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go
飛上
Legend of Autumn
… 그는 굉장한 부자였으며, 그의 돈과 권력에 많은 여자들이 그를 따랐답니다. 하지만 그것에 만족을 하지 못하였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숲 속에서 의문의 습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지요.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으나, 누구 하나 그를 도우러 오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가 눈을 떴을 때, 숲의 소녀가 그의 앞에 앉아 있었답니다. 그를 향해 살짝 미소
짓고 있는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해버리고 말았죠.
~ 단풍이 들려주는 이야기 ~
[9]
Talked by CYnon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표지판 같은 거야.」
여기는 아휄의 기숙사 방입니다. 아휄과 같은 방을 쓰는 3학년 로베르토가 수업을
들으러 가고 없는 동안, 그의 방에는 야곱과 이아린이 들어와 있었죠. 아휄의 책상
주위에는 아직도 이런저런 책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책상 위에는 두꺼운 제국어 사전도 눈에 띕니다. 그는 마법의 숲에서 발견한 비석에 쓰인 글을 옮겨 적은 종이를 꺼내 야곱과 이아린에게 보여주는군요.
「이건 로맨가르라고 쓰여 있는 거야. 그리고 이건 벨리야드 연방. 그리고 비석의
정면엔 정확히 ‘고르고스의 도시 에르휘냐’라고 쓰여 있어.」
아휄은 무언가 복잡하게 생긴 글자들을 짚어가며 그들에게 말합니다. 이아린도
어제의 그 비석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네요.
「맞아, 이게 앞쪽에 커다랗게 써 있던 글씨지?」
「하지만, 그 주위엔 그 비석 말고 다른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잖아. 그 곳이 에르휘냐라면, 무언가 폐허가 된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앞쪽에 써 있던 다른 글자들은 해석해 봤어? 언뜻 보기에 ‘아르멜’이라는 글자를 본 것 같은데.」
아휄은 야곱의 말에 자신도 같은 생각이라는 눈짓을 하고는, 어지럽게 흩어진 종이들 속에서 한 장을 찾아 듭니다. 아마도 앞쪽의 글자들을 해석해서 적어놓은 글인 것 같네요.
「대강 해석해 보기로, 고르고스가 아르멜의 호수의 한 가운데로 들어갈 때, 잊혀진 옛도시는 모습을 드러내리라. 영광의 페이시스를 기억하는 이는 모두 고르고스의 도시 에르휘냐로 오라. 세르스데갈 포레스트는 그들로부터 영원히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는 도저히 해석이 안 돼. 아무래도 고대어가 아닌가 싶은데.」
아휄은 한 줄 띄고 적힌 곳을 가리키며 고개를 접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 위의 글자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띄고 있군요. 수업 중에 고대어 수업이 있어서 그 글자들의 대강의 모습을 알아보기는 했지만, 수업 시간에 완전한 언어로써의 고대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했죠. 이아린이 말합니다.
「고르고스란 말이 많이 나오네. 대체 그게 뭐야?」
「글쎄… 그냥 발음 나는 데로 적어놓은 거야. 아마도 무슨 고유명사 같은 게 아닐까 싶은데.」
아휄이 야곱을 쳐다보지만 야곱도 ‘고르고스’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는 지 어깨를 들썩합니다. 아휄이 종이 위의 한 곳을 짚으며 말을 덧붙입니다.
「그리고 여기… 페이시스란 글자는 칼로 긁혀 있어서 잘 알아볼 수가 없었어. ‘영광의’란 수식어 때문에 페이시스가 아닐까 생각한 거지.」
그의 말에 야곱은 눈을 위로 올린 채 깊게 숨을 들이마시는군요.
「페이시스 시대라면… 1000년 전의 이야기로군. 영광의 페이시스, 전무후무하게
대륙을 통일한 유일한 국가의 이름을 마법의 숲에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근데 페이시스랑 에르휘냐랑 무슨 상관이야?」
아휄이 적어놓은 종이를 나름대로 곰곰이 읽어보던 이아린이 물었고, 아휄이 대답하네요.
「에르휘냐는 페이시스 시대부터 존재했던 마법의 도시야. 그 당시에는 동부의
요정들의 중심지였다고 하지. 하지만, 페이시스가 멸망하면서 에르휘냐도 같이 사라졌어. 가을의 전설은 그보다 300여년 뒤를 배경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고.
