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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그가 누구이기에 말씀/ 마가복음 4:35-5:20 요절/ 마가복음 4:41 | 2024. 5. 5 | |
마가복음 제 7 강 |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인생은 항해와 같습니다. 항해할 때 광풍을 만날 때가 있듯이 인생을 살아갈 때 통제하기 어려운 문제를 만나기도 합니다.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인생의 광풍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떻게 광풍을 극복할 수 있는지 배우고 인생 항해를 끝까지 잘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즐거운 제안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저편은 갈릴리 호수 동남편에 위치한 거라사 지방이요 이방인 지역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을 떠나 제자들과 특별한 시간을 갖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이방인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구원역사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소풍 가는 어린아이들처럼 신이 나서 노를 저었습니다.
배는 어느 새 갈릴리 호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물결이 배에 부딪쳤고 배는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어부 출신 제자들은 성난 파도에 대처하는 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불어 닥친 광풍은 메가톤급 광풍으로 그들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물이 배에 들어오더니 어느 새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배는 침몰 직전이었고 제자들은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배 뒤쪽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파도가 치고 물이 배에 들어오고 제자들이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는데 예수님이 정말 주무실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피곤해서 깊이 잠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큰 광풍과 물결과 제자들의 아우성 소리에 어느 순간 잠이 깼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어나서 바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주무신 척 했습니다. 그것은 광풍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상시에는 내 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광풍과 같은 위기를 만나면 내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다 죽게 되어서야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위기의 순간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간구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돌보심을 의심하고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자신들은 온 힘을 다해서 광풍과 싸우고 있는데 예수님은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생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으로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파도와 바다를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더 지체하면 배가 침몰될 것을 아시고 즉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말했습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예수님의 말씀이 입에서 나가자마자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바람을 꾸짖었다는 것을 볼 때 바람의 배후에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침몰시킴으로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왕국을 견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광풍을 일으켜 우리를 죽이고자 하는 사탄의 정체를 인식하고 예수님의 이름권세로 사탄과 악의 세력을 물리쳐야 합니다.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신 예수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두 마디를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예수님은 광풍 앞에서 무서워하는 제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메가톤급 광풍이라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무서워하는 것, 다시 말해 두려움은 믿음이 없는데서 옵니다. 두려움과 믿음은 서로 반대편에 있습니다. 두려움에 잡히면 믿음이 떨어지고, 믿음이 떨어지면 두려움에 잡힙니다. 광풍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파고드는 두려움이 더 큰 문제입니다. 두려움에 잡히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손발이 마비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떤 광풍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환경과 사람을 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나의 안전과 미래를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광풍 앞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길 원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책망의 말씀을 듣고 영적 눈이 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되었고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4:41을 보십시오.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그들은 예수님을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이 두려움은 앞에서 언급한 두려움, 무서움과는 다른 것입니다. 이 두려움은 경외심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어떤 광풍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광풍 앞에서 두려워하고 인생의 배가 흔들리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권세에 놀라게 되었고, 예수님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경외심이 생겼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더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성난 바람과 바다도 잔잔하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광풍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세계, 믿음의 세계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광풍이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광풍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그치지 않고,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찾아옵니다. 광풍에는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습니다. 광풍 앞에서 인생이 흔들리고 망가지기도 하지만, 자기 발견하고 예수님을 만나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광풍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밤 하늘에 별처럼 빛날 수도 있고 캄캄한 터널처럼 어두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광풍이 있습니까? 요즈음 학생들에게는 부모 이혼의 광풍이 많은 것 같습니다. 부모 이혼은 내 잘못도 아닙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부모가 원망스럽고 신이 원망스럽습니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의 광풍이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서 정말 많이 고민했고 친척과 친구를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등록금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냥 돌아와야 했을 때 내 인생은 왜 이래 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습니다. 또한 질병의 광풍은 얼마나 힘든 것입니까? 질병 때문에 공부할 수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젊음을 발산하지 못할 때 마음이 어둡고 슬프고 불행합니다. 인간관계의 광풍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간관계가 힘들어 학교 가기 힘들고 직장 가기가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 명의 친구도 없이 외로움과 고독의 세월을 보냅니다. 취업의 광풍, 결혼의 광풍, 출산과 양육의 광풍도 뚫고 나가기 쉽지 않습니다. 문제자녀의 광풍은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면 부모는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자녀가 마음의 병을 앓고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다면 부모의 마음은 광풍을 만난 것처럼 요동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광풍은 죽음일 것입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배우자의 죽음, 부모의 죽음, 자녀의 죽음은 우리의 인생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습니다.
