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21:25-36)
갈등
1. 로마 황제가 어느 마을을 방문하였습니다. 황제의 방문을 미리 준비하며, 신하들이 그 마을에 들어서며 외칩니다. 왕이 오십니다. 파루시아! 황제가 전쟁에 나가면 군부대에서도 황제를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부대를 다니며 전령들이 외칩니다. 황제가 오십니다. 파루시아! 파루시아는 도착이나 임재를 의미합니다. 이 말의 라틴어는 아드벤투스(adventus)에요. 오늘부터 대림절이 시작되는데, 아드벤투스에서 유래되었습니다.(advent) 아드벤투스는“그분이 오신다.”는 의미에요.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에게는 기다림이 시작됩니다. 귀한 분이 오시는데, 언제 오시지? 어떻게 준비하지? 기대와 설레임 속에서 준비합니다.
파루시아(주님의 오심)는 또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이 두 가지(곧 오신다, 기다린다)의 의미를 살려서 성경은 예수님의 첫 번째 오심과 마지막 날 다시 오심에 파루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대림절은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으면, 예수님의 마음이 무겁고 분주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며칠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시고 보여주셨습니다. 당시 제자들은 어설펐지만, 주님이 떠나시면 성령이 임하시고 그들이 깨닫고 사명을 감당할 것입니다. 베레아 지역에 머무시던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를 통과했어요. 그곳에서 시각장애인 바디매오의 눈을 치유해 주시고 외로운 세관원 삭개오에게 구원을 선포해 주셨어요.
2.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시면 언제나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숙박을 하셨어요. 유월절을 앞둔 화사한 봄날 주일 아침,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월요일, 예수님이 성전을 방문하셨어요. 성전의 형식만 붙들고 헛된 제물을 드리는 종교인들에게 분노하시며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화요일에는 아침부터 성전에 오셨어요. 이날이 예수님이 사람들과 만나는 마지막 날이었어요. 한창 복음을 전하시며 가르치는데 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 작심한 듯한 표정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선수를 교체해가며 주님께 곤란한 질문을 하며 도전했어요. 예수 선생이여, 당신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십니까? 세금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인지 옳다고 보십니까?
여러 계명 중에 제일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선수 교체를 하며 이런저런 질문 공세가 펼쳤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명확하게 답하셨어요. 종교 지도자들이 완패했어요. 오늘 본문과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태복음 23장에, 예수님은 일곱 번에 걸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민망할 정도로 그들을 맹렬히 꾸짖으셨습니다. 격렬한 논쟁의 날도 어느새 저물어 갔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전을 뒤로하고 감람산을 향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별명은 황금 도시(golden city)입니다. 해가 질 무렵의 예루살렘은 너무 아름답습니다. 2001년 10월 말, 성지 순례 중에 제가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 예루살렘이 황금 도시라고 하는지 금방 확인할 수.
3. 석양이 돌로 건물들을 지은 예루살렘을 비칠 때, 황금물결을 이뤘어요. 헤롯이 40여 년에 걸쳐 공들여 지은 성전에 저녁노을이 비치자, 그 위용에 압도된 사람들이 성전의 아름다운 돌과 빛나는 것들로 꾸민 것에 감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것이다.”고 선언하셨어요. 무리들이 놀라서,“언제 그런 일들이 있겠습니까? 이런 일들이 일어날 때 어떤 징조가 있겠습니까?”(7절) 물었습니다. 이들의 질문에 예수님이 답한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끝까지 다 읽어도 주님은 징조들에 대해서만 답을 하시지 그때가 언제인지에 대한 구체적 말씀이 없습니다. 왜 주님은 시기와 징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징조만을 길게 답하셨을까요?
