한 것이 그런 내용이기 때문이다.
수순법상(隨順法相)하야 무소입무소귀(無所入無所歸)하며 무명(無明)이 필경멸고(畢竟滅故)로 제행(諸行)도 필경멸(畢竟滅)하며 내지생필경멸고(乃至生畢竟滅故)로 노사역필경멸(老死亦畢竟滅)하나니 작여시관(作如是觀)하되 십이인연(十二因緣)이 무유진상(無有盡相)하야 불부기견(不復起見)이면 시명최상법지공양(是名最上法之供養)이니라
“법상을 수순해서 들어가는 바도 없고 돌아가는 바도 없느니라. 무명이 마침내는 적멸하기 때문에 모든 행도 마침내 적멸하며, 태어남도 마침내 적멸하기 때문에 늙고 죽음도 마침내 적멸하니라. 이처럼 관찰하여 12인연이 다하는 모양이 없어서 다시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최상의 법의 공양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여기 내용은 아주 높은 차원에서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래서 법상을 수순해서 들어가는 바도 없고, 돌아가는 바도 없다. 법상이라고 하는 것은 실상이다. 모든 존재의 실상이다.
‘무명은 마침내 적멸하기 때문에 모든 행도 마침내 적멸하며 태어남도 마침내 적멸하기 때문에 늙고 죽음도 마침내 적멸하니라’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일체개공(一切皆空) 안이비설신의도 없다. 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도 없다. 안계(眼界) 내지(乃至) 무의식계(無意識界) 무무명(無無明) 역무무명진(亦無無明盡) 내지(乃至) 무노사(無老死)
다 없다라고 했지 않는가.
사실은 부처님도 없고 중생도 없고,깨달음도 없고, 보살도 없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어찌할 바가 없는 것이다. 백퍼센트 그냥 완전히 없다는 뜻으로 마음대로 짐작하면 안된다.
어찌할 바가 없다. 불가득이다. 불가득(不可得) 가히 얻을 수 없다. 부처님을 가히 얻을 수 없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가히 얻을 수 없고, 보살을 얻을 수 없고, 중생을 얻을 수 없고,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시간성도 얻을 수 없다. 이런 높은 차원이다.
잘못 오해하면 안될 이야기지만 궁극적 차원에서 보면 그렇다. 그래서 아주 적정(寂靜)하게 그 생각이 깊어지고 고요해지고 아무런 갈등이 없고 말이 없고 시시비비가 끊어지고, 시시비비가 다 끊어지고, 아무런 말이 없이 다 끊어진 그런 삶을 산다 하는 것이다
그런 삶을 바탕으로 해서 다시 중생들을 위한 대자비심,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중생을 깨우쳐야 되겠다고 하는 대원력, 이것을 거기서 일으켜야겠다는 내용이다. 참 대단하다. 이것이 법공양이다.
그렇게 하고 월개 왕자의 서원이 나온다.
5. 월개 왕자의 서원
불고천제(佛告天帝)하사대 왕자월개(王子月蓋)가 종약왕불(從藥王佛)하야 문여시법(聞如是法)하사와 득유순인(得柔順忍)하고
부처님께서 천제석에게 말씀하였다.
“왕자 월개가 약왕부처님으로부터 이와 같은 법문을 듣고 유순(柔順)의 진리를 얻었다.”
아주 부드럽고 순한 진리를 얻었다.
즉해보의엄신지구(卽解寶衣嚴身之具)하야 이공양불(以供養佛)하며 백불언(白佛言)하사대
“그리고 곧 보배 옷과 장신구를 풀어서 약왕부처님께 공양하며 말하였다.”
법문을 듣고 그냥 있을 수가 없다. 그런 공양이 법공양에다 대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의 표현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장신구 옷 보배 이런 것들을 전부 풀어서 약왕부처님께 공양하였다고 하면서
세존(世尊)하 여래멸후(如來滅後)에 아당행법공양(我當行法供養)하야 수호정법(守護正法)하리니 원이위신(願以威神)으로 가애건립(加哀建立)하사 영아득항복마원(令我得降伏魔怨)하고 수보살행(修菩薩行)케하소서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열반하신 후에 저는 마땅히 법공양을 행하여 정법을 수호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위신력으로 불쌍히 여기시고 힘을 주시어 저에게 마군을 항복받고 보살행을 닦도록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열반하신 후에 저는 마땅히 법공양을 행하여 정법을 수호하겠습니다. 바라옵건대 위신력으로 불쌍히 여기시고 힘을 주시어 저에게 마군을 항복받고 보살행을 닦도록 하여 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불(佛)이 지기심심소념(知其深心所念)하시고 이기지왈여어말후(而記之曰汝於末後)에 수호법성(守護法城)하리라하니라
“약왕부처님이 그의 깊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바를 아시고 수기를 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뒷날 법의 성을 수호하리라.’라고 하였느니라.”