이런 큰 광풍을 어떻게 뚫고 나갈 수 있습니까? 광풍만 보고 있으면 광풍에 쓸려가 버릴 것입니다. 광풍을 보기보다는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5:25)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말씀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5:1-20은 거라사 광인이 어떻게 빛나는 인생이 되었는가를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바다 건너 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도착했습니다. 거라사는 데가볼리의 한 도시이며 주로 이방인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배에서 나왔을 때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집을 떠나 무덤 사이에서 살았습니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집에서 살았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집이 답답하게 느껴져 가출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저기 떠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문제아로 보고 고랑과 쇠사슬로 묶어서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괴력을 발휘해서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려 버렸고, 마침내 아무도 간섭할 사람들이 없는 무덤가로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쳐서 상처를 냈습니다. 그가 이렇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고 파괴적이 된 것은 귀신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순간 귀신이 그를 사로잡았고, 그는 귀신에게 조종을 당하여 파괴적이 되고 집을 떠나 무덤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의 내면은 어둡고 거칠고 불만과 미움과 분노로 가득했습니다.
그에게 들어간 귀신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달려와 절하며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그가 이런 말을 한 것은 예수님이 먼저 그에게 이렇게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예수님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귀신이 그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 귀신에게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귀신은 센 귀신이라 한 번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하며 예수님께 반발하며 나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어찌하든지 살리고자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아십니다. 하지만 그의 정체를 빛 가운데 드러내기 위해서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거짓 자아를 드러내심으로 그의 참 자아를 찾아주고자 하셨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권세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군대는 레기온으로 6천 명으로 구성된 로마 군단을 가리킵니다. 이를 볼 때 그에게 들어간 귀신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힘이 센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귀신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났기에 그 사람 안에 더 이상 거할 수 없었습니다. 귀신은 그냥 나가지 않고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고도 그 사람을 깨끗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귀신의 요구를 들어주사 돼지 2천 마리를 희생하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생명보다 물질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거라사 마을 사람들에 대한 심판의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 생명을 살리는 데에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귀신들린 사람은 돼지 한 마리보다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한 영혼은 천하보다 귀합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돼지떼를 희생하셨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셨습니다.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에게로 들어가자 그 돼지들은 열이 펄펄 끓어 바다로 뛰어들었고 모두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돼지 떼가 몰사하는 것을 보면서 한 순간에 큰 재산이 사라졌다며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또한 그들은 귀신들렸던 사람이 군대 귀신이 나감으로 정신이 온전해진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 마을에 더 머무시면 돼지가 다 사라지고 경제적 손실이 엄청 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했고, 가난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주의와 실용주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보다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깨끗함을 받은 그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배우고 더 많은 은혜를 받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주님께서 그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그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그의 가족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큰 일은 잃어버린 한 영혼을 구원하신 일입니다. 귀신들려 자아를 잃어버리고 피폐한 삶을 살고 있던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 받고 자유를 얻고 희망찬 삶을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운명주의와 정욕과 질병으로 어두움과 절망에 빠졌던 사람이 예수님을 생명의 구주로 만나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된 것은 하나님의 큰 일입니다.
주님은 은혜 입은 우리에게 먼저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행하신 큰 일을 가족들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가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가족들을 전도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고, 가족복음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의 리더요 제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가족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해서 가족복음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혈육의 가족들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나라의 가족들이 될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힘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캠퍼스 개척과 세계선교 장막터를 넓히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도 광풍은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광풍 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 인생 항해의 선장이 되시고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의 인내를 할 때 어떤 광풍도 뚫고 나갈 수 있고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