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3,토요漫筆/ 종말팔이 장사꾼들/김용원
소설병에 걸린 동인들끼지 글병치레를 하던 시절 이야기다. 우리 소설병환자그룹은 열 명쯤 되었는데, 참석이 들쑥날쑥이라서 인원이 다 찰 때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글병세가 깊은 환자동지 다섯 명 정도는 늘 모이기 마련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우리는 모임이 있는 날 각기 자기 작품 복사한 원고를 나눠주고 그 자리에서 읽어가며 토론을 벌이곤 했다. 단편소설 한 편은 원고지 70매 내외이기 때문에 일단 복사를 하게 되면 최하 다섯 부 이상은 해야 했으므로 당장 350매가 되었고 그 원고지를 가방에 넣고 가다 보면 옆구리가 결릴 정도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모임에서 각기 가져온 작품을 나눠주면서 우리는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이대로 나가면 지구에 있는 나무 죄다 펄프용으로 절딴나지 싶어.”
“왜 아녀. 매일 나오는 신문지는 얼마며 나라 안의 통용되는 문서 또한 얼마나 많아질 건가 생각하면 똥구멍이 찌릿찌릿할 지경이야.”
그러나 우리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컴퓨터가 나오더니 디스켓으로 모든 작품을 복사하여 주고받았다. 그러더니 이메일이 일반화되고, USB가 나오면서 이제는 종이 소비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이 되레 멍청이 대접을 받지 싶다.
그렇다. 갈수록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미래는 밝다. 보편적 가치인 생명과 인권, 소유 문제도 우리가 개방된 뉴스에서 잘못돼가는 것만 보여주고 받아들여서 그렇지 지구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런 판에 종말을 이야기하고 현실을 지옥타령으로 불안을 조성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그들 대부분은 그런 불안을 고조시켜 어떤 이득을 챙기려는 속임수가 그 안에 감춰져 있다고 보면 대체로 맞다. 사회 또는 현실 부적응자들이 당장 세상이 아작나 같이 죽어버리자는 저주나 앙탈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이 현세는 절대 지옥이 아니다. 또한 종말도 없다. 다만 지옥과 종말을 팔아 재미를 보려는 자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