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마음의 고향
3. 고향 가는 길
- 하나의 생명
이와 같이 모든 것의 본체는
둘도 아니고 셋도 아니고 오직 하나의 성품입니다.
이러한 본체는 곧 불성(佛性)자리요,
부처님 성품입니다.
그것은 어떤 하나의 논리가 아닙니다.
참다운 우주의 도리인 동시에 우주의 생명입니다.
이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단지 논리적으로만 따져서
합리적인 이치만 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치만 알면 '공부 다했다'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자리는
다만 논리적인 이해로 닿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
지성ㆍ감성ㆍ의지의 모든 것을 초월한 하나의 생명입니다.
생명체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 근본자리를 부처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생명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이라 말하고 하나님이라 말하는 것도
하나의 우상숭배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또 '화두를 구해야 하지'
혹은 '말없이 구해야지
부처님이나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등
그 근본자리를 인격화시켜서 부르는 것은
하나의 우상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우리는 본체를 보지 못하는 중생입니다.
따라서 본체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셔야 공부하신 보람이 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본다 하더라도
이 우주는 궁극적으로 광양자(光量子),
즉 광자(光子)로 충만해 있습니다.
공간성ㆍ시간성도 없고,
질료ㆍ열량도 없는 광자만이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광양자란 무엇인가?
이것은 알 수 없는 우주의 에너지,
우주의 장(場) 에너지입니다.
우주를 구성한 장 에너지가
광명같이, 빛같이 보이는 것이
이른바 '광양자'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물리학적으로 볼 때는
사실 우주가 모두 빛뿐입니다.
광명뿐입니다.
광양자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
어떻게 진동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중성자(中性子)니 전자(電子)니 하는 것입니다.
저는 물리학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상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만,
그리고 제가 말씀드리는 것 가운데서
다소 부정확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요는 다 그런 뜻입니다.
또 물리학적인 입장에서도 우주의 본질이
'광명의 파동(波動)인가?'
'광명의 입자(粒子)인가?' 하는 논쟁을 해오다가
지금은 파동인 동시에 입자라는 입장으로 정리가 되고 있습니다.
파동이 어떤 충동 때문에 동요해서
중성자가 되는 차원에서는 하나의 입자라는 것입니다.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 광명이
우주 어디에나 틈도 없이 충만해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는 현대 물리학적으로 본다 해도
사실은 광명뿐입니다.
광명뿐인 것이 이렇게 운동하고 저렇게 운동하고 해서
양자가 되고 전자가 되고 또는 중성자가 되었단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모여서
산소가 되고 수소가 되고,
각 원소(元素)가 되었습니다.
원소들이 모여서 분자나 세포가 되고
우리 육신이 구성되고 나무가 구성되고
하늘에 있는 달이나 별이 구성되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광명이 어떻게 진동하고 결합되어
사람이 되고 다이아몬드가 되었다 하더라도
그 광명은 조금도 변질이 없습니다.
부처님 법문은 그 광명, 그 순수한 생명체가
곧 진여불성(眞如佛性)이며,
덜함도 더함도 없는 진여불성은
일체 존재가 모양을 내거나 말거나,
천지우주가 파괴되거나 말거나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이며,
이것이 바로 부처님 성품이요 진여불성이라는 겁니다.
참다운 우주의 도리니까 바로 진여(眞如)요,
우주의 본성품이니까 불성(佛性)이요 법성(法性)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의 생명,
즉 부처님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억울하게도 우리 범부중생은 번뇌에 가려서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규칙 없이 진동하기 때문에,
즉 순수한 진동을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본성품인 광명을 못 보는 것입니다.
보지 못하다가 호흡도 하고 염불도 하고 화두도 해서
우리 마음이 안정되어 가면
안정된 정도에 정비례해서
우주에 항시 존재하는 생명이, 광명이
차근차근 비쳐 오는 것입니다.
톨스토이 같은 사람도
그가 남긴 최후의 기록을 보면
가끔 광명을 봤습니다.
광명을 보고 환희심에 넘쳐 절대자를 흠모했다 합니다.
위대한 분들은 이와 같이 영원한 광명을 보는 것입니다.
또한 그와 동시에 영원한 리듬을 듣습니다.
우리 중생은 이런 광명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영원한 리듬,
황홀한 음악도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주에는 영원한 리듬이 분명히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그와 같은 본래 광명에서 온 하나의 생명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여타의 생명체와 다르지 않습니다.
돼지나 소, 혹은 나무나 흙과 같은 생명과
다를 것이 없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대개 '생명' 하면 현대인들은
"사람이나 동ㆍ식물까지는 생명인데
다른 곳에도 생명이 있는가?"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차원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그 어떤 것이든 전자나 중성자의 결합체가 아닌 것이 없는 것처럼,
모두가 다 부처님 성품이라고 하는 진여불성,
즉 생명의 형상화인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생명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든 흙이든 일체 자연(自然)이 생명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거나
공해를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나만 생명이고 다른 것은 생명이 아니다"
"우리 인류만 생명이다"
"인본주의다"라는 주장을 펼 때는
온갖 문제들이 일어납니다.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불교를 '인본주의(人本主義)'라고 합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불교가 인본주의라 하는 것은
인간의 본질이, 인간의 본성이 바로 부처님이라는 의미에서입니다.
오직 이런 의미에서 불교는 인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지 중생의 차원에서
"사람이 제일 높다"라고 할 때는
불교를 인본주의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교가 인본주의라는 본래의 뜻에서 어긋나는 해석입니다.
석가모니께서 태어나서
맨 처음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늘 위나 하늘 아래서나 나 홀로 존귀하다"라고 하신 말씀도
그냥 우리 인간 존재, 범부 그 자체가 존귀하다는 것이 아니라
불성까지 간 존재, 일체 존재의 근원까지 간 존재,
부처님 차원까지 간 존재만이
하늘 위나 하늘 아래서나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출처: 청화스님 말씀『가장 행복한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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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무아미타불...()...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_()_
스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