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4.27.목 새벽예배 설교
*본문; 갈 6:17
*제목; 기도 배우기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 6:17)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모든 것에는 각자 나름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나무들에게는 나무의 언어가, 새들에게는 새들의 언어가, 스쳐가는 바람에도 바람의 언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를 익히면, 그들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그래서 산책하며 나무와 꽃들과 새들에게 이야기를 건내고, 또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바람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까? 한 마디로 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도 처음 만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어색한 침묵이 흐르지 않습니까? 또한 그들의 언어도 모릅니다. 당연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늘 기도시간에 혼자서만 떠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자리를 일어납니다. 그러니 기도가 위로도 힘도 기쁨도 없는 것입니다.
이 독백과 같은 기도의 원인은 다시 정리해보면,
첫째로 하나님과의 긴밀한 대화를 위해, 하나님의 언어를 익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성경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언어를 익히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혼자서 떠들고(?) 일어나 버리고서는 기도했다고 착각을 합니다. 이는 “푸념”일 수 있습니다. 기도에서 더 중요한 시간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가 맺어져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마음과 생각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정직하게 아뢰고,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려 해야 합니다. 그러면 소통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하나님과 대화하게 되면, 우리 안에 “예수의 흔적”이 생깁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깊은 교제를 하기에,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시 흔적이 내 안에 남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러한 “그리스도의 흔적”을 담는 시간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일방적으로 하나님께 쏟아 놓고 벌떡 일어나는 것은 기도를 온전해 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기도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언어(말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을 알려고 노력할 때, 기도의 소통이 일어나고 이런 자에게 "예수의 흔적"이 담겨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