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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약속과 꿈의 교회, 주일 성찬예배말씀
(2011. 12. 11)
담임목사 : 홍광표
제목 : 십자가의 도
[성경말씀] 고린도전서 1 : 18 - 25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 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본문말씀]
서론 :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오늘날 모든 인류들에게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갈림 길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인생의 안내판이 되어 멸망으로 인도하게 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어 구원의 인생길로 인도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똑같은 십자가이면서도 왜 어떤 이에게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인생의 안내판이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영생으로 인도하는 안내판이 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어 십자가의 도를 깨닫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십자가란 무엇인가?
우리는 십자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어려운 일을 표현할 때, 자기는 너무 무거운 인생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십자가는 단순한 문학적 표현에 불과할 뿐, 원래의 십자가의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이 우리에게 밝혀 주고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십자가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들이 십자가를 말하고 십자가를 찬양하는 그 십자가는 십자가 형틀에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시어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지 아니한 십자가란 그냥 십자가형으로 된 나무일뿐 십자가가 아닙니다. 기독교 서점이나 기념품 점포에서 매매하는 십자가상은 십자가상 일뿐 우리가 바라보고 우리의 마음속에 담아 두어야 할 그 십자가는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 성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나무십자가를 손에 쥐고 다니며 그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우리 때문에 당하신 그 고통과 고난에 감사하여, 그 보혈로 내가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은 것에 감사하여, 두손 모아 그 십자가를 잡고 입 맞추며 기도한 것에 유례를 찾는 십자가 악세사리를 하찮은 장식품으로 전락 시키는 세상 가운데 우리는 그 상징을 제대로 알고 지니고 다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죗값으로 그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받으신 그 사건을 십자가란 말로 표현하기 때문에 십자가란 우리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믿음인 것입니다.
나무 형틀로 만들어진 십자가에 구원의 능력이 있거나 그 십자가를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으로 어떤 행운이 오거나 재앙이 물러간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악세서리에 불과합니다. 요즈음 배우들이나 가수들이 목에 십자가상을 목걸이로 달고 나오고 있는데 저주의 십자가가 예수님을 통하여, 그 사랑으로 절대 믿음의 십자가가 된 것입니다. 그 의미를 알고 몸에 지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장식품으로 여겨 치장의 소품으로 사용한다면 이 같은 행실은 십자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욕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하기를“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요, 우리가 바라보는 십자가는 예수가 달리신 십자가인 것입니다. 바울이 십자가를 자랑할 때에도“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2. 십자가의 도
바울은 18절에서 십자가의 도에 대하여 언급해 주고 있습니다.“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한 것입니다. [도]라고 한 말은 도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진리]라는 뜻입니다.
(1) 십자가의 도란 첫째로 아담의 불순종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아담이 지은 범죄로 인하여 그 아담 안에서 모두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사망의 죄에서 벗어나려면 죄 없는 사람이 나타나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순종의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게 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순종해야 할 조건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먹어서는 안 될 선악과를 먹으므로 자신들뿐 아니라 그의 후손인 우리에게까지 사망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경우와는 달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그 순종의 결실로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을 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감당하셔야 하셨던 순종의 조건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담은 에덴동산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조건이었지만 예수님의 경우는 그 같은 조건보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빌 2:8절에서 말씀해 주시기를“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됐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이 지은 죄의 대가로 죽게 된 인간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야 하는 순종의 조건을 이루셔야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십자가에는 인류를 대표한 둘째 사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새로운 순종의 조건을 이루심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순종의 자녀로 생명을 얻게 하는 놀라운 진리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도인 것입니다.
