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읽었던 이 시를 찾아 꺼내 읽는 저물 무렵입니다.
점심 먹고 나서 반은 졸면서 비즈니스 서적 교정을 보았고,
일본어로 된 아동서 몇 권을 훑어보았습니다.
또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이라는 여자의 그림책 2권을 찬찬히 읽어보았습니다.
그림책을, 눈으로 보며 읽는 일은 늘 즐겁습니다.
더러 그림이 글과 어울리지 않는 책도 있긴 하지만, 대가일수록 그림이 글의 여백까지 그려주어
읽으면 상상력이 더 자랍니다. 저 같이 멍청해져버린 어른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저물어가는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며 <저물 무렵>이라는 시를 읽어봅니다.
<저물 무렵> -배창환
하루해 노그라진 몸 뉘려고 욱은 잔솔밭에 둥지 튼 마을 집으로 오는 길입니다.
오늘은 특별히 하늘땅 어디라 할 것 없이 한폭으로 거창하게 펴놓은 애저녁 놀빛 때문에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불타오르는 건 아마도 처음부터 붉은빛에 속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의 그윽한 눈빛 같은 꽃 한덩이, 순식간에 사방팔방 꽃보라로 흩어져 모두 제자리 하나씩을 차지해가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문득, 너무 아름답다는 말을 흘릴 뻔하다가, 한참 전 언젠가의 바로 오늘, 저 놀 앞에서 잊어버렸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내 죽음도 저런 것이었으면, 내 삶도 저런 것이었으면……
남을 것은 남고 바쁜 것들은 또 제 길을 찾아 서둘러 떠나도록 홀로 남아 바라보는, 미루나무 몇그루 있는 그 길이 점점 비어서 아득해지는, 저물 무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