뒷날 법의 성을 수호하리라, 뒷날 법의 도시를 수호하리라. 이 정도로 원력을 세우고 부처님 앞에 맹세를 했으니 당연히 법을 잘 수호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천제(天帝)여 시(時)에 왕자월개(王子月蓋)가 견법청정(見法淸淨)하고 문불수기(聞佛授記)하며 이신출가(以信出家)하야 수습선법(修習善法)하며 정진불구(精進不久)에 득오신통(得五神通)하며 구보살도(具菩薩道)하고 득다라니(得陀羅尼)하야 무단변재(無斷辯才)하며
“천제석이여, 그때에 왕자 월개가 법의 청정함을 보며 부처님의 수기를 듣고, 믿음으로 출가하며, 선한 법을 닦으며, 정진이 오래지 않아 5신통을 얻었느니라. 보살도를 갖추고 다라니를 얻어 변재가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천 명의 왕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월개라는 왕자가 이런 생각을 내어서 공양에 대해서 ‘아 이보다 더 좋은 공양이 없을까’ 해서 법공양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 생각했을 때 ‘이런 것이 진짜 내가 부처님께 바라는 바 공양이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어불멸후(於佛滅後)에 이기소득신통총지변재지력(以其所得神通總持辯才之力)으로 만십소겁(滿十小劫)토록 약왕여래소전법륜(藥王如來所轉法輪)에 수순분포(隨順分布)하니라 월개비구(月蓋比丘)가 이수호법(以守護法)하야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에 그가 얻은 신통과 총지와 변재의 힘으로 10소겁이 차도록 약왕여래가 굴리신 법륜을 수순하여 널리 펼쳤느니라. 월개 비구가 법을 수호해서”
이 분이 출가했다고 했다. ‘수기를 듣고 믿음으로 출가하며’ 하고 앞에 있었다. 그래서 비구가 되었다. 월개비구가 법을 수호해서
근행정진(勤行精進)하고 즉어차신(卽於此身)에 화백만억인(化百萬億人)하야 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에 입불퇴전(立不退轉)하며 십사나유타인(十四那由他人)이 심발성문(深發聲聞)․ 벽지불심(辟支佛心)하고 무량중생(無量衆生)이 득생천상(得生天上)하니라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고 이 몸으로 백 만억 사람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물러서지 않게 하였느니라. 또 14나유타 인이 성문과 벽지불의 마음을 깊이 발하고 한량없는 중생은 천상에 태어나게 하였느니라.”
대단한 공을 세웠다.
다음으로 ‘법공양의 제일무비라’ 제일이어서 비교할 바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6. 법공양이 제일무비(第一無比)
석제(天帝)여 시왕보개(時王寶蓋)가 기이인호(豈異人乎)아 금현득불(今現得佛)하니 호보염여래(號寶熖如來)요 기왕천자(其王千子)는 즉현겁중천불(卽賢劫中千佛)이 시야(是也)라
“천제석이여, 그때의 왕 보개가 어찌 다른 사람이겠는가. 현재 성불하여 호가 보염여래이니라. 그 왕의 1천 아들은 현겁 중의 1천 부처님이니라.”
현겁천불(賢劫千佛) 그런다. 일천 아들 중에 한 사람이 그런 마음을 내서 일천 명이 다 그 자리에 같이 동참했으니까 그분들이 똑같이 수행해서 성불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겁 중에 일천부처님이다. 현겁천불이라는 분들이 이분들이라는 것이다.
종가라구손타(從迦羅鳩孫駄)가 위시득불(爲始得佛)하며 최후여래(最後如來)는 호왈누지(號曰樓至)요 월개비구(月蓋比丘)는 즉아신(則我身)이 시(是)라 여시(如是)하야 천제(天帝)여 당지차요(當知此要)니 이법공양(以法供養)이 어제공양(於諸供養)에 위상위최(爲上爲最)며 제일무비(第一無比)라 시고(是故)로 천제(天帝)여 당이법지공양(當以法之供養)으로 공양어불(供養於佛)이니라
“가라구손타가 맨 처음으로 성불하였으며 최후 여래는 호가 누지이며 월개 비구는 곧 나의 몸이니라. 이와 같이 천제석이여, 이 중요함을 마땅히 알라. 법공양이 모든 공양 중에 높음이 되며, 최고가 되며, 제일이며, 비교할 바가 없느니라. 그러므로 마땅히 법공양으로써 부처님께 공양할지니라.”
법공양품이 아주 시원하다. 우리 불자들이 실천은 차치하고라도 바른 안목, 공양에 대한 안목, 법공양에 대한 바른 안목을 열어주는 내용이 되었다. 아주 내용이 선명하다.
우리 불교에 경전이 많다. 가르침이 참 많다. 요즘은 남방불교도 들어오고, 불교가 불교백화점처럼 되어 있는데, 안목을 높여서 선별을 잘해야 된다. 선택을 잘해야 되고 자기 안목이 있어야 그러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마음의 준비가 되고, 안목이 준비가 된다.
이러한 유마경 대승경전을 제가 자주 이야기 하다가 결국은 유마경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내용을 잘 숙지해서 마음에 깊이 새겨서, 이러한 것이 문제가 되면 아주 명확하게 일도양단이 되어야 한다. 한 칼로 두조각을 내듯이 ‘아니야 법공양이야. 법공양은 이러이러한 것이야. 그 근거는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도 있지만 바로 여기 유마경에 분명하게 나와있어’ 이렇게 우리가 이야기 할 수도 있어야 된다고 본다.
오늘은 법공양의 두 번째 시간,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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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이렇게 동참하셔서 아주 풍성한 법석을 이루어 주셨다. 모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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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