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1 인내, 평화, 믿음등과 같은 특성들은 그리스도의 영의 작용에 의한 것들이므로 언제나 우리의 희망의 닻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므로 가르침에 불순물이 들어 있다면, 희망을 잃게 되고 영의 작용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워치타워의 희망은 언제나 1914년이라는 시기와 관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를수록 거짓됨이 확고히 드러날 것이며, 그에 따라 그리스도의 영의 작용은 힘을 잃게 될 것이다. 2 바울이 돈이 떨어져서 천막 일을 했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그는 모든 성원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면 근면해야 하고 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나타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그일을 마지못해 하거나 단순히 밥벌이로 한 것이 아니라 기쁘게 일을 했을 것이다. 우리는 대다수 일에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되므로 일 자체에 기쁨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능숙하게 일을 처리하면서 빨리 할 수 있도록 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고 보람을 가져다 준다. 3 바울이 장로들을 임명했다고 한 구절은 오직 이곳뿐이다. 또한 성경의 어떤 부분에서도 장로의 자격을 논한 곳은 없다. 그러나 교회 감독과 집사(봉사의 종)에 관한 자격은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이를 미루어 이치적으로 추론할 때, 장로는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마치 어린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른이 되는데 무슨 자격을 따져서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회중의 장로라는 것은 그가 특별한 결격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랜 기간 교회 성원으로서 나이가 들게 되면 저절로 장로가 되는 것이다. 이 구절에 대한 개역개정은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즉 새로운 장로를 임명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어른들(장로들) 중에서 특정인을 선택하였다는 뜻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므로 장로란 어떤 자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4 바울은 율법을 세워서 교회 성원들의 표준을 높이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모범을 보임으로써 교회를 훌륭한 분위기로 만들고 그 분위기에 편승하여 다른 성원들의 마음이 자발적으로 본을 받아야 겠다는 생각으로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그가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겠다는 것은 결코 다른 성원들을 그렇게 하라고 촉구한 것이 아니며, 영성이 있다면 이런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면한 것이다. 5,6 사람이 모이면 자연히 없는 사람의 평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의 성향은 부재한 사람의 좋은 점보다는 약점을 들추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보다 바람직한 것은 좋은 특성들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마음에서 스스로 자기 잘못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성원을 책망할 일이 있다면 그를 불러 이야기를 나누며 격려적 차원에서 직접 꾸지람을 하기 보다는 꾸지람의 내용에 해당되는 점에서 어떤 다른 성원의 모범을 이야기해줌으로써 스스로 자신이 그점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방법이다. 7 출판물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믿음의 근거를 설명하는 것은 그 출판물의 근원인 인간에게 권위와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이므로 추천할만한 것이 못된다. 만일 출판물의 특정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 와 닿았다면, 그 내용이 성서의 어떤 구절을 설명하는 것인지를 소화하여 성서를 사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추천된다. 그것이 보다 높은 차원에 근거한 것이며 듣는 사람도 하나님께 영예를 돌리게 될 것이다. 13항 앞의 삽화는 도대체 왜 넣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용과 아무 관련도 없으며, 오히려 어떤 아동학대적인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삽화로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왜 이런 삽화를 넣었을까? 이 삽화는 내가 보기에 일종의 나쁜 잠재 효과(subliminal effect)를 불러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8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다보면 격화되어 논쟁적이 될 수 있고 그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인신공격적인 용어도 나오게 된다. 이럴 때 자신이 보다 더 인격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성숙한 태도일 것이다. 논쟁이 격화될 때, 이기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 왜냐하면 어떤 논리를 사용하여 상대방을 잠재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상대방이 진정으로 승복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오히려 그에게서 반감을 가지는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쟁이 격화되어 상대방이 공격적으로 나올 때는 그를 설득하려기보다 "그럴 수 있겠네, 다시한번 검토해 봐야 겠네요"라고 한발 물러서는게 지혜로운 태도이다. 내가 이겨서 더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결국은 친구를 한 사람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격언을 반드시 생각해야 한다. "논쟁에서 이기면 친구를 잃는다" 9 중요한 성경 진리는 복잡한 이론이 결코 아니다. 매우 단순하며 쉬운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며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 등의 누구나 자기가 굳게 믿는 것을 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 토론이 깊어질수록 많은 지식과 논리성을 필요로 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 논리 자체에 감동해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부분은 말의 진실성과 그 사람의 태도와 생활 방식에서 진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