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초대시-1]하늘은 편지지 / 우당 김지향 , 겨울 들녘에 서서/오세영
하늘은 편지지 / 우당 김지향
나는 날마다 하늘 편지지에 편지를 쓴다
내 새파란 사연을 평생토록 쪼아먹은
하늘 살갗이 파랗게 잉크물 들었다
하늘 치마가 출렁출렁 나부낄 땐
내가 쓴 푸른 고통이
다 헤진 휴지같은 사랑이
푸르른 희망으로 각색된 답장 한 묶음이 되어
종이비행접시처럼 날아온다
하늘은 푸른 씨를 모종하지 않아도
편지받는 사람의 가슴마다는 푸른 싹이 돋는다
푸른 잎이 팔랑이는 창마다
하늘 편지지에 한밤 내 쓰고 받은 답신
한장의 꿈이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있다
(때론 임자없는 신발처럼 떨어져 나뒹구는
편지도 있다)
나는 때때로 찾아가는 옛집의
팽나무 살갗에 오늘 열매처럼 오돌오돌 돋아난
푸른 희망의 글귀 몇 점 먼지에 덮여
자고만 있는 종이비행접시 한 장 읽는다
저 네거리에서 촛불로 사랑을 외치던
그가 하늘로 수납된 지 이미 오래 되었음을
(하늘은 가끔 답신에 답신 없는 사람은)
그 날로 벽난로 끄듯 말끔히 회수해감을 읽는다
오랜 세월 내 귓바퀴를 돌며
고막을 씹던 바람의 푸른 송신음
접혀진 하늘 한 귀퉁이가 발신처임을
이제야 이제야 읽는다
*열두시인 신앙시집 <성경 속의 여인들> 에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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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들녘에 서서/오세영
사랑으로 괴로운 사람은
한 번쯤 겨울 들녘에 가 볼 일이다.
빈 공간의 충만,
아낌 없이 주는 자의 기쁨이 거기 있다.
가을 걷이가 끝난 논에
떨어진 낟알 몇 개.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번쯤 겨울 들녘에 가볼 일이다.
지상의 만남을
하늘에서 영원케 하는 자의 안식이
거기 있다.
먼 별을 우러르는
둠벙의 눈빛.
그리움으로 아픈 사람은
한번쯤 겨울 들녘에 가볼 일이다.
너를 지킨다는 것은 곧 나를 지킨다는 것,
홀로 있음으로 오히려 더불어 있게된 자의 성찰이
거기 있다.
빈들을 쓸쓸히 지키는
논둑의 저 허수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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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2.30 18:1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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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글을 감사히 읽고, 마음속 깊이 심고 갑니다. 스승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