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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7월21일(화)맑음
새벽에 숲속으로 걸어갔다. 사슴을 보기위해서. 결국 보지 못했다. 只在此山中이나, 雲深不知處로다. 다만 이 산중에 있긴 있으나 구름이 깊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구나. 우리의 인식이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인식 가능한 한계 내에서만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의 인식은 한정되어 조건지어져있다. 그러기에 눈이란 시각기관이 우리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하지만 동시에 볼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한다. 눈이 감지할 수 있는 것만 볼뿐이다. 눈으로 감지되지 않는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인간의 감각기관은 문인 동시에 벽이다. 눈은 우리가 외계와 시각적으로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이기에 그렇다. 눈을 보완해주는 기구나 기계장치를 쓴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안경, 현미경, 천체망원경은 시각 능력을 증장해줄 뿐이다. 우리는 볼 수 있는 것만 볼 뿐이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인간의 시각기관에 의해 형상화(configuration)된 것이다. 우리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지상에 붙박혀 사는 동안에는 이렇게 보고/보이는 것 이외에 달리 어떠한 방법으로도 외계를 지각할 수 없다. 인간존재가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를 한정짓는다. 인간의 몸의 구조가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를 결정짓는다. 그러기에 만상이 제 눈에 안경이다. ‘제 눈에 안경’은 구름이다. 실체가 없다. 보이는 것이 실재하는 듯하지만 현상일 뿐, 있는 것이 없다. ‘본다.’고 할 때 뭐 색다르고 신기한 것을 보는 것 같지만 제 눈에 안경일 뿐, 별다른 것이 아니다. 구름이고 안개와 같을 뿐이다. 눈앞에 산 너머 산이 나타나고 울긋불긋 꽃이 피어있다. 그래, 볼 수 있는 것만 보면 되지 더 이상 무얼 보려느냐? 보려는 것이 欲욕임을 알라. 욕의 속성은 불만족성, 불여의성이다. 욕은 고의 원인이다. 그러니 少欲知足소욕지족하라. 보이는 것만 볼 뿐 더 보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지 말라. 사슴아, 그냥 너 좋을 대로 놀 거라. 네 눈에 띄려고 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너의 천성대로 살아라. 눈알을 굴려 사슴을 포착해봤자 네 눈이 그려낸 상(相)이지 별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또 한 개의 정보가 생겨나 네 入處입처에 저장될 것이다. 결국 제 눈에 안경이요, 제 입으로 씹어뱉어냈다가 다시 주어먹는 꼴이다. 감각기관을 단속하라!
비가 올듯말듯하여 세심정까지 포행하다. 호수에서 헤엄치는 수달을 보고, 노송위에 앉은 백로를 보다. 후덥지근하다. 명상가족에게 숙제를 주다.
2015년7월22일(수)맑음
새벽에 천둥과 벼락이 치면서 비가 쏟아지다. 속 시원하게 따른다. 아침이 되자 구름이 높아지면서 하늘이 맑아진다. 빗방울이 떨어질 때 땅이 받는 충격량과 빗방울의 운동량은 等價등가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운동량이 땅에 가하는 충격량을 마음이 느낀다. 가슴에서 뭔가가 퉁퉁 떨어지면서 간을 둥둥 때린다. 마치 타악기를 두드리듯. 인지하는 데는 안팎이 나눠지지 않는다. 주관/대상의 구분은 착각이다. 느낄 때는 주관/대상은 완전히 나눠진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인식주관에 나타날 만한 대상이 인식대상으로 현현한 것을 인식주관이 인식하는 것이다. 토끼가 나타날 길목에 기다렸다가 토끼를 잡는 것과 같다. 기다리는 토끼도 내가 만들고 잡은 토끼도 내가 만든다. 여기서 ‘나’란 입처入處이다. 모두 입처에서 일어났다 사라지면서 찌지고 볶는다.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에는 즐길만한 그 무엇도 없다. 그것이 아무리 새로워 보이고, 기특해 보이고, 신비로워 보이고, 미치고 깜짝 놀랄 만큼 매혹적으로 보여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세계에 애착할만한 것은 없다. 모두 형성되었다가 해체될 뿐이다. 존재의 가벼움과 경박함, 경험의 무상함과 무실체성, 세계의 무의미함을 깨달아야한다. 그리하면 세상이란 그물에서 놓여나리라. 세상의 것을 붙잡고 동일시하려는 욕欲의 뿌리는 잘라버려라. 이것이 놓여남, 해탈이다.
