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문
바깥문 2층내부
대성전
서무
경성향교는 19세기 후반의 조선시대 건물이다.
勝岩山의 동쪽 기슭에 동해
쪽을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남쪽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정북사가 있고,
남동쪽 약 1km되는 곳에는 옛 邑城이 있다.
다른 향교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건물들이 갖추어져 있었으나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적지 않게 파괴되어
지금은 바깥문, 대성전, 서무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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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文里24개
돌유적 -
함경북도 鏡城郡
會文里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empas.com%2Froks821%2F3790581_600x321.jpg)
함경북도 鏡城郡 會門里에
위치한 발해의 유적이다.
이 유적은 회문리 소재지에서
서 북쪽으로 약 300m 떨어진
밭 가운데서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돈화시 소재지
교외나 관지, 해청방, 요전자 등에서
알려진 24개 돌유적들과
같은 성격의 특수한 기념건축물터이다.
유적의 기단은 남북
19.2m, 동서 13.5m의 장방형으로 생겼으며,
높이는 1m 정도이다.
현무암을 대충 다듬어 만든
주춧돌은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70-90cm
정도이며, 땅 속에 30cm 가량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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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군복 -
함경북도 화대군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blog.empas.com%2Froks821%2F3798333_494x804.jpg)
이 군장복은
조선시대(19세기 말)의 유물로, 구한말의 정치가
이용익 (李容翊,
1854~1907) (普成學院 設立者)이 입었던 군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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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성읍성
-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
이 읍성은 두만강 연안의 방비를 한창 강화하던 시기인
15세기 중엽에 처음 쌓고, 17세기 초엽(1608년)에 줄여
중성을 쌓았으면서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
수항루는 종성읍성을 개축하던 시기에 두만강 건너에서
우리나라를 노리는 외부 침략자들에게 대비하기 위하여
지은 3층 누정이다.
화성쌍계사
- 함경북도 화성군 부암리
애월루
대웅전 두공렬과 처마
화성 쌍계사는 함경북도 화성군 부암리 백록산에 있는
1684년의 조선시기 사찰이다.
쌍계사는 '동국여지승람'이나
'북관지'에도 그 이름이 나오며,
대웅전 마루도리에서 나온 글에 1395년에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조선 초기의 절임이 확실하다. 현존 건물은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1684년에 지은 것이다.
개심사
-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
개심사는 826년에 창건하고 1784년에 재건한 조선시대 사찰로,
함경북도 명천군 보촌리 칠보산에 자리하고
있다.
개심사는 "함북금강"으로 불리는 칠보산의 내칠보에서도
경치 좋기로 이름난 개심대에 위치하고 있다.
기록에 의해 이 사찰이 826년 대원화상에 의해 창건되었음이 밝혀졌다.
그후 1853년에 또한
대대적으로 재보수되었다.
함흥성
-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
함흥성은 고려시기 북관을 개척하고 설치한 9개 성의 하나로서
1108년에 축성한 것이다
함흥
선화당 -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
함흥 선화당은 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에 있는 1416년의
조선시기 건물로
1764년에 재건한 함경도
관찰사(감사)가
행정사무를 보던 지방관청(감영)의 기본건물이다.
함흥은 국방상 중요한 고장이었던 까닭에 역대 왕조에서 중요시하였다.
고려에서는 1108년 여기에
함주대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그 후 도호부를 폐지하였다가 1369년에 함주목으로 급을 높였다.
조선에서는 1416년에 종전의 영길도를 함길도로
고치면서 도
소재지를 영흥(금야)으로부터 함흥으로 옮기였으며,
그 때 관찰사 본영인 감영 건물들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