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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인생은 언제나 단 한번의 선택뿐” / 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명예회장
ysoo 추천 0 조회 30 16.05.13 23: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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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도 말했다

“인생은 언제나 단 한번의 선택뿐” 이라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명예회장]


인생이란 무엇일까? 무엇을 얻고 무엇을 찾으려고 태어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얻을 수 없고 찾을 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다. 어쩌면 고통, 슬픔, 괴로움, 아픔 속에 살다가 죽는 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경전에서는 한 마디로 인생을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라고 했다.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생(生)도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는 것만이 생이 아니다. 태어나서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고도 적어도 30세까지는 배우고 단련하고 자라는 것이다.


노(老)는 30세 이후 점차 늙어가는 것을 말한다. 늙어 가면서 50대까지는 돈도 벌고 가족도 부양하며 자식들 공부시키고 노후생활도 준비한다.

늙어가는 것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노숙기(老熟期)이고 다른 하나는 노쇠기(老衰期)다. 노숙기는 인생의 절정기로 익어가는 것이고, 노쇠기는 60부터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또한 병(病)과 사(死)는 같은 것이다. 약존약망(若存若亡)이라 했다. 죽을 것도 같고 살 것도 같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노와 병사가 우주의 진리이고 자연의 순리인데 사람들은 늙어갈수록 아프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 친다. 잘 죽어야 잘 태어날 수 있는데 말이다.

죽는 것에도 몇 가지 단계를 거친다.


1차죽음은 숨이 멎고, 2차죽음은 체온이 식어가며 3차죽음은 몸에서 수분이 다 빠져나간다.

4차죽음은 백골이 되어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흩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5차죽음도 있다.

우리의 인생이 오래도록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천추(千秋)에 빛나는 이름도 있고, 죽자마자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허무한 죽음도 있다.


죽으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쁜 일만 하다가 가는 사람은 사람들이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좋은 일만 하다 떠나는 사람은 칭송 속에 좋은 곳으로 간다. 어차피 사는 인생 널리 베풀고 공덕을 높이 쌓아 많은 사람들의 추모 담(追慕談)을 들으며 천년만년 그 이름을 드날리면 어떨까?


생로병사란 어차피 고통, 그래서 인생이 고해(苦海)라 했다. ‘고’ 가운데 노쇠기에 들어 더욱 고통 속에 산다면 그보다 더한 괴로움과 비참함은 없을 것이다.

이 노쇠기에는 삼고(三苦)와 삼금(三禁)이 따른다. 이것을 알아야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 수 있다.


첫째, 삼고(三苦)다. 여기엔 빈고(貧苦), 병고(病苦), 독고(獨苦)가 있다.

젊어서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 설 수 있다. 그러나 늙으면 정열이 사라져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늙고 병들면 어디서 돈도 빌릴 수 없는 처량한 신세를 면할 수 없다, 병고를 이기지 못해 많은 노인들이 우울증에 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둘째, 삼금(三禁)으로 노욕을 부리지 않으며, 추억담을 하지 않고, 중담(重談) 즉 한 얘기 또 하는 것을 말아야 한다.


제자들이 소크라테스에게 물었다. “인생이란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을 사과나무숲으로 데리고 갔다.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에게 과수원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며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사과를 하나씩 골라오도록 했다. 다만 다시 뒤로 되돌아갈 수 없으며 선택은 한번뿐이라는 조건을 붙였다.

학생들은 사과나무숲을 걸어가면서 유심히 관찰한 끝에 가장 크고 좋다고 생각되는 사과를 하나씩 골랐다. “모두 제일 좋은 열매를 골랐겠지?”

학생들은 서로의 것을 비교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자기가 고른 사과가 만족스럽지 못한가보지?”

“선생님 다시 한번만 고르게 해 주세요”

소크라테스는 껄껄 웃더니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바로 인생이다. 인생은 언제나 단 한번의 선택을 해야 하거든.”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지만 기회는 늘 한번뿐이다.





‘채근담’서 가장 맘에 드는 대목

“성긴 대숲에 부는 바람은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명대의 고전에 <채근담>(菜根譚)이 있다. 明代 말의 문인 환초도인(還初道人) 홍자성이 저작한 책이다,

책의 구성은 전편 222조, 후편 135조로 되어 있다. 주로 전편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을, 후편에서는 자연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 하였다. 내용은 인생의 처세를 다룬 것이다. 채근이란 나무 잎사귀나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말한다.


1644년경 만들어진 <채근담>은 전집(前集)에서는 현실에 살면서도 현실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가짐과 처세, 후집(後集)에서는 자연을 벗하며 살아가는 풍류를 주제로 한다.

책의 내용은 경구적(警句的)인 단문들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지혜를 일깨워주며, ‘속세와 더불어 살되 비루함과 천박함에 떨어지지 않게’ 도와준다.



특히 필자 마음에 와 닿는 구절 몇 개를 소개한다.


바람은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도 기러기가 지나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진다.


