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을 맞이하며 수요집단상담 모임을 안내드립니다.
"자기성격을 바로 알고 살자!" 발제 글로
자신의 마음건강을 돌아보고 함께 얘기 나눠어요.
모임시간에 책으로 읽습니다.
자기성격을 바로 알고 살자!
문은희_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 소장, 심리학박사, 계간 「니」 편집장
많은 사람들이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고, 평생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물론 ‘성격’의 사전적인 뜻이 ‘비교적 바뀌지 않는 행동양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특히 혈연을 강조하는 습속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애비 성미를 닮아서”라든가 “제 에미 소갈머리와 쏙 빼닮았다”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나누는 것도 비슷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B형 남자〉가 제목으로 달린 영화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뿐 아니라 심리학에 관심있는 사람들 가운데 이런저런 유형의 성격검사(MBTI, 에니어그램 등)의 결과를 완전히 믿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검사결과에 대한 신임이 아주 대단해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검사결과에 견주는 등 생각의 틀로 삼고 있는 경우들이다.
그런데 정말 한때 측정한 검사결과와 자신의 삶이 하나부터 열까지 일치될 수 있을까? 아니 그래야 할까를 묻고 싶다.
나를 보기로 들어 풀어보기로 한다. 의예과 1학년 다닐 때였다. 고등학교 동창 가운데 스스로 똑똑하다고 여기던 몇 명이 모임을 만들고 나더러 함께하자고 했다. 음악, 미술 그리고 문학으로 나누어 (나름으로) 연구발표하고 전문가를 불러 이야기 듣고 토론하는 모임이라 했다. 그럼직하다고 여겨 참여하기로 하고, 나는 소설읽기를 좋아했으니 문학부에 들었다. 내가 첫모임에 헤르만 헤세를 발표했는데, 말이 빨라지면서 숨이 차고, 내가 한 발표가 내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내린 결론이 장차 나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 일, 가르치는 일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확고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2년 뒤, 본과 1학년 생리학 시간에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조사연구하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가 맡은 제목이 ‘딸꾹질’이었다. 호기심을 가지고 아주 즐겁게 조사했고 발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답하는 일도 만족스레 하게 되었다. ‘나도 잘할 수 있구나’하고, 2년 전 결론지었던 나의 성격 자가진단을 조금 조절했다. 그 후 미국에 유학 가서 결혼하고 유학생들과 특별한 교회를 만들고, 예배인도하고 설교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내가 썩 잘하는구나”로, 내 성격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어디서나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다른 여성들도 그렇게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며 여성들 모임을 즐겁게 해나가는 사람임을 자부한다. 어디를 가나 여성들과 작은 모임을 만들어 이야기 나누는 기회를 만든다. 나와 만나,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기회를 충분히 가지면 모든 여성들은 하나같이 자기표현을 거침없이 잘 하게 된다. 사람이란, 삶의 어떤 특정시기에 평가한 대로 멈추어 살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보기가 되었기를 기대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 주춤하면서 “아,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구나”하고 그 순간부터 적극으로 살기를 포기한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이 될 것인가!(그때 심리검사를 하면 내향적이라고 나온다) 어느 누구도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것이 삶의 진리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모두 후회 없이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굴레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내가 나를 내향적이라고 생각한 대로 평생을 살았다면, 칠순이 되도록 여성들의 눈을 뜨게 돕는 일을 다른 여성들과 함께 실천하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해서 내 자식만을 기르고, 지금쯤은 자식들이 기대만큼 효도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있지 않았을까?
지하철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노라면 나이 지긋한 여성들이 말을 걸어온다. 흔히 “손주 것을 뜨느냐?”고 말을 튼다. 우리 모임에서 고아원, 쉼터들에 보내려고 뜨개질을 하는 것이라 대답하면,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칭찬한다. 그 말에, 같이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하면 자기는 그렇게 살 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니」라는 계간지를 읽고 좋다고 하는 분들에게, 글을 써서 함께 잡지를 만들자고 하면 “나는 그런 재주가 없다, 솥뚜껑 운전만 한다”고 말한다. 그런 분들도 다 재주있고, 생각 깊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분들인데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한 것을 글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고 해도 아니라고 고개를 젓곤 한다. 언젠가 자기성격을, 이렇다 정해둔 대로 살아온 탓이다. 주인에게 한 달란트 받은 종이 품었던 생각과 같은 것이다. 자기를 폄하하여 더 자라고 크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달란트 더 받은 사람들이 하는 일을 자기는 못하고,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결국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을 들을 판이다.
보기로 든 나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 가운데, 당신은 좋은 환경에서 자신감있고 거침없이 자라서 그럴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 사람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보다 (이른바) ‘더 좋은’ 환경에서 더욱 거침없이 자란 친구들 중에 자신과 자기 가정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돈이 되지 않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엔 전혀 관심두지 않고 사는 것을 보면서, 환경만으로 삶의 형태와 깊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타고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타고난 품성과 능력을 살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보아왔던가! 나의 가까운 친구가 늘 자기 어머니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아직도 노론 소론을 따지는 완고한 집안으로 결혼해 들어와서 9남매를 낳아 키우셨지만 집안에만 묻혀 지낼 분이 아니셨다고 했다. 그분이 생애 마지막을 중환자실에서 몇 해 동안 지내시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타고난 특성, 유전요인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흔히 음악가 바하의 가계를 들먹이며 설득하려 한다. 그런데 정말 유전 때문만이었을까? 유전인자가 인생을 결정할까? 타고난 것과 환경이 동시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아닐까? 바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또한 음악을 즐기는 가정(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승효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초라하지만 앞에서 나를 보기로 들었으니 내 얘기를 좀더 해보겠다. 어느 정도의 지능과 능력이 있었을 터이지만 스물한 살 위의 큰오빠를 위로 하는 5남매의 막내로 목사 가정에서 태어난 나와 가정환경이 상호 교섭작용을 해서 나의 성격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통금시간이 있었던 시절에 밤마다 가족 삼대가 모여 가정예배를 드리고 성경 이야기에서부터 온갖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우리는 마냥 가졌었다. 너무나 끊이지 않고 이야기를 해서 어머니께서 “이제 그만 말공부질 하고 흩어져라”고 하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비슷한 분위기의 목사 가정에서 맏이로 자란 남자와 만나 결혼했으니, 나의 대화훈련은 지속되었던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부부의 논쟁에 겁을 내기도 할 정도로 갑론을박한다. 그러나 40년 넘게 우리는 권태기를 모르고 행복하게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작정이다. 유학 가서 결혼하고 9년 만에 귀국했는데 시어머님께서 아들이 많이 변했다고 하셨다. 그 말씀이 옳다. 나라는 여자가 남편에게 환경이어서 남편이 변했던 것이다. 물론 나에게는 남편이 환경이어서 내가 바뀐 면도 있다.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특징, 달란트를 가진 사람들을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그 다른 사람들이 서로에게 환경구실을 하며 상호교섭해서 자라고 바뀌면서 각양각색의 성격을 만들어간다. 성경 속 인물들을 보라. 어디 한 가지 유형만을 ‘이상형’이라 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