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화창한 날,
김태흥 바둑 ‘현현각 양지 출판사’ 사장님, 한철수 전 영재바둑학원
원장님, 한면희 두레 생협 이사님, 필자 넷이서 인천 대공원 內에
있는 ‘관모山’ 에 올랐다.
아직은 일러서 나목들을 대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온갖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들을 만나는 봄이 올 테다.
성주山에서 산등성이를 타고 이어지는 소래山을 옆에 끼고 오르는
관모山은, 가파르지도 않고 한적해서 향기로운 길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2130345A9DBB5932)
「숲은 오늘도 내게 속삭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라.
그것이 진정의 아름다운 것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거대하지도 웅장하지도 않지만 나선형으로 돌아 올라가는 山行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걸음과 마음의 속도를 늦추고 겨울의 끝자락과 맞닿아 있는 시간.
살아 꿈틀대는 생동감에 에너지를 많이 받고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E92D3B5A9DB4F02D)
필자, 김태흥 현현각 양지 출판사 사장님,
한철수 전 영재바둑학원 원장님, 한면희 두레 생협 이사님.
관모山 정상 팔각정에서 인천대공원 전체 조망을 바라 보노라니 장난
감처럼 작아 보인다.
저기,
도로 건너 거마山이 보이고 하트 모양의 호수 정원은 조각해 놓았는가.
수목원, 메타세콰이어 길, 치유 숲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유유히 흐르는
도심 속 생태공원과 800여 년 된 장수동 은행 나무 풍경도 一品이구나.
우리가 맞이하는 하루는 가슴 두근거리는 기다림의 연속, 열정 하나로
살아온 굴곡진 삶의 무게를 관모山 정상에 잠시 내려놓고 디카 하나를
눌렀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떠나오는 길.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내려오는 사이로 등산객이 삼삼오오 지나쳐 간다.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활기차 보인다.
그래서 山을 찾으라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이들과 하나 되는 순간 더
짜릿해진다.
일행 중 김태흥 사장님은 지난 토요일(2월24일) 둘째 딸을 시집보냈다.
선조들은 결혼을 人倫之大事인륜지대사 라 했지요.
세상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을 해내신 사장님, 고생 하셨네요.
따님의 백년가약 길, 아름답길 바랍니다.
관모산 입구에는 백범광장이 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1983345A9DB69F2E)
백범 김구(1876~1949)선생은 우리 민족의 큰 스
승으로 일찍이 열아홉에 동학군 선봉장으로 나라
를 구하는 일에 앞장섰고, 구한말에는 애국 계몽
운동에 투신했다.
식민지에는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 임시정부의
주석으로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했고, 해방 후
신탁통치에 반대 궐기를 하다 민족분단을 막으려
남북을 오가며 애썼으나 1949년 6월26일 안두희
의 흉탄에 맞아 돌아가셨다.
첫 번째는 치하포 사건으로 인천 감옥에 3년간
수감되었고, 두 번째는 1911년 안악(安岳) 사건으
로 5년간 인천 감옥에 투옥되어 인천 축항공사 강
제노역에 동원되기도 하였다.
두 차례에 걸쳐 인천에서 겪은 수감생활에서 선생
은 민중의 고통과 함께하는 불굴의 항도자로 단련
되었으니 깊은 겨레 사랑은 인천을 통해 얻은 결
실이라 하겠다.
이에 선생과의 뜻 깊은 만남을 기념하고 완전자주
독립사상을 후세에 전하고자 인천시민의 뜻을 모
아 동상을 세우게 된 것이리라.
![](https://t1.daumcdn.net/cfile/cafe/9984423F5A9DB76831)
백범 김구선생
일생을 민족의 지도자로서 올곧은 길을 걸었던
선생의 뒤에는 항상 郭樂園곽낙원 여사가 있었다.
선생의 옥바라지를 위해 인천에 와서 품팔이를
하며 아들을 격려했던 여사는 선생이 두 번째 옥
에 갔을 때 “경기감사 (京畿監司) 가 된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 고 아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99A0D13A5A9DB8312F)
어머니 곽낙원 여사
가슴 짠한 그 어머니의 그 아들이다.
백범광장에는 김구 선생 동상과 지극 정성의 옥바
라지에 더하여, 1922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上海)로 아들을 따라 옮겨가 생활하기도 했
던 곽낙원 어머니의 동상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느님이 내게 물으시면, 나
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 하고 대
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
의 독립이오.” 할 것이요,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
.” 하고 대답할 것이다」
오직 나라와 겨레만을 생각하는 백범 선생의 숭고한
정신이 관모산 자락에 깊은 혼이 되어 울려 퍼지고
있다.
소중한 분들과의 함께한 시간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