風來疎竹,風過而竹不留聲。雁度寒潭,雁去而潭不留影。

 故君子,事來而心始現,事去而心隨空。


사람들은 무엇이든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것, 그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이면 가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남의 것이기보다는 우리 것으로, 그리고 우리 것이기보다는 내 것이기를 바란다. 나아가서는 내가 가진 것이 유일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기 위하여 소유하고 싶다고 거리낌 없이 말한다. 얼마나 맹목적인 욕구이며 맹목적인 소유인가? 보라! 모든 강물이 흘러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듯이, 사람들은 세월의 강물에 떠밀려 죽음이라는 바다로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된다. 소유한다는 것은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물이 어느 한 사람만의 소유가 아니었을 때 그것은 살아 숨 쉬며 이 사람 혹은 저 사람과도 대화한다. 모든 자연을 보라.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와도 바람이 가고 나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듯이, 모든 자연은 그렇게 떠나며 보내며 산다.


하찮은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지나간 일들에 가혹한 미련을 두지 말라.

그대를 스치고 지나는 것 들을 반기고 그대를 찾아와 잠시 머무는 시간을 환영하라. 그리고 비워두라.

언제 다시 그대 가슴에 새로운 손님이 찾아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경구다. 재색명리(財色名利)에 집착하지 않으면 좋겠다. 집착의 말로가 너무 허망(虛妄)하니까 말이다.


한 부부가 숱한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아 80여평의 주상복합 아파트를 장만했다.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어가면서 온갖 고생 끝에 장만한 아파트다.


거기다 최첨단 오디오 세트와 커피 머신을 사서 베란다를 테라스 카페처럼 꾸몄습니다. 이제 행복할 것 같았지만 사실 두 부부는 이 시설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하루는 남편이 회사에 출근한 후 집에 무엇을 놓고 온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놓고 온 물건을 가지러 집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가정부가 음악을 틀어놓고 커피 한 잔을 뽑아서 베란다의 테라스 카페에서 집 안의 온 시설을 향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부부는 허겁지겁 출근해서 바쁘게 일하고 다시 허둥지둥 집에 들어오기에 자신들이 장만한 시설을 즐길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과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더 넓은 아파트 평수, 더 좋은 오디오, 더 멋진 테라스 카페, 더 근사한 커피 머신을 사기 위해 밤낮으로 일한다. 그렇게 살다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행복은 목적지에 있지 않고 목적지로 가는 여정(旅程)에 있다.


지금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 지금 행복해야 된다. 나중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집착을 버리면 행복이 보인다.

재물은 모두 인연의 모임이다. 재물은 주인을 찾아 항상 흘러간다.

인연이 다하면 흩어지고 다른 주인을 찾아 흘러간다. 영원한 나의 것은 없다.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떠나가는 것에 애착(愛着) 탐착(貪着) 원착(怨着)을 두는 것이 바로 집착이다. 집착을 가지면 괴로움만 커질 뿐이다.


집착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나의 것으로 삼고자 하는 욕심을 놓아 버리면 근심과 두려움은 절로 사라진다.

부드럽고(柔), 화합하고(和), 착하고(善), 순수한(順)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

이 유?화?선?순보다 더 큰 힘은 없다.

아무리 강한 것이라 해도 부드러운 것을 이기지 못하고, 쟁투는 화합을 넘어서지 못하며, 이기심은 선한 마음을, 약삭빠름은 순수함을 따라잡지 못한다.





[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염라대왕이 두렵다고요? 살아 생전 베푸십시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육도윤회(六道輪廻)라는 것이 있다. 중생이 여섯 가지 세상에 번갈아 태어나고 죽어 간다는 뜻이다.

육도는 불교에서 중생이 깨달음을 증득하지 못하고 윤회할 때 자신이 지은 업(業)에 따라 태어나는 세계를 6가지로 나눈 것이다.


여섯 세계는 지옥도(地獄道)·아귀도(餓鬼道)·축생도(畜生道)·아수라도(阿修羅道)·인간도(人間道)·천상도(天上道)다. 불교의 교의에 따르면, 삼계 중 이 세상인 욕계에 태어난 중생(衆生·Sattva)은 여기에서 한 일(業)에 따라 지옥·아귀·축생·아수·인간·천신의 여섯 가지 삶의 모습 가운데 하나를 취하여 다음 생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들 중 뒤의 세 가지 삶은 좋은 업을 이룬 이들이 돌아가는 길, 삼선도(三善道)라 부른다.

또 앞의 세 가지 삶은 나쁜 업을 이룬 이들이 지나가야 할 길, 삼악도(三惡道)다.

또한 깨달음을 성취해 감에 따라, 욕계를 벗어나 삼계(三界)의 다른 두 계인 색계(色界) 또는 무색계(無色界)에 이르게 되며, 부처의 위(涅槃)에 도달하면 삼계 속에 윤회하는 일이 그치게 된다.


우리가 죽어 저 세상에 가면 그 여섯 가지 길을 관장하는 염라대왕(閻魔大王)이 있다고 한다.

