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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1: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지난주에 웨슬리 따라 갓생 살기라는 책을 다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읽기를 시작했습니다. 갓생이라는 말은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의미하는 갓과 인생을 의미하는 생을 붙여서 갓생을 살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부지런하고 모범이 되는 삶을 또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는 계획적인 삶을 그리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사는 삶을 살자는 뜻입니다. 멋있습니다.
책의 저자는 이충범 교수님입니다. 그가 서두에 밝힌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충분히 공감되고 우리 역시 함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서가 생각이 났습니다.
교수님은 프롤로그에서 어려서 의대생 막내 외삼촌이 가르쳐준 텐도 칼카니우스 즉 발꿈치 어딘가 붙어 있는 근육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근육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 근육을 단련시키거나 그 근육이 튼튼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가 으리으리한 상체를 뽐내며 나타났는데 나이가 들어가며 남성성이란 창고 뒤주에나 넣어야 할 나이에 당당한 그는 모두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근육 훈련 서를 보내줄 것이라며 주소를 적으라고 했고 책을 따라 하면 그대로 된다고 해서 주소를 적었고 책이 선물로 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교수님은 몸짱이 될 의도도 계획도 없고 결국 책은 수년간 책장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운동화 신은 뇌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은 운동하며 이를 지도했던 사람들의 체험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종교적 언어로 하면 간증기와 같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하면 의학서적은 지적 활동을 촉발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두 번째 친구가 보낸 책과 같은 유형은 육체적 활동을 촉발했다면 마지막 간증기와 같은 책은 독자들의 의지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뭘까?
교수님은 재미있게 소개했습니다. 만일 운동선수들 가운데 대표를 뽑을 때 어떤 유니폼과 신발을 신고 있느냐로 뽑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명품의 유니폼과 명품 신발이 아닌 실력으로 대표 선수를 뽑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지적능력이나 육체적 활동을 촉발시키기 위해 몸짱 만들기 책이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운동을 하고 실제적으로 운동을 해야 몸의 근육이 생기고 결국에는 몸짱이 된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왜 행함에 대한 서신을 남겼을까요. 분명 필요에 의해서 남겼을 것입니다. 저 역시 설교에 대한 방향성을 생각해 보면 공동체 안에 부족한 부분에 대해 더 자주 강조하게 됩니다. 교회 가족들이 기도할 때 보면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우리 공동체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야고보 저자가 말씀을 기록할 때 교회는 위기와 동시에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스데반을 죽인 후에 핍박이 생겨 초대 교인들은 결국 흩어져 로마제국 곳곳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육체적 동생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활한 후에 그는 비로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 야고보는 제자들과 새로운 유대 교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믿는 믿음은 기본이고 그 사람 다음 단계인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믿음은 이미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우리 자신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대해 우리 모두 '아멘' 하지 않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 번 더 생각하고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첫째 삶의 자리로 내려가자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교회 공동체가 아니라 세상에서 내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입니다. 옛날 구원파들이 날뛰며 휴거가 온다고 하여 산속에 모여 살면서 자신들의 교주가 말한 그 날을 기도하며 찬양하며 직장도 버리고 학교도 그만두고 함께 공동생활을 했습니다.
