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일만성철용 | 날짜 : 10-06-13 12:18 조회 : 1968 |
| | | 친일파가 작사 작곡한 국민가요 ‘선구자’
일송정 푸른 솔은 늙어 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 두고 흐른다. 지난 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선구자 ♩♫ ♬~
한국사람 중에 ‘선구자’ 노래를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 시대에서 다른 사람보다 앞서 새 시대를 사는 사람이 선구자(先驅者)다. 그 신선한 이미지가 이국적인 만주 용정의 일송정(一松亭)과 그 앞을 유유히 흐르는 혜란강과 어울려 일제 강점기에 독립군이 활약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애국적인 노래이기 때문에 우리는 애송하여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선구자의 작곡가 조두남과 작사자 윤해영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라는 것이 최근에 밝혀졌으나 안타깝게도 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국민에게 사실을 알려야할 매스컴이 그 보도를 소홀히 한 때문이다. 이들이 친일파라는 문제가 제기 되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마산에 '조두남 음악기념관' 을 건설하려 할 때부터였다. 마산은 6.25 이후 조두남 작곡가가 말년에 살던 곳이라서 시에서는 그 기념관을 짓고자 하였다. 이때 시민 단체에서는 선구자의 작곡자 조두남과 작사자 윤해영이 친일파라고 거센 항의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어쩔 수 없이 친일한 사람도 많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친일파가 독립군을 ‘선구자’로 하여 노래말을 짓고 작곡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조두남은 ‘스파이와 오드르’ 라는 악극을 작곡하였다. 스파이가 설치니 일본인들은 조심하라는 내용의 친일 악극(樂劇)이었다. 생각해 보라. 스파이가 누구였나를. 그가 작곡한 ‘징병령 만세’ 는 조선인 강제 징병제를 찬양한 노래요, ‘아리랑 만주’ 와 ‘황국의 어머니’ 등이 친일가요였다. 윤해영의 ‘낙토 만주’, ‘오랑캐 고개’, ‘아리랑 만주’ 등은 노골적으로 일본을 찬양하기 위해 쓴 가사(歌詞)다. 그뿐 아니라 윤해영의 가사에서 말달리는 ‘선구자’ 는 만주국을 건설한 일본 헌병을 미화한 것이라 는 설까지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당시 만주에 사는 조선인들은 우리의 독립 운동가는 ‘선구자’ 아닌 ‘산사람’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산시는 ‘조두남음악관’을 부득이 ‘마산음악관’으로 그 이름을 바꿔야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친일파가 만주의 일본헌병을 찬양한 노래를 60여년 간이나 독립군 노래인 줄 알고 잘못 불러온 셈이다. "윤해영이 작사한 ‘룡정의 노래’를 조두남은 해방 후 2, 3절과 가사와 제목을 임의로 ’선구자‘라는 독립군 노래로 둔갑시켰다."라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결론지었다. 이 말은 ’선구자‘를 표절 가요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두남은 생전에 친일 행각을 덮으려고 자기는 윤해영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다음과 같이 변명하였다 한다.
“1932년에 하얼빈 목단강의 싸구려 여인숙에 기거하고 있을 때입니다. 윤해영이란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선구자’의 가사를 주며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을 염원하고, 민족의 구심점이 될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 하고 갔습니다. 이후 윤해영의 행방을 여러 차례 수소문 했으나 끝끝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조두남의 회고록 ‘그리움’)
그러나 당시 조두남과 함께 활약하던 만주 음악인 김종화(83세)에 의하여 그것이 거짓말인 것이 밝혀졌다. 김종화씨는 중국 조선족음악계 원로로 ‘중국 음악가 사전’ 에 오른 분이다.
김종화씨는 만주에서 조두남이 단장으로 있던 고려악극단원의 기타 연주가(guitarist )로 활동하던 사람이다. 1944년 무렵 만주의 극장에서 조두남의 신작 발표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발표된 곡들이 윤해영이 작사한 ‘용정의 노래’ 나 ‘목단강의 노래’, ‘산’, ‘아리랑 만주’ 등의 신곡이었다. 그때 피아노 연주를 하던 이가 바로 윤해영이었다는 증언이었다.
한국인들이 용정(龍井)에 가서 꼭 들리는 곳이 저항파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용정중학교(옛날 대성중학)다. 그 옛 건물 2층에 ‘음악가 김종화’(민족출판사)란 책이 전시되어 있다. 그 책에 선구자의 노래의 진위와 위에서 말한 조두남의 친일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한다. 일찍이 문익환 목사는 선구자를 쓴 조두남의 친일 행적을 알고 있어서 평생 ‘선구자’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3월 31일 고양시 문화원에서는 고양시 발전을 위한 선구자며 독립유공자인 ‘양곡 이가순 숭모사업 발기인 총회’ 가 있었다. 그때 고양 xxx합창단이 부른 축가가 친일파가 쓰고 작곡한 ‘선구자’여서 그 노래의 내막을 아는 이를 가슴 아프게 하였다.