점심 먹고 수정봉 올라갔다 오다. 샤워하고 열을 식히려고 누웠는데 오후 정진을 쉰다는 소식. 섭씨 30도에다 무더워서 오후 정진을 쉰단다. 선원장 방에서 차 한 잔하다.
임보의 시 <지푸라기>
낟알을 다 뜯기고 만신창이로
들판에 버려진 지푸라기, 그러나
새의 부리에 물리면 보금자리가 되고
농부의 손에 잡히면 새끼줄이 된다.
2015년7월23일(목)흐리고 비
오늘은 중복이다. 중이 복 받는 날이라고 우스개 소리한다. 점심에 메밀 면이 나와서 시원함을 선사한다. 비가 주절주절 왔다 갔다 한다.
속리산
-나희덕(1966~, 교수)
가파른 비탈길만이
순결한 싸움터라도 여겨온 나에게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보였다.
산다는 일은
더 높이 오르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라는 듯
평평한 길은 가도 가도 제 자리 같았다.
아직 높이에 대한 선망을 가진 나에게
세속을 벗어나도
세속의 습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산은 어깨를 낮추며 이렇게 속삭였다
산을 오르고 있지만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고,
오히려 산 아래서 밥을 끓여 먹고 살던
그 하루하루가
더 가파른 고비였을 거라고,
속리산은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 높이를
길게 길게 늘여서 내 앞에 펼쳐주었다.
감상: 왜 ‘산속에 갇힌 시간’이란 표현을 했을까? 이게 이 사람의 마음풍경이다. 산속에 들어온 게 ‘산에 갇힌 거’라니, 마음이 세상을 떠나지 못해 빨리 세상으로 돌아가고픈 것이다. 그래서 속리산에 재미로 와서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바로 내려갈 생각이었는데, 산길이 늘어지며 시간을 질질 끈다. 그럭저럭 꼭대기에 올라보니, 정상이 그렇게 높은 것도 아니라 단숨에 오를 수도 있는데 길을 괜시리 길게 길게 늘여놨다는 발견이다. 그럼 왜 속리산이 오르는 길을 길게 늘여놨을까? 여기서 시인은 일종의 깨침을 얻는다. 산행이란 단숨에 빨리 오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걷는 거라는. 삶도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걸. ‘내가 넘는 건 정작 산이 아니라 산 속에 갇힌 시간’일 거라는 말은 자기가 넘은 것은 산(물리적인 장벽)이 아니라 산속에서 보낸 시간(심리적인 압박)이란 것이다. 심리적인 압박이란 무엇인가? 시간을 쪼개서 빠듯하게 살아가는 생활습관에 젖어서 나온 시간빈곤콤플렉스(Time poverty complex)이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 시간에 쪼들려 산다. 세간에서 밥해먹고, 빨래하고, 잠자고 일하는 하루의 일상을 평지 걷듯 천천히 가지 못하고 가파른 고개처럼 단숨에 빨리빨리 올라가려 했다는 반성이 일어난다. 하루 하루 일상생활이 ‘넘어가는 가파른 고개’라면 그렇게 빨리 해치워 놓고, 끝내놓고 뭘 하려는 걸까?