그 전설이 이멘제르에 전해 내려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곳을 이멘제르이거나 카렝일 거라고 생각을 한거지. 이 근처에 도시라곤 그 둘 밖에 없으니까.」
「새르스데갈 포레스트는 또 뭐야?」
유난스레 지식욕이 왕성해진 이아린이로군요. 마치 우리의 궁금증을 하나하나 풀어주려는 것만 같습니다. 이번엔 야곱이 대답하네요.
「그건 제국이 마법의 숲을 부르는 말이지. ‘세르스데갈’이란 북방 민족들이
요정을 지칭하는 말이거든. 마법의 숲은 아주 오래전에 요정들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숲이니까. 페이시스가 대륙을 통일할 때 절대적인 힘이 되었던 그들 요정들의
우두머리가 바로 아르멜이지. 본래 수명이 긴 요정들이기에, 아르멜은 페이시스의
건국과 함께 그 멸망까지 함께 지켜본 것으로 유명해. 그리고 저 세르스데갈 포레스트, 마법의 숲 속에 몸을 숨겼다고 하지.」
「응, 그렇구나.」
이아린이 고개를 끄덕이고 저도 고개를 끄덕이고 여러분도 고개를 끄덕이셔야 해요. 아휄과 야곱이 무리해서 많은 설명을 했군요. 이아린과 함께 야곱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던 아휄이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엄지와 검지로 ‘딱’소리를 냅니다.
「아, 그렇구나. 생각해 보면 에르휘냐가 마법의 숲의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쉬운 일이었어. 에르휘냐는 동부 요정의 중심지였고, 마법의 숲은 오래
전 요정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곳이니까. 설마 이아린이 그것까지 생각해서 알아낸
정보는 아닐 텐데 말이야.」
아휄이 이아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립니다. 야곱과 아휄이 가을의 전설을 찾는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에르휘냐가 마법의 숲에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폴짝폴짝 뛰면서 나타난 이아린이었다죠. 이아린은 아휄의 말에 시선을 돌리며 입술을 삐쭉거립니다. 야곱은 그런 이아린을 곁눈으로 힐끗 쳐다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죠.
「일단은 계속 마법의 숲을 돌아다니면서, 좀 더 에르휘냐에 대한 흔적이 없나 찾아보자고. 그리고 비석에 적힌 글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휄이
수고 좀 해 줘도 되겠지?」
「물론. 맡겨 달라고.」
gogo 비상!
다음 날, 엘른데스 마법학교.
적어도 그날 아침은 오랜만에 가을치고는 온화한 날씨였죠. 야곱과 아휄은 승리의 전당 뒤쪽 등나무 아래에서 가을의 전설에 관한 얘기를 한참이나 주고받고 있었죠. 언제부터인가 승리의 전당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답니다. 그보다는 잔디밭 멀리서 또렷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죠. 적갈색의 머리카락에 가죽조끼와 헤진 청바지, 그리고 쇠고리 목걸이가
여전히 위협적인 세릭이었지요. 세릭은 터덜터덜 걸어와 그들 앞에 섭니다.
「안녕하세요, 세릭 누나.」
「어, 그래. 오랜만이다, 아휄. 그나저나 뭣 좀 물어볼 게 있는데 말이야.」
아휄이 고개를 끄덕이자 세릭이 목을 가다듬고 얘기합니다. 아니, 얘기하려다 맙니다. 세릭의 입에서 ‘ㄱ’으로 시작하는 무언가가 나왔지만 결국 끝까지 ‘ㄱ’음만을 남기고 사라졌죠. 아휄이 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세릭을 바라보자, 그녀는 낮은 신음소리를 흘리는군요. 눈가에 주름을 잡고 머리를 긁적입니다.
「뭐였더라.」
세릭은 다시 한번 팔짱을 끼고 그 무언가를 생각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허공에
손을 내젓는군요. 그녀는 아휄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쉽니다.
「젠장. 일주일 치 식권이 달린 문젠데 그걸 까먹다니, 나도 늙었나보다.」
「또 아크 형이랑 무슨 내기라도 하신 모양이죠?」
「뭐, 비슷하지. 그 녀석이 그… 그… 뭔가가 하는 게 뭔지 알아다주면 일주일 치
식권을 바치겠다는 거야. 그 녀석이 그럴만한 녀석이 아닌데, 역시 이아린의 도움이 크단 말이야.」
세릭은 지나가는 말로 한 소리였지만, 아휄은 이아린이란 소리를 듣고는 귀를 쫑긋 세웁니다. 그리고 묻는군요.