-실버넷 8기 수습기자 1차 기사 과제물 |
| 일만성철용 | 10-06-13 12:25 | | 기자 시험에 낙방하여 허탈한 심정을 저는 다음 말로 위로 받고 있습니다.. 人不知不溫이면不亦君子乎아(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위 글은 영변 일송정을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 |
| | 임재문 | 10-06-13 13:00 | | 부럽습니다. 이렇게 좋은 자료를 구하고 연구 하시니요. 저의 조부님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만주 용정에 사셨습니다. 해란강을 노래하고 그리고 용정 은진미션스쿨에 저의 할아버지 유해가 있지요. 지금은 위패만 모신 상태입니다. 자료를 챙겨가지고가서 할아버지 유해를 고향에 모시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제가 죽기 전에 그 소원이 이루어 지겠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 | 박원명화 | 10-06-13 23:53 | | 흐르는 물엔 이끼가 낄 틈이 없다는 말씀, 어쩌면 일만성철용선생님을 두고 한 말 같습니다. 기행수필에서 보여주신 타고난 능력이 여기 이글에도 그대로 보여주시네요.좋은 자료를 보여 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글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
| | 윤행원 | 10-06-22 13:05 | | 실버넷뉴스 기자실에 올린 글을 여기에 올립니다. ........................................................................................... 최수묵 주간님의 -8기 선발과 관련해서-를 읽고 많은 공감을 가집니다. 우선 나날이 발전하는 실버넷뉴스가 자랑스럽고 엄격한 심사과정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저와 몇 기자님들이 정성껏 응원을 한 이번 8기에 지원하신 한 분의 탈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 분은 1937년 生으로 서울대를 나와 대학원까지 마친 문단의 실력자입니다.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인한 불운이 아닌가도 생각이 듭니다만 어제 그 분을 만나서 심심한 위로의 술잔을 나누었습니다. 그 분의 엄청난 좌절에 어찌해 볼 수 없는 내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다만 다음 9기에 꼭 응시하시라는 말은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 그 분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를 여기에 올립니다. .............................................................................
xx 선생님, 어제 인사동에서의 만남은 즐거웠습니다. 모처럼 선생님의 時調와 文學에 대한 해박한 관심을 講論처럼 듣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xx 선생님과 처음 술잔을 기울일 때가 생각납니다. 청파동 ‘구름창고’라는 허술한 술집에서였습니다. 그곳은 서울의 文人들이 자주 오는 곳이었습니다. 선생님은 時調를 낭랑하게 낭송했습니다. 그 때, 두 사람은 覇氣와 浪漫이 가득했고 文人 술꾼으로서의 自矜心이 넘칠 때였습니다. 사내다운 氣槪가 가득할 때라 술 한 잔에 시조 한 수를 읊조리는 xx 선생님 따라, 지금은 거의 잊어버렸습니다만 저는 서투른 英詩로 취기어린 답송을 하면서 조촐한 우정을 즐기던 시절이었습니다. 세월을 실컷 보낸 解脫한 술꾼만이 가졌든 낭만이었습니다.
어제는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전화 한 통에 머나먼 일산에서 득달같이 달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만남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즉시로 불러들인 김xx 교수, 김xx 수필가 그리고 지당 김xx 서예가...모두가 행복 가득한 즐거운 얼굴들이었습니다.
선생님은 불원간 새로운 책을 上梓한다는데 편집을 거의 마쳤다 하니 호기심과 더불어 기대가 됩니다. 360여 쪽이라면 대단한 力作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어제는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 대한민국 通情男兒들은 만나면 즐겁고 유쾌했습니다. 가끔 이번 실버넷뉴스의 脫落에 대한 좌절을 이야기 할 때는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차라리 고등고시에 떨어져도 그렇게 분통이 터지지는 아니했을 것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는 저도 안쓰러운 共感을 가집니다.
xx 선생님 말씀 마따나 그것은 일등으로 합격을 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파괴한 엄청난 모욕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합격은 따 논 당상이라고 자랑을 하셨던 것에 대한 배반이었습니다. 그렇게도 소중하게 간직했던 尊嚴한 自尊心에 대한 엄청난 시련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만 선생님은 諦念하고 超脫하고 泰然했습니다.
어제는 술잔을 많이도 기울었습니다. 합석한 친구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따뜻한 자리를 나누었습니다. 나중에는 大醉하여 전철역까지 모셔다 주었는데 집으론 잘 가셨는지요. xx 선생님과 아름다운 友情의 饗宴을 맛 본 하루였습니다. xx 선생님의 꼿꼿한 性情에 더욱 친밀한 友情을 돋우면서 어제의 자리에 감사를 드립니다.
2010년6월22일 윤행원 드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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