여기에 일상인의 착각이 깃들어있다. 평탄한 길은 가도 가도 제 자리인 것 같아 싫증이 난다. 일상을 초월한, 뭔가 높은 것에 대한 선망이 있다. 높이에 대한 선망이 일상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나와 싸우게 만든다. ‘가파른 비탈길만이 순결한 싸움터라고 여겨온 나’ 말이다. 일상의 평탄한 것을 사랑하지 않고 높은 어떤 곳에 주의가 가있으니 하는 일마다 가파른 비탈길이요, 주어진 현실과의 싸움이다. 왜 삶이 비탈길로 느껴지는가? 자기가 처해진 현실을 바로보지 않고 높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시선을 낮추어 발밑을 보면 평탄한 길이 될 터이다. 그리고 가끔씩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영감을 받아 일상을 살아가면 된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발밑이 저 높은 곳과 연결되어 있지 않느냐. 등산은 자기 집 문밖을 나설 때 이미 시작됐다는 말처럼 일상의 한 걸음 한 걸음으로 저 높은 곳에 이른다. 나의 주의가 풀려서 안목이 열리면 낮은 곳이 곧 높은 곳이요, 일상이 곧 초월이 된다. 높이 오르려는 자는 먼저 자기 발밑을, 낮은 곳을 사랑해야 하리. 높이 날기를 원하는 자는 낮은 것에 친숙해야 하리.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며 살지 못하는 소시민은 일상에서 풀려난 여가(일상을 벗어난 여유생활)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된다. 일상은 무의미하고, 해치워야할 일거리며, 빨리 끝내놓고 쉬야할 의무방어적인 것이며, 벗어나야할 굴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일상을 벗어난 여가를 얻으면 평소에 누리지 못했던 즐거운 짓을 해보리라 기대한다. 그러나 막상 여가가 주어진다 해도 여가를 즐길만한 돈과 정보가 없거나, 놀 줄 모르기 때문에 어렵게 얻은 여가가 또 다른 일상이 되어버린다. 소시민은 일상이든 여가든 무엇을 하든, 하는 것마다 진부한 일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왜 그런가? 돈으로 움직이는 사회구조가 그렇게 만들고, 소시민의 의식이 그렇게 길들여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시인처럼 속리산에 올라야한다. 속리산, 세속을 떠난 산(산은 세속물이 들지 않는 자연을 상징한다)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법을 배워라. 일상이 곧 여가가 되고, 여가가 일상인 삶을 살아라. 높이 오르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천천히 길고 오래 걷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시인이 말하는 ‘순하디 순한 길’이다. 속리산은 순하디 순한 길을 열어 보인다. 높이를 길게 펼친 삶이 일상이요, 밥 짓고 빨래하며 일하며 쉬는 삶이 순하디 순한 길이다. 그대는 높은 것을 길게 펼칠 줄도 알고, 길게 펼쳐진 것을 높이 접어 세울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럴 때 그대는 소시민의식에서 깨어나, 시공간을 접었다 펼쳤다 마음대로 주름잡는 삶의 주인공이 되리라.
상쾌해진 뒤에 길을 떠나라
-고진하(1953~,목사)
길이다.
그대가 불행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대의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대의 존재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불면으로 잠을 못 이루는
그대의 밤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불평과 원망이 마른 풀처럼 잠들었을 때
신발 끈을 매고
길 떠날 준비를 하라
생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을 여윈
순결한 사랑이
아침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가지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감상: 고진하는 깨인 목사로서 강원도 영월에 부인과 함께 산다. 부인은 잡초를 대충 조리해서 식탁에 올려놓는 솜씨가 있어, 그것이 방송을 타 유명해졌다. 기분 나쁠 때 일상을 탈출 하듯이 여행을 떠나지 말고, 만사가 잘 풀릴 때 길을 떠나라는 기도 같은 시이다. 여행을 떠나려는 자여, 먼저 네 안에 불행의 기억, 욕망의 진흙탕, 불평과 원망을 마른 풀처럼 잠재우고, 사랑의 그믐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라. 먼저 자기를 정화하라. 그리고 생에 대한 私慾사욕이 사라지고 순결한 사랑이 아침놀처럼 피어날 때 비로소 길을 떠나라.
