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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4일 (수), 반올림 농성 8일차, 이어말하기 16일차 기록입니다.
강남역 8번 출구 삼성전자 홍보관 앞에서 ‘삼성직업병 피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며 노숙 농성을 시작한지 8일에 접어들었습니다.
이어말하기는 16일째입니다.
지나가는 시민들이 피켓을 꼼꼼히 보시거나 사진을 찍고 선전물도 잘 받습니다. 삼성은 24시간 돌아가는 바로 위의 cctv도 모자라, 우리쪽을 향해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계속 우리를 예의주시하고 감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감시가 아니라 책임 있는 사회적 대화를 원합니다.
오전에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오셨고 점심 도시락을 제공해주셨습니다.
낮에는 투병중인 박원희 님이 언니와 함께 지지방문을 오셨습니다. 박원희님은 삼성반도체 부천공장 포토공정에서 일하다 ‘전신 홍반성 루푸스’라는 희귀난치성질환 피해자입니다.
“몸이 불편하여 늘 함께 하지 못하지만 마음은 늘 함께 있습니다. _ 10월 14일 박원희 씀”
저녁 6~7시 이어말하기 시간에는 더 많은 분들이 지지방문을 오셨습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사회복지공익법센터, 난민인권센터, 서울장애인인권센터, 법률사무소 산, 삼성노동인권지킴이 조돈문 대표,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님,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라두식 지회장, 금속노조 경기지부 조건준 님 지지방문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삼성지회에서 준비해주신 저녁 도시락 연대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녁 6시 30분부터 두 시간 동안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촉구 제16차 이어말하기’를 진행했습니다. 매일 재치 있는 사회로 웃음을 주시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푸우씨의 진행으로, 라두식, 조장희, 김수영 님이 이어말하기 게스트로 나오셨습니다.
먼저 라두식 님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2기 지회장으로 10월에 선출되었습니다. 제가 일을 한 지는 올해로 20년째 됩니다. 20년 동안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A/S 기사로 일을 하면서 ‘내가 가진 권리가 무엇인지, 제가 노동자인지조차 모르고 일했습니다. 나한테 노동자로서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동안 대한민국은 전혀 얘기해주지 않았던 겁니다. 정말 슬펐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일을 하면서 삼성의 운영방식에 정말 길들여졌다는 거예요. 제가 제 옆의 동료와 정말 손톱만큼의 동료애를 느낄 수 없게 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 바로 이거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벽을 넘어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습니다. 모르면 못하지만 알면 그냥 있지 못하는 게 사람이잖아요. 제가 처한 사실을 제 동료에게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당시 느낀 감정을 동료들에게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법이 보장한 권리가 있고,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있데 이 나이 먹도록 아무도 안 가르쳐 주더라 했습니다.”
“80년대 90년대의 노동 강도의 현실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은 몰랐고 저희는 당연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삼성이 그렇게 교육을 시킨거죠 그렇게 경쟁하는게 당연하게 느끼게요. 비수기 때는 80시간, 성수기에는 120시간, 150시간씩 정말 고강도의 노동강도 속에서 일했지만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받지 못했습니다. 비수기에는 최저임금도 안 되고요. 마이너스 성과금 이라는 것을 붙여서 내가 일하러 갈 때의 전화비나 차량 기름값도 내야했습니다. 좋아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가더라구요. 점점 열악해지고 점점 실적위주로 가고 이대로 그냥 가서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노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노동조합은 꿈이었고 정말 간절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런 게 아니었으면 우리는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된다’ 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오랜 세월 느낀 간절함과 애절함이 있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A/S기사들 공통된 마음이었습니다. 최종범 열사, 염호석 열사 투쟁도 했습니다. 최종범 열사 투쟁 때 43일간 생계를 뒤로하고 이곳에서 동료들이 먹고 자고 하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싸웠습니다. 염호석 열사 투쟁 때도 다들 ‘이건 내 일이다’며, 집에서 생계 다 뿌리치고 이건 제대로 해야 한다’고 하고 전국에서 다 올라왔습니다.”
“2013년 9월인가 저희 동료 임현우 칠곡분회 조합원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었어요. 당시 나이가 34살... 그 나이에 심장마비가 오면 미리 예고가 옵니다. 그런데 당시 8월 덮고 가장 바쁠 때 임현우 조합원도 몸의 이상 징후를 느끼고 회사에 이야기 합니다. 그렇지만 회사는 일을 다 처리하고 가라는 거예요. 그래서 돌아가신 날 보니, 정말 죽는 날까지 그 고객의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병원을 못 간 거예요. 그리고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게 당연한 게 아닌 거잖아요. 몸이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 아주 작은 권리, 이런 것마저도 빼앗아가면서,... 그러니까 우리는 기계였던 거예요 기계.... 사람이 아니고....”
