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魏) 문후(文侯)에게 격(擊)과 소(訴)라는 두 아들이 있는데,
소가 어린데도 후사로 책봉되고 격은 중산(中山)의 제후로 봉해졌다.
이 일로 격이 삼 년 동안 아버지와 왕래를 하지 않자 그의 스승 조창당(趙蒼唐)이 이렇게 말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을 잊어도 아들은 아버지를 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사신을 보내시지 않습니까?”
격은 이렇게 말하였다.
“보내고 싶지만 마땅한 심부름꾼이 없습니다.”
창당이 “제가 가겠습니다” 하며 나서자 격이 “좋습니다”라고 허락하였다.
이에 조창당이 왕이 좋아하는 것과 즐겨먹는 것을 묻자
“임금께서는 북견(北犬)을 좋아하시며 신안(晨雁)을 즐겨 드시지요”라고 일러 주었다.
드디어 조창당은 북견과 신안을 구하여 가지고 떠났다.
창당은 문후이게 이르러 이렇게 전하였다.
“북쪽 번방(藩邦) 중산의 임금이 북견과 신안으로 저 창당을 시켜 재배하고 드리라 하였습니다.”
문후가 이 말을 듣고
“격은 내가 북견과 신안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구나.
그렇다면 만나야지” 하고는 창당을 만나 이렇게 물었다.
“격은 아무 탈없이 잘 지내는가?”
그런데 창당은 우물거릴 뿐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세 번을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자 문후가 물었다.
“대답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제야 창당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듣기로 제후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임금께서 이미 그에게 읍을 주시어 작은 나라지만 제후가 되도록 하셨으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물으시니 감히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에 문후는 다시 말을 고쳐 “중산의 임금은 아무 탈 없이 지내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창당은 “이번에 제가 떠나올 때 교외에까지 나와 전송해 주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문후가 다시 “중산의 임금은 키는 어느 정도 컸는가?”라고 묻자 창당은
“제후의 일을 물으시니 제후에 견주어 대답해야 할 텐데,
제후의 조정에는 곁에 있는 자들이 모두 신하들뿐이니 견줄 곳이 없군요.
그러나 보내주신 털외투는 거의 맞는 듯 하더이다”라고 하였다. 문후가 다시
“그래, 중산의 임금은 무엇을 좋아하는가?”라고 묻자 창당은
“『시』공부를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문후가
“『시』에서 어느 편을?” 하고 묻자,
그는 “<서리(黍離)>와<신풍(晨風)>을 좋아합니다”라고 하였다.
문후가 다시 물었다.
“<서리>는 어떤 시인가?” 이에 창당이 이렇게 읊었다.
저 기장 이삭 고개 숙이고
저 피도 자라 새싹이 돋아났구나.
걸음걸음 내 발길은 마냥 무겁고
울렁울렁 내 마음 둘 곳 없어라.
나를 아는 사람은
내 근심 깊은 줄 알고 있지만
내 속도 모르시는 딴 사람이야
더 바랄게 무어냐고 핀잔만 주네.
아득히 푸른 저 하늘이여!
이것이 누구의 탓이겠는가?
듣고 난 문후가 “원망하는 것인가?”라고 묻자 창당은,
“감히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그리워하는 것이지요” 라고 말하였다.
문후가 “그러면 <신풍>이라는 시는 어떤 시인가?”라고 묻자 창당은 또 읊어 보였다.
쏜살같은 저 새매여.
북쪽 숲으로 사라지네.
그리운 님 못 뵈오니
이 내 마음 답답해라.
어찌할꼬, 어찌할꼬.
나를 아주 잊으셨나?
이에 문후는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아들을 알려면 그 어미를 볼 것이요, 임금을 알려면 그 사신을 보라고 하였다.
중산의 임금이 어질지 않다면 어찌 이리도 어진 신하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는 태자 소를 폐위하고 중산의 임금을 불러 후사로 삼았다.
이에 중산의 임금은 이런 시를 읊었다.
봉황새가 나는구나.
훨훨 날개를 치더니,
여기에 날아와 모여 앉네.
가득가득 모여드는 뛰어난 선비들
임금이 보내는 뛰어난 사신
천자의 사랑을 듬뿍 받네.
군자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무릇 사신은 상대 나라의 거마가 자국을 괴롭히지 못하게 해야 할 뿐 아니라
비유로 진실한 믿음을 심고 기지를 통하고 호오를 밝혀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어야 사신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한시외전(韓詩外傳)》-
첫댓글 부모의 도리,자식의 도리.신하의 도리.스승의 도리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원수처럼 멀어질텐데
옳은 스승의 가르침으로
부자간의 정도 이어진다는 귀한 글입니다
말로는 쉬우나 실천은 어려운일인데
조창당이라는 분 대단하 시네요
기원전 삼사백년 전에도 이치에 통달한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요즘의 특사나 외교관들은 공부는 많이 해도
이치에 밝지는 못하니, 강대국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고,
믿음을 심고, 기지를 통하고, 호오를 밝혔던 옛날의 사신에
훨씬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들 뿐입니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