이것은 禪師선사의 법문과도 같다. 다른 사람에게 물을 떠주려는 자여. 구정물 바가지를 다른 사람 면전에 뿌리지 말라. 먼저 네 안에 있는 구정물을 다 맑혀라. 그런 다음 네 안에 고인 맑은 물을 바가지로 퍼내어 사람들에게 주라. 그러자면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감로수를 네 안에서 먼저 발견해야 하리라. 네 안의 감로 샘을 발견했을 때는 어떠한가?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가지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몸을 감쌀 때
2015년7월24일(금)비
어제 밤 정진시간부터 몸이 조금 이상하다. 氣가 왠지 안정이 안 되고 떠있는 느낌이다. 약간 흥분된 듯. 四大가 조화롭지 못하다. 찌부둥하다. 오른 다리 종아리 근육도 아프다. 새벽 정진 때 반조해보니 날씨 탓인가, 신경통 때문인가. 흔히 말하길 노인네들이 비 오려면 삭신이 쑤신다더니 내가 그런 것인가?
반조: 청량음료를 컵에 따를 때 생기는 거품 같은 작은 방울들이 몸 안에서 생겨나 상체와 머리 쪽으로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몸이 약간 들뜨는 감이 든다. 그래서 조금 흥분된 듯. 에너지 몸이 안정이 안 되어 집중이 흐트러진 느낌이다. 기분이 상쾌하지 않고 멍멍하다.
비오는 길에 세심정 중간까지 포행하다. 흙탕이 튕긴 바지를 빨다. 오후 정진시간 얼굴과 몸에서 火大가 열렬히 타오른다. 마치 김이 솟아나는 듯.
2015년7월25일(토)흐리고 비
후덥지근한 날씨. 별다른 일 없이 보낸 하루.
니체(Nitzsche)는 게으른 독서보다 소리 내서 낭독하기를 바랐다.
“써진 모든 것들 가운데서 피로써 써진 것만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너는 피가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리라. 다른 사람의 피를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독서하는 게으름뱅이를 미워한다. 모든 사람들이 읽는 일을 익히게 되면 장기간에 걸쳐 쓰는 일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일마저 타락시킨다. 피와 촌철 같은 말로 쓰는 사람은 읽혀지길 원하지 않는다. 암송되고 낭독되어지길 원한다. 산맥에서의 지름길은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건너는 것이다. 그러려면 너는 긴 다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촌철 같은 말은 그러한 산봉우리여야 한다.”
부처님 경전은 피로써 써진 것이다. 부처님의 지혜의 피로써 쓰진 것을 제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승해온 것이다. 눈으로 훑어보는 독서로 경전을 읽기도 하지만, 소리 내어 낭독하면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오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피와 촌철로 쓰진 경전은 낭독해야 마땅하다. 경전을 암송한다는 것은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건너가는 것이다. 너는 산봉우리를 건널만한 긴 다리가 있느냐? 긴 다리란 너의 열의와 사유, 반조와 이해이다.
2015년7월26일(일)맑음
하늘이 깨끗이 닦아놓은 유리창처럼 맑다. 티베트에서 봤던 하늘같다. 그런데 너무나 덥다. 오늘 하루 정진이 안 된다. 몸이 팅팅 불은 누룽지 같다. 가슴뼈와 등뼈는 뻣뻣한데 종아리 근육이 물컹물컹 아프다. 사대가 조화롭지 못해 겨우 버티고 앉았으니 시간이 더디 간다. 머리가 맑지 못하다. 가끔 띵하다. 더위를 먹었나? 영양부족인가? 가끔 심장이 펄떡펄떡 뛴다. 무엇에 놀란 것처럼. 뭔가 심장에 부담이 가는 모양이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더위 먹은 게 맞다. 열기가 충분히 방출이 안 되어 몸 안에 적체되면서 일어나는 부작용이다. 머리가 띵하고, 눈이 빡빡하며, 배가 약간 울렁거린다. 힘이 없다. 근육이 아프다. 얼핏 보면 몸살 걸린 거 같다. 수박, 토마토, 오이가 좋다. 영양보충이 필요하다. 치즈, 요구르트, 우유를 먹자. 오미자, 생강차, 죽염물이 좋다. 무엇보다도 그늘에서 푹 쉬어라.
