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39편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1. 시 39편은 어떤 시인가?
이 시는 “개인적인 탄원”이다. 다른 탄원시들과 달리 개인적이고 친밀한 특성을 지닌다. 아마도 다윗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하나님과 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 다윗은 이 시에서도 눈물을 말한다. 다윗은 시 6:6에서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띠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했고, 시 42:3에서는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했고, 56:8에서는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라고 했다. 본문에서는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라고 했다. 그런데 이 눈물은 앞에서의 눈물과 조금 성격이 다르다. 그저 대책 없이 울고만 있지 않았다. 눈물 뒤에 깊은 성찰이 있었고, 나아가 그 눈물은 기도로 이어졌다. 그래서 이 눈물은 가장 아름다운 엘레지(elegies)가 되고 있는 것이다.
2. 시 30편의 내용은 무엇인가?
1) 짜임새
이 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1-3이다. 이 연에서 시인의 복잡한 심경에 대한 내용이 기술되고 있다. 둘째는 4-6이다. 이 연에서는 인간 존재의 한계성이 논의 된다. 그리고 셋째는 7-13이다. 이 연에서는 시인의 깊은 참회가 토로되고 있다.
2) 풀이
# 첫째 연/ (1-3) - 복잡한 심경에 대한 서술
* 1 절
시인은 행동을 조심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침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시인은 지금 인간이 견디기 힘들 정도의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다. 그 고난으로 감당하기 힘든 고뇌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행동을 조심하고 침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악인이 내 앞에 있을 때에”라는 상황을 강조한다. 평소에도 그렇게 하겠지만 악인이 앞에서는 더욱 행동에 조심하고 특히 침묵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과 적대적 관계 속에 있는 악인이 보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께 불평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자신의 고난에 대해 당장 응답하지 않고 계시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한다면 저들은 시인의 고난을 고소해 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정의를 조롱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더욱 저들은 계속해서 시인의 심경을 격동시키려고 충동질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럴 때 휘말리지 말고 행동을 조심하고 침묵을 지켜가겠다는 것이다.
* 2절
시인이 행동을 조심하고 침묵을 지켰지만 여전히 문제는 더 꼬이고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악인은 더욱 모든 일이 잘 돼갔다. 그래서 이 상황에 대해 좋은 해석으로 좋은 말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갔다는 것이다. 결국 근심이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지금 시인은 말을 참고 있지만 그 속에서는 불이 나고 있다. 그렇지만 계속 참고 있다. 점점 견디기 어려운 한계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참기 힘든 그 한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처절한 영적인 고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 3절
시인은 더 이상 참기 힘들 정도로 마음이 뜨거워졌다. 고통으로 그 마음이 달아올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혼자 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더욱 마음에 불이 붙었다. 즉 이제 감정이 폭발했다는 것을 말한다. 시인은 이제 막다른 골목까지 참고 견디다가 침묵을 깨뜨리게 된다.
# 둘째 연/(4-6) - 인간 존재의 한계성에 대한 깨달음
* 4절
시인은 침묵을 깨고 말을 하는데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 말씀을 드린다. 즉 기도한다. 불타는 마음 폭발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만일 이 순간 사람을 향해 입을 열었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다. 우선 자기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저주가 쏟아질 것이고, 다음으로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이 터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하나님께 입을 열었다. 여기에 시인 다윗의 위대한 점이 있다.
