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빛의 찬란함 허 열 웅 물은 삶의 색깔이다. 호수의 물빛은 청명한 가을 하늘 한 가운데를 떼어다 놓은 듯 짙은 연청색이었다. 티끌 한 점 없이 매끄러운 푸른 옥과도 같이 투명하고 맑았다. 밑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에는 오래된 고사목의 잔해가 화석처럼 누워있었다. 중국 사천성 구채구의 140여개가 넘는 호수에서 뿜어내는 경탄의 색채였다. 그 동안 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물 빛깔을 가슴에 담아왔다. 영산강 발원지 용소에서 두 손에 담아본 물빛은 살구 색 이었고, 백두산 천지의 깊은 물은 커다란 연잎을 켜켜이 바닥에 깔아 놓은 듯 짙은 쪽빛을 냈다. 터키 파묵칼레의 석회층에 담긴 목화솜처럼 하얀 물은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명주실로 짠 비단을 펼쳐놓은 것 같았다. 아름다운 수상도시 베네치아를 떠받치고 있던 물빛은 잉크를 엎지른 녹청색이었고, 동남아세아에서 가장 큰 호수 캄보디아의 톤레삽 호수에 떠 있는 수상가옥과 각 종 건물 아래 출렁이는 물은 방금 홍수가 지나간 것 같은 황토가 짙게 녹아있었다. 알프스 얼음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스위스의 도랑물은 초원과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사운드로 가는 길, 높은 설산에서 녹아내리는 폭포 줄기는 바람에 날리는 벚꽃처럼 하얀 포말이 흩어졌다. 인류 최초 문명의 발생지인 이집트의 나일강은 한강과 너무 유사하게 흐르며 낮에는 역사를 기록하고 밤에는 야사를 엮는 아침 이슬 머금은 이끼 빛을 띠었다. 그리스에서 터키로 가는 여객선 갑판에서 내려다 본 에게해는 푸르다 못해 검은빛이 감돌았다. 멀리 스페인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지중해의 물빛은 출렁이는 파도에 푸른색과 희빛의 포말이 뒤섞여 있었다. 계림의 산수가 천하제일이다(桂林山水甲天下)라고 자랑하는 중국의 이강離江에서 물고기를 잡아 올리던 ‘가마우찌’가 배 위에 쏟아내던 물빛은 슬픈 빛이 배어있었다. 먹이를 삼킬 수 없도록 목을 묶어 놓아 입에 물은 고기와 함께 토해내야만 했다. 이곳 오채지五彩池의 물빛은 진파랑, 감람색, 하늘 색 등 다섯 색 빛깔이 한 개의 호수에서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표면 위에 에메랄드와 비취빛이 강렬해 산과 호수의 경계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의 미덕을 골고루 갖춘 물이 이렇게 다양하게 아름답다는 것을 이곳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처럼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초연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노자는 인간수양의 근본을 물이 가진 일곱 가지의 덕목에서 찾아야한다고 말 했습니다.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을 배우고,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를 부러워한다. 또 한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과 온갖 폐수와 흙탕물조차 받아주는 포용력을 배우고 싶어 한다. 그뿐인가 바위조차 뚫어버리는 인내와 끈기를,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큰 뜻을 볼 수가 있다. 이 외에 물은 세상을 깨끗하게 해주며 조금만 흘러가도 스스로 맑아지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물론 모든 동물이나 식물에게 갈증을 해결해주는 은혜를 베풀고, 얼 때와 녹을 때를 안다. 그래서 기껏 살아야 백년을 채우지 못하는 인간들은 물에서 지혜를 배우기 위해 지자요수知者樂水라 하여 강가에 집을 짓고 살았던 것이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물빛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는 선경仙景을 바라보며 그들이 말하는 천하에 ‘산은 황산黃山이요 물은 구채구九寨溝’라는 의미를 알 것 같았다.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시는(上善若水)분들의 삶이었습니다. 샹그리라 라고 칭하는 이곳 넓고 푸른 초원을 조금이라도 더럽힐까 조심하며 하얀 구름 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는 폭포소리 은은한 계곡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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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촉촉한 봄비가 가슴을 적시는 아침
구름 띠를 두른 강기슭을 거니는
신선의 발걸음을 따라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