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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지방에 철도가 있었는데, 철도 길로 한 소년이 통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년이 철도 길을 지날 때면 어김없이 기차도 지나갔습니다. 하루는 소년이 철도 길을 걸어서 학교에 가고 있는데 지난 밤에 내린 폭우로 철도가 끊긴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기차가 지나갈 시간이었습니다. 예상대로 기차가 다가옵니다. 소년은 기차를 멈추게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다급해진 소년은 자기의 셔츠를 벗었습니다. 그리고 가방에서 작은 칼을 꺼내서 자기의 넓적다리 동맥을 푹 찔러 흰 셔츠에 붉게 물들이고 달려오는 기차 쪽을 보며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스톱! 스톱!" 기관사가 붉은 깃발을 보고 기차를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기차가 소년 앞에 멈췄고 기관사가 내려다보니 철도가 끊어져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소년은 피를 너무 많이 흘러 결국 죽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소년의 가방 안에 작은 신약 성경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믿음의 소년 한 사람의 죽음이 기차 안에 있는 많은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자주 듣는 말씀이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주 입술로 고백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썩은 밀알처럼 살자! 밀알이 되자! 슬로건처럼 부르짖기도 합니다. 우리는 평범한 진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여 현실로 나타날 때 그 진한 감동은 우리가슴에 전해져 마음 판에 새겨지게 합니다.
예수님은 아주 평범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님은 밀알의 법칙대로 아주 평범한 진리를 삶으로 보여주시고 이 말씀대로 썩은 한 알의 밀알로 사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명절로부터 시작합니다. 20절에......‘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여기 명절은 이스라엘이 해방되었던 유월절을 말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8.15 광복절과 같습니다. 이 절기가 되면,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월절을 지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은혜로 해방을 맛보았다며 축제의 날로 기뻐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유월절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100만명 가까이 모인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예루살렘을 찾는 사람 중에 몇 명의 헬라인이 있었습니다. 헬라인이라면 그리이스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읽은 본문말씀을 보면 헬라인이 몇 명이 왔고, 이름이 무엇이며, 또한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단지, 그들이 예수님의 높은 인기와 영적 권위를 존경하여 제자에게 먼저 만남을 요청하고자 신중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인들이 열 두 제자 중에 빌립에게 청을 넣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 그래도 베드로가 먼저 생각 날 것입니다. 헬라 사람들이 빌립을 부른 이유는, 빌립의 이름이 헬라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헬라파 유대인으로 헬라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리라고 짐작을 합니다. 그래서 빌립은 히브리어 헬라어를 잘소화 할 수 있기 때문에 빌립을 만나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면담 요청받은 빌립은 다시 안드레와 의논하고, 그리고 예수님께 헬라 사람들이 뵙기를 원한다고 전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을 찾은 헬라인들에게 내가만나겠다 안 만나겠다 말씀은 안 하시고 느닷없이 하시는 말씀이 23절에......."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말씀 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헬라인이 들었을 때는 동문서답 같은 말이 아니겠어요? 먼 길을 왔는데 빨리 만나 보고 싶다!!~~ 이렇게 말씀하셔야 되지 뜬금없이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니 저들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도 당황하면서도 생각 했을 거예요 예수님 “영광이라” 그렇지 지금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지 않는가?.......... 예수님이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요 이라고 했어요 이것은 마치 예수님이 왕의 취임식을 할 때 행하는 대관식처럼 자신들의 옷을 예수님 가신 길에 깔고 하니까? 제자들은 이제 예수님 영광을 얻을 때가 왔구나 이런 생각에 도취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본문 말씀 이틀 전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절..... 명절에 기록하지만 12절에는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그러니까 제자들이 위대한 영광 앞에 얼마나 부풀어 있었겠습니까?
아마 제자들은 예수님 영광 받으면 우리도 영광의 부스러기라도 얻을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갖지 않겠습니까? 한마디로 들뜬 마음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영광 얻을 때가 왔다는 “ 영광 얻을 때” 를 깊이 묵상해야합니다.
