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寂寞荒田側 적막황전측 繁花壓柔枝 번화압유지 香輕梅雨歇 향경매우헐 影帶麥風欹 영대맥풍의 車馬誰見賞 거마수견상 蜂蝶徒相窺 봉접도상규 自慙生地賤 자참생지천 堪恨人棄遺 감한인기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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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거친 밭 곁에
탐스런 꽃송이 약한 가지 누르네 장맛비 그쳐 향기 날리고 보리 바람에 그림자 흔들리네 수레나 말 탄 사람 중 그 누가 보아 주리 벌 나비만 부질없이 서로 엿보네 천한 땅에 태어난 것 스스로 부끄러워 사람들이 버려두나 그저 참고 견디네 |
최치원(崔致遠 857-?)은 신라의 6두품 출신 학자이며 문장가이다.
4살 때 글을 배우면서 점차 문리를 통하며 10살 때 사서삼경도 읽을 정도.
부친은 신분 한계를 느낀 터에 12살 치원을 868년 당나라 유학보내고...
부친의 당부는 엄격하고 의미가 깊다. “10년 공부하여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라 하지 말라. 나 역시
아들이 있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가서 열심히 해라.”
치원은 '졸음을 쫓으려 상투 매달고 가시로 살 찌르며,
남이 백을 할 때 천의 노력을 했다.' 드디어 6년 째에(874년)
18세 나이로 외국인을 위한 빈공과에 장원 합격을 하였다.
당나라 관리로 활동하였지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은 귀국결정으로 결론나고...
17년의 외국생활을 끝내고 28세의
한창 일할 나이로 884년 귀국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의 벽에 막힌 결과,
현실 정치를 기피하고 홀로 은둔생활을 펼친다.
바로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꽃피우는 접시꽃처럼...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치원...
그러나 치원이 남긴 글들은 역사를 뚫고 지금껏 빛을 발한다.
접시꽃...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기 본분을 지키는 꽃이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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