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aktikos 프락티코스】의 가르침 '본문 (34-53장)
욕정들(passioni)에 관하여
34. 만일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욕정적인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우리가 이전에 그 대상들을 욕정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우리가 욕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대상들은 우리에게 욕정적인 기억들을 갖게 할 것이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악령들을 물리친 자만이 그들이 이용하는 것들을 무시한다. 왜냐하면 비물질적인 싸움이 물질적인 싸움 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35. 영혼의 욕정들은 사람들로부터 유래한다. 반대로 육체의 욕정들은 육체로부터 온다. 육체의 욕정들은 고행을 통하여 제거되고, 영혼의 욕정들은 영적인 사랑을 통하여 근절된다.
36. 영혼의 욕정들을 다스리는 악령들은 죽기까지 끈질기다. 반대로 육체의 욕정들을 다스리는 악령들은 더 빨리 물러선다. 뜨거나 지는 해와도 같은 다른 악령들은 영혼의 한 부분만을 붙잡는 반면, 정오의 악령(시편 91,6b 참조)은 보통 영혼 전체를 움켜쥐고 정신을 억압한다. 이 때문에 독수도승생활은 욕정들의 제거 이후에 감미롭다. 사실 그때 오로지 순수한 기억들만이 있으며, 이제부터 그 투쟁은 수도승을 더 이상 싸움이 아닌 싸움 자체에 대한 관상에 배치시키기 때문이다.
37. 욕정들을 일으키는 것은 그 표상인가, 아니면 그 표상을 일으키는 것이 욕정들인가? 이것은 숙고를 요한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첫 번째 견해를 취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두 번째 견해를 취한다.
38. 욕정들은 감각들을 통해서 발생한다. 만일 사랑과 고행이 있다면, 욕정들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없을 때, 욕정들은 생겨날 것이다. 그래서 영혼의 정념적인 부분은 욕망적인 부분보다 더 많은 치료법들을 필요로 한다. 이 때문에 사랑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이다(1고린 13,13 참조). 왜냐하면 사랑은 정념적인 부분의 제동기(制動機)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위대한 성인 모세가 자연에 대해서 다루는 중에 ‘오피오마케스’(Ophiomakes)라고 상징적으로 부른 것이다.
39. 악령들에게서 악취가 나올 때, 영혼은 생각들을 거슬러 흥분하는 습관이 있다. 그때, 영혼을 괴롭히는 자의 욕정을 통해서 영향을 받은 영혼은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가르침들
40. 모든 상황에서 일상의 규칙을 준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매순간에 주의하고, 가능한 한 받아들여진 계명들을 실천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악령들도 이러한 기회들을 통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가능성들에 대해 무지하지 않다. 따라서 우리를 거스른 그들의 욕정으로 악령들은 우리로 하여금 가능한 것을 이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우리에게 불가능한 것들을 행하도록 강요한다. 사실 그들은 병자들이 고통에 대해 감사하고 봉사자들을 향해 참을성을 보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또한 악령들은 병자들이 비록 쇠약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고행을 실천하도록 권고하며, 그들이 비록 몸이 무겁다 하더라도, 선 채로 시편을 바치도록 권고한다.
41. 우리가 도시이나 마을에서 얼마간 머물러야 할 경우에 세속인들을 가까이 하면서 무엇보다도 열심히 절제를 유지하도록 하자. 이는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무뎌지고 평소의 주의를 못하게 된 우리 정신이 원하지 않은 무언가를 하게 되고, 악령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도망자가 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42. 네가 유혹받을 때, 너를 괴롭힌 자에게 분노로 어떤 말을 하기 전에 기도하지 말라. 사실 네 영혼은 생각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았다. 그 결과 기도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만일 네가 분노로 그들에게 어떤 말을 한다면, 너는 적들을 통해서 제시된 표상들을 깨뜨려 사라지게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분노의 자연적인 효과이기 때문이다. 좋은 표상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43. 또한 악령들 간의 차이점들을 알고, 그들이 다가오는 순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 대상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우리의 생각들로부터 우리는 이것들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악령들 가운데 어떤 놈들이 이따금씩 오면서도 보다 악질적인지, 어떤 놈들이 꾸준하면서도 보다 약한지, 그리고 어떤 놈들이 함께 동시에 들이닥쳐서 정신으로 하여금 신성모독을 하도록 유혹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생각들이 그들의 대상들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에, 또 우리의 상태로부터 너무 멀리 빗나가게 되기 전에, 우리가 그것들을 거슬러 어떤 것을 말하고 또 누가 현존하는지를 알리기 위하여 이러한 것들을 알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쉽게 진보할 것이며, 우리에 대해서 놀라 분개하게 된 그 녀석들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44. 만일 악령들이 수도승들을 거슬러 싸우면서 무력해질 경우, 그때 그들은 약간 물러나서 덕들 가운데 어느 것이 소홀히 되는지를 살핀다. 그리고 거기를 통하여 갑자기 들이닥쳐 불행한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45. 사악한 악령들은 자신들을 도우러 오도록 그들보다 더 사악한 악령들을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 성질에 있어서 서로 반대되는 그들은 오로지 영혼의 파멸을 위해서는 일치한다.
