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리라
김순덕
개를 키우는 것을 몹시도 두려워하는 친구가 있었다. 처음에는 개를 무서워해 그런 줄 알았는데 말을 들어본즉, 개의 수명이 고작 십 오륙년 인데 개가 떠나고 난후의 상실감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언니가 키우던 개, 래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여 년 전, 목장을 하던 언니네 집에는 TV에서 보았던 래시와 같은 코리종의 강아지가 입양되었다. 때마침 방문한 우리는 온가족이 그 개에게 홀딱 빠져버렸다. 그 당시에 조카들이 래시의 활약상을 좋아했던 터라 이름도 래시라고 지었다. 6개월간 키우고 유치원에 보내진 래시는 아주 멋지고 점잖은 개가 되어 돌아왔다. 5만평이나 되는 목장을 누비며 군림할 당당함이 보였다.
목장에서는 때때로 먹이를 찾아 내려온 멧돼지가 소들의 다리에 상처를 내, 심각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그런데 래시는 그런 산짐승들이 들어오지 않도록 경비도 잘 섰다. 사람도 낯선 사람은 짖지만 몇 달에 한 번씩 보는 우리들은 기억을 하는지 반가이 맞아주었다. 자신의 몸을 우리의 다리에 슬쩍 기대며 어루만져주기를 갈구하는 눈빛을 보내곤 했다. 목장을 위험으로부터 지킬때는 야생성을 발휘하고 친근한 반려견으로서의 태도도 잃지 않은 모습이 중용의 미덕을 잘 지키는 성숙함을 보는 듯했다.
래시가 온지 18년이 흘러 언니네 목장이 문을 닫게 되었을 때, 그 많은 개들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걱정이 되었다. 다른 개들은 각자 갈 길을 정해주었고 늙은 래시만이 남았다. 그런데 래시는 자신의 모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목장에서 생을 마치려고 했나보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목장을 방문했던 어느 봄날, 반갑게 맞아주고는 햇살이 따스하게 빛나는 마당의 모퉁이에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 헐떡임도 신음도 없었다. 그저 할일 다 마치고 가야할 곳으로 가니 아무여한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언니네 가족은 끔찍이도 동물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래시의 죽음은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보다는 제몫의 삶을 잘 살다가 간 행복한 개에 대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물론 행복한 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집에 입주하고 처음으로 키운 개 똘이는 학대받은 적이 있었는지 뜰을 쓸려고 빗자루만 들어도 움츠린 자세로 경계의 태세를 보이곤 했다. 피부병도 앓고 있었다. 3개월이 지나서야 그런 태도도 없어지고 윤기 나는 털을 가진 멋진 모습으로 주위의 감탄을 자아냈다. 산책을 좋아했지만 우리는 매번 똘이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기진맥진해졌다. 똘이를 산책시키다가 몇 번씩 넘어져 무릎과 손바닥도 까지고 웅덩이에 엎어지기까지 했는데도 마냥 즐거웠다. 우리 모습이 보이기만 하면 덩실덩실 춤추며 반기는 모습은 너무도 큰 기쁨을 주었다. 오죽했으면 ‘춤추는 개’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그러나 아무리 모양새가 당당하게 변했어도 각인된 기억속의 외상은 치유되지 않았나보다. 할머니들께서 지나실 때면 유난히 짓는 태도가 사나워지더니 급기야 줄을 끊고, 서투른 농사일 가르쳐주러 오신 이웃 분에게 상해를 입혔다. 전에 가축을 키우는 곳에서 살았다더니 가축냄새가 밴 그분의 체취가 기억을 상기시켰던 모양이었다. 얼마 후, 기가 꺾여 들어오며 처량하게 쳐다보는 것이 뒷일을 걱정하는 듯했다. 말없이 눈빛으로 ‘어쩌자고 그런 일을 저지른 거니, 딱한 것’ 하고 안쓰러워 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저도 난감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였다. 병원에 다녀온 남편이 똘이가 입힌 상해가 너무 크다고 했다.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피해자와의 합의에 의해 안락사를 결정했다고 하니 가슴으로 밀려온 통증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내력을 모르고 제압할수도 없는 대형견을 키운 것이 실수였다는 주변 사람들의 권고도 있고 하니 강아지를 데려다 잘 훈련시키고 사랑해주자는 남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토록 기쁨을 주었던 개의 생사를 독단으로 처리했고, 보내면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너무 쉽게 그 흔적을 지우려는 그가 매정해보여 밉기만 했다.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데...
4개월이 지났을 때, 매정하게만 생각되었던 남편이 사실은 더욱 아파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며 눈도 마주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똘이를 더욱 애지중지 한것은 남편이었다. 강아지를 데려오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환한 얼굴로 장터에서 눈이 맞았다며 한 달 반 정도 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이름을 수니라 지어주었다. 촌스럽다고 다시 바꾸자고 하기에 다른 이름을 불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오직 수니라고 부를 때만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쳐 그냥 수니가 되었다. 자그마한 강아지 수니는 여행 중인 딸의 빈자리와 똘이가 나간 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층계도 오르거나 내려오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내 키 절반이상을 껑충 뛰어오른다. 반가을때 콧소리를 내며 짖는 소리는 어리광을 부리는 둣해서 함박웃음을 자아낸다. 메뚜기를 잡는 남편의 뒤를 따라가 새들을 잡겠다고 갈대와 부들이 무성한 늪지로 몸을 던져 진흙범벅이 되어 붙여진 별명이 하룻강아지다.