2015년7월27일(월)흐림 그리고 비
찌푸린 날씨. 구름 중중한 하늘. 메밀 면 먹고 울력하다. 빗방울 떨어져 울력 중단하고 쉬다. 종무소에 가서 수행일기-5를 카페에 올리다. 몸이 아파 방에 꼼짝 않고 누워 쉬다. 문아보살 딸 경인이가 인도 뱅갈로르Bengalore에 자원봉사 다녀왔단다. 대단하네, 이렇게 더운 여름 날씨의 남인도는 견디기 힘든 곳인데. 함피Hampi를 갔었단다. 황혼이 내리는 함피의 여름 풍경은 환상적이라는 데. 심장이 가끔 벌떡벌떡 뛴다. 더위에 놀라서 그런가, 박동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2015년7월28일(화)맑음
어제 오후에 커피가 담긴 소포가 미국에서 直購직구되어 왔다. 누구에게서 왔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혜안스님(마산 신불사 주지)이 보낸 것이었다. 감사하다는 전화를 하고 해제 후 만나기로 했다.
오늘 하루도 무더울 것 같은 조짐을 아침 포행길에서 예감하다. 머리가 벗어지도록 덥다. 꼼짝 않고 방에 콕. 오후에 선방 실내가 섭씨30도가 넘어서 정진을 쉬기로 하다. 법신스님께 차 선물이 와서 선원장 방에서 함께 차를 품평하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생일에 따른 상징동물>
1.수달:1월20일~2월18일
2.늑대:2월19일~3월20일
매우 감정적이며 열정적이다. 늑대는 육체적, 철학적 면에서 연인(lover)을 뜻한다. 늑대는 우리 모두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또 그런 사랑을 충분히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늑대는 무서울 정도의 독립적이기에 사랑과 모순을 일으킨다. 자유를 원하지만 그래도 부드럽고 자비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외로운 늑대(a lone wolf)’라는 이미지를 그릴 수 있다. 좋은 환경을 만나면 늑대는 불같이 열정적이며, 관대하고, 깊은 애정이 있으며, 온화하다. 자기 멋대로 하게 내버려둔다면 비현실적이고, 고집 세고, 망상 집착적이며, 변명하는 성격이다.
송골매:3월21일~4월19일
비버:4월20일~5월20일
사슴:5월21일~6월20일
딱따구리:6월21일~7월21일
연어:7월22일~8월21일
곰:8월22일~9월21일
까마귀:9월22일~10월22일
뱀:10월23일~11월22일
올빼미:11월23일~12월21일
거위:12월22일~1월19일
2015년7월29일(수)비
삭발일인데 비가 온다. 스님들이 산행 가는 봇짐을 싸놓고 비가 긋기를 기다린다.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빗속을 뚫고 간다는 호기를 부리는 스님도 몇 있다. 말 많은 일무스님과 보보스님은 차 자리를 벌여 객담을 즐긴다. 고독한 늑대의 길을 택한 도법스님은 자기 방에서 콕 박혀 칩거한다. 제 각기 제 모양대로 논다. 선원장 방에 갔더니 먼저 온 입승스님과 찻상을 벌여 놓고 수작을 하고 있다. 셋이서 천하사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 흩어졌다. 겨울철 방부를 어디다 들일까 숙고하다. 극락암으로 갈까?
2015년7월30일(목)맑음
오늘은 유달리 후덥지근하다. 차담시간에 진성(眞性) 선덕스님께서 정진이 힘들 것 같으니까 오후에 쉬자는 언질을 주니 입승이 오후에 울력 조금하고 쉴 것을 발표한다. 모두 박수를 치며 반긴다. 나는 방에서 선풍기 바람 쐬며 누워서 쉬었다. 극락암 방부는 어려울 것 같다고 본해스님이 이야기 한다. 화엄사 선등선원을 알아봐야겠다.
첫댓글 그곳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