“삼성이 반올림 문제든 노동조합 문제든 이제 정말 깨끗하게 해결하고 갈 때가 왔다고 봅니다. 무노조경영이 70년이나 되었고 3대 세습 과정도 문제고 이것마저도 해결안하고 가면 이재용 3대 세습하면 안 되죠.”
라두식 지회장님 고맙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손님은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입니다.
삼성지회는 에버랜드에서 민주노조를 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노동조합이고, 2011년 복수노조금지조항이 풀리면서 삼성계열사에서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곳입니다.
“안녕하세요. 조장희 입니다. 에버랜드에서 일하다 노조를 만들었구요. 지금은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삼성은 무노조경영을 하는데 자랑할 만한 것은 못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젊었을 때 경찰시험을 준비했는데 제가 색약이어서, 떨어지는 바람에 에버랜드에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엇을 결정할 때 오래 망설이는 편이 아니고 확고하게 신속하게 하는 편인데요, 삼성의 조직문화와 저와 맡지 않아 그만두려고도 했습니다. IMF때 회사가 굉장히 손쉽게 사람들을 해고 하더라구요. 전화 한 통으로도 그만두라고 하고,...저는 그때까지 노동조합 같은 것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관할 노동청에 전화해봤더니 사직서에 싸인하지 마라고 하여 그렇게 얘기했더니 회사에서는 동료들에게 사직서 쓸 때까지 계속 붙들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쓴 책에도 있듯이 그런 인원감축으로 인해 회사에서는 어마한 수익을 남기고요... 주방에서 일하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 장례식을 보면서 제가 많은걸 느꼈습니다. 그래도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이 죽었는데 회사에서 한명도 오지 않았어요.”
“삼성엔 노사협의회라고 있어요. 어용이죠 어용.. 근로자측 위원들을 선출을 해서 권익을 대변한다고 하는데 회사의 허수아비들이죠. 이익도 주고 진급을 시켜주고, 제가 2년을 노동법을 공부해서 2002년에 노사협의회에 출마합니다. 보통 삼성의 노사협의회는 단독출마예요 경선이 안 되는 거죠. 회사에서 다 만들은 거죠. 그런데 제 선거구에만 5명이 출마를 합니다. 회사는 저를 찍지 말라고 하는 작전도 펼치고... 그런데 당선이 되었고 3번이나 연임을 했습니다. 저는 조금이나마 제대로 된 회의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회사에서는 저를 싫어했습니다. 노사협의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사원들은 사실 잘 몰랐는데 제가 많이 알리고 하니까 회사에선 어떻게든 저를 제거하려고 그랬습니다.”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일을 했었는데 이건희가 100억 원에 달하는 경주용 차 4대를 개인이 구입한 후 용인에 자동차 경주장 스피드웨이를 증축하면서 400억 가까운 회삿돈을 공사비로 쏟아 붓고 오로지 이건희 만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현재까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어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실 저는 법을 잘 모르지만 에버랜드는 법인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전자계산서를 보니까 거기 만드는데 400억 정도가 들어갔어요. 그래서 나중에 자료를 확보를 합니다. (회사 돈을 마음대로 썼으니) 나중에 따져 물어야 할 거 아니예요. 그래서 제가 제 이메일에 저장을 합니다. 그런데 그게 배임횡령죄라고 저를 해고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무죄가 나오고 해고 무효 판결도 받았습니다. 그 소송을 권영국 변호사가 맡아주셨어요. 저는 일상이 경찰, 검찰, 형사소송, 민사소송, 행정소송 하느라 바쁩니다. 저희가 고소한 건 6건, 회사가 고소한 건 7건, 그런데 여태 저희가 한 건도 진 게 없습니다. 제 해고재판은 제일 먼저 시작되었는데 아직 대법원에 있어요.
물론 1, 2심은 다 이겼는데.... 회사가 하도 거짓말을 하니까.. 거짓말하면 서면 내고, 또 내고 했습니다. 회사 측 대리를 하는 광장이나 태평양 이런 데는 정말 물량공세 하더라구요, 준비서면 사실 읽어봐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거든요.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또 다 읽어보고 어려워도 대응하고 그래야지요.”
“2011년에 민주노조 만들고 나서 근로복지공단에 반올림 투쟁하는데 갔었는데...이미 반올림 싸움을 잘 알고 있었는데 노조만들기도전에 노출될까봐 찾아뵙지 못했어요. 노조 만들고 나서 바로 삼성직업병 싸움으로 고생하신 황상기 아버님과 반올림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범죄의 기록이라고 생각하는데 노조 와해의 범죄의 계획을 세워놓은 보고서인 'S그룹 노조 전략' 문건이 2013년에 발견되었는데 정작 삼성의 처벌이 미비해서 현재 항고를 한 상태입니다.