「이아린의 도움이 크다니요?」
「아, 별 거 아냐. 아크 그 녀석이 이아린을 되게 싫어하는 척 해도, 사실 지 동생이라고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한단 말야. 이아린은 아크 녀석을 정말 대마법사라고
믿고 있으니까.」
세릭은 일전에 아크의 어설픈 포즈를 보고 ‘멋지지 않아요?’라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던 이아린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음을 흘립니다. 세릭은 ‘아크도 그게 뭔지
벌써 까먹었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벤치에서 일어나네요.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던 그녀는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다시 뒤로 돌아섭니다.
「아차, 지금 광장에 누가 왔더라. 우드라이너 그 자식이 아주 환장하겠던데.」
우드라이너는 엘른데스 마법학교의 그랜드 마스터, 그러니까 학장이 되는 사람이죠. 세릭의 말에 지금까지 잠자코 앉아있던 야곱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아휄은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좀 소란스럽긴 했어, 안 그래?’라고 말하며 야곱을 돌아봤지만, 야곱의 눈은 퀭하니 풀린 채 목적 없이 앞을 향하고 있었죠. 아휄이 두어 번
그의 어깨를 건드리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군요.
「왜 그래, 야곱?」
「아, 아냐.」
야곱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마른 침을 목구멍으로 넘깁니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설마가 사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죠. 하지만 그
설마는 아마도 리브릭의 등장으로 기정사실이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마, 마침 여기 있었군, 야곱!」
저렇게 리브릭이 허겁지겁 뛰어오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군요. 그의 뒤로는 다시 이름이 생각난 루지와 아직도 이름이 생각 안 나는, 혹은 밝히지 조차 않은 한 소년이 따라서 달려옵니다. 아휄은 살짝 눈가에 주름을 잡은 채 리브릭을 쳐다보았지만, 평소 같았으면 콧방귀부터 뀌고 말을 시작했을 리브릭은 숨을 가다듬느라 정신없군요. 승리의 전당 너머로 손을 뻗으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지만 거친 숨소리
때문에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그 소리는 점차 또렷한 단어로 바뀌어 갑니다.
「배, 배, 백작…」
순간 야곱과 아휄의 표정이 굳어집니다. 설마가 사실이 된 모양이군요. 리브릭은
입이 귀까지 찢어져서는 다시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일종의 확인 사살쯤 되는 말이겠군요.
「후거 백작님께서 오셨다고! 네 아버님께서 말이야!」
야곱은 어깨를 뚝 떨어트리며 몸 전체를 벤치에 기댑니다. 아휄도 아랫입술을 깨문 채 중얼거리는군요.
「결국… 찾아냈군. 설마 이멘제르까지 찾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할 거야, 야…」
아휄이 막 야곱을 돌아보려는 때, 리브릭의 뒤에 서 있던 덩치 큰 녀석이 그와 야곱 사이로 들어오며 아휄을 뒤로 밀쳐버립니다. 리브릭이 야곱의 팔을 잡아끌며 말하는군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야곱. 백작님이 기다리고 계시다고.」
야곱은 리브릭의 손을 뿌리치고는 제 힘으로 벤치에서 일어섭니다. 그는 잠시 싸늘한 눈빛을 리브릭에게 보내고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아휄과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는군요. 한참이 지나서야 야곱은 살짝 웃으며 말합니다.
「걱정 마.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아휄은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는 야곱의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죠. 야곱의
뒤를 리브릭 외 2명이 서둘러 쫓아갔고요. 멍하니 야곱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아휄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작게 중얼거렸죠.
「야곱이 스플랜다이드로 돌아가면…」
아휄은 그 뒤의 말을 말하려다 말고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그는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죠. 하지만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그 말이 자신의 본심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만은 떨궈지지 않은 것 같네요. 내일은… 비가 오려는 모양입니다.
##후기##
여행 갔다 왔어요! 동해바다로 3박~ 즐거운 여행이었죠. 그리고 피곤-.-
아마도 다음 화에 단풍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끝날 거랍니다.
그리고 그 다음화부터 다시 새로운 챕터인 '아르멜 호수의 달빛'이 들어가죠.
번뜩 생각난 챕터 제목인데 마음에 들어서 그냥 채택!
야곱-아휄-이아린, 티에르-세프릴-에릭의 대결 구도(라지만 이 챕터에서는
거의 나오지도 않은 티에르들..)가 조금 다른 양상으로 변모되죠.
그리고 뭔 일이 일어날 지는 쓰면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어서 완결을 보고 싶네요. 여러모로 부족한 글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