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기적을 일으켜주십시오.
오늘 아침에 푸지따의 사진이 여러 장 들어왔다.
“선생님! 기적이 일어났어요. 푸지따의 발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활처럼 휘어진 다리가 곧게 펴졌어요.
믿겨지지 않아요.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이 누구보다 기뻐할 것이어서 선생님께 사진을 보냅니다.”
90도 각도로 옆을 향하고 있는 푸지따의 발부리가똑 바로 앞으로 돌아왔고 활처럼 둥글게 휘었던 다리가 곧게 펴진 사진이었다.
지난 11월 중순,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푸지따를 한 번 더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날이 저물어 마음이 망설여졌다. 뿐만 아니라 항상 동행하는 칸따 목사님이 다른 곳에 가셔서 선뜻 나서기 어려웠다. 그래도 지금 못 보면 내년 여름에나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애틋해져 용기를 내어 SPG학교 호스텔로 향했다.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찾아가서 푸지따 만 가만히 보기로 하였는데 웬걸! 호스텔 뜰에 전등불이 밝혀져 있고 학생들이 정렬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함정에 빠진 사람처럼 꼼짝 못하고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모두에게 13세 소녀 푸지따의 슬픈 히스토리를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사감과 푸지따의 학급 친구들과 방 친구들에게 푸지따를 사랑하고 배려해주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와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게 무슨 일을 도와주는가? 그의 성격이 어떤가?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학습 태도와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가? 기숙사 생활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는가? 생활 습관이 어떤가? 등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다.
친구들의 대답에 의하면 그는 명랑하고 부지런하다. 공부는 영어와 산수가 뒤처져있고 나머지는 보통 수준이다. 말을 많이 하지 않지만 가끔 엉뚱한 말과 우스갯말을 해서 좌중을 웃게 만든다. 키가 작고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가장 먼저 학교에 가고 가장 늦게 호스텔에 돌아온다. 학교나 호스텔에서 규칙을 어기지 않고 지킨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지 못해서 친구들이 날라다 준다. 빨래를 못해서 상급생들의 도움을 받는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청소나 기타의 일들에서 면제를 받는다. 그러나 아침 6시 기도회에 열심히 참석하며 주일예배에도 앞장서서 간다. 최근에는 찬송을 배워서 열심히 부르고 있다.
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새겨들으면서 그들에게 장애를 가진 푸지따를 이해하고 따스하고 친절하게 대해달라고 거듭 호소하였다. 그리고 준비한 선물의 일부를 사감에게 드리고 나머지를 푸지따에게 가방 채로 주었다.
어스름 불빛아래서 수많은 눈동자들이 나를 주시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졌다. 나는 가능한 빨리 그 자리를 떠나려고 앞으로 푸지따에게 친절한친구에게는 다음에 다시 만날 때 특별한 선물을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말을 마쳤다. 갈 채비를 하는데 갑자기 푸지따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더니 나를 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였다. 노래를 나에게 바친다고 해서 내심 소프라노 가수처럼 잘 부르는 노래를 기대하였는데 노래가 신통치 않았다. 높낮이도 별로 없고 잔잔하고 느려서 졸렸다. 노래가 지루하고 길어서 빨리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었다. 자리를 뜨려는데 통역으로 따라온 제니가 노래 가사를 통역해주었다. 그런데 그 가사가 나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원래 노래의 가사는 여러 절인데 “주님은 우리가 그의 앞에 나갈 때 금과 다이아몬드 같은 값비싼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는 우리의 온전한 마음과 정성을 기뻐하시지요. 그는 크고 화려한 엄청난 것들을 바라지 않아요. 순수하고 소박한 우리의 사랑과 믿음을 기뻐하셔요. 그는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져주십니다. 맡기는 믿음, 순종을 기뻐하십니다.”라는 비슷한 내용이 반복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 가사가 내 귀에는 아주 다르게 들렸다.푸지따가 자기에게 올 때 많은 것을 준비하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나에게 그러지마라고 권고하는 것처럼 들렸다.
“선생님, 제게로 오실 때 힘들게 금과 다이아몬드를 가져오려고 하지마세요. 마음과 정성으로 오시는 선생님이 좋아요. 선생님, 저에게 뭔가를 자꾸 주려고 하지 마세요. 사랑으로 저를 바라봐주세요. 저를 믿어주세요. 선생님, 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 저를 하나님께 맡기세요.”
처음에는 마음에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으면서 부담감 때문에 나의 은퇴 햇수를 따지면서 언제 그만 둘 것인가를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였다. 그리고 잘 보살피려는 마음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부담 없이 가볍게 사랑하며 축복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그 노래가 푸지따가 나를 위해서 부른 노래, 나에게 바친 노래라고 생각하니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아주 묘해졌다. 수고와 희생을 감사하기는커녕 사랑만 해달라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자기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젠장! 아무런 고통분담과 수고와 갈등도 없이 사랑으로만 대해주면 된단 말인가?
젠장! 셋집에서 쫓겨나기 전에 그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학교를 기숙학교인 SPG학교로 옮기고 그가 호스텔에 거주할 수 있도록 주선하고 공휴일이나 방학 때는 희망공동체 게스트 룸을 주기로 한 것과 그를 위해서 통장을 만들어서 적금을 들게 하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라는 말인가?
고아이며 장애아동이 곁에 있는데 보통아이들 대하듯이 대할 수 있느냐 말이다.
당연히 자기 삶을 책임질 수 없는 그의 미래를 생각하며 언제까지 돌보야 하는가? 어디까지 돌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삐딱해진 나는 하나님께 두런거렸다.
하나님, 제가 푸지따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이 사실입니다.
언제까지 돌볼 것인가?
은퇴하면 모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10학년 졸업 후에 직업훈련을 시켜야하는가?
대학교 교육을 시켜야 하는가?
그리고 집을 사주어야하는가?
어느 정도 치료가 가능하다면 수술을 시켜주어야 하는가를 생각합니다.
하나님, 당신께서 제게 맡긴 푸지따를 다시 당신에게 맡기게 하려면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를 사랑해서 평생 함께 살고자하는 친구를 그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의 몸에 기적을 일으켜 정상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로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언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에게 문학적 재능을 주셔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현재까지 그를 위해서 제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일은 다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그를 위해서 기적을 일으켜주십시오.
11월 방문 이후, 나는 툭하면 하나님께 외람되게 말씀을 드렸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기적을 일으켜주십시오.”
그리고 오늘 아침에 거짓말처럼 가슴이 뛰는 기적의 소식을 들었다.
할렐루야!
푸지따의 노래를 다시 생각해보니 기적은 나의 기도 때문이 아니었다.
고아이고 장애 아동으로만 여긴 푸지따는 이미 온전한 마음과 정성으로 하나님을 사모하며 기도하는 아이였고 하나님은 순전한 그의 기도에 응답한 것이다. 푸지따의 노래는 그의 순수하고 뜨거운 신앙고백이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일어날 하나님의 기적이 기대가 된다.
할렐루야!
2023년 12월 9일 인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