사람들은 혈통이 있는 개를 입양하라고 하지만 남편과 나는 어떤 혈통이든 우리와 인연이 닿은 이 한 마리에 올 인 하겠다고 대답한다. 가슴이 그리 넓다고 생각지 않기에 지금 곁에 있는 수니라도 충실하게 사랑하겠노라고, 그러면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해준다.
같이 공놀이를 하거나 목욕을 시키며 어르고 있는 모습을 보신 앞집 아주머니는 말씀하셨다. “개 팔자도 두레박 팔자여, 저런 집 강아지는 호강하고 살잖아.” 수니가 호강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곁에 있는 동안 행복하기를 바랄뿐이다. 똘이를 잃은 슬픔을 딛고 수니를 키울 수 있게 된 것은 아마도 래시가 누렸던 것같은 좋은 삶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부디 내게 온 생명들이 행복하고 아름다운 그네들의 삶을 충실히 살았으면 한다. 상실의 아픔은 내가 해준 것이 미진할 때 더욱 커진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리라.
이세상의 모든 동물이 학대당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2009년 12월
첫댓글 키우던 개가 쥐약을 먹고 죽었어요. (정이 들었는데~)그 이후로는 안 키웠어요~
아픈 기억은 쉽게 잊혀지기 힘들지요. 남편이 그러더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있을때 잘하는 것 뿐이라고요. 똘이의 일로 마음이 아프지만 저와 함께 하는 수니가 래시처럼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다시 도전 하였답니다. 긍정적인 기억이 많으면 무슨 상황이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어떤 심리학자의 말을 믿어봅니다.
" 우리가 마지막으로 목장을 방문했던 어느 봄날, 반갑게 맞아주고는 햇살이 따스하게 빛나는 마당의 모퉁이에서 평화로운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다. 헐떡임도 신음도 없었다. 그저 할일 다 마치고 가야할 곳으로 가니 아무여한이 없다는 모습이었다. 언니네 가족은 끔찍이도 동물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래시의 죽음은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보다는 제몫의 삶을 잘 살다가 간 행복한 개에 대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우리 가족이었던 동물들을 기억하려고 두서없는 글 올렸습니다. 내용이 좀 무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할수 있다는 마음을 담아보려했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이 저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듭니다. 저도 마르티스를 길렀었는데 만 18년을 살았습니다. 애견들 화장장에서 화장을 해주었읍니다. 인연 맺은 생명들은 소중하고 말을 못하기에 마음으로 사귀므로 그 귀한 마음은 느낀자만이 압니다. 수니와 행복한 시간 되시길 .....
감사합니다.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더 행복했습니다. 언제나 건강과 행복 챙기시고 그 어여쁜 소녀의 마음 간직하시기를...
정이 두터우면 사랑이 되잔아요 선생의 고운마음이 사랑을 키운것이지요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젊은 사람보다 더 의욕적인 선생님의 모습 뵈며 존경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고 행복하세요.
오리 선생님은 개에 대한 사랑이 넘치시구려~ 나는 개 띠라 그런가 털날리는것 때문에 싫었었는데 어느날 언니네 방에서 키우던 귀여운 강아지를 우리집에서 하룻밤 재웠더니 얼마나 나를 따르는지 그때부터 개에 대한 사랑이...
그러셨군요. 저도 방안에서 키우는 애완견은 그리 좋아하지 않았었어요. 수니는 마당에서 함께 공을 던지고 물어오고 하는 재미도 있고 드나드는 사람들의 기척을 알려주기도 하고 어디 다녀오면 모퉁이 돌기전부터 애교스럽게 짖는 소리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요. 애완견도 나름 귀엽게 보게되었답니다. 남은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에구- 예쁜 우리 선생님. 마음도 어찌그리 고우신지---- 세상 모든것에 사랑을 나눌수 있는 사람. 진정 아름다우십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계시니 저도 그리보이는가 봅니다. 늘 부지런하게 수필반 살림살이 챙기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선생님의 미소 정말 멋집니다. 노래도 맛나게 부르시더군요. 건강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선생님은 참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졌네요, 정을 듬뿍 쏟은 강아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최근 뉘집 기르던 강아지가 차에 치여 죽고 말았지요. 주인의 마음은 얼마나 서운했던지 몇날을 잊을 수가 없어서, 하는 수없이 죽은 강아지가 낳은 새끼를 다시 가져다 기르는 걸 보았지요. 참 영리한 놈이었는데. 저도 서운해지더라고요. 선생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엿보고 갑니다. 감상 잘했습니다.
그래요. 기르던 강아지는 잘 잊혀지지 않아요. 그분의 마음을 알것 같네요. 등단하신 것 정말 축하드리고 한결같이 글 읽어주시고 좋은 댓글 달아주시고 좋은 음악과 재미있는 글, 영상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행복한 나날 되시고 건필하세요
정 깊으신 선생님! 짐승도 정들면 사람과 다르지 않답니다. 수니와 추억도 쌓으시고 행복하게 사세요...
고맙습니다. 정이 많으신 것은 선생님이신것 같아요. 감성이 풍부하셔서 조금만 마음을 적시는 글에도 눈물을 그렁그렁하시던 선생님, 옆에서 항상 좋은 말씀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아름다운 글 많이 쓰시고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저는요 선생님, 어려서 온마음을 다 주었던 개가 동네를 지나는 철길에 치여 죽은 후에 그충격이 너무 가슴아파서 아직까지 개는 안키워보았습니다. 좋은글 감사 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