갈등 심화
4. 이스라엘에게 심장과도 같은 성전이 파괴된다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군대들이 에워싸거든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성전 파괴와 예루살렘의 처참한 멸망의 날에 대해 주님이 예언하셨어요. 이러한 예언은 주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그 후 약 40년이 지나서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성전과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주님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어요. 이스라엘이 다시는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지 못하도록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무너뜨렸어요. 로마와 유대는 황제숭배와 성전세 문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주후 66년 총독이었던 플로루스는 네로 황제에게 바칠 세금이 모자라자 성전에 들어와 17달란트를 빼냈습니다. 이에 항의하던 유대인들을 총독은 십자가형에 처했고 이 일로 유대인들의 반란은 확산되어 갔어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아들이 유대인들을 진압했습니다. 주후 70년 디도 장군의 공격으로 예루살렘과 유대는 최후를 맞았어요. 성전과 예루살렘 파괴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은 24절부터는 범위가 확대되었어요. 주님은 해와 달과 별에서 이상 징후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체들이 흔들리고, 바다에서는 파도가 사납게 일어나 커다란 혼란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5. 이런 일이 일어나며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휩싸이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런 예언을 들었던 제자들의 마음은 얼마나 놀랐을까요? 주님은 놀란 제자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을 전해주셨어요.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환난의 날에 두려워하며 숨을 곳을 찾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인 제자들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다시 오신다고? 도대체 어디를 가신다는 것이지? 오늘따라 예수님은 도통 알 수 없는 말씀만 이어 가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이야기를 하셨어요. 무화과나무는 우기인 겨울철에 물오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을 내었는데 이는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통해 계절의 추이를 알아요. 주님은 시대의 징조를 통해 환난의 때를 감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환난이 임하는 때도 징조들이 나타나거든 곧 멸망의 날이 가까운 줄 알라고 하셨습니다. 33절,“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6. 예수님은 제자들이 궁금해하는 그‘때’가 언제인지는 여전히 특정하지 않으시고 다만,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셨어요.‘때’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그날이 덫처럼-도둑처럼 들이닥칠 것이니‘조심하고 깨어있으라’고 당부만 덧붙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환난이 임하는 때와 징조를 묻는 제자들에게 징조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설명하시면서, 때에 대하여서는 분명한 말씀을 주시지 않았을까요? 왜 예수님은 ‘언제’를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어떻게’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실마리
7. 오늘 본문으로부터 40여 일이 지났을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때를 물었어요. 예수님은“때와 시기는 아버지께 있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면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어요. 제자들은‘언제’를 물었고, 예수님은‘어떻게’를 말씀하시며 때에 대해 선을 그으셨습니다. 시간은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결과에 집착하는 사람은 정해진 때에 맞춰 열심을 낼 것입니다. 과정도 중요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은 삶의 태도와 자세를 보십니다.
예수님이 주신 환난의 날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지는 의외로 간단해요.‘조심하라’와‘깨어있으라’입니다.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은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입니다. 방탕함과 술 취함은 세상의 쾌락을 즐기는 생활 태도를 말해요. 생활의 염려는 삶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의미합니다. 디지털 세상이 활짝 열린 이 세상은 매일 새롭고 흥미진진합니다. 이 시대의 엔터테인먼트(예능)는 이미 모든 세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각종 중독이 늘어가고 있어요. 유흥문화는 날로 더 자극적이어요. 세상은 현재를 즐기라고 부추킵니다.(카르페 디엠)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들으며 더욱 신나고 즐거워합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날도 이 마음으로 젊은이들이...