무서운 마왕(魔王)이다. 염라대왕은 힌두교와 불교에서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가상의 군주를 말한다. 염라대왕은 힌두교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염라대왕은 죽음을 맞이한 후 천상세계로 가는 길을 가장 먼저 발견한 존재로, 생전의 공덕으로 인해 죽은 자들의 통치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염라대왕을 그린 ‘통도사건륭40년현왕탱'<사진=위키피디아>



불교에서 염라대왕은 명부(冥府)의 시왕(十王) 중 다섯 번째 왕이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명부라 하는데, 명부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지장보살과 명부시왕이다.

명부에는 진광대왕에서 전륜대왕까지 10명의 대왕이 있다.

보통 살아생전 죄를 거의 짓지 않고 살다 죽은 사람은 제7 태산대왕을 끝으로 심판은 마무리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평등대왕, 도시대왕, 전륜대왕의 심판도 받아야 한다.


염라대왕을 만나러 가는 모습은 몇몇 경전에 묘사되어 있다.

<시왕생칠경>에서는 염라대왕 앞에서 죄인이 머리채를 잡힌 채 머리를 들어 업경(業鏡)을 보고 비로소 전생의 일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이 업경에는 죄인들의 생전에 지은 일체의 선행과 악행이 비춰진다고 한다.


죄인은 염라대왕 앞에서는 고통이 더욱 심해지고 염라대왕은 호통을 치면서 “네가 여기에 온 것이 예부터 몇 천만인지 그 수를 모르겠다. 생전에 착한 일을 하여 다시 이 악처에 와서는 안 된다고 매번 알아듣도록 얘기했건만 그 보람도 없이 또 오게 되었느냐! 너라는 죄인은 의심이 많고 이치에 닿지 않는 말만 하는구나”라고 외친다고 한다.


그리고 도깨비와 함께 죄인의 조서(調書)를 읽고 죄인의 양손을 되찾아서 아홉 면을 가진 업경 앞에 이 죄인을 세운다. 그럼 하나하나의 거울에 한평생 지었던 죄업이 남김없이 비친다. 옥졸이 머리카락을 잡아채고 얼굴을 잡아당겨 거울에 들이대며 보라고 나무랄 뿐만 아니라, 방망이로 두들겨 패면 처음에는 소리를 내서 울부짖지만 나중에는 숨도 다 끊어지고 몸이 티끌처럼 부서진다고 한다.


그 무서운 염라대왕 앞에 한 노인이 섰다. 칠십을 훨씬 넘긴 노인이다. 염라대왕 앞에서 하소연을 한다.

“염라대왕님!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제게 돈을 벌게 하셨으면 그 돈을 쓸 시간도 주셔야지요. 그 많은 돈 한 푼도 못써보고 그냥 왔으니 억울해서 못 죽겠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말한다.

“내가 너에게 돈 쓸 시간을 주었지만 네가 모르고, 아니 알면서도 그냥 무시해버린 것 아니냐?”

“언제 돈 쓸 시간을 주셨는지요?”

“세번이나 알려주었지만 너는 그냥 무시하였느니라.”


“첫 번째는 너의 검은 머리카락이 횐색으로 변했을 때다. 늙음의 시작인 줄 몰랐더냐?

두번째는 너의 시력이 약해져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을 때다. 죽음이 가까이 온 줄 몰랐더냐?

세번째는 너의 체력이 달려서 일을 할 때 몹시 힘들었을 때다. 죽음이 방문 앞에 서있는 줄 몰랐더냐?”


“그걸 말로 알려 주셔야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행동으로 보여주어도 돈에 눈이 어두워 모르고 지낸 너의 잘못이지 왜 나에게 원망하느냐? 너는 네 욕심만 채우다 왔으니 여기서라도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거라!”

“아이고 아까워라! 그 많은 돈 한푼 써보지 못하고 아이고 억울해라!”


어떻습니까? 내 돈이란 내가 살아있는 동안 쓰고 가는 돈이 내 돈인 것이다. 염라대왕 앞에 가서 후회해도 이미 때는 늦는다. 복 짓는 시늉이라도 하면 공덕이 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생에서 끌어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베풀고 가는 것이다. 그 공덕(功德)을 짓는 데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심 공덕(心功德)이다.

남을 위하고 세상을 구원할 마음을 가지며 널리 대중을 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구원할 마음을 가지며 널리 대중을 위하여 기도하고 정성을 들이는 것이다.


둘째, 행 공덕(行功德)이다.

자기의 육근(六根, 眼 耳 鼻 舌 身 意) 작용으로 덕을 베풀고 자기의 소유로 보시를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행을 통해 남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다.


셋째, 법 공덕(法功德)이다.

대도정법의 혜명(慧命)을 이어받아 그 법륜(法輪)을 시방 삼세에 널리 굴리는 것이다. 법 공덕은 정신 육신 물질로 도덕 회상을 크게 발전시키는 공덕으로 이 공덕이 가장 근본 되는 공덕이다.




/ THE ASIA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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