(2) 다음에 십자가의 도란 인간과 하나님과의 원수의 관계가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이 이뤄진 사실을 의미합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같은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같은 원수의 관계를 무너뜨리고 화평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죄인과 화평이 이뤄진 곳은 바로 십자가인 것입니다. 갈보리 산 위에 세워진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죄인과의 화목 제물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의 화평이 이뤄진 것입니다. 이 화평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됐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죗값은 죽음입니다. 죽음이라는 죗값을 치르지 않고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 길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화목이 없이는 소망도 없고 영생도 없고 천국도 없고 영원한 멸망 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형편에 놓여 있다고 해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게 나가면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지게 되며 이로 인하여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는 새로운 인생의 문이 열려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하여 엡 2:16절에서“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다음에 십자가의 도란 내가 십자가 위에서 내 죗값의 형벌을 당한 사실을 증거 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인들은 자신의 죗값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 형벌은 사망입니다. 이 원칙은 누구에게나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죗값을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이처럼 내가 내 죗값을 죽음으로 갚아야 할 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나 대신 죽어 주심으로 갚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벧전 2:24절에서“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죗값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죗값의 죽음은 그것으로 우리의 영원한 멸망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십자가에서 주님의 모습을 찾으시고 그 주님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 안에서 죗값으로 죽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이 같은 우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면 우리는 죄 사함의 확신도 가질 수 없으며 구원의 증거도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3. 멸망하는 자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
사도 바울은 18절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멸망하는 자들이란 누구를 가리킨 말입니까? 하나님의 지혜가 없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 지혜를 가지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써먹는 인간적인 지혜를 가지고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십자가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까? 십자가란 요셉이라고 하는 목수의 아들,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슬프게 죽은 형틀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성자의 생의 종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마음속에 사랑을 심어 주려고 했던 젊은 청년 예수의 비참한 종말이 십자가에서 끝장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소망이 아니라 절망을 만나게 되며, 영생이 아니라 죽음의 고통을 느끼게 되며, 천국이 아니라 저주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련한 사람들이 십자가를 바라보는 눈입니다. 누구든 이 세상에서 배운 지혜를 가지고서는 이 이상의 진리를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십자가의 도리를 이 세상 사람들은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까? 그 이유가 20절에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미련하게 하셨다는 뜻은 인간의 지혜로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미생물인 아메바가 돌연변이의 과정을 거쳐 인간으로 진화된 것이 아닙니다.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고 주장한다면 성경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조차 원숭이와 같은 진화 과정을 통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나오게 될 것이므로 이들이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만물 중에 오직 인간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께서 소유하고 계시는 영적인 모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죄로 타락하기 전까지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지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이 되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분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을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고전 2:10절 이하에서 말씀해 주시기를“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신다”고 하시고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들의 지혜가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생명의 신비를 벗기고 과학으로 생명체를 만들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인간은 인간의 지혜 그 이상의 지혜를 가질 수 없으며 하나님의 지혜에 대해서는 캄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지식이나 과학적인 지혜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로서만이 깨달을 수 있는 도리이기 때문에 성령을 받아 성령의 지혜로 이 모든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십자가의 도리를 미련하게 보고 어리석게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하나님의 창조물들의 신비가 그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아궁이에 들어가는 들의 백합화의 아름다움이 솔로몬의 영광보다 더 위대하고 하셨습니다. 어느 과학자가 그 신비의 비밀을 벗길 수 있는 것입니까? 본능에 의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 속에 숨겨져 있는 그들의 본능적인 신비함을 무슨 과학적 이론으로 설명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을 알 만한 창조의 신비를, 인간의 지식이 미칠 수 없는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만물 가운데 보여 그것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롬 1:20절에서 이르시기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시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것”이라고 경종 하신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과 죄악에서의 회복과 구원은 오직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2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없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메시야로서의 증거로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표적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굶주린 군중들에게 빵을 먹이시며 모든 병든 자들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의 기적과 권능을 보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믿음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주시는 영적인 하나님의 지혜만이 인간에게 믿음을 주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깨달아 알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4.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한 것은 십자가에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1) 첫째로 십자가에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서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가난이라고 합니다. 실직이라고 합니다. 근심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인생을 괴롭히고 인생을 파멸케 하는 존재는 죄인 것입니다. 죄는 자기 인생을 부정적으로 만들고 가정을 파탄 속에 집어넣습니다. 특히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죄악성은 무엇으로도 씻을 길이 없습니다. 인생의 모든 시련과 고통과 질고 등은 바로 이 죄악으로부터 온 것들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는 인간의 이토록 무서운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 사랑이야말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써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2) 다음에 십자가에는 사망 권세를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죄로 인하여 죽으셨을 뿐 아니라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인생의 모든 것이 마감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는 나오지만 그 십자가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만약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으로 모든 일을 마치셨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한 대속물로 십자가를 지셨다면 그 증거로 다시 살아나셔야 하시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죄로 죽었다면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나야 구원과 영생을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부활의 종교란 말은 오직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증거 해 주는 말입니다.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새로운 생명으로 살 수 있다는 증거가 주님의 부활로 증거 되었습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죽음뿐입니다. 십자가에는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부활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결론 : 사랑하는 약속과 꿈의 교회 성도여러분, 십자가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헛되고 미련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 십자가에는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사망 권세를 이기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생명이요, 구원이요, 면류관이요, 큰 자랑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되시는 이 십자가를 굳건히 잡고 살아가십니까? 우리가 견고히 붙들고 계시는 그 십자가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우리의 생애에 놀라운 소망을 안겨 주시며 우리의 가정에 평안과 즐거움과 복 주심을 보장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십자가야말로 우리의 인생길을 천국의 안식 세계에까지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이 사실을 명심하시고 이 십자가로 우리의 인생의 튼튼한 초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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