誤我者鷄(오아자계)
고양현에 문벌이 좋은 선비집안에 여인네가 있었는데
高陽縣有一士族婦女 고양현유일사족부녀
오십 세가 넘어서
年踰知命 연후지명
다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再適人 재적인
얼굴은 이미 주름투성이요
顔已皺 안이추
머리털은 이미 하얗게 되었다
髮已白 발이백
신랑(사위)될 사람이 저녁에 온 지라
壻往之夕 서왕지석
속으로 부끄럽고 무안하게 느꼈는데
內懷慙赧 내회참난
집에 수탉이 있어
家有雄鷄 가유웅계
일찍 잘 울었다
善早鳴 선조명
닭이 울면 안으로 들어갈 계획하고
計鷄鳴入內 계계명내실
가히 추하고 늙은 모습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했다
可以掩匿醜老 가이엄닉추로
때마침 어린 종놈이
適僮僕 적동복
닭을 잡아서 국을 끓였다
殺鷄爲羹 살계위갱
즐거움을 꾀할 여운도 가시기 전에
講歡之餘 강환지여
동창이 벌써 밝은지라
東窓倏白 동창숙백
넘어질 듯 바삐 치마를 입는데
顚倒衣裳 전도의상
신랑(사위)이 똑바로 쳐다보니
新壻就視 신서취시
백발의 한 노파가 있는지라
皤皤然一老婆也 파파연일노파야
자못 어안이 벙벙하였다
頗不悅 파불열
여인네가 화가 끝까지 올라 분을 못 참고 종을 때리면서 말하기를
婦極憤杖家僮曰 부극분장가동왈
“나를 그르친 것은 닭이오.”
誤我者鷄也 오아자계야
“닭을 그르친 것은 너다.” 하였다.
誤鷄者汝也 오계자여녀
-출처: 太平閑話滑稽傳(태평한화골계전)
조선전기 서거정이 지은 해학적 일화를 수록하여 엮은 설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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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부녀(婦女)의 뜻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부인(婦人)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과부가 된 며느리를 말함인지
나이 든 여식(女息)을 뜻하는지......
그러나 원문 중에 서(壻)를 보면 사위를 뜻하는데
어쩌면 재적(再適)으로 보아, 다시 시집가는 딸일 수 있다
전반적인 뜻은 이렇다
어느 고을에 명문 있는 선비 집안에 아낙이 있는데
오십 살이 넘어서 재가(再嫁)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얼굴에 주름살이 있고
머리카락은 백발이었다.
신랑이 온 저녁에 밤늦게 들어가서
새벽에 수탉이 울면 빨리 나올 심상으로 계획을 짰다
들어갈 때는 괜찮았는데,
아뿔싸, 나올 때가 문제였다.
새벽에 잘 울던 수탉을
집의 종놈이 잡아서 신랑에게 국을 끓여서 대접했다
그것도 모르고 신랑과 운우(雲雨)의 여운도 가시기 전에
창밖이 훤했다
당황한 나머지 자기의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
옷을 거꾸로 입다가 넘어지고
그것을 똑바로 쳐다보는 신랑은 어안이 벙벙해서
다시 쳐다보니, 머리가 하얗고 주름이 가득한 노파가 아니겠는가
여인네는 화가 치밀어
몽둥이로 종을 때리면서
“나를 망친 것은 닭이요, 닭을 망친 것은 너라고.” 화풀이를 한다.
닭은 죽어서 배속으로 들었갔지만
그날 종놈은 몸으로 때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