“삼성은 우리가 에버랜드에서 노조를 만들고 나서 CCTV를 150대나 증설하였는데요. 얼마나 기능이 좋은지, 검색어를 넣으면 사람을 찾습니다. 설치한 목적은 현장사원들과 저희의 접촉을 차단하려는 목적인거죠. 저 2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해고되었는데 약간 서운했습니다. 사원들이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 때문에 마음이 안 좋았지요. 그런데 저희가 소송도 이기고 꿋꿋한 모습을 보면서 사원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가 작년부터는 노조 회의를 에버랜드 안에 가서 보이는 곳에 가서 합니다. 처음에는 피하던 노동자분들이 이제는 와서 물어봅니다. 삼성노동자들이 입사하면서 세뇌를 받고 딱딱하게 굳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를 좀 풀어주고, 노동조합을 해도 괜찮구나 하는 안정된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회사가 삼성이 노조를 만든다는 걸 알고 회유를 합니다. 돈으로 안 되면 다음엔 다른 방법, 그 다음엔 또 다른 방법...이런 식으로요. 이렇게 노동조합을 못하게 하는 내부조직과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있고 노조탄압 방법도 진화하겠지만 노조를 막고자 하는 모든 행위들이 불법이므로 한계가 있습니다. 해고 생활이 5년째 접어드니까 여러 가지 문제들도 있지만 한 고비 한 고비 넘기다 보니까 삼성전자 서비스지회나 이렇게 우리 노동자들이 움직임이 있고 그런 걸로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세번째 이야기손님은 공익인권법센터 공감에서 일하시는 김수영 변호사님을 모셨습니다.
“작년에 반올림과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투쟁이 주목을 받으면서 성과가 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을 바꿔서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삼성 바꾸는 것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세월호 문제도 그렇습니다. 오늘 박래군, 김혜진 두 분 재판을 다녀왔는데요.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세월호 참사를 겪은 지금 여기서 한국사회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정말 한국사회 희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힘냈으면 좋겠습니다.”
“갑자기 반올림 농성장에 오늘 드디어 간다는 생각을 해보니 문득 삶과 죽음이라는 굉장히 원초적인 것까지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합니다. 이제는 거짓말 그만했으면 좋겠고, 저기 뒤에 플랜카드에 써 있는것처럼 삼성의 커뮤니케이션팀 교섭단이 교섭을 정말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이젠 진실된 삼성으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이어말하기 피해자 사연은 희귀난치성 피해자 구성애 님의 이야기입니다. 며칠전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회복중에 있는 구성애 님은 오늘 낮에 농성장을 방문한 박원희님과 똑같은 희귀난치성질환인 ‘전신 홍반성 루푸스’ 피해자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분다 삼성반도체 포토공정에서 근무하신 분입니다. 구성애님의 쾌유를 빌면서 영상으로 보내온 사연을 함께 보면서 오늘 이어말하기 마치겠습니다.
“저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3라인 포토공정에서 전처리하고 디벨롭하고 하는 일을 했어요. 전처리 즉 세척 먼저 합니다. 그 공정이 지금생각하면 황산, 불산 이런 무서운 건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 한거 같아요.”
“전신홍반성루푸스라는 거예요. 약은 평생 먹어야하고 한번 먹을 때 열알 이렇게..얼굴이 달덩이처럼 변하고, 우울증도 오고 그랬어요, 집에 있는데 관절이 이상이 와서 손마디 무릎이 마비가 와서...애기는 배고프다고 우는데 저는 움직일 수가 없는 거예요. 애기는 우는데 신랑이 문을 두드려도 그때는 아파트에서 고통 없이 죽으면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항상 마음이 불안합니다. 어디 회사에 취업해서 일을 하려고 해도 이 자가면역질환이 언제 어디서 또다시 터질지 모르기에 그럴 수도 없는거예요.”
“희귀난치성질환의 잠복기가 얼마나 될지, 이게 자기네와 연관이 있는지 확실히 모른다면서 잠복기 5년까지만 해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3라인에서 저랑 같이 일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이숙영이라고, 그런데 죽었다는 걸 듣고 진짜 놀랬거든요 이거는 그냥 감출일이 아닌 것 같아요. 정말.. 다 드러내서.. 정말 옆에서... 관리감독하고, 그냥 1천억 기부... 이게 아니고 정말 단체 만들어서 옆에서 관리감독하고 그래야 될 것 같습니다”
아직 이 싸움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삼성의 거짓부렁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비가오나 눈이오나 여기서 기다리겠다. 확답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삼성은 사회적 대화에 성실히 임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