46. 우리는 정신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모독하고 금지된 것들 - 내가 감히 글로 적지 못했던 - 을 상상하도록 유혹하는 불순한 악령에 의해서 동요되지도 말고, 또 우리의 열정을 무디게 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마음을 아시는 분”(사도 1,24; 15,8 참조)이시며, 우리가 세상에 있었을 때조차도 그러한 광기로 미치지 않았음을 아시기 때문이다. 이 악령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를 단념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우리로 하여금 주 우리 하느님 앞에 서 있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그분을 거슬러 그러한 생각을 했던 분을 향해 감히 손을 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47. 발설된 어떤 말이건 혹은 어떤 돌발적인 육체의 움직임이건 간에 그것들은 영혼 안에 현존하는 욕정들의 표징이다. 이것을 통하여 원수들은 우리 안에 그것들에 대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또 우리가 그것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했는지, 혹은 우리의 구원을 걱정하여 그것들을 쫓아 버렸는지를 감지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만이 우리 정신을 아시며, 또한 그분은 마음 안에 감추어진 것을 알기 위하여 표징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48. 악령들은 세속인들과는 주로 사물들을 통해서 싸운다. 그러나 수도승들과는 더 자주 생각들을 통해서 싸운다. 사실 수도승들은 고독으로 인해 사물들이 별로 없다. 행동으로보다 내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 더 쉬운 만큼, 그만큼 내적인 싸움이 사물들을 통해서 행해지는 싸움보다 더 어렵다. 왜냐하면 정신은 움직이기 쉬운 어떤 것이며, 금지된 상상들로 나아가는 것을 막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49. 우리는 일하고 철야하며, 계속해서 단식하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다. 그 대신에 우리에게는 “끊임없이 기도하라”(1데살 5,17)는 법이 있다. 사실 영혼의 욕망적인 부분을 치유하는 앞의 명령들이 실행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몸을 또한 필요로 한다. 우리의 몸은 그 고유한 연약함으로 인해 그러한 노고들에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기도는 싸움을 위해서 정신을 강하고 순수하게 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이 육체 없이도 기도하기 위하여 자연적으로 만들어졌고, 또한 영혼의 모든 능력들을 이용하여 악령들과 싸우기 때문이다.
50. 만일 어떤 수도승이 경험을 통해 잔혹한 악령들을 알고 그들의 기교에 익숙해지고자 한다면, 그로 하여금 생각들에 주의하고, 그들의 격렬함, 그들의 느슨함, 그들의 교착, 그들의 순간들을 관찰하게 하라. 그리고 어느 악령들이 이것 혹은 저것을 하는지, 어떤 악령이 또 다른 악령 뒤에 오는지, 어느 악령이 다른 악령을 따르지 않는지를 주목하게 하라. 또한 이것들의 이유들을 그리스도에게서 찾게 하라. 사실 악령들은 보다 관상적인 방식으로 수행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매우 못마땅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두운 곳에서 의인을 쏘려하기”(시편 10,2) 때문이다.
51. 이 관찰을 통하여 너는 악령들 가운데 둘이 매우 빠르며, 우리 정신의 움직임을 거의 앞지른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들은 음욕의 악령과 하느님을 모독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악령이다. 그러나 두 번째 놈은 잠시 지체하는 반면, 첫 번째 놈은 만일 그가 일으키는 생각들이 욕정으로 자극되지 않는다면, 하느님에 대한 인식에 있어 우리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52. 육체를 영혼에서 분리하는 것은 오직 그것들을 결합한 분에게만 속한다. 그러나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하는 것은 덕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역시 속한다. 사실 우리 교부들은 죽음에 대한 훈련과 육체로부터의 탈출을 ‘아나코레시스’(anachoresis) 라고 불렀다.
53. 자신의 육체를 너무 잘 키우는 우(愚)를 범하는 사람들과 육체를 돌보면서 육체의 욕망들을 자극하는 사람들은 육체가 아닌 그들 자신을 책망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육체를 수단으로 하여 영혼의 ‘아파테이아’를 획득하였고, 어느 정도 존재들에 대한 관상을 지각하는 사람들은 창조주의 은총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