때란 지금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지금을 많이 강조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를 생각할 때, 지금 아닌 언제나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습관 하나를 고친다 하도라도 내일부터 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희생에 대해서는 바로 지금, 단 한 시간이라도 뒤로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십자가를 지는 헌신은 지금 이 사건 속에 여기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당면하는 작은 일 하나하나에 다 희생의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문제로 가정문제로 자신의 문제로 다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예수님은 영광을 얻을 때를 곧 십자가임을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24절...... 아주 중요한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평범한 자연의 법칙 농부가 심는 밀 알 한 알을 생각해보셨습니까? 밀 알 하나가 땅에 떨어지면 열매를 맺는 과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2-3cm 땅 속에 묻혀야 합니다. 그리고 뿌리가 땅속에 돋아나 물과 양분을 흡수합니다.... 그 다음 싹이 돋아 씨 속의 양분이 싹으로 이동해 분해되고 하나님이 주신 햇빛을 받아 탄소 동화작용을 합니다.....이제 싹이 점점 자라 꽃을 피우고 수많은 알곡을 맺게 되는 것이지요......이런 과정이 땅속에서 이루어지기에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썩어 4개월 후에 열매를 100-125알을 맺고 5년 후 100-125억 알을 맺게 되고, 이것은 200명이 34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이 된다고 합니다.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밀 하나가 100% 썩어 죽는 과정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강단 설교로 통해 이런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인용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혼돈하면 안 된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영적으로 그렇습니다. 땅에 떨어져 죽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고, 여기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것은 하나님의 하실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열매 맺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땅에 떨어져 죽는 것까지만 나의 할 일로서 이것만이 목적입니다. 열매에 관한 일은 오직 하나님의 일로,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땅에 떨어지기가 무섭게 나를 좀 알아달라고 야단이지 않습니까?
사랑! 사랑! 말을 많이 하고 저도 많이 합니다. 사랑이란 땅에 떨어져 밟히어 썩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 보상을 바라는 마음은 열매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의 생명이 죽어야만 열매를 맺는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 생명의 원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죽음과 삶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함께 있습니다....... 80년 90년 우리가 생을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헌신과 함께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의 시작을 통해 알듯이 우리에게는 최초의 “원죄”가 있기에 가시와 엉겅키를 내고 수고의 땀을 흘려야 하는 희생을 누구나 치루어야 합니다.
모든 만사가 희생 없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내가 희생을 지불하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지불해야 합니다...... 누군가의 땀과 피의 봉사가 있고서야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25절.....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사람은 지구에 거꾸로 매달려 살아도 죽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등바등 살면서 악착같이 돈을 위해, 권력을 위해, 수백 평 대지위에 대 저택에서 살아도 결국 무엇이 남겠습니까?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죽음 후 심판까지 받게 됩니다. 자기만을 위한 삶의 끝인 이렇게 비참한 것입니다.반면에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를 미워한다는 것은 자기 부인을 말합니다. 인간적인 모든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 영광을 위해, 복음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히 사는 영생을 보존한다고 예수님 가르쳐주셨습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요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안다’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성경원어 헬라어로 ‘기노스코’(ginwvskw)인데,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단어입니다. 단순한 지식이나 관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만남과 교제를 통해 체험적으로 깊이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말 ‘안다’나 영어 ‘know’도 그렇습니다만, 같은 단어를 사용해도 그 의미가 천차만별이죠. 어떤 사람을 안다고 할 때, 이름만 혹은 얼굴만 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깊이 사귀어서 속속들이 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하나님과, 예수님과 깊은 관계를 맺고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아멘 한다면 26절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26절.....“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말씀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세상적인 영광을 버리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십자가를 지려 하는데, 나를 섬기려거든 나를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나 있는 곳에 너도 있어야 한다는, 즉 주님의 고난에 동참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하여 일생동안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당한 자만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얻을 수 있고, 주님을 위해 고난을 당한 사람만이 주님 영광에 동참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고(故)장기려 박사는 평양에서 외과의사로 일하다 6.25 전쟁 때 월남해 부산에서 복음병원(현 고신의료원)과 청십자병원을 세워 피난민과 가난한 이들의 건강을 무료로 돌봤습니다. 6남매 중 차남만 데리고 월남한 그는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부산에서 가난한 이들을 도우면서 살았습니다. 평소 '사랑장'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유독 좋아한 그는 전 생애를 두고 이 말씀을 실천하며 자신의 월급을 털어 가난한 이들을 돌봐주고, 진료비가 없는 이들을 위해 병원 뒷문을 열어 놓기도 했고 영양실조에 걸린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주라고 한 처방은 이미 유명한 일화가 되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가지고 있던 것은 천만 원이 다였는데 그것마저도 간병인에게 남기고 그는 가볍게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일생을 통틀어 오직 복음과 사랑의 삶만 실천하다가 한 알의 밀알처럼 썩어 하늘로 돌아간 장기려 박사의 뒤를 이어 4대가 의사로 장기려박사의 본을 쫏아 지금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과 봉사로 섬기는 믿음의 명문 가문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은 다는 아니지만 한 곳에 얽매이기를 싫어하고 또 자기를 희생하기를 싫어합니다.......어떤 사람들은 희생 없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을까 연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희생 없이 많은 열매 맺기를 원하는 사람....... 씨도 뿌리지 않고 많은 수확을 고대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을 없을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인은 썩은 밀알로 사신 예수님처럼 삶의 자리에서 말씀대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