8. 우리는 사회 속에서 일하며 관계를 맺어요. 복잡다단한 세상을 살아갑니다. 고단한 삶은 많은 염려와 걱정을 갖게 해요. 윤택한 생활을 위하여 수입과 직장을 염려하고 틀어진 관계 때문에 걱정해요. 어떤 사람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어떤 사람은 건강 문제로, 어떤 이들은 애정문제로 고민하고, 자녀의 학업과 진로 문제로 갈등합니다. 이러한 세상사에 함몰되면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술 취함과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라고 가르치십니다. 사람이 세상에 발 딛고 살기에 술 취함과 방탕함과 생활의 염려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약점을 아시기에 두 번째 명령을 주셨습니다.“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36절) 이것이 열쇠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을 흔드는 세상의 유혹과 생활의 염려 속에서도 깨어서 시대를 분별하고 항상 기도에 힘쓰면 장차 올 말씀하신 모든 일을 피할 수 있어요. 조금 의외입니다. 마지막 날에 있을 엄청난 환난을 대하는 자세가 좀 평범합니다. 재난극복을 위한 대책에 특별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저 일상 가운데 꾸준히 행하는 신앙인의 삶의 태도에요. 예수님은 왜 이렇게 평범한 대책을 주신 것일까요?
9.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의 시기를 묻는 제자들에게 그 시기를 밝히시지 않으셨어요. 신앙적 권면만 주셨습니다.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날이 언제인지 알고 그날을 대비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하는 현재의 삶을 믿음으로 살도록 권면하는데 있어요. 죽어서 갈 천국만 기다리지 말고(기복신앙-이 땅에 보화를 쌓는), 오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라(하늘에 보화를 쌓는)고요. 세상의 종말과 관련해 시대를 분별할 필요는 있지만, 그 시기에 집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예수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녀들은 특정 시기에 집착하기보다 그날이 임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믿음 안에서 매일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이 지혜요. 참 신앙임을 말씀하십니다.
복음 제시
10. 2천 년 전 예수님은 어두운 땅에 파루시아-임하셨습니다. 메시야가 낮고 천한 마굿간에서 나셨어요. 하늘의 천군천사들과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만이 하나님의 아들의 성탄을 알았습니다. 메시야 대망이 팽배해있었던 시대였지만, 사람들은 그날 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파루시아)을 아무도 몰랐어요. 다시 파루시아 하시는(재림) 예수님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초림과 달리 최고의 비밀이 아니라 모두가 알 수 있게 공개적으로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시는 주님은 모두가 알고 모두가 볼 수 있습니다. 대림절은 예수님의 성탄을 기억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성탄과 함께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어요. 지금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어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고 있습니다. 약속하신 구원자 예수님이 오신 것같이, 마지막 날-종말에도 우리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시기 위해 약속을 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이미 내 안에 오신 예수님, 지금 오시고 계시는 예수님을 항상 깨어 기도하며 기다리는 대림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대
11. 우리가 항상 깨어 기도하는 것은, 내적인 삶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내적인 삶과 더불어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향해 능동적으로 나가야 해요. 그것은 이 땅에 보화를 쌓지 않고 하늘에 보화를 쌓는 것이에요. 내세-죽어서 갈 천국을 소극적으로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치앙마이 선교지 순회 사역을 잘 마치고 왔습니다. 동행하신 장로님과 집사님이 세 번씩 간증을 잘 해주셨어요. 제가 강의나 집회를 하면서 중간에 간증을. 목회자들에게,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신학대학원 학생들에게요. 그동안 12번째 선교지 순회 사역 가운데 가장 다채로운 사역을 했습니다. 두 분의 공통적인 간증은 선교적인 삶이었습니다.
장로님은 70대 초반, 집사님은 60대 중반입니다. 그들의 남은 생은 돈을 벌다가 선교를 하고, 돈이 떨어지면 또 돈을 벌어서 선교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하늘에 보화를 쌓는 마지막 생애) 내년에도 함께 가시기로 했어요. 항상 깨어 기도하는 성도는 전도와 선교 현장에 나가기를 기뻐하고 우선합니다. 두 분은 평소에는 전도 현장에 함께 나가십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증인이 됩니다. 성령님이 임했다는 사람이 전도와 선교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우리교회는 선교적인 교회입니다. 전도와 선교를 할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계속해서 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일어나서 찬양하며 이런 교회와 성도가 되도록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주님여 이 손을)