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7,토요漫筆/ 그게 답이다 /김용원
아침에 일어나자 몸이 굳어 뻑적지근하다. 그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 습관처럼 기지개를 켠다. 그러고 일어나자 이번에는 속옷 바람이라서 약간 섬뜩함을 느낀다. 여름인데도 그랬다. 면사로 된 얄팍한 남방을 걸친다.
섬뜩함, 뻑적지근함 따위를 놓고 따져볼 때 그 자체가 아픔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강도가 조금 높아지면 쑤시고 절리는 단계일 것이고, 그보다 한단계 더 높아지면 통증이 쏟아져 ‘아이쿠’소리가 저절로 나오며 병원을 떠올린다.
물론 개인마다 판단 기준이 다르다. 어떤 이는 쑤시고 결리는 정도를 아픔의 한계점으로 여겨 병원을 간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쯤이야 흔히 있는 일이라며 별 게 아닌 걸로 여긴다. 또 어떤 이는 대뜸 약부터 먹기도 한다. 아주 예민한 사람은 일어나자 몸이 찌뿌드한 불편함과 섬뜩함을 몸살이나 감기 시초쯤으로 지레 겁을 먹고 병원에 가는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그렇게 다르다. 오솔오솔 추위를 느끼는 것 자체를 이겨내지 못하고 병원에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신열이 나고 뼈마디가 욱신욱신 쑤시는 데도 “까짓, 좀 쉬면 낫겠지”하며 잠깐씩 휴식을 취하거나 아예 그마저 무시하고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뉴스에서 정치인들의 막말파문으로 왁자지껄이다. 그중에 내가 맘속으로 좋아하는 정치인을 제삿밥 엎어놓은 개 나무라듯 험한말을 쏟아냈다는 말에 화가 난다. 따지고 보면 나하고 직접적인 이해관계도 없거니와 그 바닥은 원래 생태학적으로 그러한 곳이고, 그곳 멍석 위에서 춤을 추려면 그 정도의 험담 따위는 축구선수가 빠르게 계단으로 오르내리는 수련쯤으로 여겨야 한다. 그런데 내가 왜 스트레스를 받지? 이 또한 정신적 ‘아픔’의 일종이다.
그러저러하게 자질구레한 사건들을 뭉뚱그려 우선 ‘육체적 삶의 아픔’이라는 폴더 속에 넣고 다시 하위 폴더로 나눈다. 그런 후 하위 폴더에 이름을 붙인다. 무시하기/ 상비약으로 다스리기/ 병원신세 지기/ 수술여부 선택하기 / 안락사 또는 자살 결정하기.
그 다음 ‘정신적 삶의 아픔’이라는 폴더를 정하고 하위 폴더로 나눈다. 무시하기/ 내 마음을 가라앉히기/ 내 맘을 글로 표현하고 답을 내리기/ 귀막기/ 훌쩍 떠나기.
그러고 나서 그 대안들을 검토해 본다. 육체적 아픔을 해결하려고 약을 먹고 병원을 들락거리는 것은 큰 부담이다. 또 정신적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내 주변을 정리하고 훌쩍 떠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럼 어떡하지? 그 외 어떤 방법이 있을까?
여기서 두 가지 해답을 만들어낸다. 그것들을 이겨낼 수 있는 튼튼한 갑옷을 입는 것이다. 갑옷을 입지 않고 날아오는 화살을 칼로 쳐내 막아내는 기술을 습득한다는 과정도 있지만, 문제는 그 화살이 기술로 막아내기에 너무 강력하거나 동시에 두 개 이상 여려 개가 날아오면 그젠 대책이 없다. 그때 필요한 게 갑옷이다.
우선 육체적 갑옷을 만들어 본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평소 건강을 위한, 건강을 해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생활 패턴을 유지하는 것이다. 아침식사는 꼭꼭 할 것이며 고기류보다는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려고 노력한다. 적당한 운동도 필요하겠다. 운동을 하되 이미 내 몸은 구형인데다 30만 킬로미터 이상을 탄 이른바 ‘구닥다리 똥차’다. 폐차처분할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낡은 차이므로 그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엔진소리를 들어가며 차를 움직일 것이며 부속품이 낡거나 고장나면 교체하거나 고치는 데까지 고쳐본다. 그냥 창고(방구석) 안에 마냥 놔두면 그러잖아도 부실한 엔진(몸뚱이)의 순환기에 문제가 있을 것이므로 살살, 과속하지 말고 시간 나는 대로 차의 상태를 면밀하게 살피면서 운전할 일이다.
정신적 갑옷 재료로 중요한 것은 우선 즐거운 것과 기쁜 것을 구별하여 선택의 기준으로 삼는다. 즐거운 것은 과하면 후유증이 있다. 술을 퍼마시며 떠들어댈 때는 참으로 즐겁다. 그러나 술이 깨고 나면 육체적으로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도 공허해진다. 그러나 남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 결과가 나를 기쁘게 해준다. 특히 가족을 위해, 가족이 기뻐할 일을 찾는 것부터 주위의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면 그 행위는 기쁨으로 보상해 준다. “기쁨”은 “즐거움”과 달리 대체로 후유증이 없다.
더하여 평소 물처럼 행동하도록 마음가짐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 말은 평상심을 말하는 것일 게다. 조금 좋다고 껄떡거리지 말고 조금 안 좋다고 세 때 굶은 시어머니 얼굴로 주위 사람들까지 기분상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저만큼 물러나 지켜보는 자세를 갖춤으로써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고 입은 상처를 치료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말은 쉽다. 실천은 어렵다. 다만 그렇게 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가치가 있으면 된다. 그게 답이다.
/어슬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