기도 내용도 놀랍다. 왜 자기의 고난을 보시고도 가만히 계시냐고 또한 악한 자들은 여전히 번영하도록 내 버려 두시느냐교 따지거나 항변할 상황이다. 그러나 뜻 밖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어떤 존재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도대체 어떤 존재냐고 잘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자신이 종말이 있는 자 임을 잊지 말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종말이라는 관점에서 지금의 이 고난을 이해할 수 있는 눈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끝이 있는 존재라는 깨달음 속에서 보는 번영과 고난은 다르게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그래서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어차피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아무 것도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그 깨달음으로 자신의 고난을 바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 5절
하나님께서 주시는 통찰 속에서 자신이 깨달음을 하나님께 확인차 말씀드린다. 우선 주께서 자신의 날을 한 뼘 길이 만큼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길이를 재는 방법으로 손 넓이 곧 테파(tepah)를 사용했다. 그 길이가 7.5센티미터 정도가 된다. 1 센티를 10년으로 잡는다면 약 75년이 된다. 이것은 하나님 보실 때에 아무 것도 아니다. 영원의 눈으로 보면 없는 것과 같다. 이런 인생이 전성기를 구가한다고 해도 정말 잠깐일 수 밖에 없다. 저 툰드라 지대 짧은 여름 동안 싹을 티우고 꽃을 피고 씨를 퍼뜨리는 들꽃들은 그저 3-4일 꽃을 피울 뿐이다. 그 3-4일 전성기를 구가해도 정말 잠깐이다. 여기서 허사는 헤벨(hebel) 단지 한 숨 뿐이다. 너무도 허망하다는 것이다.
* 6절
결국 인생에 대한 깨달음 종합은 이렇다. 우선 사람은 그림자처럼 다닌다. 그의 걸음은 결국 그림자가 휙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애쓰고 땀 흘려 보지만 헛된 일들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잔뜩 소유해 보지만 그것들도 결국 자기의 소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 셋째 연/ (7-13) - 시인의 참회
* 7절
이제 그림자 같은 허망한 인생에 대해 깨달은 뒤 인생의 소망에 대해 묻는다.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이런 깨달음을 얻기 전에 내가 바라던 것과 이제 인생이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난 후 내가 바라는 것은 달라진다. 바로 궁극적인 소망이 주님이라는 것이다. 이제 돈도 명예도 권력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시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것이다.
* 8절
이제 시인은 주님께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죄 문제가 더욱 중하게 다가온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문제가 낱낱이 드러나 보이듯이 하나님 앞에 서니까 자신의 죄가 심각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다시 기도를 시작한다.
“나를 보든 죄에서 건지시며” 즉 용서해 달라는 기도인 것이다. 아울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에게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이제 오히려 자신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 9절
다시 침묵의 주제가 나온다. 그러나 앞의 침묵과는 다르다. 앞에서는 악인의 형통 때문에 침묵해야 했지만 여기서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침묵하고 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며 침묵한다. 악인이 번성하는 것도 다 하나님께서 섭리 가운데 하신 일이기에 나는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 10절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이 고난을 거두어 달라고 간구를 드린다. 징벌은 재난이고 죽을 병이다. 그리고 주의 손의 치심은 하나님의 고통의 매를 말한다. 지금 시인은 하나님의 징벌과 주의 손의 치심 때문에 큰 고통을 겪고 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엎드리니까 이제 거두어달라는 간구를 드리는 것이다.
* 11절
여기서 자신의 추한 모습을 부각시킨다. 자신이 지금 좀먹듯 모든 과거의 영화가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절히 호소하고 있다.
* 12절
기도를 들어달라고 다시 간절히 호소한다. 자신이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눈물을 보시고 주께서 응답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자신을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라고 칭하고 있다. 마치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여 고향 땅을 버리고 머나먼 가나안 땅에 나그네로 머물렀던 것과 같다는 것이다. 지금 자기도 영적 순례자로서 주님과 함께 이 땅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 13절
시인은 지금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다.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이라 말하고 있다. 죽기 직전 온 몸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건강을 회복시켜 달라고 청하고 있다. “나로 다시 미소 지을 수 있도록”이라고 영어 성경이 번역하고 있다. 이제 생의 마지막 순간에 미소지을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3. 시 39편은 어떻게 묵상할 수 있을까?
1) 침묵이 필요하다
시인은 죽음의 고통 앞에서 억울하고 기가 막힌 상황 가운데서도 침묵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말은 죄만 더욱 키우기 때문이다. 우리도 깊은 침묵이 필요하다.
2) 깨달음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림자 같은 존재임을 있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주와 함께 하는 나그네임도 있지 말아야 한다. 허무한 존재이지만 주님과 함께 할 때 의미가 있다.
3) 눈물이 필요하다.
눈물보다 더 강한 호소는 없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뜨거운 눈물로 드리는 기도는 정말 강한 호소력이 있다.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