그들 생각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에 그날을 준비하고 예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교주의 말에 설득을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들은 엉뚱하게도 악한 영에 사로잡혀 거짓된 영의 지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곳에 제자 셋을 데리고 갔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였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자를 대표하는 엘리야를 만났습니다. 그 광경을 제자들이 본 것입니다. 얼마나 황홀하고 기쁘고 감격스러웠는지 더 이상은 세상의 삶의 자리로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자리로 다시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들이 있어야 할 곳은 황홀하고 기쁘고 감격스러운 자리가 아닌 힘들고 고통스럽고 때로 힘겨운 그 자리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고난과 환란과 십자가의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눅9:36 소리가 그치매 오직 예수만 보이더라 제자들이 잠잠하여 그 본 것을 무엇이든지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아니하니라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우리는 교회에 만 머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만 그리스도인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히려 더 깊숙이 믿지 않는 이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는 교회의 소금이고 빛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관계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들어내는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은혜를 받으면 점점 교회 생활에 빠지고 그 안에서 머물며 교회의 소금과 빛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믿지 않는 이들과 만남이 줄어들고 전도하는 일이 남의 일이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원하심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9: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바울은 팔색조와 같이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복음을 증거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고 그가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증거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의 숙제 성숙하기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가치관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나누며 사는 쪽의 마음을 두고 행동하고 말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딤전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이 말씀은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준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할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도 성숙함을 모든 사람이 알고 존경할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 성경에서는 어떤 모습을 성숙한 성도의 모습으로 말하고 있을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성숙한 신앙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적인 성도입니다.
민32:12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사랑과 자비로운 행동을 통해 다른 이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갈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그 외에도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며, 영적 성장을 추구하고 다른 성도들을 격려하고 돕고, 성령의 역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갖춘 성숙한 신앙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유지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더욱 닮아가는 믿음의 인격을 형성하게 됩니다.
성숙한 사람은 행함이 있는 성도입니다. 말씀을 따라가면 당연히 성숙하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에 반응하면 당연히 성숙한 성도가 됩니다.
성숙하다는 것은 열매가 익었다는 뜻입니다. 결실할 것이 많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그 충성은 열매로 나타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를 이끌어 낸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이미 충분하다면 성숙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합니다. 말을 하는 그것도 행동하는 것도 우리가 살아가는 자리, 공동체 안에서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숙해야 합니다. 관계의 반응을 말하는 것입니다. 행함의 실제적인 반응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젊은 친구가 자신의 카톡 화면에 이렇게 기록한 것이 오랫동안 남습니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하세요.” 무척 화가 난 것과 같은 글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해야 합니다. 성숙한 성도가 되기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어른답게 행동할 수 있길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처럼 살아가기
야고보는 듣고 잃어버리는 자가 아니라 기억하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이라 판단이 듭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을 그대로 행함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버킷 리스트라는 말이 유행처럼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버킷리스트(Bucket List)’란 죽기 전에 꼭 한 번 쯤은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정리한 목록을 의미합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소망 목록’이라는 순화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어원은 ‘죽다’라는 의미를 가진 ‘양동이를 발로 차다(Kick the Bucket)’란 영어의 관용어로 목을 매고 죽을 때 양동이 위에 올라가서 목에 밧줄을 걸고 양동이를 발로 차서 죽는 것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즉 '죽음'이라는 의미의 '버킷(Bucket)'과 '할 일'이란 '리스트(List)'의 합성어로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일들이란 뜻으로 정의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각자가 죽기 전에 꼭 해 보고 싶은 것이나 가보고 싶은 곳, 꼭 먹어보고 싶은 것들 혹은 반드시 풀어야 할 것들을 신중하게 적어보라면 적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영적 버킷리스트를 해보면 어떨까요. 예수님처럼 살아보기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원수를 용서하기. 예수님처럼 복음을 전하기, 예수님처럼 말씀에 순종하기
예수님처럼 더 많이 사랑하기, 예수님처럼 연약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실천하기, 예수님처럼 어린아이들을 축복하며 섬기기, 예수님처럼 금식하며 기도하기, 예수님처럼 십자가지기,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지식으로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것으로 끝난다면 참 좋을 것 같지만 행함이 없는 성경 읽기는 머리만 큰 어리석은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 뿐 사실은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읽고 끝나면 곧 잊어버리는 자가 된다고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매일 읽고 잊어버리고 또 읽고 잊어버리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 하나라도 말씀을 행함으로 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우리는 구원을 받을 만한 믿음을 소요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예수님을 쫓아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말씀 안에서 죽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말씀은 내 삶에서 빛을 나타낼 것입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예수님 따라하기를 실천하는 우리가 모두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