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서는 고구려가 기원전 37년, 백제가 기원전 18년에, [[한단고기]]에서는 고구려가 기원전 58년, 백제가 기원전 18년에, 북한 학계 일각이 고구려가 기원전 277년, 백제가 기원전 258년에 건국했다고 주장했는데, 최근의 언론에 의하자면 고구려, 백제의 건국 연도는 앞에서 얘기한 것과 다르게 표현되어있다. 그 근거는 초씨역림(焦氏易林), [[이밀]](李密 : 582~618) 묘지명, 풍납토성 등으로 초씨역림과 이밀 묘지명에서는 고구려가 기원전 209년에 건국했다고 되어있고, 백제의 수도로 전해지는 풍납토성의 건축 시작 연대가 기원전 199년이었다고 전해진다.
풍납토성의 축조연대가 기원전 199년~서기 231년으로 되어있는데 무려 431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고 전해지며 그 당시 임금인 [[온조왕]]과 [[다루왕]] 사이에 11명의 왕이 빠져있었고 그 왕들이 신찬성씨록에 수록되어있다. 사실 온조왕은 기원전 199~152년에, 다루왕은 28~77년에 즉위했다고 되어있는데 이 둘 사이에서 180년의 공백 기간 동안 귀수왕, 비류왕, 애허리공, 여비왕, 노왕, 명왕, 목도왕, 복덕왕, 호왕, 주왕, 진왕 등 11명의 왕이 다스렸다고 되어있다. 그리고 고구려의 추모성왕과 유리명왕 사이의 왕들이 있었는데 여달태왕, 여률태왕, 대주류태왕, 애루태왕, 중해태왕 등 5명의 태왕으로 이들 역시 172년의 공백 기간에 다스렸다.
왜 이런 공백 기간이 남았냐면 일본의 오무로(大室) 가 세력에 의해 본왕이 태어나기 전의 조선이 침략당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제외한 많은 사서들이 소각되거나 약탈되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갖게 되었다. 오무로 가의 일본이 패하고 독립된 이후인 지금은 풍납토성의 측정결과와 초씨역림과 이밀 묘지명의 재해석, MBC 드라마 주몽 방영(왜곡된 부분이 많지만)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가정2.
온조는 백제의 시조로 기원전 258년에 즉위하여 45년간 재위한 뒤 동생 귀수왕(42년간)에게 넘어갔다. 그 뒤 덕좌왕이 66년간 즉위하고 그 아들들인 노왕(9년간), 명왕(1년간), 목도왕(3년간), 복덕왕(5년간), 호왕(1년간), 주왕(15년간), 진왕(22년간) 등이 뒤를 이었으나 재위 다툼으로 인해 10년을 못넘기고 사망했다. 그 뒤 다루왕, 기루왕, 개루왕, 초고왕, 구수왕, 사반왕이 왕위를 이어가다가 고이왕에게 왕위가 넘어갔고 그 뒤를 책계왕, 분서왕이 이었으나 비류왕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계왕에게 왕위를 뺏겼다고 한다.
계왕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근초고왕이 즉위한 뒤 근구수왕에게 이어졌고 침류왕 대에 이르러 진사왕에게 넘어간 뒤 진손왕(14년간), 대아랑왕(16년간)이 재위했고 그들이 사거한 뒤 아신왕이 뒤를 이어 개로왕까지 왕통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개로왕 대에 이르러 고구려에게 영토를 빼앗긴 뒤 문주왕, 삼근왕이 사거하고 왕위는 동성왕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무녕왕,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때까지 호화찬란했으나 마지막으로 의자왕이 즉위하여 정사를 게을리하다가 결국 660년에 백제의 멸망과 함께 왕위는 끝나고 말았다.
이 계보에 대한 증거는 일본의 성씨 7천걸(http://www.myj7000.jp-biz.net/), 북한 학계로 이를 고증하여 기록한 것임을 밝히는 바이다. 그리고 일본의 성씨 7천걸 사이트에 나온 쿠다라씨 계보를 보아 북한 학계의 주장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그러기 때문에 북한의 주장이 일리있다는 것이다. 이 증거들이 있는 이상 북한 학계의 주장이 사실임을 입증한 셈이다.
첫댓글 신뢰성이 있습니다. 계보와 연대를 다시 정리해 봐야겠군요.
온조왕(45년간), 귀수왕(42년간), 덕좌왕(66년간), 노왕(9년간), 명왕(1년간), 목도왕(3년간), 복덕왕(5년간), 호왕(1년간), 주왕(15년간), 진왕(22년간)= 42+66+9+1+3+5+1+15+22= 209년
다루왕, 기루왕, 개루왕, 초고왕, 구수왕, 사반왕
즉위했다고 되어있는데 이 둘 사이에서 180년의 공백 기간 동안 귀수왕, 비류왕, 애허리공, 여비왕, 노왕, 명왕, 목도왕, 복덕왕, 호왕, 주왕, 진왕 등 11명의 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