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오는 길, 아내도 집에 없고 집에 마땅히 먹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 앞 분식집에 들어갔습니다. 자주 이용하지는 않지만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여쭈어보지는 않았지만 주고받으시는 말로 보면 모자지간인 듯한 두 분이 주방과 테이블을 오가며 조리하고 서빙을 하십니다. 이집은 20년 넘은 식당인데 언제 가도 9개의 테이블 중 빈 곳도 없지만 가득차지도 않는 곳입니다. 거기다 가격이 워낙 싸서 임대료나 제대로 낼 수 있나 내심 걱정도 하게 되는 집인데 가만 생각해보면 자기 집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받는 가격 수준으로, 가득차지도 않는 9개의 테이블에 형곡동에서 장사가 되는 집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김밥 2,000원, 우동 2,300원, 떡라면 2,500원, 만둣국, 비빔밥 3,500원, 냉면 4,000원으로 가격이 매우 싼 데 반해 맛도, 양도 적당하니 좋습니다. 만둣국 등과 같이 국물 있는 분식을 시키면 공깃밥이 따라 나옵니다. 맛집으로 일부러 찾을 정도는 아니지만 한 끼 해결하는 데는 더할 나위 없습니다. 가장 비싼 돈가스도 6,000원에 불과한데 고기는 물론, 함께 나오는 밥도 푸짐하고 쫄면에 제철과일 몇 조각까지 곁들여주니 도서관 이용하는 학생들이나 주머니 가벼운 청춘들에게는 정말 멋진 곳입니다. 어떤 음식을 시키건 추억의 요구르트도 따라 나옵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오며 문득 3,500원짜리 만둣국이 먹고 싶어져서 찾았습니다. 두 테이블이 비어 있었는데 문 쪽에 있는 2인용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맞은편, 4인용 너른 자리에 앉으면 더 편하겠지만 혹 뒤에 3명 이상이 들어오면 앉을 자리가 마땅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평소에도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때마침 부식을 대는 이가 식재료를 가져오는 것을 보더니 문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제가 불편할까봐 문 밖에 두라고 하더군요. 이런 작은 배려의 마음이 크게 와 닿는 건 저만의 느낌은 아니겠지요. 기분 좋았습니다. 만둣국에 밥을 말고 고춧가루까지 풀어 평소보다 더 맛있게 먹었습니다. 착한 가격, 괜찮은 맛, 깨끗한 실내 환경도 좋지만 이런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게 아닌가 합니다. 일상 속에서, 작은 일 하나에도 배려하고 감동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자에게 가능한 즐거움이 아닌가 합니다. 기분 좋은 주말입니다. 사람의 발자국이 두려움이 아니라 반가움, 다스한 느낌을 주는 세상, 마음 속 무인도를 지우는 노력이 필요한 때이지요...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기분 좋은 주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40여년 함께해온 대학 서클 선후배님 중 사진동호회분들과 소양강 물안개를 보고, 휴양림에서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마음이 함께 하면 항상 따뜻합니다. 못 찍은 사진이지만 나누고자 합니다.
https://blog.naver.com/bornfreelee/221201124344
사람의 발자국(모셔온 글)===========================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는 것까지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는 혼자 힘으로 다 했어요.
일기도 쓰고 성경도 읽고 우산 같은 물건도 만들었지요.
함께 울어주고 함께 손뼉 칠 사람은 없었지요.
사람 없는 섬이었으니까.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 와서 제일 놀라고 무서웠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모래밭 위에 찍힌 사람의 발자국이었지요.
무인도에서 제일 그리워했던 것이 사람이었는데, 목마르게 찾던 것이 사람이었는데
막상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을 때 그는 호랑이를 만난 것보다
사자를 만난 것보다 더 두려워했었지요.
야만인은 사람을 잡아먹고 문명인은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팝니다.
그래서 사람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사람.
그렇지요. 무인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지요.
천만 명이 사는 도시라고 할지라도 사람의 발자국을 두려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무인도이지요.
-----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